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티크M Critique M 2023 Vol.6 - 마녀들이 돌아왔다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8월
평점 :
품절


이 섹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잡지를 애써 구매하고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녀들이 돌아왔다> 섹션은 내 기대를 대체적으로 충족시켰다.

아무래도 국내 필자가 쓴 내용들이 나와 대체적으로 더 맞는 것 같았고 '마녀사냥' 이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칼럼에서 언급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잡지를 읽기 전 그 책을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페데리치는 중세 유럽에서 억압당한 여성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여성들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마녀로 몰렸는지를 밝히고 있다. 소외된 여성이 마녀로 몰렸다. 정부와 교회는 주류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공격해 기준을 세웠다.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여성들, 즉 독신으로 사는 여성, 자유분방한 여성, 부랑자 여성, 근대 의학이 등장해 이 시기에 사라져가는 민간요법을 잘 아는 여성들이 타깃이었다. [ 재조명되는 마녀의 시대 by 나이케 데크슨 ]

중국에 양리라는 코미디언이 마녀사냥으로 집중 포화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큐 <피의 연대기>를 다룬 칼럼도 인상적이었다(다큐를 막상 보지는 못했지만 여자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칼럼은 현대미술에서 제의로 표현되는 예술가의 표현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 예술가의 이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브라모비치, 이름이 알려진 만큼 아시는 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를 탄 작품 때문에 그녀는 이후 활동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한국 현대 미술계에도 초기 박영숙 선생님 등이 활동을 시작하신 후 오늘날에는 점점 더 많은 여성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는 것 같다. 현대 미술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씩 이해도를 높여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여름의 더위에 고기와 지방이 부패하는 악취가 지하에 가득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소뼈 더미 위에 앉아 브러시를 들고 뼈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고향인 유고 슬라비아의 민요였다. 노래를 부르며 뼈를 닦다가 울부짖는 행위가 나흘 동안 지속되었다. 1997년 6월,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작품 <발칸 바로크>(1997)다. 영적인 에너지를 탐구하고 신체를 적극 활용하며 파격적인 형태를 선보이는 작품들 때문이기는 하지만 결정타는 <영혼요리>(1996) 때문이다. (...)


<발칸 바로크>는 1990년대 발칸 반도에 피바람을 불러온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고향인 유고 슬라비아가 자행한 대량 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속죄의 퍼포먼스였다. 완전한 외부인이 아니었던 그는 전쟁과 인종 청소에 대해 강력하게 발언하기도, 그렇다고 외면할수도 없었기에 피를 닦아내고 노래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에 쌓인 업을 지워내고 희생자들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 [ 현대미술의 제의적 순간, 마녀와 예술가 사이 by 김지연 ]



다만 아쉬운 것은 성서에서의 마녀, 악마의 이미지에 대한 해석인데 내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그냥 훓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성서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덧) 100자평을 쓰기에는 모자란 것 같고 리뷰 쓰기에는 내용이 빈약한 것 같았지만 100자가 넘어서 리뷰로 올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9-05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화가님 빠르게 읽으셨네요! 👍👍👍
역시 성경 공부는 언젠가 해야 하는 숙제일까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3-09-05 09:15   좋아요 1 | URL
잡지는 오래 읽으면 좀... 한 번에 후딱!ㅎㅎ 근데 내용이 은근히 많아서 나중엔 대강 훓어 읽은 느낌이!
뒷부분의 성경 인문학도 그렇고 <마녀들이 돌아왔다> 섹션에도 관련 칼럼이 있었는데 내용이 제겐 많이 어려웠습니다. 성경 공부까지 할 시간은 안 되는 것이 현실!ㅎㅎㅎ

건수하 2023-09-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펴보지 못했는데 화가님 리뷰를 보니 얼른 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리뷰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거리의화가 2023-09-05 09:14   좋아요 1 | URL
수하님 저야말로 감사하죠. 덕분에 구매해서 읽게 되었네요^^*

청아 2023-09-05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중국 코미디언 양리를 검색해 봤는데 우리나라 게임 업계의 여성혐오가
떠올랐어요. 저도 마저 읽어야겠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3-09-05 11:3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미미님. 저는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농담이나 개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그 반대는 포화를 가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요. 정작 양리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는데 남성들의 공격이 참... 아무튼 미미님 즐독하시길요!
 

