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문자에 대한 기록이다.


이집트인들이 석판에 새긴 글자를 hieroglyphs라고 한다. 석판에 새겼으니 소재 자체가 단단해서 만들고 나면 튼튼하지만 쉽게 새기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Fertile Crescent의 Mesopotamia(between the Tigris and Euphrates rivers)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진흙판에 글자를 새겼고 이를 cuneiform이라 했다. 진흙은 석판보다 글자 새기기 훨씬 수월하고 마르고 나면 꽤 단단해져서 좋았으나 쌓이면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수천년 후 이집트인이 발견한 것이 paper와 ink다. 종이는 나일강 둑 근처에 있던 갈대를 부드럽게 짓이겨주는 과정을 거쳐 펄프로 만들고 판에다 펴서 말리면 만들어지는 것이 papyrus(파파이루스)다. 가지고 다니기도 좋고 글자 쓰기에도 최적화되어 있던 papyrus는 물에 약해 젖으면 분해되거나 찢어졌고 오래되면 망가지기 쉬웠다. 때문에 수메르인의 기록은 수천 년이 지나도 살아남았으나 이집트인의 기록은 없어졌다. 


* mash

The Egyptians learned how to soften and mash them into a pu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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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9-0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ashed potato…. 자야 하는데 배고프네요 🙄

거리의화가 2023-09-09 08:1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너무 늦게 올렸군요^^;
mash 라는 단어가 저렇게 쓰인다는 걸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새겼습니다. 단어는 외워도x2 왜 뒤돌아서면 잊는지!

2023-09-08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9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09-09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화가님의 한줄 영어요약 멋져요!👍👍😆

거리의화가 2023-09-09 08:19   좋아요 1 | URL
앞으로도 이렇게 이야기 요약해서 올리려구요^^; 3장은 상대적으로 짧았는데 두 개나 세 개로 이야기가 나뉘어진 것은 좀 더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ㅎㅎ 마지막 단어는 인상 깊은 단어와 그것이 쓰인 문장을 올렸습니다.
 


로켓 과학자인 이본 브릴이 2013년 88세로 사망했을 때 항공우주공학계는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부고 기사는 보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녀는 비프 스트로가노프를 맛있게 만들었고, 남편을 따라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세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8년간 일을 쉬었다. "세계 최고의 엄마였어요." 아들 매튜가 말했다.

그러나 향년 88세로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수요일에 사망한 이본 브릴은 명석한 로켓 과학자이기도 했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8년을 쉬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전통적 여성성을 앞에 부각시키다보니 뒤에 그러나라는 표현이 너무 도드라져보인다.


이본 브릴은 우주선을 달과 화성으로 쏘아 올리는 데 몇 십년을 바쳤다. 로켓 엔진을 발명해 산업 전반에 그의 발명품이 표준으로 쓰였다고 한다. 30년간 나사에서 재능을 펼쳤던 그녀는 여자라는 이유로 마니토바대학교 공학과에 등록할 수 없어 화학과 수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나는 감사해야할 지 모르겠다. 몇 십년 뒤에 공학과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은 젠더 평등을 원한다면 공공연히 '여성'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의 젠더를 언급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 맥락 속에서 여성의 젠더를 언급하는 행위는 성차별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 P72


여성의 젠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나쁘다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남성의 젠더를 호출하지 않는 문맥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여성이 과학, 의학, 정치에서 성공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들의 젠더를 강조해야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을 더욱 잘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들의 존재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 P73


둘 중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나는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원래 입장은 첫 번째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두 번째 입장도 일면 이해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젠더링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논쟁의 또 다른 중요한 줄기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를 '여성woman'이라고 할지 '여자female'라고 할지에 달려 있다. - P74


위와 관련해서 옥스퍼드 언어학자인 데버라 캐머런은 사람들이 '여자, -녀female'를 명사형으로 사용할 때, '여성woman'을 쓸 때와는 달리 부정적인 문맥에 쓴다는 것을 발견했다. female이라는 단어는 생물학적인 성의 여자, 암컷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woman은 젠더와 관련하여 인간만을 가리키며 문화적인 개념이다. 

