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중국사 원.명 - 곤경에 빠진 제국 하버드 중국사
티모시 브룩 지음, 조영헌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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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중엽 사이에 중국에는 두 왕조가 군림했다. 첫 번째 왕조는 1271년 건립한 원으로, 쿠빌라이 칸은 세계 정복자 칭기즈 칸의 손자였다. 다음 왕조는 명으로, 주원장이 1368년 건립했으나 1644년 북방 초원에서 내려온 만주족에 의해 전복되었다. 원-명은 중국의 전제 체제를 구축했고, 중국 사회를 확대가족 집단으로 재편했으며, 상업적 부가 집중되기 쉽도록 중국의 가치를 재조정한 왕조였다. 원-명 시대는 기후학자들이 '소빙하기'라 부르는 시기와 일치했다. 원-명 사람들은 안으로는 이상 기후에 시달리고, 해안에는 외국 상인이 끈질기게 출현하는 통에 더욱 가중된 혼란을 겪었다. 그 가운데 과거의 전례에 집착하며 이를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과거는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여 그 안에서 자기를 위한 공간을 찾았다. 원-명 시대가 대단히 혼돈스럽고 불화不和의 사회였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 P15~18

하버드 중국사 이번 편은 13세기부터 17세기, 장장 4세기에 걸친 시기를 다룬다. 송을 정복한 몽골은 중국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전 정권의 합법적 계승자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역사를 수집하여 기록하였다. 명은 몽골이 지배한 영역보다 축소된 영토를 얻은 대신 중화를 회복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중국인은 몽골을 '호'라고 여겼으므로, 몽골인에게 스스로 '화'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주장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포괄적인 '일통一統'이라는 개념을 찾아냈다. 쿠빌라이는 여러 민족을 자기의 통치권 아래에 두어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고 자기를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고 주장했다.
원이 중국 전통 왕조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요사, 금사, 송사라는 세 왕조의 정사 편찬 작업이 큰 도움이 되었다. 더 나아가 쿠빌라이는 또다시 중국인의 권고를 받아들여 국가 규모의 지방지를 편찬하도록 했다. 이 안에는 모든 영토를 포괄하는 지리와 행정 명부, 그리고 인물에 대한 기술이 담겼다.
주원장은 몽골 지역과 시베리아 영토를 포기해야 했다. '천하일통', '국조일통', '일통만방' 같은 표현들이 주원장 때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해서 국가적 담론을 지배했다. - P66~67

나는 성격이 다른 두 왕조를 저자가 왜 한 권에 다루려는 선택을 했을까 궁금했다. 이는 결국 두 왕조 모두 공통적으로 기후 재난의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가뭄과 홍수, 기근, 메뚜기 때의 공격, 소빙하기로 평년보다 낮아진 기온 때문에 농업을 기본 산업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입장에서 큰 혼란이 초래되었다. 책에는 '아홉 번의 늪'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한 번 올 때마다 짧으면 2~3년인 경우도 있지만 길면 15년이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장기간의 재난을 개념화하기 위해 저자는 '슬라우'(번역서에는 늪이라고 표현됨)라는 고어를 사용했다. 슬라우는 거름을 모아두는 곳으로 나그네가 빠지기 쉬운 웅덩이 또는 저지대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곤란한 상황을 묘사하는 은유로 사용된다. 
날씨는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적 조건이다. 당시 사람들도 이상 기후 및 재난에 관한 기록을 정사에 기록했고 기후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재난을 예측하기도 했다. 기후 문제가 역사서에 등장한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매일의 날씨는 사람들의 기분을 좌우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점점 온난화되는 기후로 인해 이미 지구는 병들어 이상 기후로 나타나고 지구인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하물며 이 시기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했다. 농사를 짓고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뭄, 홍수, 한파 등은 흉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명은 장자 계승이 기본 원칙이었지만 몽골은 형제 상속을 기본 원칙으로 하여 쿠릴타이에서 경쟁자를 물리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때문에 원은 우구데이 사망 이후에 끊임없이 상속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이 지속된다. 원 왕조가 오래 가지 못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이 왕위 계승의 시스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왕위 계승에 장자 상속제가 여전히 유효했으나, 다른 요소도 개입할 수 있었다. 칸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쿠릴타이'라고 부르는 귀족들의 회합에서도 선거로 지배권을 비준받아야 했다. 부친을 계승하려고 형제들이 경쟁하는 관습을 '테니스트리tanistry'(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지방에 거주하던 고대 게일Gael인의 계승 제도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재산과 지위를 계승하는 관행을 일컫는다.)라고 부르는데, 이 과정에서 형제 간의 살육은 비일비재했으며, 이를 '유혈의 테니스트리'라고 부른다. - P162~163