~ 7부

홍 대장은 뒤늦게 모든 음모와 흉계를 알았다. 늦게라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저놈들 뒤에는 늙은 관리사 이범윤이 노회한 미소를 지으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수백명 바람잡이들이 박문길(朴文吉)의 집 앞에 몰려와서 대문을 발로 박차 부수고 거기 머물던 홍대장을 끌어내어 결박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등을 떠밀어 왕거우의 유사장네 집 튼튼한 곳간으로 거칠게 끌고 가서 가두었다.
그날부터 홍 대장을 심하게 문초하기 시작했다.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온몸을 두들겨 패고 쇠꼬챙이로 찌르며 각목으로 주리를 틀었다. 왜적들에게도 안 받던 갖은 고통과 고문을 연해주 동포에게 당하고 말았다. 왜적이라면 차라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내겠지만 동족에게 당하는 더러운 유린과 모욕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홍 대장의 두 눈에선 눈물이 아니라 핏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찌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 P440

"이 땅에서 왜적을 말끔히 물리치는 날, 그날에 나는 비로소죽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들과 싸우고 또 싸우리라. 없던 힘을 새로 내어 이젠 의병대가 아니라 독립군대의 조직으로 새롭게 출발하리라. 용맹한 군대를 새로 짜서 식민지가 되어버린 신음하는 내 조국으로 진격하리라."
이로써 홍 대장은 독립군 조직과 국내 진출사업 구상에 모든 힘을 쏟았다. 열혈청년들을 불러 모아 조직의 힘도 확충하고 강화시켰다. 독립군 모집대가 사방으로 떠나갔다. - P448

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국정(林國植, 1894~1921),
한상호(韓相浩, 1899~1921), 윤준희(尹俊熙, 1892~1921), 이용맹한 애국청년들의 이름을 길이 기억하자. 그들은 죽기 전크게 한 마디 외쳤다.
"일제 강도 놈들이 우리의 작은 몸이야 죽일 수 있겠지만 조선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강한 의지는 결코 죽일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강해져만 갈 것이다. 들어라 일본아! 조선은곧 해방된다! 하지만 일본은 마침내 멸망하고야 말리라."
한편 최봉설은 뒤늦게 잡혀갔다가 놀랍게도 탈옥에 성공했다. 이후 이름을 계림으로 바꾸었다. 최계립(崔桂立)은 과연 죽음터에서도 죽지 않는 놀라운 불사조였다. - P484

주린 범의 코앞에 서서 먹잇감 찾아준다는 못된 창귀(張鬼)처럼 밀정이란 것들은 자기를 버린다. 자기뿐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윗대 조상의 족보 따위도 썩은 짚단처럼 걷어차 버린다. 그의 창자는 일찍이 뒤집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환장자‘(換腸者)라고 부른다. 살아서 적의 꼭두각시 노릇이나하니 ‘괴뢰’(傀儡)요, 일제의 더러운 발톱이나 독한 송곳니 되는 일을 자청했기에 ‘조아‘ (UI)라고도 부른다.
피로 얼룩진 역사의 책갈피에 몰래 숨어서 아, 지금도 기회 - P513

