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Paperback) -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Crown Publishing Group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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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사두고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만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역시 원서는 함께 읽어야 읽을 수 있는건가. 아무튼 '강제'의 힘은 확실히 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은 미셸 오바마는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하다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미셸도 인생 여정을 거치며 쉽지 않은 우여곡절을 지나왔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상황에 놓여졌을 때 상처받고 흔들려서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부러웠다. 멋진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미셸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미셸과 오빠를 항상 어른으로 대접해주었다. 결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에든 경청하고 나서 일방적인 훈계가 아닌 방식으로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냉혹한 현실에는 꾸미거나 왜곡하지 않고 어물쩍 좋은 말로 넘기지도 않았다. 언제라도 세상에 나아가서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신 게 아닐까. 그래서 덕분에 그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통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프린스턴은 극도로 백인적이고 대단히 남성적이었다. 남학생 수가 여학생 수의 두 배가 넘었고 흑인 비율은 9%도 안 되었다. 그녀는 제3세계센터(TWC)를 통해서 흑인, 라틴계 학생 공동체와 자주 어울렸다. TWC 센터장인 처니에게서는 망설이는 일이 있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도전해보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룸메이트인 수잔을 통해서 나와 다른 자유분방한 성격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아마도 이것으로 오바마를 만나기 전 미리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을 듯), 


미셸은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 마련이었는데 그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로 정해진 길에 당연한 듯 들어섰고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칭찬을 잃을까봐 다른 길을 택하지 못했다. 늘 그래왔듯이 노력과 의지에 맞춰서 사는 것에 절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데 변호사는 늘 한 공간에 갇혀 수많은 사건 서류 더미와 씨름해야 했던 것. 그렇게 그녀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소명이 아님을 점점 깨닫게 된다. 물론 그 직업을 선택해서 평생지기인 오바마를 만났으니 그녀에게는 어쨌든 짧지만 중요한 전환이기는 했을 것이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모습으로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데이트해야 할 것 같아요.” 버락의 제안에 만남을 가진 그녀는 모든 것이 뒤섞인 이 이상한 남자(!)에게 결국 넘어갔다. 미셸의 이상형이 언제고 단숨에 자신을 사로잡는 남자를 만나, 최고로 멋진 사랑 이야기들에 빠짐없이 나오는 해일 같은 격정에 휩쓸리기를 바랐던 것을 생각하면 뭐 대충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기도. 


미셸의 청춘에서 가장 큰 아픔이었던 사건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수잔의 때이른 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사는 동안 원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았기에 미셸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 있었다. 이후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은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그녀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시카고 시청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기로 한다. 월급은 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버락은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튼 미셸과 오바마는 축복 속에 시카고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지만 이상주의자인 오바마에게서 미셸은 그의 비전이 실현되기를 어느 순간 소망하게 되는데 그것이 오바마가 정치를 선택하여 그 길을 걸어가는데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1996년 버락은 정치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임신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첫 아이는 결국 유산이 되었다. 두 사람은 상담 끝에 배란 촉진제를 복용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노력 끝에 첫째인 말리아가 태어났다. 이후 둘째인 샤샤가 태어났다. 힘들게 얻은 아이들이었기에 두 사람의 기쁨과 간절함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미셸은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금 더 자유도가 높은 병원의 일자리를 수락한 반면 버락은 강의와 입법 활동을 병행했다. 게다가 그는 더 높은 정치인의 길에 올라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미셸은 지금도 충분히 바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정치가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때 부부 상담을 하러 가야할 정도로 악화일로였다고. 뭐 상담 후에는 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마되었지만. 


오바마는 정치인의 단계를 밟았고 결국 대통령의 길에 들어섰다. 이걸 미셸이 수용하기란 참 쉽지 않았을텐데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이 되면서 미셸은 가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공개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야만 햇을 것이다. 백악관에 살면서 버락은 예전보다 규칙적이 되었다고. 아이들이 가장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단다. 

미셸은 이것저것 정치에 직접 개입해서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이자 최고의 결과를 냈다. 백악관에서 텃밭을 가꾸고 비만이 늘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건강식으로 된 급식을 추진하고 군병원에 방문을 해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 재난이 생기면 기피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일부러 가족들과 그곳을 찾아 여행을 하기도 했다. 