명은 5차례의 정치적인 중대 위기(호유용의 변, 정난의 변, 토목의 변, 대례의 논쟁, 국본의 위기)를 겪었다. 다섯 사건 대부분이 왕위 계승 등의 문제로 왕권과 신권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여 피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왕조의 합법성을 지켜낸다는 명분을 내건 황제의 바람이 한 쪽을 담당했다면 나머지는 충신의 의무를 지켜내기 위함이라는 관료들의 논리가 있었다.

명의 정치 문제는 그 원인을 비극적인 결함으로 보기보다는 '타협의 문제'로 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통치자와 고위 관료 사이에 독재 정치를 수긍하는 '충성' 조항이 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잘못은 관료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통치자가 처신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황제는 독재 정치 시스템의 본질이자 국가의 근본이었고, 그 왕조의 생존을 보증하는 확실하고도 유일한 담보였다. 황제는 권력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으나 그 방법을 몰랐고, 관료들은 황제를 섬기는 일에 앞서 나라를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믿었으면서도 그 원칙을 버리고 황제를 택했다. 이러한 관계에서 발생한 충성은 결국 통치자와 관료 모두를 딜레마에 빠뜨렸다. - P203~204

원-명 시기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정치와 사회의 수준은 따라 높아졌고 농상공업의 발전으로 도시가 발전하자 교류가 활발해졌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거래되는 물품의 가치가 높아졌고 단위가 큰 물건을 구입할 때 휴대가 편리한 은의 필요성이 증대했다. 1436년 명이 일부 지역의 세금을 은으로 납부하도록 하자 은납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조정은 개인이 귀금속을 보유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였기 때문에 국내 은광 개발을 제한하여 은 품귀 현상을 빚게 된다. 16세기 후반 일본과 페루에서 막대한 은이 유입이 되고 나서야 상황이 개선된다. 원-명 시대에는 늘어난 교류만큼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받아들이기 좋은 조건이 되었다.
다양한 상품이 막대한 규모로 생산, 유통, 소비되면서 황실, 권세가 뿐 아니라 집에 막대한 물품을 쌓아놓은 창고를 소유한 거부(대상大商)가 생겨난다. 돈만큼이나 취향이 경제를 구성하는 중요 기반이 되면서 미적 안목이 있는 감정가들의 몸 값도 자연스레 올라가게 된다. 이제는 사치품을 살 만한 형편이 되는지의 여부보다 어떤 사치품을 구매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책에서는 명 말 수집가들 중 가흥에서 거부가 된 이일화라는 사람의 물품 획득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 서적, 가구, 도자기, 서예와 회화 등 다양한 물품이 거래되었다. 이일화는 진정한 문화물을 소유하는 것이란 좋은 양육과 교육을 받은 증거라고 간주했다. 그는 투자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명품을 수집하는 부자가 아니라 사심 없이 문화적 전통을 전수하는 자임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중국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원-명은 가족의 사회적 성격이 변화되는 시기였다. 당의 오래된 귀족 가문은 사라졌고, 송의 왕실 가문도 사멸하고 있었다. 명 때는 조상의 연원을 원 이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뼈대 있는 가문이 드물었다. 원-명에도 훌륭한 가문은 계속 출현했지만, 그들은 과거의 명문가들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과 위상은 국가가 아니라 그 개인과 얽힌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친족망이 사람들의 삶에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면, 성의 구별은 친족망을 구성하는 원칙이었고 남성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부계 사회 유지를 위해 사회적으로 관혼상제가 정례화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사후 세계가 어떠한지, 물질세계의 본질은 어떻게 규정되는지, 지구는 평평한지, 도덕적인 삶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의견을 나눌 준비가 되었다. 특히 16~17세기가 되면 사람들은 세상을 탐구하고 책을 참조하며 고정 관념을 타개해 나갔다.