를 엿보고 있는 악질 밀때꾼의 무리여. 그들의 호시탐탐이여. - P514

"북로독군부 소속의 전체대원은 일본군 본대가 포위망에 들때까지 그곳에서 결코 자리를 뜨지 말고 철저히 매복하라! 나홍범도가 맨 먼저 권총을 발사하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 사격하라! 어떻게든 독 안에 들어온 왜적을 섬멸시키자!"
홍 장군 전술은 이번에도 『육도삼략』과 『손오병법』을 적절히응용하고 배합시킨 놀라운 활용이었다. 모든 부대가 산 높은곳에만 진을 치면 적에게 포위되기 쉽다. 그래서 산 밑에 진을치면 적에게 포위되고 만다. 이때 음양을 두루 갖춘 조운(趙雲)의 진(陳)을 친다. 혹은 음(陰)의 지역 혹은 양(陽)의 지역에다산의 양쪽으로 두루 산병선을 설치한다. 그런 다음 양에선 음을 방어하고 음에선 양의 방향을 지킨다. 진이 산의 왼쪽이면오른쪽을 방어하고 오른쪽 진이면 왼쪽을 방어한다. 적이 무리하게 몰려오면 아군이 일면 방어한다. 이때 급히 지름길을 - P534

고 다른 기습 부대는 적의 교통을 차단한다.
대장기를 높이 올리고 전군을 경계하며 왜적이 우리의 정보를 쉽게 알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을 옛 중국의 전법에서는 산성(山城)이라 일컫는다. - P535

그날 밤 홍 장군의 방에는 새벽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하들 앞에서는 호랑이 같은 지휘관이었지만 만상이 잠들어자 앉은 깊은 밤, 장군의 눈은 서러운 물기에 젖었다.
"이 아비는 항일투쟁에 바친 몸. 네가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생활도 해보았으련만…" 교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고 측은한 심정이 치밀어 가슴은 무너져 내렸고 심장은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듯했다. 급기야 아픈가슴을 쓸어안고 신음하며 엎드리니 온몸의 피란 피가 거꾸로솟는 것 같았다.
"에구 불쌍한 것, 애처로운 것..." - P556

연길 주재 중국군 대장 맹부덕(德)은 곧바로 응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일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론 일본군 요청을 수락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대한국민회와 연락을 가졌다. 대한독립군을 자신의 경계 지역에 주둔시키다가 봉천에서 쫓기면 길림으로, 길림에서 수색이 시작되면 다시 봉천으로 이렇게 왕래하라는 자세한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민족은 달라도 그는 항일투쟁의 대열에서 둘도 없는 동지였다. 맹부덕의 중국 군대는 모든 독립군 부대가 자신의 근거지로 이동하도록 은근히 도왔다. 이로써 북간도 일대의 모든독립군 부대 근거지 대이동은 일사불란하게 단행되었다. - P5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고학이 무엇이고 고고학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This man is doing history-even though he doesn‘t haveany written letters or other documents. He is discovering theof the people of the village from the things that they leftbehind them. This kind of history is called archaeology. Histo-rians who dig objects out of the ground and learn from themare called archaeologists. - P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제5부

두만강 너머 하산, 그곳 동포들이 키우는 소는 하루에 세나라를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고 했다. 사냥꾼이 아침에 두만강을 넘어가면 저녁엔 그날 잡은 들새를 들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만큼 세 나라 국경은 바로 지척에 머리 맞대고 있었다. 조선과 중국과 러시아가 바로 한곳에 서서 휘둘러보이는 곳. 동포들은 여기에 터 닦고 농사짓고 사냥했다. - P42

그로부터 한인들의 노령 이주행렬은 늘어만 갔다. 1910년대에만 10만 명, 1920년대엔 20만 명. 이들이 건너가서 황폐한연해주 일대를 모두 개척했다. 신한촌(新韓村) 개척리, 수창 석인동 등지에는 제법 큼직한 한인마을이 생겨났다. 개척리(開拓里)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변두리에 있던 한인마을이다. 수창은 수찬으로 불리던 지금의 파르티잔스크의 한국식 명칭이다. 당시 러시아 지명 카레이스카야 스라보카를 현지 동포들이일컫던 지명이다. 그곳으로 수많은 의병과 망명자들, 새 삶을찾아 떠나온 한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 P43