젠더 대 섹스라는 질문은 '여성 대 여자', 즉 'woman vs female'의 의미론 논쟁에서 가장 비판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여성'이 문화적이고 개념적인 젠더를 의미한다면 '여자'는 몸과 관련이 있는 섹스를 묘사할 때 쓰는 단어인가?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첫 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공식 정의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조차 성별 퍼즐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참조되는 네 개의 사전에서 첫 번째로 '여성'은 '난자와 자손을 낳는 성인'으로 정의된다. 두 번째로는 '여자 하인 또는 가사도우미', '아내, 여주인 또는 여자 친구'라고 정의되어 있다. 사전적 정의와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의 개념의 괴리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신체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sex)과 문화적 혹은 정체성적인 측면에서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gender)을 여전히 헷갈리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500년 동안 두 용어가 같은 의미로 혼용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1960년대까지 둘의 의미론적 구분을 하지 않았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류화하려는 시도는 19세기 독일의 마그누스 히르슈펠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대해 64개의 유형을 만들었는데 남성적인 이성애 남성부터 여성적인 동성애 남성, 트랜스젠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학적 정의를 만들려 노력했다. 오늘날 인간은 본성과 양육의 이론처럼 주어진 성으로만 젠더가 결정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이론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버틀러는 젠더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를 말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은 우리가 있도록 하는 일을 실천하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만이 아닌, 누구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낸다. 


우리 정체성 가운데 대부분은 고정적인 용어로 표현될 수 없고, 젠더도 이에 포함된다. - P92


사실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단일한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 대화와 맥락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 P93


저자는 대화가 젠더와 관련된 것일 때 단어를 더 구체적으로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여성은 포궁경부암 검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포궁을 가진 사람들은 포궁경부암 검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여성이 "포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언어를 바꾼다고 해서 우리의 사고를 바꾸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는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둘다 병행되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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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08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너무 좋네요. 저는 완전히 적합한 사례는 아니지만 <히든 피겨스> 생각도 나고요. 공학에 재능이 있던 유색인종의 여성들이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퍼뜩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주 오랜 시간 성별 고정관념을 습득한 채 살고 있었어요. 이를테면 남자가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성적이고 감성은 이성보다 열등한 것이고, 남자가 더 똑똑하고.. 하는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대화하는 남자가 좀 멍청할 때도 ‘어쩌다 실수했나보군‘이란 생각을 하며 살았었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나서야 그 남자들이 멍청한 게 맞는데 제가 너무 그들을 추켜세우고 저 자신을 낮게 봤다는 걸 깨달았죠. 으.. 속상해라. ㅠㅠ

아 이 책을 읽으면서는 또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지 기대가 아주 큽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8 11:3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자랐기에 특히 여성이 감성적이라는 것에 대한 열등감 같은 것이 오랜동안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저 자신을 비하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적이 있었고요^^; 젠더가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개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독서괭 2023-09-08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전정의 자체에 비하개념이 들어있다는 게 놀라운 지점이었어요!
포궁,이라고 불러야하는데 아직 입에 잘 안 붙네요. 포궁, 유아차, 시가...

거리의화가 2023-09-08 14:17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도 사전에 가부장적(?) 개념으로 그대로 정의되어 있다는 게 당황스러웠습니다(사전 업데이트는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현실에서도 여전히 구시대적 사고에 의한 관념을 쓰고 있으니까요). ‘포궁‘ 저도 잘 안 붙네요. 이미 붙어버린 단어들, 머릿 속의 정체된 생각을 떨쳐내기란 요원합니다.
 

영어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용어들은 주로 성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최초에는 중립적으로 쓰였던 용어가 나중에는 주로 격하되는 방식으로 변했다.