특히 총기로 인한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슬퍼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장이기에 총기 규제 법안을 어떻게든 추진하려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결국은 안되었지만). 


번역서가 읽어서 겨우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원서들보다는 재미나게 읽었다. 그녀의 인생이 궁금했었기에 이렇게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참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부디 남은 인생 멋지게 살아가시길!

Failure is a feeling long before it becomes an actual result. It‘s vulnerability that breeds with self-doubt and then is escalated, often deliberately, by fear.

It was one thing to get yourself out of a stuck place, I realized. It was another thing entirely to try and get the place itself unstuck.

Dot we settle for the world as it is, or do we work for the world as it should be?

It‘s all process, steps along a path. Becoming requires equal parts patience and rigor. Becoming is never giving up on the idea that there‘s more growing to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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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9-30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 화가 님!! 1등 이십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같이 읽기가 아니라면 완독하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어들이 너무 어려워서요. 그건 미셸 오바마가 어휘력이 좋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장이 어려운 것 같진 않은데 색다른 단어들을 넘나 많이 써서.. 휴..

미셸도 대단한 사람이고 오바마도 대단한 사람이고, 말씀하신대로 둘다 대단한 사람들끼리 만난 것 같아요. 미셸이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를 허락하게 되는 이유중에 하나가, 오바마는 항상 미셸의 선택을 지지해줬다는 것도 있잖아요.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월급은 더 적지만 다른 걸로 옮길까.. 갈등할 때 오바마는 응원과 격려를 줬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응원을 해준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흑인이며 여성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이렇게 글을 써준 것이 저는 너무나 좋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걸친 흑인의 역사도 있으니까요.

비커밍 한 달 더 읽기로 해서 그 다음 원서는 11월부터 시작하게 될건데요, 거리의화가 님, 한달간 달콤한 휴식을 즐기세요!!
>.<

거리의화가 2026-09-30 09:13   좋아요 0 | URL
아... 11월까지 연장되었군요^^; 아무래도 분량도 그렇고 어려운 단어들이 있어서 읽기가 어렵더라구요.

미셸도 버락도 둘 다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여러 번 주먹을 불끈 쥐으며 읽었는데 어찌 되었든 저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적어도 미국이란 나라에 확실히 득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달 간 잠시나마 인류에 회의적이던 제 생각이 잠시 달아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락방 님 함께 읽기 제안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원서가 무엇으로 정해질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책이라면 참여하도록 할게요. 9월 마무리 잘하시기를!

책읽는나무 2026-09-3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도 꽤나 두꺼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서를 완독하시다니 멋집니다.^^ 뿌듯하시겠어요.

거리의화가 2026-10-01 08:59   좋아요 1 | URL
번역본이 있어서 그나마 완독을. 원서만 읽었으면 중도포기했을거에요. 그래도 원서는 킨들로 읽으니 단어에 도움을 바로 얻을 수 있어 힘이 됐죠.

단발머리 2026-10-0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며칠 전에 거리의화가님이 써주신 이 부분 지나갔거든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콩깍지 부분이요. 지금도 오바마 멋있는데 그 때는 더 멋있었을거 같아요. 웃을 때 표정도 근사하고, 목소리도 ㅋㅋㅋㅋㅋㅋ 이런, 제가 사랑에 빠진 걸까요? 아무튼 저도 더 부지런히 읽어봐야겠어요.

거리의화가님이 1등이시네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영국은 세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구에 제품을 공급하는 경이로운 공장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원자재가 들어오고, 가공된 상품이 전 세계에 살포되었다. 대영제국은 당 - P351

대에 가장 큰 항구와 가장 강력한 금융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영국은 최고 수준의 상업적 전문성을 갖추고, 보험과 운송의 세계적인독점권을 보유했으며, 국제 금 시장을 지배했다. 독일 관세동맹의아버지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는 자유무역이 바로 영국의주요 수출품이라고 지적했다. 관세 보호주의만큼 영국인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전혀 없었고, 가끔 영국인은 그것을, 중국과 벌인 아편전쟁의 경우처럼, 피와 불의 언어로 알렸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은 영국에게 하나의 계시된 진리가 되었는데, 이는 영국이 스스로 가장 강하다고 확신한 순간부터 비로소,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엄격한 보호주의 법률의 보호를 받아 자국의 섬유 산업을 발전시킨이후였다. 아직 산업이 불리한 상황에 있던 초기의 어려운 시기에는가공하지 않은 양털을 수출한 영국 시민은 오른손을 잘리고, 그 행위를 반복하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지역의 본당 신부가 먼저 수의가 국내에서 제조된 것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시체의 매장이 금지되었다.  - P352

