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계보

[도덕적 원죄와 희생의 그늘]
<가련한 폴란드인 게토를 바라보네>(얀 브원스키, 1987.1.17) 에세이 발표하자마자 논란의 중심에 서 - 2차 대전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 이웃에 대한 폴란드인의 숨겨진 죄의식(유대계 이웃이 나치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또는 고소하게 지켜본 폴란드인의 죄의식)을 들추어냈기 때문 -> 방관자 or 동조자 <-> 전후 폴란드의 기억 문화는 나치즘의 희생을 강조하는 당의 공식 입장과 스탈린주의의 희생을 강조하는 민중 입장의 두 축으로 구성

영화 <쇼아>(클로드 란츠만 감독, 1985) - 폴란드 국내에서 상영이 금지. 폴란드인이 홀로코스트 공범자인양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한다 보았기 때문. 이는 폴란드 공산당의 공식 입장(민족주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 현실사회주의는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체제 위기를 넘어서려 했고, 반유대주의는 가장 손쉽게 동원 가능한 기제

숫자의 정치학 - 폴란드의 막대한 피해

폴란드 공산당은 2차 대전 이후 최초의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당의 치적으로 선전했으나 폴란드인 대부분도 ‘유대인 없는 폴란드‘라는 새로운 국가 구성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당당함과 부끄러움 사이]
<가련한 폴란드인 게토를 바라보네>(얀 브원스키, 1987.1.17) 에세이는 1980년 체스와프 미워시의 시 <피오리 광장>(1943) 인용 - 1600년 2월 이단으로 몰려 로마의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당하는 르네상스 휴머니스트 조르다노 브루노와 그의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흥겨운 일상을 즐기는 로마 시민들을 묘사

폴란드인의 반응은 변명과 성찰
변명: 서방 언론의 왜곡으로 일부 폴란드 농민과 프티 부르주아의 반유대주의 행위를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부정적 여론 초래
성찰: 나치의 압도적 폭력 앞서 유대인 이웃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어도 죽게 내버려둔 데는 폴란드 이웃의 책임이 존재

[예드바브네 학살과 카인의 후예]
《이웃들 》(얀 그로스, 2000)은 홀로코스트 당시 폴란드인과 유대인 이웃의 관계가 도덕이나 양심, 부끄러움의 문제를 넘어 범죄의 문제임을 드러내 - 예드바브네라는 마을에서 폴란드 이웃들이 유대인 학살의 주역이자 공범자였다는 범죄행위가 드러남 -> 홀로코스트 방관자에서 가해자로 논의점이 변경됨

영화 <이다(Ida)>(파배우 파블리코프스키, 2013): 나치 점령 당시 부모를 죽인 폴란드 이웃 농민들에 의해 수녀원으로 넘겨져 가톨릭 수녀로 교육받은 이다가 이모와 함께 자신의 고향이자 부모의 주검이 묻힌 곳을 찾아가는 로드 무비 -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에 비판 시달려

1990년대 폴란드는 나치 독일의 점령과 스탈린의 소련이 강요한 공산주의에 이중으로 희생된 자신들의 고통을 국제사회가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담론이 지배적. 따라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폴란드인의 죄의식이나 역사적 책임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음

민족주의적 변호론의 급진적 분파는 폴란드인이 유대인의 희생자였다고 강조. 독소전쟁 기간 소련군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유대인 빨갱이가 폴란드의 반공주의적이고 반러시아적인 애국자를 소련의 비밀경찰에 밀고하여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쫓겨나게 하는데 앞장섰다는 것. ->유대인은 배반자고 유대인이 받은 박해는 인과응보이다 주장.