‘슬럿’은 중세 ‘슬러트’라는 형태로 ‘칠칠맞은’ 여자를 뜻했으나 후에는 부도덕하고 성적으로 헤픈, 성판매자를 뜻하게 되었다가 1990년대 후반이 되면 포르노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변모한다.
‘비치’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바가스(bhagas)=>성기’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출발하여 나중에 동물을 일컫는 단어로, 더 후에는 암컷 동물로 좁혀진다. 현대에 오면 못되고 기분 나쁜 여자, ‘불평하다’는 동사로 쓰이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단어 중 여성 비하가 담긴 욕설을 없애거나 나쁜 방식으로 쓰기를 피하거나 재정의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효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젠더와 성차별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모욕은 사라지기 어려울 지 모른다. 때문에 욕설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젠더 중립적인 방법으로 개인의 젠더 대신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도 제안한다. '머리에 똥만 찬 비열한 이중인격자', '망할 사기꾼 악당'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젠장'이라는 말을 쓴다. 

영어권 화자들이 여성을모욕하고 싶어 할 때, 그들은 여성을 다음 중 하나에 비교한다. 바로 음식, 동물, 성판매자이다. 이는 로럴 서턴이 UC 버클리에서 1990년대에 밝혀낸 연구 결과와도 무척 유사하다.
우리가 여성을 먹을 수 있고, 비인간적이고, 성적인 대상으로불렀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기대, 희망, 두려움을 전체적으로 보여 주는 명료한 선언이라 할 수 있다. - P46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은 가부장제의 오랜 문구로서, 대부분 여성의 성적 열망과 성적인 자유분방함이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몇천 년 된 태도에 기인한다. 여성에 대한욕설을 잠깐 훑어보기만 하더라도 여성이 어떻게 결정하든간에 여성의 욕망은 수치를 당해 마땅하다고 판단한다는 걸알 수 있다. 우리 문화의 규칙에 따르면 그 판단은 둘 중 하나다. 섹스를 많이 해서 걸레라는 평판을 얻거나, 섹스를 하지않아서 점잖은 체한다는 딱지가 붙거나. - P47

컴퓨터 언어학자이자 《JSTOR 데일리 JSTOR Daily》의 언어칼럼니스트인 치루Chi Luu 는 누군가를 모욕적인 단어로 부르는 행위는 그가 화자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모욕의 최종 목적은 모욕당하는 사람의 행동이 화자가 특정 집단에 대해서생각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P53

젠더화된 모욕에 대한 자각 수준을 높이면 사람의 외모와 행동을 묘사할 때 더 의식 있고, 더 포괄적이고, 더 정확해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자각으로 우리는 일상적인 발화에 젠더가 어떻게 숨어 들어가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슬럿‘이 실제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그 단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분석하면,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도 우리가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젠더화된 단어, 즉 여자, 남자, 여성, 남성, 남자애, 여자애, 그녀, 그 등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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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TWO ] Egyptions Lived on the Nile River


"the Nile Delta"

This area is shaped like an upside-down triangle. The Greek letter for D, delta, is shaped like a triangle too. So this part of the river is called the Nile Delta, after the Greek letter of the alphabet.


"silt"

The river flooded at the same time every year, so they were ready for it. When the water came up out of the river, rich dirt from the bottom of the river came with it. This dirt was called slit, and it was full of good vitamins and minerals for plants.


나일강 근처에 살던 이집트인들은 두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일강 삼각주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Lower Egyptions.",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Upper Egyptions." 우리가 생각하는 남쪽은 아래 방향으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Lower Egyptions가 되야 할 것 같지만 나일강 삼각주는 북쪽에 위치하므로 그 거꾸로 봐야 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Lower Egyptions는 red crown을 쓰고 Upper Egyptions는 white crown을 쓰는 차이는 있었으나 둘 다 왕이 통치했다는 점은 같았다. 두 부족 간에는 계속되는 대결이 있었고 결국 Red Crown King이 승리하여 이집트 전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그때부터 이집트 왕은 Double Crown of Egypt가 되었다.  