미국의 자본은 미국 본토보다 라틴아메리카에 더 강하게 집중되어 있다. 몇몇 기업이 대부분의 투자를 통제한다. 그들 기업에게 국가는 수행해야 하는 과제도, 방어해야 하는 깃발도, 개척해야 하는운명도 아니다. 때로는 주권이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는 단지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일 뿐이고, 탐스럽게 먹어야 하는 즙 많은 과일일 뿐이다. 각 나라의 지배 계층에게 국가의 발전은, 반대로, 책임지고 완수해야 할 하나의 사명일까? 거세게 질주하는 제국주의 자본은 무방비 상태인데다,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는 현지의 산업과 맞닥뜨렸다. 부르주아지는 눈물도 피도 흘리지 않은 채 외국의 침략에 협력했다.  - P406

1950년대 말부터 경제 침체, 금융 불안정, 신용 부족, 그리고국내 시장의 구매력 저하는 국내 산업을 무너뜨리고 국내 산업을 제국주의 기업의 발밑에 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제통화기금은 마법과도 같은 통화 안정화라는 구실만을 내세워, 이해관계에 따라 열병을 질병과 혼동하고 인플레이션을 현재의 구조적 위기와 혼동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불균형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하는정책을 강요한다. 복수 환율과 물물교환 협정을 금지하면서 무역을자유화하고, 국내 신용을 질식할 정도까지 축소하며, 임금을 동결하고, 국가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통화의 실질 가치를 회복하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이론적인 조치로서 강력한 통화 평가절하를 이 프로그램에 추가한다.실제로, 평가절하는 단지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한국내 자본의 집중을 촉진하고, 가방에 한 움큼의 달러를 담아온외국인들이 국내 기업을 흡수하도록 조장할 뿐이다. - P427

다국적 기업은자본을 축적·증대·집중하기 위해, 기술혁명을 심화하기 위해, 경제를 군사화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미국화하기 위해 국가를 직접적으로 이용한다. 미국수출입은행, 국제개발처, 그리고 그 밖의 작은 기관들은 세계 자본주의를 미국화하는 데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이 부인할수 없는 지배권을 행사하는 몇몇 표면상의 국제기구 또한 이렇게 운영된다. 국제통화기금과 그 쌍둥이형제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그리고 미주개발은행은 자신들이 대출을 요청하는 국가가 따라야할 경제 정책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들 기관은 자국의 중앙은행과 주요 부처를 성공적으로 장악하면서 경제와 금융에 관한 모든 비밀 데이터를 차지하고, 국가의 법률을 작성하고 강제로 시행하며, 정부의 조치를 금지하거나 허가하고, 정부의 방향성을 상세하게 설계한다. - P439

다국적 대기업은 기술적인 수단들을 통제하면서 자연스럽게라틴아메리카 경제의 다른 핵심 장치들도 조종한다. 물론, 다국적 대기업의 본사는 자회사에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절대 제공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자회사의 독립성을 촉진하지도않는다. 미주개발은행의 의뢰로 《비즈니스 인터내셔널(BusinessInternational)》이 실시한 설문조사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는 연구와 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노력을기울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그 같은 목적을 위한 부서를 갖추지 않은 채 극히 드문 경우에만 기술 적응 작업을 수행하는 반면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에 있는 소수 기업은 거의 예외 없이 제한적인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P471

라틴아메리카의 재건을 향한 여정에는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야 할 썩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일은 바로 빼앗기고, 짓밟히고, 저주받은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적 대의는 무엇보다도사회적 대의다. 라틴아메리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들을 나라별로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란과변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운명은 신의 무릎 위에 놓여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지만, 진실은 인간의 의식 위에서 절박한 도전처럼 작동하고 있다. - P500

