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피해자 -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앳(at) 시리즈 11
모함메드 엘쿠르드 지음, 박종주 옮김 / 마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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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생각하기에 따라 좀 과도하게 느낄 수 있다 싶은 제목이다. '완벽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연 '완벽한 피해자'란 있을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이런 제목을 경계하고 보는 편이다). 작가는 예루살렘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 문제를 미국의 독립 언론 매체에서 팔레스타인 관점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매체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도 여럿 나오지만 트럼프 등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NYT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어느덧 3달 째 독서 모임으로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이 여러 논란을 안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읽고 난 느낌은 생각보다는 과도하지 않다? 표현의 과격함은 있지만 내용 자체는 팔레스타인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앞서 여러 책들을 두드려맞으며 읽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비인간화는 보다 은밀한, 하지만 훨씬 치명적이며 제도화되어 있는 현상, 우리네 신사적인 살인범들로 완성되는 실천을 가리킨다. 내가 말하는 비인간화란, 서구가 우리 눈을 마주 보기를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는 우리의 비극을 비극으로, 우리의 반응을 반응으로 보기를 꺼리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 고집스레 우리의 정상적인 것들을 일탈로 분류한다. 근본적인 본능-예컨대 생존이나 자기방어-이, 그리고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내재하는 기본적인 행동이 그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된다. 비인간화를 하는 것은 저속한 우익이나 잔인한 경찰만이 아니다. 더없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살인자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눈을 맞추기를 거부하며 인간미 없이 수백미터 밖에서 싸늘하게 저격하는 그 살인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저격수, 대면할 필요도 없이 저 멀리서 우리의 존재를 삭제할 권한을 갖고 있는 그 인물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언덕 꼭대기의 지붕 위에,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정보와 보도국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저격수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P25~26


'신사적인 살인범들'만큼 적나라한 표현이 있을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스라엘(군)만이 살인범이 아니다. 로비에 엮여 있는 강대국들, 그를 옹호하는 언론과 매체들도 동조자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들은 비인간화된 존재가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마치 일탈처럼 취급된다. 살인자에 '올바른'이라는 형용사를 썼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저격수도 마찬가지. 살인자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펜 등으로도 가능한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치와 문법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주인의 연장"을 쓰면 가끔은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행하게 끝난다. 그리고 결코 제도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심한 자기최면"을 걸라고, 또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기를 앙망하며 불가능하리만치 적절한, 신화적인 생명체-무고한 민간인-를 흉내내라고 배웠다. - P35

호소의 정치는 먹힐 수 있는가 곱씹게 된다. 예전에는 그렇다 믿었지만 이제는 회의적으로 기울었다. 식민지배자의 제도와 문법으로 피식민자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개량주의나 온건주의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하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라를 선언한 이후 몇 십년이 흘렀다. 얼마 후면 100 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된다. 그동안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이 되었는가 말이다. 


그럼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은 현재 어떤 시선으로 취급되고 있는가. 2023년 하마스의 공격으로 더 안 좋은 시선이 강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몇 권의 책을 읽어본 바 하마스는 단순히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앞선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은 성급하게 낙인받고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체제 안에서 행동해란 시선을 받는다. 

우리에게 주문하는 인간성, 혹은 우리가 스스로 발명한 인간성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규정집을, 상형문자로 쓰인 그 계명들을 따른다. 영원한 피해자성으로써 유지되고, 동정과 연대를 얻으려면 따라야 하는 [외부, 특히 서구의] 자민족중심주의적 한계선을 통해 규제되는 인간화 기획은 부적격이다. ... 인간화란 그 설계상, 우리가 공공연히 드러내도 되는 정서 및 감정, 가치, 이데올로기, 응징받는 일 없이 밝힐 수 있는 제휴의 폭을 제약하며, 심지어는 검열하고 재교육할 것을 찾아 우리의 사상과 공상을, 지레짐작된 우리의 의도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리고 깊이 묻어둔 신념을 샅샅이 뒤진다. - P47

수동성, 약자로서 의도적으로 노출되는 그들은 피해자의 지위자로 한계지어져 있다. 그들이 말하는 도덕성을 갖추어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피살자가 왜 칼을 집어 들려 했을지보다 누군가 피살자 옆에 칼을 심어둔 것인지-종종 그렇다-여부에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 성원들을 자포자기식 방안으로 내모는 사회는 [...] 대체되어야 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식민 권력에 맞서 폭력적으로 저항할 도덕적, 법적 권리가 있다면, 폭행 용의자를 변호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비당파적', '중립적' 인물이라는 민간인의 발명은 팔레스타인 대의의 탈정치화를 심화했다. - P70~71

