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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말 - 자유로운 삶을 꿈꾼 자주적인 여성의 목소리 ㅣ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시몬 드 보부아르.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이정순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10월
평점 :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보부아르의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작가와 보부아르가 공동으로 기획한 6차례의 대담이 실려 있다. 대담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1972년부터 1982년까지 나누어 진행되었기 때문에 보부아르의 생각과 입장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터뷰라 부담스럽지 않고 책이 얇아서 나처럼 보부아르의 활동과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가 입문서로 선택하기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아무래도 대표 저작인 『제2의 성』이 책에 수시로 등장하는 점은 감안해야겠다.
제2의 성을 출간할 때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회주의적 진보가 이루어져야 여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녀가 말하는 '페미니스트'는 계급 투쟁과 무관하게 여성의 요구조건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후 68 여성해방운동 후 그녀의 입장은 변화하여 사회주의도 남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제 경향은 여성해방을 계급투쟁에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에요. - P31
저는 가부장적 억압을 자본주의적 억압과 등가로 만드는 분석들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가정주부의 노동은 잉여가치를 생산해내지 않아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서 노동의 잉여가치를 훔쳐가는 노동자의 조건과는 다른 조건이죠. 저는 그 둘 사이에 정확히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여성들이 따라야 하는 모든 전략이 거기에 달려 있어요. - P38
여러 가지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나는 여성이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했다. 다만 전쟁 뒤 복직할 수 있었는데 글을 쓰고 싶어서 사르트르에게 돈을 빌리고 복직하지 않았다는 에피소드가 그녀의 주장과는 상충되는 이야기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이는 내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를 탐탁치 않게 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여전히 둘의 관계는 선뜻 납득은 가지 않는다.
진정으로 독립적이고자 한다면 직업을 갖고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P44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보부아르가 생각하는 노년과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저는요, 남자들이 억압자인 이 세계에 사는 데 다소 익숙해요. 저 자신은 그로 인해 별로 고통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예성의 예속 대부분, 즉 모성과 살림의 예속에서 벗어났죠. (...) 그 결과 남자들에게 인정받게 됐죠. 저는 예외적인 여자였고 그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 P78~79
어쨌든 제 생각에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은 서른과 쉰 사이에요. 인생의 도면이 그려진 동시에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직업이나 가정 문제로 복잡하지 않을 때죠. 집에서 해방되고 자기 앞에 할 일이 수없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한에서 유한으로의 이행이에요. 더 이상 미래가 없고 어쩌면 최악일지도 모르죠. - P102
슈바르처: 여성이 그처럼 자기의 지성, 단호한 성격을 과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면 사람들이 불이익을 주는 경우를 많이 알고 있어요. 주위 사람은 "네가 남자만 해? 그럼 너는 여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아!"라는 반응도 보이죠. 그런 체험을 해보셨나요?
이 질문에 보부아르는 '아니오'라고 답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가 살면서 너무 많았기에 보부아르에게 질투가 났다.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오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점에 있어서 분명 배울 점이 있는 학자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류를 답습한다면 나아지는 것은 없다.
영원한 여성은 허구에 지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한 인간의 발전에서 본성은 아주 작은 역할만 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자연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여자가 남자보다 천성적으로 우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