과거를 숭배하는 것은 항상 반동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우파는 죽은 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과거를 선택하는데, 죽음은 고요한 세계, 멈춰버린 시간이다. 세습을 통해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권력자들은 향수를 조장한다. 역사는 박물관을 둘러보듯이 학습되지만, 그같은 미라들의 전시는 속임수다. 그들은 우리에게 현재를 속이듯 과거도 속이고, 현실을 가린다. 억압받는 자는 억압하는 자가 만들어낸, 자신과 무관하고, 박제되어 있으며, 메마른 기억을 자기 것으로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 억압받는 자는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유일하게 가능한 것인 양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 P504

라틴아메리카가 수출하는 상품 대부분의 가격은 기술, 무역, 투자, 금융 자원을 독점한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는 상품 가격에 비해 가차 없이 하락하고 있다. 그 격차를 메우고 외국 자본에대한 채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가격에서 손해 본 것을 물량으로 보충할 필요가 있다.  - P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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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 역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패배는항상 다른 자들의 승리에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의 부는 다른 자들, 즉 제국들과 그들 제국의 토착 감독자들의 번영을 부양하기 위해 항상 우리의 빈곤을 창출해 왔다.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연금술 속에서금은 고철로 변하고, 식량은 독으로 변했다. 포토시, 사카테카스, 오루 프레투‘는,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번영의 절정에서 빈 광산 갱도 - P13

의 깊은 구멍으로 곤두박질쳤고, 칠레의 초석(石) 지대와 아마존고무 숲도 결국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브라질 북동부의 설탕생산지, 아르헨티나의 케브라초‘ 숲이나 마라카이보 호수‘의 석유를 생산하는 일부 마을은 자연이 부여하고 제국주의가 빼앗아 가는부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 권력의 중심부에 물을 대주는 비가그 체제의 광범위한 주변 지역을 질식시킨다. 마찬가지로, 그리고대칭적으로, 국내적으로는 지배하고, 국외적으로는 지배당하는우리 지배 계층의 복지는 짐을 나르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강요받는 우리 대중의 저주다. - P14

유럽은 금과 은이 필요했다. 유통 수단이 끊임없이 증가했유유럽은 금과 은이 필요했다. 유통 수단이 끊임없이 증가했고, 자본주의가 태동할 때 그 움직임을 부양할 필요가 있었다. 부르주아지들은 도시를 장악했고, 은행을 설립했고,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했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금, 은, 설탕의 경우, 소비보다 공급이 많은 식민지 경제는 유럽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고, 그 시장에봉사하려고 구축되었다. 16세기의 장기간에 걸쳐, 라틴아메리카 귀금속의 수출액은 주로 노예, 소금, 포도주, 기름, 무기, 모직 그리고사치품으로 구성된 수입액의 네 배에 달했다. 그 자원들은 신흥 유럽 국가들이 축적하도록 유출되었다. 이는 개척자들이 수행한 근본적인 사명이었는데, 물론 그들은 빈사 상태의 인디오들에게 복음서를 채찍만큼 자주 적용했다. 이베로아메리카 식민지들의 경제 구조는 외국 시장에 종속되면서 탄생했고, 결과적으로 소득과 권력은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 P68

식민지 플랜테이션은 외국의 수요에 종속되어 있고, 많은 경우 외국으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라티푼디움은 그 플랜테이션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었다. 이 라티푼디움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병목 현상들 가운데 하나고,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소외와 빈곤의 주요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잉여 노동력을 증대시킬 정도로 충분히 기계화된 현재의 라티푼디움은 풍부하게 비축된 값싼 노동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제 라티푼디움은 아프리카 노예의 수입에도 원주민의 "엔코미엔다"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라티푼디움은 아주 보잘것없는 일당을 주거나, 용역에대한 보수를 물품으로 지급하거나, 노동자가 땅뙈기를 사용하는 대가로 무상 노동을 제공받기만 하면 충분하다. 라티푼디움은 자신의확장으로 인해 생겨난 미니푼디움의 증가, 그리고 굶주림에 내몰린노동자들이 각지에서 잇달아 이루어지는 수확의 주기에 따라 국내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에 기대어 생존한다. - P126

라틴아메리카 열대의 설탕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미국의 산업 발전을 위한 자본축적에도 커다란 자극을 주고, 동시에 브라질 북동부 및 카리브해섬들의 경제를 불구로 만들고, 아프리카의 역사적 파멸을 확정했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삼각 무역에서 설탕 플랜테이션으로 향하는 노예의 무역이 대들보 역할을 했다.  - P160