이집트 신에 대한 설명, 신화인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붕개로 칭칭 감겨진 오시리스의 몸이 첫 번째 mummy, mummy 가 되자 그의 몸이 부활했다. 나일강이 매년 물이 넘친 것은 오시리스가 부활함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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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9-06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ountain이 있는 쪽을 upper delta 쪽 (하류)를 lower 라고 한 게 직관적인 것 같은데 지도를 보여주려니 북남을 구분하느라 오히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역삼각형이라고 할 것도 없고 delta (그리스 문자) 랑도 딱 맞는데 말이지요 ^^

거리의화가 2023-09-06 18:01   좋아요 2 | URL
맞아요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의 위치와 지도상의 위치 때문에 설명이 더 복잡해진 듯합니다. 근데 생각보다 참여하시는 분들이 모두 열심히 읽으시네요. 아직 초반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암튼 수하님 계속 화이팅입니다!

건수하 2023-09-06 18:02   좋아요 1 | URL
전 이미 챕터2 글을 건너뛰었습니다 :)

청아 2023-09-06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책에서 저 대목 읽으며 ‘이게 대체 뭔소린가‘ ...했습니다.ㅋㅋㅋㅋ
혼자 너무 앞서 가는 것 같아 오늘은 3페이만 읽었어요. 매 파트가 다 나름나름 재밌네요ㅋ

거리의화가 2023-09-07 09:08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럴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챕터별로 2틀을 잡았는데 다들 한 챕터씩 나가셔서 놀랐습니다. 속도 조절 좀 하려고요. 오늘부터는 챕터별로 2일을 잡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미미님 계속 화이팅!

2023-09-06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07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09-06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 화가님이 저 앞지르실 듯!! 어제오늘 계속 늦게 퇴근해서 모닝루틴 못 할 것 같네요 ㅠㅠ 같은 내용 다른 정리 보는 재미가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3-09-07 09:07   좋아요 1 | URL
속도 조절 하려고 해서 아마도 괭님하고 속도 비슷해질 듯요?ㅎㅎ
퇴근이 늦어지시면 힘드시겠어요ㅠㅠ 같은 내용이지만 서로 다른 스타일의 글을 보는 것이 저도 재미납니다. 다른 분들의 글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 않을까 싶네요^^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이동순 지음 / 한길사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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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벌어진 가슴, 다부진 체격, 짙고 숱 많은 눈썹은 활처럼 굽었고, 두 눈은 슬픈 코끼리를 닮았다. - P60

홍범도는 키가 190 정도로 무척 컸고 단단한 체격이었다고 전해진다. 남아 있는 사진을 봐도 '건장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책에서의 '슬픈 코끼리의 두 눈을 닮았다'는 표현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1982년부터 2003년까지 저자가 쓴 민족서사시를 기반으로 하여 산문적 서술로 바꾸고 최신 역사 사료를 업데이트하여 다듬어낸 평전이다. 저자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그 때문인지 문체 자체가 물 흐르듯 하여 책 내용이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대화문들을 읽을 때는 마치 홍범도 장군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홍범도의 일대기를 몇 년만에 읽게 되었다. '청산리 대첩, 봉오동 전투, 흑하 사변' 등 교과서에서 붙박이처럼 배우는 사건이지만 어떠한 배경에 의해서 일어났고 어떤 과정으로 일어났는지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여긴다.

홍범도의 원래 이름은 범동이었다. 어머니는 산독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동냥젖을 먹여 가며 키우셨으나 아버지도 8살 때 돌아가신 뒤로는 홀로 살아가야 했다. 남의 눈칫밥을 얻어가며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가. 그럼에도 맡은 일을 잘 해냈는데 3년간 일했던 제지소에서 품삯을 미루고 주지 않아 제지소 주인을 때리고 도망쳐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수계를 받고 지담 스님의 상좌가 된 홍범도는 스님으로부터 '범도'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범동이 범도가 된 순간이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치기가 많았을 나이, 범도가 되면서 그는 큰 그릇의 사람이 되어 백성을 돕겠다는 포부를 품게 된다. 범도라는 이름을 얻게된 것도 모자라 이 곳에서 아내 분을 만나 아이를 가지게 되어 강원도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연이 흥미로웠다. 강원도에서는 매일 사격 연습을 하며 단련했다고 한다.