서구는 비당파성, 중립성을 지닌 이상적인 신화 기준을 바라고 요구한다. 과연 비당파적이고 중립적 인간이 얼마나 있을 수 있는가. 1960년대 미소의 대결 하에 아시아는 중립주의를 표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적 시선일 뿐 얼마 가지도 못했다. 해방 후 조선은 어떠했나. 우파도, 좌파도 아닌 중도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말로가 좋지 못했다. 희망을 노래했지만 희망으로 그쳤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에서 자라던 시절, 우리를 동네에서 쫓아내려했던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이 속한 단체의 이름에도 종종 "유대인"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 집을 훔쳐 간 것도, 우리 가구를 길에다 내던진 것도, 아기였던 여동생의 요람을 태워버린 것도 유대인이었다. 우리를 추방한 것에 문제가 없다며 법봉을 흔들어댄 판사들도 유대인이었고 체계적으로 우리를 내쫓는 법을 만든 입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 우리의 파란색 신분증을 발급하고 말소하는 관료는 유대인이었고 나는 특히 그를 경멸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조부의 도시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언어는 점령당한 골란 고원과 시리아의 나머지 지역을 가르는 경계지대보다 더한 지뢰밭이었고,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우리를 신뢰 못 할 존재로 만들 폭탄 같은 말을 실수로라도 밟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지뢰들 사이를 이리저리 팔짝거리며 다녀야 했다. ... 틀린 신념을 갖는 것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랬다간 그런 잔혹 행위를 당해도 싼 존재가 되었다. - P111~113

유대국가 하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잔혹하게 느껴진다. 쫒기고 내몰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다치거나 죽었다. 강제로 그어진 경계선을 억지로 지켜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제임스 볼드윈은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다는 것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비인간화하는 이들과 함께 사느라 "쉼 없이 이유 없는 수모를 당하고 위험을 겪다 보면 비상하게 예민하지 않아도 지칠대로 지쳐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린다"라는 것이다. - P158

능력, 성실만 있으면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편안한 환경에 놓이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전쟁, 현실,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지 않을까. '이 환경을 바꾸려면 바꾸고 뛰어들어야 해. 투쟁해야 해. 터트려야 해.'


파편화는 그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를 제각기 다른 나라에 살게 만들었다. 근년에 우리 사회의 한쪽은, 어떻게 됐든 그쪽에 남아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크고 피에 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때 나는 오래도록 경멸하고 질투했던 계급들, 엘리트들, 부르주아들, 팔레스타인을 미적 은유로 쓰는 이들과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자 지구라는 좁다란 아수라장에 새로운 계급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굶주리는 계급, 반복적으로,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빼앗기는 계급이다. - P194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도 계급화되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먹고 살 만한 계급은 괜찮겠지만 빈자들에게는 더 혹독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트럼프의 입과 이스라엘 등 주요 중동 국가에만 눈길이 가 있지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서구의 지식 생산자들 혹은 서구의 목소리를 활용해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이 자문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이 작업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들은 주체성이라 할 만한 것을 지녔는가, 아니면 논지를 제시하기 위한 도구인가? 내가 착취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어떻게 책임 있는 저자성을 실천할 수 있는가? 나의 기획에 관객이 그것을 비판적으로 소비하도록 독려하는 단서를 충분히 넣었는가, 아니면 그저 내 등을 토닥이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가서 '직접 확인해야' 했던 것인가, 아니면 한 세기에 걸친 팔레스타인 문헌들을 무시한 것인가? ... 내 작업에 계급 분석이 있는가? ... - P179

대부분의 언론과 매체 등에 기록된 내용과 인용 자료를 이용할 때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당연하다듯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확인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정도로 이 책의 읽기 소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저자가 시인이기도 해서인지 묘사나 표현력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한 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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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9-1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에서 팔레스타인 문제 책을 보시는군요 그 말 보니 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예요 이 책도 한번 보시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거리의화가 님은 아시는 거였네요 읽기에 편한 소설은 아닐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09-18 17:06   좋아요 0 | URL
다음달까지 팔레스타인 책읽기가 진행됩니다^^
얼마 전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책 읽었었죠^^ 말씀하신 대로 소설이지만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그린거라 읽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사서에서 간접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소설화해놓으니 더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혜윰 2026-09-1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유대교에 대해 읽은 적도 있는데 여전히 이쪽은 제게 미지의 세계네요 ㅠㅠ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 저도 늘 위시에 있는데 3달째 읽으신다니!!!

거리의화가 2026-09-18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중동 지역은 거리가 멀게 느껴졌어요. 2년 전쯤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읽고 이번에 내리 3개월 관련 책을 읽으니 조금은 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는 듯합니다. 아주 오래 전 영화만 보았다가 얼마 전에 <벤허>를 읽었는데요. 여러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읽는다고 달라질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만 했었는데 그래도 알지 않으면 그저 기사로 보여지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혜윰 2026-09-18 20:51   좋아요 0 | URL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벤허 너무 잘 보이는 위치에 꽂혀 있는데 그럼 벤허부터 시작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