커피는 생산자보다 소비자에게 훨씬 많은 혜택을 준다. 커피는 미국과 유럽에서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고 대규모 자본을 움직인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임금을 지불하고, 미국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들의 경제적 왜곡을 심화한다. 미국에서는 커피가 60만 명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커피를 사서 배급하고 판매하는 미국 사람들은 플랜테이션에서 파종하고 원두를 수확하는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 혹은아이티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는다. 한편 유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위원회는, 믿을 수 없게 보이겠지만, 커피가 생산국의 손에 남기는 부보다 유럽 여러 나라의 국고에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고 보고한다.  - P202

마사 사발라(Maza Zavala)의 적절한 표현을 빌리자면 굶주리는 자는 늘리지만, 빵은 늘리지 않는다. 라티푼디움은 노동력을 흡수하는 대신 쫓아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촌 노동자는 40년 만에20% 이상 감소했다. 기존의 처방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급속한도시화, 즉 농촌 인구의 대규모 이동을 진보의 지표라고 단언하는기술관료가 넘쳐난다. 그 체제가 쉴 새 없이 토해내는 실업자가 실제로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의 교외 지역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공장이 현대화되면서 실업자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미숙련 잉여노동력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농촌의 기술 발전은 발생할 때마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대지주가 자신의 토지를 개발하는 데 더 현대적인 수단을 도입하면서 그의 수익은 증가하지만, 더많은 노동력이 일거리를 잃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더 크게 벌어진다.  - P253

석유는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서 가장 독점적인 부(富)다. 거대 석유회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행사하는 정치적 권력을 일반기업가들은 누릴 수 없다. 스탠더드 오일과 셸(Shell)은 왕과 대통령을 세우고 무너뜨리며, 궁정의 음모와 쿠데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수많은 장군, 장관, 제임스 본드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모든 지역과 모든 언어권에서 전쟁과 평화의 진행을 결정한다. 뉴 저지의스탠더드 오일 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기업이다. 미국 밖에서는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보다 더 강력한 제조 분야 기업이 없다. 자회사는 원유를 계열사에 판매하고, 계열사는 이를 정제한 연료를 각 지점에 판매해 유통한다. 그 카르텔 내부의 전체순환 시스템 밖으로는 피 한 방울 새어 나가지 않고, 그 카르텔은또한 송유관과 7대양을 항해하는 유조선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납부하는 세금은 줄이고 획득하는 수익은 늘리기 위해 석유 가격이전 세계적으로 조작되고, 원유 가격은 항상 정제유 가격보다 더 적게 상승한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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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피해자 -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ㅣ 앳(at) 시리즈 11
모함메드 엘쿠르드 지음, 박종주 옮김 / 마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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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생각하기에 따라 좀 과도하게 느낄 수 있다 싶은 제목이다. '완벽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연 '완벽한 피해자'란 있을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이런 제목을 경계하고 보는 편이다). 작가는 예루살렘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 문제를 미국의 독립 언론 매체에서 팔레스타인 관점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매체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도 여럿 나오지만 트럼프 등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NYT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어느덧 3달 째 독서 모임으로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이 여러 논란을 안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읽고 난 느낌은 생각보다는 과도하지 않다? 표현의 과격함은 있지만 내용 자체는 팔레스타인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앞서 여러 책들을 두드려맞으며 읽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비인간화는 보다 은밀한, 하지만 훨씬 치명적이며 제도화되어 있는 현상, 우리네 신사적인 살인범들로 완성되는 실천을 가리킨다. 내가 말하는 비인간화란, 서구가 우리 눈을 마주 보기를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는 우리의 비극을 비극으로, 우리의 반응을 반응으로 보기를 꺼리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 고집스레 우리의 정상적인 것들을 일탈로 분류한다. 근본적인 본능-예컨대 생존이나 자기방어-이, 그리고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내재하는 기본적인 행동이 그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된다. 비인간화를 하는 것은 저속한 우익이나 잔인한 경찰만이 아니다. 더없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살인자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눈을 맞추기를 거부하며 인간미 없이 수백미터 밖에서 싸늘하게 저격하는 그 살인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저격수, 대면할 필요도 없이 저 멀리서 우리의 존재를 삭제할 권한을 갖고 있는 그 인물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언덕 꼭대기의 지붕 위에,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정보와 보도국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저격수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P25~26


