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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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감정 상태가 결집되어 있다. 화남, 억울함, 슬픔, 시샘이나 부러움, 부끄러움, 쌀쌀맞은 쓸쓸함에 이르는, 부정적 심정의 묶음이다. 외로움은 추상적 묶음이고 그것의 드러남은 이러한 구성 속성 중 하나 또는 몇 가지의 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찾지 못한 상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결핍도 외로움을 유발한다. 이는 '스스로 존재함'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로움이 고립된 몸의 내면이라면, 스스로 존재함은 독존하는 몸의 정신적 표상 형식이다. - P47~48

서양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가 한시에 관한 책을 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제도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읽기'다. 서문을 읽어보니 본인에게 한시는 모호한, 몽롱한, 가 닿을 수 없는 철학 같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소리가 스스로에 대한 겸손의 표현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한시를 경험한 것이 다이기 때문에 정말 문외한에 가깝다. 이 책은 한시를 읽는 처음 경험하거나 아직 잘 모르는 초보 독자라도 겁먹을 필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제목이 '고독서정' 고립과 독존에 대한 서정읽기다. 이에 따라 고른 한시들은 대체로 저마다 다른 사정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맞서고 분투하는 감정이 놓여 있다. 한시의 해석을 앞에 싣고 뒤에는 원문과 독음을 준 뒤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덧붙였다. 한시를 쓴 시인의 상황과 감정은 이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독자도 저마다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배경과 시를 쓸 당시의 상황을 알려줌으로써 그 해석을 돕는다.


마음에 드는 한시들을 체크하면서 내 마음이 어느 시에 공명하는지 확인하며 읽었다. 


이백의 시는 술을 홀짝이고 기울인 뒤 읽으면 그 감상을 더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기에 웃음이 났는데 본인이 이백의 짠한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술을 하지 못해서 감정 이입이 되기 어렵다고 해서다. 어쨌든 그의 시가 널리 읽히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읽기 쉬운데다가 술에다가라도 의지하려는 결핍의 영혼을 가진 이들과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그의 시가 은근함이 없어서 어느 순간 감정이 파사삭 식는다고 하는데 뭐 나는 그의 그 지지리 궁상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함 때문에 그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백, <장진주>(술을 권한다)


뜻이 이루어졌을 때는 마땅히 온전히 기뻐하고

술잔은 헛되이 달을 마주해서는 안 될 것

...

잠부자, 단구생

술을 올리니 멈추지 말고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부르니

내게 귀 기울여 들으라

음악도 안주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래 취하고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옛부터 성현은 고요하고 쓸쓸했고

술 마신 이들만 이름을 남겼다

...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는가

주저 말고 술 사오시라, 그대와 마실테니

...


이백은 어느 술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놓고 분노를 토한다. 이 상황을 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찼으려나. 왜 진상이야 하는 말을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싸움이라도 안 났으면 다행이려나. 


왕유는 안사의 난 때 안록산이 세운 대연국에서 벼슬을 한 것 때문에 난이 평정된 후 더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던 듯하다. 개인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왕유의 삶과 그의 시에서 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왕유의 시는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 대체로 어느 정도의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뭐 츤데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왕유, <송별>(사람을 보냄)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그대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대 말하길, 뜻한 바 같지 않아

남산 자락으로 돌아가 눕겠다고

그저 가시라, 다시 묻지 않을 테니

흰 구름 없어질 때는 없으리니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행선지를 묻는 왕유나 답하는 친구나 무심한 듯 툭 건네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뭔가 뜻한 길이 잘 풀리지 않아 어디엔가 은거할 작정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왕유는 그를 감히 붙잡을 수 없고 그저 가시라 툭 하고 말을 건넬 뿐이다. 


왕창령, <새하곡 - 둘째>(변방 요새 아래서)


가을, 말에게 물 먹이며 건너는데

물은 차갑고 칼바람 분다

가지런한 모래밭,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

임조성은 희끄무레 보인다

오래전 장성 싸움들,

뜻과 기세가 높았다고들 한다

이제나 예나, 누런 티끌 가득 차고

썩고 남은 뼈들 들풀 속에 어지럽다


진나라 이후 장성이 쌓이고 나서 변방으로 출정하는 장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방에 나간 어느 장병이 시를 읽는 중이니 평시인 비전투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가을에 물을 건너와 장성 앞 모래밭 풍경을 보며 과거 이 터에서 벌어졌을 전투와 거기 있었을 사람이 이제는 백골이 되어 떠돌고 있는 황망함을 느낀다. 남은 것은 들풀들 뿐이다. 


유종원, <강설>(눈 내린 강)


온 산에 새 날아감 끊기고

온 길에 사람 자취 사라졌다

배 한 척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강 홀로 낚시하는 차가움


고립된 이는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혼자서는 못 이겨 낸다. 독존하는 이는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해도,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늘 그렇게 낚시하는 것을 연습했기에, 추운 날씨를 몸으로 느끼고, 애써서 온기를 찾지 않으며 차가움 자체를 구현한다. 물론 독존이 초월적인 것과의 접촉 통로일 수는 있다. 세상과 떨어져 지내던 은수자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인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유종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외면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가려는 계시종교의 수도자가 아니라,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지반을 조심스레 살펴 보고 그 위에 나를 하나씩 조금씩 쌓아 올리고, 무너지는 것을 토닥여 가며 전진해온 인간이다. '실존의 편력을 통한 독존의 구축'-이것이 '시유'라 물리는 그의 삶이다. 오십 년도 살지 않은 그의 삶의 최종 귀결은 '차가움'이다. - P207


유종원은 벼슬을 하다가 호남성으로 좌천되어 영주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직책으로 지냈다. 내가 아는 그의 시에는 노년을 다룬 시가 많은데 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의 회한처럼 고립과 외로움의 환경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결코 감정을 닫고 숨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꿈을 펼칠 시기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였다. 저자의 유종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한시 여행이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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