바우만: ‘세습적 희생자의식(hereditary victimhood)‘ -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1968년 폴란드 공산당 민족주의 파르티잔파의 반시온주의 표적이 되어 이스라엘로 망명. 이스라엘에서 바우만은 공격적 시온주의(히브리어: ציונות, 영어: Zionism 시오니즘) 또는 유대주의, 유태주의(猶太主義, 문화어: 유태복고주의猶太復古主義)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민족주의 운동)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의식을 자기 정당화의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목격. -> 전후 폴란드와 이스라엘 전후 세대가 자신들을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의식에 문제 제기

세습적 희생자라는 사회적 기억의 이면에는 또 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이 들어있다.

[원거리 민족주의]
《요코 이야기》: 일본인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가전적 이야기로 2차 대전 일본이 패할 당시 11세 소녀인 작가와 가족이 생명의 위협, 기아, 성폭력의 공포 등을 겪으며 함경도 나남에서 일본으로 귀환할 때 겪은 경험을 그렸음. 1986년 미국에서 간행된 책은 2005년 4월 한국어로 번역되었음. - 2006년 9월 보스턴과 뉴욕의 한국계 미국인 학부모들이 학생을 위한 독서목록에 이 책이 포함되었다는 것에 문제 제기하면서 논쟁이 시작됨. 이들은 식민주의와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인을 가해자로 묘사하고, 가해자인 일본인은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어 미국의 학생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민족주의적 사유)
실제 이 책은 개인적 고통은 담겨 있으나 역사적 맥락은 생략되어 있어 문제는 있지만 패전 일본인의 민간인은 실제로 위험에 노출된 집단이었다.
‘사이버외교사절단반크‘가 펴낸 만화책에서 요코 이야기의 거짓말을 밝히는 것에 주목적을 둠으로써 한국인의 존재론적 불안감을 드러냄 - <안네의 일기>와의 비교, 731부대의 만행, 미국의 수업 중단 요구와 출판사의 출판 중단 요구 등 -> 이런 과잉 반응으로 일본의 우익 성향 출판사에서 일본어로 출간되기에 이름. 2013년 출간되었으나 이후 일본 아마존 전쟁 수기 장르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인기 차지

폴란드 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사상 최초의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당의 치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로 전체 유대계 인구의 90%인 300만 명을 잃고, 강제 이주 정책을 통해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독일인 등을 추방했다는 사실은 선전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당의 공식 정책과는 별도로 폴란드인 대부분도 ‘유대인 없는 폴란드‘라는 새로운 국가 구성에 암묵적으로 찬성하고 있었다.
마 안 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집을 점유하고 있던 폴란드 이웃의 반응은 "아직도 살아 있냐?"는 것이었다."
자기가 머무는 집의 원주인인 유대인 이웃이 살아 돌아온 게 전혀갑지 않다는 투였다. 대중적 지지 기반이 취약한 폴란드 공산당은 공 - P76

장, 주택, 토지 등 유대인의 부동산을 점거한 폴란드인과의 갈등을 원치 않았다. 폴란드 이웃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유대인의 재산을 나치의 패망 이후에도 불법 점유할 수 있었던 데는, 폴란드 공산당과 국민사이에 암묵적이지만 공공연한 공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 P77

나치가 만든 극히 비인간적인 이 세계에서 이성은 도덕의 적이었고, 합리성과 인간성은 충돌했다. 나치는 생존의 합리성에 비추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덕성이 비합리적으로 보이게끔 인간의 법칙을 비틀었다. 이성적 판단은 나치 범죄에 동의하도록 강요했고 이웃의죽음에 눈을 감게 만들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령을 쫓아내는 데 ‘부끄러움의 해방적 역할‘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문제의 핵심은 변호론자가 주장하는 영웅적 투쟁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과 성찰론자가 자책하듯이 더 많이 구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부끄러움을 느낌으로써 도덕적 정화를 시도했다는 자부심"과 "자부심에 취함으로써 도덕적 타락을 자초했다는 부끄러움 중 어느 쪽을선택하는가의 문제였다." - P88