'신사적인 살인범들'만큼 적나라한 표현이 있을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스라엘(군)만이 살인범이 아니다. 로비에 엮여 있는 강대국들, 그를 옹호하는 언론과 매체들도 동조자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들은 비인간화된 존재가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마치 일탈처럼 취급된다. 살인자에 '올바른'이라는 형용사를 썼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저격수도 마찬가지. 살인자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펜 등으로도 가능한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치와 문법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주인의 연장"을 쓰면 가끔은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행하게 끝난다. 그리고 결코 제도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심한 자기최면"을 걸라고, 또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기를 앙망하며 불가능하리만치 적절한, 신화적인 생명체-무고한 민간인-를 흉내내라고 배웠다. - P35

호소의 정치는 먹힐 수 있는가 곱씹게 된다. 예전에는 그렇다 믿었지만 이제는 회의적으로 기울었다. 식민지배자의 제도와 문법으로 피식민자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개량주의나 온건주의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하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라를 선언한 이후 몇 십년이 흘렀다. 얼마 후면 100 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된다. 그동안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이 되었는가 말이다. 


그럼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은 현재 어떤 시선으로 취급되고 있는가. 2023년 하마스의 공격으로 더 안 좋은 시선이 강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몇 권의 책을 읽어본 바 하마스는 단순히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앞선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은 성급하게 낙인받고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체제 안에서 행동해란 시선을 받는다. 

우리에게 주문하는 인간성, 혹은 우리가 스스로 발명한 인간성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규정집을, 상형문자로 쓰인 그 계명들을 따른다. 영원한 피해자성으로써 유지되고, 동정과 연대를 얻으려면 따라야 하는 [외부, 특히 서구의] 자민족중심주의적 한계선을 통해 규제되는 인간화 기획은 부적격이다. ... 인간화란 그 설계상, 우리가 공공연히 드러내도 되는 정서 및 감정, 가치, 이데올로기, 응징받는 일 없이 밝힐 수 있는 제휴의 폭을 제약하며, 심지어는 검열하고 재교육할 것을 찾아 우리의 사상과 공상을, 지레짐작된 우리의 의도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리고 깊이 묻어둔 신념을 샅샅이 뒤진다. - P47

수동성, 약자로서 의도적으로 노출되는 그들은 피해자의 지위자로 한계지어져 있다. 그들이 말하는 도덕성을 갖추어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피살자가 왜 칼을 집어 들려 했을지보다 누군가 피살자 옆에 칼을 심어둔 것인지-종종 그렇다-여부에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 성원들을 자포자기식 방안으로 내모는 사회는 [...] 대체되어야 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식민 권력에 맞서 폭력적으로 저항할 도덕적, 법적 권리가 있다면, 폭행 용의자를 변호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비당파적', '중립적' 인물이라는 민간인의 발명은 팔레스타인 대의의 탈정치화를 심화했다. - P70~71

서구는 비당파성, 중립성을 지닌 이상적인 신화 기준을 바라고 요구한다. 과연 비당파적이고 중립적 인간이 얼마나 있을 수 있는가. 1960년대 미소의 대결 하에 아시아는 중립주의를 표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적 시선일 뿐 얼마 가지도 못했다. 해방 후 조선은 어떠했나. 우파도, 좌파도 아닌 중도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말로가 좋지 못했다. 희망을 노래했지만 희망으로 그쳤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에서 자라던 시절, 우리를 동네에서 쫓아내려했던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이 속한 단체의 이름에도 종종 "유대인"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 집을 훔쳐 간 것도, 우리 가구를 길에다 내던진 것도, 아기였던 여동생의 요람을 태워버린 것도 유대인이었다. 우리를 추방한 것에 문제가 없다며 법봉을 흔들어댄 판사들도 유대인이었고 체계적으로 우리를 내쫓는 법을 만든 입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 우리의 파란색 신분증을 발급하고 말소하는 관료는 유대인이었고 나는 특히 그를 경멸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조부의 도시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언어는 점령당한 골란 고원과 시리아의 나머지 지역을 가르는 경계지대보다 더한 지뢰밭이었고,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우리를 신뢰 못 할 존재로 만들 폭탄 같은 말을 실수로라도 밟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지뢰들 사이를 이리저리 팔짝거리며 다녀야 했다. ... 틀린 신념을 갖는 것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랬다간 그런 잔혹 행위를 당해도 싼 존재가 되었다. - P111~113