딱 벌어진 가슴, 다부진 체격, 짙고 숱 많은 눈썹은활처럼 굽었고, 두 눈은 슬픈 코끼리를 닮았다. 턱수염이 점차돋아나고 굳게 꽉 다물린 입, 어느 틈에 소년은 차분하고 사려깊은 청년의 꼴을 갖추고 있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불의엔 냉정하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다감한 청년이었다. 오랜 머슴살이의 고달픔은 범동이에게 땀과 슬기와 신의를 가르쳤다. 범동이는 미투리 삼다가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오봉산 위의 저녁놀을 보았다. 노을은 이글이글 불타듯 한순간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더니 곧 가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잠기어 갔다. - P60

"나는 그동안 내 몸의 힘만 믿고 살아왔구나. 맑고 깨끗한 마음, 어질고 부드럽고 살뜰한 마음.… 이런 마음이 나에겐 너무나 부족했구나. 맑은 산골 물아. 너는 내 가슴으로 흘러라. 흐르고 흘러서 마음속 오물과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다오."
범동은 수계를 받고 지담 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스님이 새법명을 지어주었다. 등불 등(燈), 밝을 명(明). 어두운 세상의밝은 등불이 되라는 뜻이다. 새 이름도 지어주었다. 광막한 세상에서 백성들에게 널리 도움을 주는 큰 그릇이란 뜻이 담겼다. 우주의 이치가 낱낱이 들어 있다는 홍범(洪範)의 그림과 구주(九縣)를 생각하다 문득 얻은 이름 홍범도!
‘아! 홍범도!‘ - P85

당시 대다수 포수들은 머리를 삼베로 감아 맨 노랑포수였다.
백두산 밀림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쳐가며 달리는 그들은 한번나가면 몇날 며칠 머리를 못 감았다. 옷자락이 가시덤불에 걸리는 것보다 상투가 나무에 걸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이 때문에 상투는 진작 잘라버리고 대신 삼베노끈으로 망을 떠서 썼는데 그 땀에 절은 노란 빛깔 때문에 노랑포수라 했다. 포수들의 복장을 살펴보자. 미투리에 감발하고 바짓가랑이엔 끈으로행전(行纏)을 묶었다. 함경도식 긴 저고리는 허리띠로 동여매고 어깨에는 화승총을 메었다. 단도는 가죽집에 넣어서 허리에찼다. - P134

아무르강 어느 외진 숲 그 사방에 널브러진 어느 유망민(民) 일가의 백골을 생각한다. 낯선 타관을 정처 없이 떠돌다함박눈 내리던 날, 해저문 숲 계곡 틈에 쓰러진 채 고향 하늘그리며 숨져간 그들의 마지막 웅얼거림을 생각한다.
‘어머니‘라고 불렀을까.
사랑하는 애인의 이름을 불렀을까.
찬바람 맞으며 돌아가는 귀향 길 홍범도는 연추에서 훈춘으로 훈춘에서 밀강(密江)으로 한 바퀴 휘돌아 온성마을이 안개속에 묵묵히 바라다 보이는 국경 어구에서 두만강을 넘었다.
그토록 삼엄하던월강봉금령(越江封禁令)도 풀리어 이제는많은 이주민들이 일본군 국경수비대 분견소(分遣所) 앞을 길게장사진 이루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서 있다. 한 사람이 넘어온 두만강을 그들은 새삼스레 건너가려 하는구나.
범도는 이번에 러시아 땅 곳곳을 다녀와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언제나 겨레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그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 P202

일본군 토벌대는 말로는 폭도를 잡는다며 나섰으나 속으로는 홍범도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혹시라도 접전하게 되면겁을 먹고 먼저 꽁무니 빼기가 일쑤였다. 혜산진 남쪽 30리 고거리 습격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수비대 진영을 기습하니일본군 병사들은 황급히 총을 버리고 숲으로 달아났다. 용맹하다는 제국군대의 꼬락서니는 이렇듯 가관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적들의 보고서는 자신의 허점을 감추기에급급했다.
마을주민들은 원래 성품이 간악하여 폭도를 동정하는 자가 많고, 폭도를 위해 원조적 행위로 나가는 자가 있다. 이런 정황으로 금일에 이르러서는 설유(說) 및 기타 어떤 방어수단도 그 효과가 없고 형세는 날을 따라 나쁘다. - P274