일본 식민주의의 ‘세습적 희생자‘라는 자기규정에 갇혀 있는 한 잠재적 식민주의에 대한 내부 비판은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사회적기억의 빗장을 풀고 슬쩍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하면 또다시 식민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숨어 있다. 그것은 식민주의가 강요한 제국-식민지의 지배 구도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 밑에는 제국으로 우뚝 서지 못하고 식민 - P95

지로 전락한 역사에 대한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식민주의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제국이 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이다. 분명한 반식민주의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세습적 희생자의식은 탈식민주의적 성찰을 가로막는다. - P96

원거리 민족주의는 대개 이민당시의 낡지만 강력한 민족주의 기풍을 그대로 간직해서 그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온 본국의 민족주의보다 더 엄격하고 본질주의적인경향이 강하다. 본국의 민족주의는 역사적 조건과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데, 이들의 민족주의는 이민을 떠날 당시의모습 그대로 박제화되어 있다. 민족의 기억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한국계 미국인의 원거리 민족주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SET미국이라는 인종차별적 다문화 공간에서 날카로워진 한국계 미국인의 원거리 민족주의가 본국으로 역수입되어 한국의 민족주의적 기억 문화를 강화하는 이 경험은 민족주의가 트랜스내셔널한 현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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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소설의 집 안에서
제인 오스틴, 가능성의 거주자들


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오스틴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젠더와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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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슨이 한 오스틴에 대한 평가(237p). 솔직히 오스틴에 대한 편견이 이와 같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읽고 나서도 삶에 대한 어려움과 힘겨움이 엿보이지 않았고 주제가 결혼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것에 동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그녀의 환경의 영향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을 지금은 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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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인 <사랑과 우정>을 보면서 이전에 읽었던 <오만과 편견> 등의 흐름을 생각했다가 놀라서 뒷걸음쳤던 생각이 난다. 근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용문에 잔뜩 나오고 있다. ‘아하 그게 그런 거였어?’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고 인물이 갑작스레 사라지고 죽는 설정들이 나온다. 이 작품은 리어왕의 변형의 방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
오스틴 소설 속에 결혼은 중요하다. 다른 문제가 없는 것은 그만큼 당시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여성들이 다른 문제에 여력을 쓸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 같다.

실로 최근까지 심하게 평가절하된 여성 예술과 관련해 오스틴은 자신의 예술을 자신의 비평가들처럼 은유적으로 보았던 데다 (작은 상아조각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취미 활동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런 작은 공간에서는 편안하게 거주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스스로 규정한 소설가의 한계를 헤쳐가며 안전한 장소를 정의하려고 했다. 감금당한 상태가얼마나 답답하든, 오스틴이 보기에 그 속박 안에서 순종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세계 전반에서 너무나 상처받기 쉬운) 여자들이었다. - P235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논평은 (오스틴은 나름대로 훌륭하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표적이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오스틴의 소설을 ‘나름대로 완벽하다. 그것은 확실하다. 다만 멀리 나아가지 않을 뿐’이라고 가볍게 묘사한 것도 마찬가지다. 에머슨이 오스틴의 이야기의 사소함과 하찮은 가정사에 혐오감을 느끼며 ‘왜 사람들이 오스틴의 소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 P236

삶이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힘겨웠던 적도없다. 내가 읽은 두 작품 『설득』과 『오만과 편견』에 드러난 작가마음속의 문제는 오직 결혼할 수 있느냐다. 소설 속 인물들의모든 관심은 오로지 그 한 가지 문제, 그(또는 그녀)에게 결혼할 돈과 적합한 조건이 있느냐다. - P237