만력 연간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미 격물格物이라고 하는, 사리事理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내재했던 터라 이들에게 원형 지구 이론은 쉽게 침투될 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수학과 천문학의 기초를 잘 다진 뒤 우주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 이로 인해 천원지방이라는 자기들의 논리가 훼손됨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은 선교사들의 논증을 신뢰하게 되었다. - P345
만력 연간 지식인들 사이에 예수회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기는 했으나, 믿음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단지 소수의 유럽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명 후기 사회 내부에 가해진 각종 압력 때문에도 기존의 믿음은 끊임없이 요동했다. 가령 만력과 천계天啓(명의 15대 황제) 연간의 정치적 문란, 급속한 상업화, 신분 질서의 변동, 변경 지방의 군사적 위기, 그리고 환경 조건의 악화 또한 믿음을 변화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믿음을 더는 고수하기 어렵다고 느낀 일부 사람이 주로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찾기 시작했다. - P346

'세계 경제'라는 말은 지중해 유럽을 연구하는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1902~1985)이 만들어낸 용어로, 본래 의미는 모든 세계의 경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실질적인 의미는 빨라야 18세기부터 통용되기 시작했다. 본래 세계 경제라는 말은 정기적인 교역망을 통해 수준 높은 통합 경제를 이루어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노동 분업이 자치적으로 지속되는 광대한 지역을 의미했다. '세계 경제'가 가지만의 '세계'를 꾸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상대적인 자치성 덕분이었다. ...
남중국해는 상대적으로 자치적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통합된 무역 구역이었다. 북쪽으로는 중국 상인이, 남쪽으로는 이슬람 상인이 조직적으로 진출하면서 15세기 후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화 원정단도 이 구역에 중국인들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항해로는 아무리 해도 그러한 세계 경제를 창출할 수 없었다. 오직 교역이 조공을 뛰어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 P440~441

두 차례의 만력의 늪과 숭정의 늪, 그리고 만주족의 출현은 명의 붕괴로 이어졌다. 숭정의 늪 때는 하필 재난으로 전염병이 돌고 상업 경제가 중단되었으며 식량이 줄어들어 곡물 가격이 치솟았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자 정부 조달에 의존했던 북방 지역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곳에 있던 병사들이 도망쳐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이어지게 된다. 청이 들어선 후 명의 생존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만주 정권에 복종했다. 하지만 순순히 항복하지 않은 저항군은 만주군에 의해서 처형되거나 자살로 끝이 났다. 청은 다민족의 통합을 주장하며 들어섰다. 만주족은 제국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고 명의 사회 질서를 그대로 이어갔다. 이후에는 청에 대한 저항의 불도 사그러들었고 명의 백성은 청의 백성이 되었다.

만력의 늪과 숭정의 늪은 농업 지식의 결핍이라는 함정에 걸려든 사태이기도 했고, 동시에 나라 안팎에서 진행된 엄청난 변화의 물결에 휘말린 사건이기도 했다. 남중국해에 세계 경제가 성장함에 다라 명의 경제는 연안으로 이동되었고, 물가 역시 단순히 국내 시장에 좌우된 것이 아니라(국내 시장이 좀 더 크긴 했다) 남아메리카와 남아시아 및 유럽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재조정되었다. 새로운 사상 또한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 기존의 문제에 새로운 문제가 겹치면서, 아무리 훌륭한 전략가라도 체제 재정비의 과제 앞에서는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44년 청의 등장과 함께 세계 제국들의 급격한 재편이 없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당혹감 때문에 명은 끝났을 것이다. 만주족은 국경을 차단하고 황제를 칸으로 교체했으며, 제국이 되려는 야망을 부활시켰다.- P512

이 책은 원-명 시기를 환경적 접근을 통해 다루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더 짧기는 하지만 원에 대한 설명은 너무 소략하고 대부분이 명의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할애된 점이 아쉬웠다. 차라리 분권을 해서 각각을 충분히 다루는 것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 국제-교역, 환경적 접근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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