"김원홍! 네 이놈! 네가 수년을 진위대의 참령(參領)으로 나랏돈을 수만 원씩 받아먹다가 나라 망하게 되면 벼슬자리 마땅히 내어놓고 시골로 들어가 감자농사나 지어 먹고 지내는 것이백성의 도리가 아닌가. 저 왜놈들 정미칠조약에 적극 참가해서인민의 반역자를 자청하니 너같은 놈은 열 번을 죽어도 시원치 않다."
홍 대장이 이어서 외친다.
"임재덕! 들어라! 네놈은 이놈보다 훨씬 악독한 도적놈이니내 너와 무슨 긴말을 나누겠는가. 그동안 네놈에게 억울히 당하여 목숨을 잃었던 백성의 이름으로 너희 두 놈을 즉각 사형에 처하노라! 다른 앞잡이 놈들도 내 말 똑똑히 들어라! 너희나내나 다 같은 동포로서 무슨 원한 그리도 많아 저런 천하 역적놈과 공모하여 나를 해치려 했느냐. 저 왜적 높은 남의 강토를제 땅으로 만들자 하니 그럴 수 있다 치자. 너희 놈들은 이 강토의 백성으로 태어나서 어찌 동족을 해치는 독사가 되었는가.
네 아비 네 어미 다 너와 같이 세상에서 아주 씨를 말려야겠다." - P303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구국사업에 기꺼이 온몸을 내던진 겨레의 별들.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잡혀간 부하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홍대장의 범 같은 눈에선 푸른 불꽃이튀었다.
그대들 원수를 내 기어이 갚아주리라. - P335

유인석은 이국 땅 호롱불 밑에서 평소 구상해오던‘의병규칙’(義兵規則)을 드디어 완성했다.
의병은 어떻게 만드는가.
의병은 어떻게 이끌어가는가.
의병은 어떻게 싸우는가.
이 세 가지 방법이 가장 중요한 골격이었다. - P348

현재 그대의 형세를 보건대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다만 몽매함이며,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이제 일을 이루려 - P405

면 한두 사람의 지략이나 용기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여러 사람의 지혜와 용기를 합해서만 가능합니다. 나는 우리의 홍여천이 의도하는 바를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병사를 거느리고 가벼이 나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비록 용감하다고 하나 어찌 옛날의 명장을 따를 수 있으리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병서(兵書)의 상식이라 모든 사람이 늘 외우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병사를 거느리고 여전히가벼이 나아갈 뜻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지피지기가 아닙니다. 그대는 이 점을 깊이 헤아려서 마음에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고 나서 홍 대장은 밤을 꼬박 새우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악조건과 궁지에서 당장 벗어날 방책과 앞으로의투쟁방향을 헤아렸다. - P406

관일약이란 민중의 마음을 관통하여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매우 필요한 약속이란 뜻이다. 구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관일약이었다. 약(約)이란 엽전을 꿰는 일과 같으니 비록 만금(金)이 있다 하여도 그것이 낙엽처럼 흩어져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마음으로관일,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관일, 한 사람을 얻어서 관일, 열사람을 얻어서 관일, 백천만 명을 얻어서 관일, 한 나라의 모든 - P411

백성이 오직 관일을 실천한다면 국권회복의 길은 뜻밖에도 수월히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유인석은 이 관일약 사상을 알리려고 사방으로 편지를 보내어 공지했다. - P4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9-04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계시군요
저도 사서 읽으려구요
도서관에도 희망도서 신청했어요

거리의화가 2023-09-04 11:00   좋아요 1 | URL
네 분량은 제법 되는데 마치 문학처럼 쑥쑥 읽히는 마법 같은 책이네요. 그레이스님께도 좋은 독서가 되시리란 생각이 듭니다^^
 