제인의 추종자들은 남성 문화가 오스틴 숭배를 소재로 삼은 일의 패러디일 뿐만 아니라 오스틴을 향한 찬사였다. - P240

‘우리가 좁은 곳에 있을 때, 제인을 필적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다.‘ 험버스톨과 그 무리는 오스틴 덕분에 그들 자신의갑갑한 삶을 이해할 사회적 인습을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좁은 장소에서 우아하고 지적으로 살 수 있는 본보기까지 배우고 있는 셈이다.
(…)
그러나 오스틴이 한계나 경계선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깔보는 태도를 취하거나 혹평하는 비평가들은 오스틴의 초기 작품들에서부터 나타나는 전복적 특빌을 간과하고 있다. - P241

오스틴은 문화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보여준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동시에 오스틴은 처음부터자신에게는 좁은 장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패러디 전략은 부적절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에대항한 자신의 싸움에 대한 증언이다. - P242

말하자면 오스틴의 초기 작품은 작가의 표현을 깎아내리는 잘못된 문학적 인습을 조롱함으로써 특히 여성 독자의 기대치를위험이 따를 정도까지 저버리고, 나아가 그런 인습이 바로 여성의 삶을 결정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
『사랑과 우정』은 오스틴의 다른 어떤 소설보다 완전하게 극화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다. ‘확실한 이성[분별력]‘이(나중에 오스틴의 소설은 이 이성으로 유명해진다) 두드러지게 부족한 오스틴의 청소년기 소설은 우리가 애초에 기대한 것보다 더 큰 ‘삶의 조각‘을 품고 있다. - P244

오스틴식 패러디의 핵심은 로라같은 여자 주인공을(그리고 사랑과 우정』같은 이야기를) 현실의 모델로 진지하게 제시하는 소설이 위험한 속임수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오스틴은 우스꽝스러운 문학적 인습을 조롱하 - P245

면서 낭만적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잘못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암시한다.
(…)
로라 같은 여자 주인공이 거치는 광범위한 여정은 소망을충족하는 이야기일 뿐이며, 가정의 영역에 얽매여 살아가는 여성에게 특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단서다. - P246

『사랑과 우정』이 보여주는 기묘한 효과의대부분은 여자 주인공들에 대한 지속적인 조롱과 그녀들의 생기발랄함, 즉 기꺼이 여정을 지속하며 다음 마차를 잡아탄다는것 사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 P247

18세기 소설에 등장하는여성 돈키호테들은 여성 방종의 위험과 순종의 필요성을 보여주면서, 로맨스 소설과 여성의 자기주장이 지닌 악을 전형적으로 예증한다. - P248

『사랑과 우정』은 오스틴이 자기가 사는 문화에서(특히 여성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문화에서)느끼던 심한 낯설음을 최초로 암시한 글이다. 로맨스에 반대하는 18세기 문학은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착실하게 살고 가정의 속박에 순종하 - P249

라고 호소하지만, 『사랑과 우정』은 여성의 자기주장을 하찮게여기는 사회를 공격한다. 그 공격은 매우 어리석고 비생산적인행동 양식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소피아와 로라는 이 세계에서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감정에만 매달려 있다. 오스틴의 풍자적인 초기 작품의 다른 여자 주인공들처럼 소피아와 로라는수동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것은 마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우울하고 낭만적인 백일몽에 빠져 있다‘고 묘사한 권태로워하는 소녀의 전조인 듯하다.

무시당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그들은 자기도취적인 환상에서 위안을 구한다. 그들은 자화자찬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을소설의 낭만적인 여자 주인공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들이 멋을부리고 연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이런 결함은 사춘기에 더욱더 두드러진다. 그들의 불안은 참을성 없음,
울화, 눈물로 드러난다. 그들은 울기(많은 여성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하는 기호)를 좋아하는데, 대부분이 희생자 역할을 하는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어린 여자애들은 희생자 역할을한층 더 즐기기 위해 가끔 자신이 우는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본다. - P250

