지난 주말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 전시는 2023년 7월부터 11월까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나무와 뱀, 인도 초기 불교미술>의 한국 전시다. ‘나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를 상징하는 것이고, ‘뱀’은 신화 속 머리가 여럿 달린 뱀인 ‘나가’를 의미한다.
석가모니는 인도와 네팔 국경 근처 마을에서 태어나 북인도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나서 그의 제자와 수행자들에 의해 불교가 전파되면서 전 세계로 불교가 뻗어나갔다. 전시를 통해서 특히 데칸고원 이남인 남인도 지역에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았고 불교가 자리잡으며 표현되는 미술 세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원전 2세기 말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제국이 무너지고 남인도에 사타바하나 왕조가 들어선다. 이 기간 동안 남인도에 스투파가 세워진 것은 물론 많은 유물들이 만들어졌다. 전시에서도 사타바하나 왕의 관련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왕실은 불교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신자들은 왕실의 후원을 바라며 많은 기부를 했다고 한다.
남인도는 적도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덥고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식물들이 아주 잘 자라는 환경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작부터 연꽃, 뿌리 식물 등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들을 배경으로 한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신의 모습을 한 정령이 입에서 연꽃 줄기를 뿜어내는 모습도 보이고 연꽃이 보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연꽃 무늬가 끝없이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는 생명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항아리에는 물이 가득 차 있고 식물들이 솓아져 나오며 풍요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수 효과로 식물 덩쿨 줄기를 표현하여 그 생생함을 업그레이드하여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나 불교가 전해진 이후에도 이런 고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불교 미술과 접목하여 독특한 미술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이 돋보였다.
아래 그림은 생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풍요의 신 ‘락슈미’다. 풍요의 신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항아리 안에서 솟아나오는 연꽃 위에 신이 그 위에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건조한 겨울이 끝나고 나면 풍요의 계절이 시작됨을 표현한 것 같다.
이번 전시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마카라’라는 바다 생물이다. 전설의 동물 마카라는 악어 입에 코끼리 코,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의 귀, 달팽이처럼 말린 긴 꼬리를 지녔다. 언뜻 보면 악어인가 싶게 생겼다. 하지만 독특한 꼬리 덕분에 확연히 악어와는 다른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카라는 우리 식으로 보면 ‘봉황’이나 ‘용’처럼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생물이지만 신화 속에서 존재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유물로도 남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카라는 사나운 모습이어서인지 석가모니를 지키는 존재로, 스투파의 입구를 표시하는 토라나에 조각으로 남아 있다.
한반도도 과거에 자연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으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인도도 자연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나무에 깃들어 풍요를 전해주는 신이 존재하는데 남성 신은 ‘약샤’, 여성 신은 ‘약시’라고 부른다.
왼쪽에는 목과 엉덩이에 묵직한 장신구를 한 것이 약시이다. 약시는 다산을 가져오는 존재로 숭배되었다. 엉덩이에 걸친 띠에 연꽃 무늬가 눈에 들어오는데 오른쪽 손은 사라져서 알 수 없지만 연꽃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락슈미가 풍요의 신이었던 것처럼 약시도 풍요의 신이 되었으나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존재로 승화된 것 같다.
오른쪽에 있는 것은 스투파를 지키는 인도 고유의 신으로 아까 소개한 ‘마카라’를 타고 다니는 물의 신인 ‘바루나’다. 그가 밟고 있는 것이 ‘마카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약샤’가 동전을 쏟아내는 중이다. 전시에는 영상 효과로 바닥에 동전이 주르륵 떨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머리에서 돈이 나온다니 재치 있고 흥미로운 발상이다. 이는 재물과 생산의 신이자 상인들의 수호신인 ‘쿠베라’를 보좌하는 존재이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오래전부터 강에 사는 뱀인 ‘나가’를 신으로 숭배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머리 하나인 뱀이 아니고 머리가 여러 개인 것이 특징이다. 다수이니 이것도 풍요의 상징일 것이다. 나가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어 불교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아래의 나가는 머리가 7개로 표현되었다. 어떤 것은 3개이기도 하고 5개가 있기도 하고 전시에서도 다양한 나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우리아 왕조는 인도 전역에 불교를 전파한 제국이다. 그러나 제국은 국제적으로 다양한 국가와 교류를 한 것 같다. 아래의 유물들을 보면 서아시아를 넘어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 문화의 냄새를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장식한 원반이나 큐피드로 장식한 손잡이, 마차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페르시아에서 사자 모양 뿔잔이라고 한다. 너무 독특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에 술 마시면 술맛 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근데 씻기는 좀 불편할 것 같고.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에서도 언급되듯 스투파 유적 중 오늘날 그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중인도 지역의 산치 스투파 유적 뿐이다. 8만 4천 기의 스투파가 아쇼카 왕 시절 인도 전역에 세워졌지만 오랜 시절을 거치며 그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래는 스투파 사리 단지인 사리병이다. 스투파 모양을 한 것이 단 번에 눈에 들어왔고 특히나 수정이 재료로 쓰였다고 하니 정말 귀한 존재를 위한 사리병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사리를 사리함에 담는 전통은 인도 뿐 아니라 불교가 확산된 전역에 퍼져 나갔다. 우리 나라도 사리함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특히나 사리를 담는 가장 안쪽 재질은 이렇게 귀한 재료를 사용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것이 스투파를 표현한 양식 중 하나이다.
‘나가’ 대신에 스투파 원형을 꽃줄로 휘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래 말이 있는데 석가모니의 출가를 도운 말로 짐작되며 왼쪽 아래에는 보리수 나무가, 오른쪽 아래에는 미니 스투파가 조각되어 있다. 석가모니의 출가를 상징하는 유물들을 한 곳에 표현한 스투파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우산 형식의 차트라(산개), 돔 형의 안다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다르게 확인할 수 있는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아래 그림은 영국인 프레드릭 메이지가 산치 스투파를 보고 스케치한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인도에 닿았을 때 고고학적 관심이 폭발하였고 이때 다양한 유적과 유물들이 폭발적으로 복원, 발굴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스케치 덕분에 산치 스투파를 제외하고 형태가 온전하지 않은 스투파가( 장식 등) 어떤 형태일지 짐작해볼 수 있게 되었다.
석가모니가 당분간 어머니를 볼 수 없게 되자 그녀를 위해 석가모니의 상을 만들게 하였다. 이 세상에 나온 최초의 불상이라고 하는데 바로 아래 불입상이다. 세밀한 옷 주름과 온화한 표정, 풍만한 몸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아래 불상과 비교하면 인상이나 착의에서 다름이 느껴진다.
아래와 같은 청동 불입상은 바닷길을 통해 스리랑카나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까지 수입된다. 아래 불상이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부처와 더 가까운 모습이다.
전시를 다 보는데 2시간 정도 걸렸다. 볕이 좋아서 나들이하기 딱인 날이었다. 미세먼지가 있어서 아쉬웠지만 박물관 뒤로 보이는 남산타워의 조망도 근사했다.
이 전시는 이번주가 지나면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간만에 콧바람도 쐬고 힐링도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