하버드 중국사 원.명 - 곤경에 빠진 제국 하버드 중국사
티모시 브룩 지음, 조영헌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3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 사이에 중국에는 두 왕조가 군림했다. 첫 번째 왕조는 1271년 건립한 원으로, 쿠빌라이 칸은 세계 정복자 칭기즈 칸의 손자였다. 다음 왕조는 명으로, 주원장이 1368년 건립했으나 1644년 북방 초원에서 내려온 만주족에 의해 전복되었다. 원-명은 중국의 전제 체제를 구축했고, 중국 사회를 확대가족 집단으로 재편했으며, 상업적 부가 집중되기 쉽도록 중국의 가치를 재조정한 왕조였다. 원-명 시대는 기후학자들이 '소빙하기'라 부르는 시기와 일치했다. 원-명 사람들은 안으로는 이상 기후에 시달리고, 해안에는 외국 상인이 끈질기게 출현하는 통에 더욱 가중된 혼란을 겪었다. 그 가운데 과거의 전례에 집착하며 이를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과거는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자기를 위한 공간을 찾았다. 원-명 시대가 대단히 혼돈스럽고 불화不和의 사회였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 P15~18

하버드 중국사 이번 편은 13세기부터 17세기, 장장 4세기에 걸친 시기를 다룬다. 송을 정복한 몽골은 중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전 정권의 합법적 계승자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역사를 수집하여 기록하였다. 명은 몽골이 지배한 영역보다 축소된 영토를 얻은 대신 중화를 회복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중국인은 몽골을 '호'라고 여겼으므로, 몽골인에게 스스로 '화'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주장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포괄적인 '일통一統'이라는 개념을 찾아냈다. 쿠빌라이는 여러 민족을 자기의 통치권 아래에 두어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고 자기를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고 주장했다.
원이 중국 전통 왕조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요사, 금사, 송사라는 세 왕조의 정사 편찬 작업이 큰 도움이 되었다. 더 나아가 쿠빌라이는 또다시 중국인의 권고를 받아들여 국가 규모의 지방지를 편찬하도록 했다. 이 안에는 모든 영토를 포괄하는 지리와 행정 명부, 그리고 인물에 대한 기술이 담겼다.
주원장은 몽골 지역과 시베리아 영토를 포기해야 했다. '천하일통', '국조일통', '일통만방' 같은 표현들이 주원장 때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해서 국가적 담론을 지배했다. - P66~67

나는 성격이 다른 두 왕조를 저자가 왜 한 권에 다루려는 선택을 했을까 궁금했다. 이는 결국 두 왕조 모두 공통적으로 기후 재난의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가뭄과 홍수, 기근, 메뚜기 때의 공격, 소빙하기로 평년보다 낮아진 기온 때문에 농업을 기본 산업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입장에서 큰 혼란이 초래되었다. 책에는 '아홉 번의 늪'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한 번 올 때마다 짧으면 2~3년인 경우도 있지만 길면 15년이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장기간의 재난을 개념화하기 위해 저자는 '슬라우'(번역서에는 늪이라고 표현됨)라는 고어를 사용했다. 슬라우는 거름을 모아두는 곳으로 나그네가 빠지기 쉬운 웅덩이 또는 저지대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곤란한 상황을 묘사하는 은유로 사용된다. 
날씨는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적 조건이다. 당시 사람들도 이상 기후 및 재난에 관한 기록을 정사에 기록했고 기후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재난을 예측하기도 했다. 기후 문제가 역사서에 등장한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매일의 날씨는 사람들의 기분을 좌우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점점 온난화되는 기후로 인해 이미 지구는 병들어 이상 기후로 나타나고 지구인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하물며 이 시기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했다. 농사를 짓고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뭄, 홍수, 한파 등은 흉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명은 장자 계승이 기본 원칙이었지만 몽골은 형제 상속을 기본 원칙으로 하여 쿠릴타이에서 경쟁자를 물리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때문에 원은 우구데이 사망 이후에 끊임없이 상속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이 지속된다. 원 왕조가 오래 가지 못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 왕위 계승의 시스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왕위 계승에 장자 상속제가 여전히 유효했으나, 다른 요소도 개입할 수 있었다. 칸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쿠릴타이'라고 부르는 귀족들의 회합에서도 선거로 지배권을 비준받아야 했다. 부친을 계승하려고 형제들이 경쟁하는 관습을 '테니스트리tanistry'(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지방에 거주하던 고대 게일Gael인의 계승 제도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재산과 지위를 계승하는 관행을 일컫는다.)라고 부르는데, 이 과정에서 형제 간의 살육은 비일비재했으며, 이를 '유혈의 테니스트리'라고 부른다. - P162~163