로라와 소피아는 남자의 사랑을 이해하고 오직그것만 원하도록 격려받았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강박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몰두한다. 반면 진정한 감정을 깨닫거나 다루는 능력은 없다. 그들은남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서슴지 않는다. 반면 무지를 가장하고 겸손해야 하며 성적인 정열에는 무관심한 척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말고는 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대중적인 로맨스 소설이 어떻게 기여했으며, 여성에 대한 이런 억측이 ‘여성의’ 자기도취, 마조히즘, 망상의 뿌리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오스틴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P251

오스틴이 패러디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이유는 여성을 직접적으로는 깎아내리지 않는상속된 문학적 구조들이 명백히도 부적절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오스틴이 『리어 왕』을 변형한 방식으로 『이성과 감성』을 시작할 때, 이 반전은 남성의 전통이란 여성의 관점에서재평가하고 재해석해야 함을 의미한다. - P254

오스틴의 문화는 시체 주변에 있는 부서진 돌조각이 아니다. 반대로 그 문화는 오스틴이 그 안에서 사는 것을 배워야 하는 튼튼하고 강력한 건물이다. - P255

오스틴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의 문밖 나들이는 전적으로 더 부유한 가족이나 친구의 변덕에 의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누구에게도자신의 여정을 스스로 만들 권력이 없으며, 누구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복이 걸려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한다. - P258

여자 주인공들이 직면하는 모든 하찮은 사교 사건이며 즐긴다기보다 견뎌야 하는 빈번한 방문을 보면, 여성들은 아주 제한적으로 움직일 때조차 사사건건 그들을 검열하고 비판하는 돈많은 과부의 은혜를 입거나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오스틴은 남동생들도자신들의 누나처럼 (예를 들면 배우자를 선택할 때 경제적으로) 제한을 받는다고 설명하지만, 항상 경제적 계급보다 성의 계급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 P260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딸들에게는 실제로 비유적으로든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한다. 그들의 어머니는 결혼이얼마나 사람을 쇠락하게 하는지 증명하는 본보기지만, 딸들은집에서 도망치기 위해 남편을 구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최근에(누군가의 어머니가 되는 공포인) ‘모성 공포증‘이라고 불렀던것이45 부모의 집을 도망쳐 나오는 또 하나의 동기를 제공한다. - P263

결혼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틴의 사회에서는 결혼만이 소녀들이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한 오스틴의 침묵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진술이다. 오스틴 소설에 다른 문제들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소녀나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충분한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성 작가인 오스틴 자신의 결핍을 증명한다. 오스틴은 사실상 자기 예술의 한계를 스스로 천명하고 수용하는바,
이것은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허용된 자기표현의 형태를 전복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다. 어리석은 문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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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8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의 여성들은 결혼이 아니면 당장 생존이 문제였으니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게 큰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11-09 10:14   좋아요 2 | URL
상황상 이해가 됩니다. 결국 당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틀이 많이 제한적이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안에서 오스틴만의 틀로 깨려는 노력을 한 것 같아요. 초기 작품들은 이후 작품에 비해서 좀 더 통통 튄다고 해야할까 파격적인 설정들이 더 많더라구요~ㅎㅎㅎ

라로 2022-11-09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도 이 책 시작하셨군요!! (괜히 마음 급해짐. 사 논 책이 있음;;;)

거리의화가 2022-11-09 13:45   좋아요 0 | URL
라로님. 좀 더 일찍 시작해야 나중에 편할 것 같아서요^^;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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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기억

민족주의는 일국사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
-> 공감

민족주의를 구성하고 재현하는 ‘기억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동아시아의 ‘기억 체제‘에 대한 담론적 문제 제기 -> 기억 체제의 교체 필요