유대국가 하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잔혹하게 느껴진다. 쫒기고 내몰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다치거나 죽었다. 강제로 그어진 경계선을 억지로 지켜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제임스 볼드윈은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다는 것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비인간화하는 이들과 함께 사느라 "쉼 없이 이유 없는 수모를 당하고 위험을 겪다 보면 비상하게 예민하지 않아도 지칠대로 지쳐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린다"라는 것이다. - P158

능력, 성실만 있으면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편안한 환경에 놓이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전쟁, 현실,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지 않을까. '이 환경을 바꾸려면 바꾸고 뛰어들어야 해. 투쟁해야 해. 터트려야 해.'


파편화는 그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를 제각기 다른 나라에 살게 만들었다. 근년에 우리 사회의 한쪽은, 어떻게 됐든 그쪽에 남아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크고 피에 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때 나는 오래도록 경멸하고 질투했던 계급들, 엘리트들, 부르주아들, 팔레스타인을 미적 은유로 쓰는 이들과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자 지구라는 좁다란 아수라장에 새로운 계급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굶주리는 계급, 반복적으로,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빼앗기는 계급이다. - P194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도 계급화되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먹고 살 만한 계급은 괜찮겠지만 빈자들에게는 더 혹독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트럼프의 입과 이스라엘 등 주요 중동 국가에만 눈길이 가 있지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서구의 지식 생산자들 혹은 서구의 목소리를 활용해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이 자문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이 작업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들은 주체성이라 할 만한 것을 지녔는가, 아니면 논지를 제시하기 위한 도구인가? 내가 착취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어떻게 책임 있는 저자성을 실천할 수 있는가? 나의 기획에 관객이 그것을 비판적으로 소비하도록 독려하는 단서를 충분히 넣었는가, 아니면 그저 내 등을 토닥이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가서 '직접 확인해야' 했던 것인가, 아니면 한 세기에 걸친 팔레스타인 문헌들을 무시한 것인가? ... 내 작업에 계급 분석이 있는가? ... - P179

대부분의 언론과 매체 등에 기록된 내용과 인용 자료를 이용할 때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당연하다듯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확인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정도로 이 책의 읽기 소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저자가 시인이기도 해서인지 묘사나 표현력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한 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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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9-1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에서 팔레스타인 문제 책을 보시는군요 그 말 보니 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예요 이 책도 한번 보시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거리의화가 님은 아시는 거였네요 읽기에 편한 소설은 아닐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09-18 17:06   좋아요 0 | URL
다음달까지 팔레스타인 책읽기가 진행됩니다^^
얼마 전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책 읽었었죠^^ 말씀하신 대로 소설이지만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그린거라 읽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사서에서 간접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소설화해놓으니 더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혜윰 2026-09-1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유대교에 대해 읽은 적도 있는데 여전히 이쪽은 제게 미지의 세계네요 ㅠㅠ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 저도 늘 위시에 있는데 3달째 읽으신다니!!!

거리의화가 2026-09-18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중동 지역은 거리가 멀게 느껴졌어요. 2년 전쯤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읽고 이번에 내리 3개월 관련 책을 읽으니 조금은 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는 듯합니다. 아주 오래 전 영화만 보았다가 얼마 전에 <벤허>를 읽었는데요. 여러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읽는다고 달라질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만 했었는데 그래도 알지 않으면 그저 기사로 보여지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혜윰 2026-09-18 20:51   좋아요 0 | URL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벤허 너무 잘 보이는 위치에 꽂혀 있는데 그럼 벤허부터 시작해볼까요??^^
 
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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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당시를 읽었다. 늦가을에 읽었으면 더 적절했다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은 낮보다는 밤에 어울리는 듯하고 커피보다는 역시 차가 좋다 생각했다. 용정차를 곁들이며 한시를 읽는 맛이란 좋았다.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미소짓다가 피식 웃다가 때론 서늘해지기도 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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