명은 5차례의 정치적인 중대 위기(호유용의 변, 정난의 변, 토목의 변, 대례의 논쟁, 국본의 위기)를 겪었다. 다섯 사건 대부분이 왕위 계승 등의 문제로 왕권과 신권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여 피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왕조의 합법성을 지켜낸다는 명분을 내건 황제의 바람이 한 쪽을 담당했다면 나머지는 충신의 의무를 지켜내기 위함이라는 관료들의 논리가 있었다.

명의 정치 문제는 그 원인을 비극적인 결함으로 보기보다는 '타협의 문제'로 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통치자와 고위 관료 사이에 독재 정치를 수긍하는 '충성' 조항이 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잘못은 관료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통치자가 처신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황제는 독재 정치 시스템의 본질이자 국가의 근본이었고, 그 왕조의 생존을 보증하는 확실하고도 유일한 담보였다. 황제는 권력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으나 그 방법을 몰랐고, 관료들은 황제를 섬기는 일에 앞서 나라를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믿었으면서도 그 원칙을 버리고 황제를 택했다. 이러한 관계에서 발생한 충성은 결국 통치자와 관료 모두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 P203~204

원-명 시기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치와 사회의 수준은 따라 높아졌고 농상공업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전하자 교류가 활발해졌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거래되는 물품의 가치가 높아졌고 단위가 큰 물건을 구입할 때 휴대가 편리한 은의 필요성이 증대했다. 1436년 명이 일부 지역의 세금을 은으로 납부하도록 하자 은납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조정은 개인이 귀금속을 보유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였기 때문에 국내 은광 개발을 제한하여 은 품귀 현상을 빚게 된다. 16세기 후반 일본과 페루에서 막대한 은이 유입이 되고 나서야 상황이 개선된다. 원-명 시대에는 늘어난 교류만큼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이기 좋은 조건이 되었다.
다양한 상품이 막대한 규모로 생산, 유통, 소비되면서 황실, 권세가 뿐 아니라 집에 막대한 물품을 쌓아놓은 창고를 소유한 거부(대상大商)가 생겨난다. 돈만큼이나 취향이 경제를 구성하는 중요 기반이 되면서 미적 안목이 있는 감정가들의 몸 값도 자연스레 올라가게 된다. 이제는 사치품을 살 만한 형편이 되는지의 여부보다 어떤 사치품을 구매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책에서는 명 말 수집가들 중 가흥에서 거부가 된 이일화라는 사람의 물품 획득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 서적, 가구, 도자기, 서예와 회화 등 다양한 물품이 거래되었다. 이일화는 진정한 문화물을 소유하는 것이란 좋은 양육과 교육을 받은 증거라고 간주했다. 그는 투자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명품을 수집하는 부자가 아니라 사심 없이 문화적 전통을 전수하는 자임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중국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원-명은 가족의 사회적 성격이 변화되는 시기였다. 당의 오래된 귀족 가문은 사라졌고, 송의 왕실 가문도 사멸하고 있었다. 명 때는 조상의 연원을 원 이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뼈대 있는 가문이 드물었다. 원-명에도 훌륭한 가문은 계속 출현했지만, 그들은 과거의 명문가들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과 위상은 국가가 아니라 그 개인과 얽힌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친족망이 사람들의 삶에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면, 성의 구별은 친족망을 구성하는 원칙이었고 남성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부계 사회 유지를 위해 사회적으로 관혼상제가 정례화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사후 세계가 어떠한지, 물질세계의 본질은 어떻게 규정되는지, 지구는 평평한지, 도덕적인 삶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의견을 나눌 준비가 되었다. 특히 16~17세기가 되면 사람들은 세상을 탐구하고 책을 참조하며 고정 관념을 타개해 나갔다.