[민족주의의 지구사]
영어의 용례로는 ‘인터내셔널‘이라는 용어 확산 후 ‘민족주의‘ 등장
-> 민족주의는 트랜스내셔널.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후속 세대들이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잇고 세습된 희생자 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정당성과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 -> 가해자 민족에 대한 경험에 앞서 선천적으로 가능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지구사는 가해자와 희생자가 끝없는 사슬처럼 이어지는 부정적 공생 관계로 구성된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식민주의와 식민지, 가해자와 희생자, 서양과 동양은 트랜스내셔널한 담론 공간에 같이 배치될 때 인식론적 공모 관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
여기에서 등치 관계의 개념이 서로 맞지 않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식민주의와 식민지는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가해자와 희생자, 서양과 동양은 대등한 관계다.
그리고 가해자와 희생자에서 희생자라는 개념도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피해자가 들어가야 한다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희생자는 자연 재해나 사고로 발생해 희생된 이를 말하고 피해자는 참사 등으로 어떠한 권리를 뺏기거나 침해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본다. 피해자는 가해에 의해 엄밀히 자신의 권리를 뺏긴 사람이라는 것이다.
-> 이후 부분을 읽으니 저자가 희생자라는 용어를 쓴 점이 이해는 되었으나 좀 더 뒤를 더 읽어봐야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지구적 기억구성체의 형성]
21세기 지구화의 특징은 지구화 담론의 축이 상상력에서 기억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억의 지구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
이 때의 상상력이란 머릿 속에서 생각하는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인가. 기억은 실제로 이어진 것이고? 상상력이란 개념이 이 문장만 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억의 지구화는 서구 중심의 기억 연구에서 벗어나는 계기이기도 했다. 식민주의적 폭력과 제노사이드, 전시 성폭력 등에 대한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집단 기억이 서구중심적 기억 문화를 넘어서는 기억으 ㅣ‘반둥 체제‘가 결성된 것이다.
->
기억의 지구화가 어째서 서구 중심의 기억 연구로 진행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구 중심의 역사가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사가 정리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반둥 체제‘ - ‘반둥 회의‘(https://ko.wikipedia.org/wiki/%EB%B0%98%EB%91%A5_%ED%9A%8C%EC%9D%98):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로 인도, 인도네시아, 중화인민공화국, 이집트 중심이 되어 1955년 1차 회의가 열렸으나 이후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음. 아시아 아프리카 간의 협력/민족 문제, 식민주의 등 문제 검토

21세기 기억의 지구화 -> ‘지구적 기억구성체(global memory formation)‘ 출현
기억구성체는 집단 기억을 구성하고 규율하는 실재적이고 서사적 관계의 총합, 정치·사회·경제·문화·언어·종교 등이 결합하는 양상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고 실재와 인식/사실과기억/과거와 현재 사이의 모순을 반영하는 복합적 인식의 그물망

기억은 사람의 마음과 감성을 움직이는 정동적(affective) 차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이론이나 담론보다 실천적 효과가 더 크고 그만큼 파괴력도 더 크다.

기억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거를 포착하는 인식의 과정이다. 기억은 과거의 사실을 단순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구성하는 능동적 인식 작용이다.

기억의 지구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일어난 점진적 과정이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국가의 공식 기억, 시민사회의 다양한 집단 주체가 만들어내는 민간 기억, 개개인의 내밀한 기억이 서로 조응해야 역동성을 갖는다.

냉전 체제가 집단 기억의 국민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개별 국민국가들이 공식 기억의 국민화를 위해 냉전 체제를 이용한 측면도 있었다.
-> 동감

[내면적 지구화와 기억의 헤게모니]
일국적 기억 문화에서 지구적 기억 문화로의 이동에 ‘내면적 지구화(internal globalization)‘가 핵심
기억의 지구화는 인간 내면의 집단 지성을 지구화하는 기제이자 타자의 고통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을 개발하는 계기였으나 집단 기억의 민족주의적 경쟁을 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하고 심화하는 부작용도 낳았음