만력 연간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미 격물格物이라고 하는, 사리事理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내재했던 터라 이들에게 원형 지구 이론은 쉽게 침투될 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수학과 천문학의 기초를 잘 다진 뒤 우주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 이로 인해 천원지방이라는 자기들의 논리가 훼손됨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은 선교사들의 논증을 신뢰하게 되었다. - P345
만력 연간 지식인들 사이에 예수회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기는 했으나, 믿음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단지 소수의 유럽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 후기 사회 내부에 가해진 각종 압력 때문에도 기존의 믿음은 끊임없이 요동했다. 가령 만력과 천계天啓(명의 15대 황제) 연간의 정치적 문란, 급속한 상업화, 신분 질서의 변동, 변경 지방의 군사적 위기, 그리고 환경 조건의 악화 또한 믿음을 변화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믿음을 더는 고수하기 어렵다고 느낀 일부 사람이 주로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찾기 시작했다. - P346

'세계 경제'라는 말은 지중해 유럽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1902~1985)이 만들어낸 용어로, 본래 의미는 모든 세계의 경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의미는 빨라야 18세기부터 통용되기 시작했다. 본래 세계 경제라는 말은 정기적인 교역망을 통해 수준 높은 통합 경제를 이루어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노동 분업이 자치적으로 지속되는 광대한 지역을 의미했다. '세계 경제'가 가지만의 '세계'를 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상대적인 자치성 덕분이었다. ...
남중국해는 상대적으로 자치적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통합된 무역 구역이었다. 북쪽으로는 중국 상인이, 남쪽으로는 이슬람 상인이 조직적으로 진출하면서 15세기 후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화 원정단도 이 구역에 중국인들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항해로는 아무리 해도 그러한 세계 경제를 창출할 수 없었다. 오직 교역이 조공을 뛰어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P440~441

두 차례의 만력의 늪과 숭정의 늪, 그리고 만주족의 출현은 명의 붕괴로 이어졌다. 숭정의 늪 때는 하필 재난으로 전염병이 돌고 상업 경제가 중단되었으며 식량이 줄어들어 곡물 가격이 치솟았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자 정부 조달에 의존했던 북방 지역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곳에 있던 병사들이 도망쳐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이어지게 된다. 청이 들어선 후 명의 생존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만주 정권에 복종했다. 하지만 순순히 항복하지 않은 저항군은 만주군에 의해서 처형되거나 자살로 끝이 났다. 청은 다민족의 통합을 주장하며 들어섰다. 만주족은 제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고 명의 사회 질서를 그대로 이어갔다. 이후에는 청에 대한 저항의 불도 사그러들었고 명의 백성은 청의 백성이 되었다.

만력의 늪과 숭정의 늪은 농업 지식의 결핍이라는 함정에 걸려든 사태이기도 했고, 동시에 나라 안팎에서 진행된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 휘말린 사건이기도 했다. 남중국해에 세계 경제가 성장함에 다라 명의 경제는 연안으로 이동되었고, 물가 역시 단순히 국내 시장에 좌우된 것이 아니라(국내 시장이 좀 더 크긴 했다) 남아메리카와 남아시아 및 유럽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재조정되었다. 새로운 사상 또한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기존의 문제에 새로운 문제가 겹치면서, 아무리 훌륭한 전략가라도 체제 재정비의 과제 앞에서는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44년 청의 등장과 함께 세계 제국들의 급격한 재편이 없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당혹감 때문에 명은 끝났을 것이다. 만주족은 국경을 차단하고 황제를 칸으로 교체했으며, 제국이 되려는 야망을 부활시켰다.- P512

이 책은 원-명 시기를 환경적 접근을 통해 다루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더 짧기는 하지만 원에 대한 설명은 너무 소략하고 대부분이 명의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할애된 점이 아쉬웠다. 차라리 분권을 해서 각각을 충분히 다루는 것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국제-교역, 환경적 접근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