희생자 중심적 기억은 인권에 기반한 기억의 핵심 중 하나지만, 그것이 ‘기억의 전제(memorial tyranny)‘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경고했다. 기억 전쟁을 자기 민족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기회로 삼아 가해자와 희생자의 범주를 자의적으로 나누고 희생자의 위계질서를 만들어 경쟁을 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희생자들의 증언은 공식문서에 기록되지 않은 과거를 되살리고 기억하는 중요한 기제이자 희생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 인권침해를 지구적 기억 공간에 알리고 추상으로만 존재하던 고통에 인간의 얼굴을 되돌려주어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와 폭력에 대한 2차적 증인이 될 수 있었다.
-> 공감

[역사 서사와 기억 문화]
기억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론 네 가지
- ‘탈학제적(transdisciplinary)‘ 기억 연구의 관점을 취함
-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얽혀 있는 기억‘에 주목
- ‘얽혀 있는 기억‘에 대한 ‘지구사‘ 서술 시도
- 다양한 자료의 선택

시간적으로 이 책은 1945년 종전 이후부터 2021년까지 중 특히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의 탈냉전기로 초점을 맞추었다
공간적으로 이 책은 식민주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주의 테러에 대한 기억이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합류하고 얽히는 양상을 유럽과 동아시아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억 체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사회를 규율하는 구조화된 힘으로서의 집단적 기억과 작동 메커니즘

동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뿌리박고 사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정치 체제(political regime)‘ 이상으로 ‘기억 체제‘의 교체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그 밑바닥에는 정권이나 정치 체제가 바뀔 때마다 역내 화해와 협력, 공동의 발전을 선언했는데도 역사적 단위로서의 동아시아의 미래는 왜 계속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 결론은 공감하나 교체를 하려면 일단 내부적인 기억의 화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 같은 경우 정권이 바뀔 때 미온적으로 대응(일본의 입장에 우선)하거나 또는 시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하는 식의 대응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대응 이전에 일본의 대응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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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말 - 자유로운 삶을 꿈꾼 자주적인 여성의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시몬 드 보부아르.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이정순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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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보부아르의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작가와 보부아르가 공동으로 기획한 6차례의 대담이 실려 있다. 대담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1972년부터 1982년까지 나누어 진행되었기 때문에 보부아르의 생각과 입장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터뷰라 부담스럽지 않고 책이 얇아서 나처럼 보부아르의 활동과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가 입문서로 선택하기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래도 대표 저작인 『제2의 성』이 책에 수시로 등장하는 점은 감안해야겠다.

제2의 성을 출간할 때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회주의적 진보가 이루어져야 여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녀가 말하는 '페미니스트'는 계급 투쟁과 무관하게 여성의 요구조건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후 68 여성해방운동 후 그녀의 입장은 변화하여 사회주의도 남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제 경향은 여성해방을 계급투쟁에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에요. - P31

저는 가부장적 억압을 자본주의적 억압과 등가로 만드는 분석들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정주부의 노동은 잉여가치를 생산해내지 않아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노동의 잉여가치를 훔쳐가는 노동자의 조건과는 다른 조건이죠. 저는 그 둘 사이에 정확히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여성들이 따라야 하는 모든 전략이 거기에 달려 있어요. - P38

여러 가지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나는 여성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했다. 다만 전쟁 뒤 복직할 수 있었는데 글을 쓰고 싶어서 사르트르에게 돈을 빌리고 복직하지 않았다는 에피소드가 그녀의 주장과는 상충되는 이야기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이는 내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를 탐탁치 않게 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여전히 둘의 관계는 선뜻 납득은 가지 않는다.

진정으로 독립적이고자 한다면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44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보부아르가 생각하는 노년과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저는요, 남자들이 억압자인 이 세계에 사는 데 다소 익숙해요. 저 자신은 그로 인해 별로 고통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성의 예속 대부분, 즉 모성과 살림의 예속에서 벗어났죠. (...) 그 결과 남자들에게 인정받게 됐죠. 저는 예외적인 여자였고 그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 P78~79

어쨌든 제 생각에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은 서른과 쉰 사이에요. 인생의 도면이 그려진 동시에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직업이나 가정 문제로 복잡하지 않을 때죠. 집에서 해방되고 자기 앞에 할 일이 수없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이행이에요. 더 이상 미래가 없고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르죠. - P102

슈바르처: 여성이 그처럼 자기의 지성, 단호한 성격을 과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면 사람들이 불이익을 주는 경우를 많이 알고 있어요. 주위 사람은 "네가 남자만 해? 그럼 너는 여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아!"라는 반응도 보이죠. 그런 체험을 해보셨나요?
이 질문에 보부아르는 '아니오'라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가 살면서 너무 많았기에 보부아르에게 질투가 났다.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오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점에 있어서 분명 배울 점이 있는 학자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류를 답습한다면 나아지는 것은 없다.

영원한 여성은 허구에 지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한 인간의 발전에서 본성은 아주 작은 역할만 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자연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여자가 남자보다 천성적으로 우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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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08 0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은 서른과 쉰 사이 ]

이 나이대가 전 생애 중에 가장 힘들고 고달픈 시기 라고들 하지만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은 초등 입학전 유치원 시절인 것 같습니다 )

코로나 시대에 우리 모두 하루 하루 건강이 가장 소중한 !^^

이 책 보부아르의 철학 입문 하기 딱 좋죠 ^^

거리의화가 2022-11-08 09:03   좋아요 3 | URL
스콧님은 그러셨군요^^ 저는 보부아르하고 비슷하게 지금이 이 시기라 그런가 공감이 갔어요. 30대 이전에는 제가 많이 고달팠거든요ㅠㅠ
이 책 얇고 가벼워서 입문으로 좋았어요. 보부아르의 삶과 사상의 변화를 훓기에 적당했습니다.

희선 2022-11-08 0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가 쓴 책을 보기 전에 이걸 보면 좀 더 편하게 보겠습니다 평전 같은 것도 괜찮죠 보부아르 잘 모르지만, 사람은 다 알기 어렵기도 하고 좋은 점뿐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습니다 보부아르도 그렇게 보이네요 그때 여성으로 힘든 점도 있었겠지만,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한 것도 같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1-08 09:07   좋아요 2 | URL
네. 희선님^^ 작년에 <제2의 성>을 읽기는 했는데 그때는 보부아르가 누군지도 모르고 전혀 전무한 상태에서 읽어서 사실 읽는것에 만족했었어요. 이 책이 있었다면 좀 더 이해하기 편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ㅎㅎㅎ

새파랑 2022-11-08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는 보부아르의 생각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거 같아요~! 이런 말들의 시리즈 읽다보면 재미있긴 하더라구요~!!

거리의화가 2022-11-08 09:06   좋아요 3 | URL
맞아요 새파랑님. 이 책 읽으면 보부아르의 생각의 변화를 간략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라 쉬워요. 책이 얇아서 주중에 읽기에도 좋았네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11-08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여성해방을 계급투쟁과 연결하고자 한 보부아르였군요?
보부아르는 아주 진보적인 여성이었던 듯 합니다. 사회가 바뀌어야 여성의 위치도 바뀔 수 있다고 보았나 봅니다. 지금 사회가 몇 번이나 바뀌었어도 과연??
선견지명!! 보부아르는 그래도 일찍 그 틀을 깨었네요. 보부아르는 앞서 나간 똑똑한 위인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8 12:49   좋아요 3 | URL
네. 처음에는 계급투쟁에 목적을 두었다가 이것이 사회주의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바뀌었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분명 진보적인 여성이죠. 저는 보부아르의 솔직한 고백이 인상적이었어요. 대담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일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인정할 건 인정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독서괭 2022-11-09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의 변화해가는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겠군요! 보부아르 목록만 길어지고 있는데, ㅎㅎ 이책도 찜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9 15:15   좋아요 1 | URL
이 책부터 시작하시고 저작들 본격적으로 들어가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