을미 사변, 단발령 이후 전국적인 의병이 일어난다. 이 때 주도적인 의병 세력 중 한 명은 유인석이었다. 홍범도는 강원도 철원 보개산으로 들어가서 유인석의 부대를 마주한다. 이 때 유인석은 홍범도의 기개에 인상이 깊었는지 '여천汝千'이라는 호를 내렸주었다고. 그 후로도 둘은 서찰을 주고 받으며 뜻깊은 인연을 이어간다. 유인석은 홍범도의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지지했지만 그의 투지만으로 싸우는 모습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며 충고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인석은 홍범도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스승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홍범도는 사포수로 사냥하고 가족들은 농사를 지어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사냥꾼 사포계에 포함되어 활동하다가 후에 차도선, 송상봉이 지휘하는 의병대와 조직을 합친다. 1907년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하자 그의 의병대 활동에도 영향을 주게 되지만 수차례의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유명세를 얻게 된다. 주로 일진회 회원을 처단하거나 일본군 토벌대의 사무실, 통신 기관 등을 파괴하는 일을 행했는데 각지에서 의병대 활동을 위한 의연금을 보내올 정도로 응원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홍범도는 이 때 신출귀몰-(날아다니는 장군: 飛將軍)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슬픔들이 이어졌다. 일본군은 의병대 내부의 반일 역량을 분해시키기 위해 차도선에게 접근했는데 이 때 휘하 부하들과 함께 일본군에 투항해 귀순하고 만 것이다. 일본군은 홍범도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의 가족도 대상이었다. 첫째인 홍양순은 홍범도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무사했으나 단양 이씨(홍범도의 아내)는 둘째 용환이를 빼돌리고 정작 본인은 유치장에 갇혀 모진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사망하고 만다. 1908년 바배기 전투에서 첫째인 홍양순이 사망하였다. 이후에 둘째인 용환이도 병으로 앓다 사망한다. 어릴 적 부모와 일찍 헤어진 그는 가족과의 애착이 무척 컸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은 그의 단란한 가정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독립 운동을 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더라면 좀 더 단란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 삶을 택하지 않았다. 

상황은 갈수록 홍범도 의병대에 불리해져 갔다. 총은 있지만 탄약이 떨어져 쏠 수 없어 숨어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투 의욕을 상실한 탈주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결단을 내린 그, 가려는 의지가 있는 40명만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기로 한다.
두만강 너머는 일찍부터 조선에 살던 많은 백성들의 이주가 이어졌다. 주로 북방 지역에 살던 이주가 많았는데 고향 땅이 점차 살기 팍팍해졌던 탓이 클 것이다. 처음으로 이주한 조선 백성들은 터를 잡고 척박한 그 땅을 개간해나갔다. 이후 점차 이주하는 백성들이 늘어 1920년대가 되면 20만명이 된다. 그 곳에 살던 중국, 러시아인들도 조선인들의 농사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를 몇몇 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 땅으로 간 홍범도는 그 곳에 있는 독립군 세력과 연합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한다. 대표적인 전투가 1920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이어진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다. 유리한 지형에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을 결합한 완벽한 아군의 승리인 동시에 일본군에게는 무참한 패배를 안긴 전투였다. 다만 일본군의 패배는 그들을 복수심에 불타 오르게 해 조선인 동포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참극을 낳게 하였다.

이후 만주의 독립운동 세력 9개의 단체가 모여 대한독립단 단체를 만들지만 내부 노선의 차이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갈등은 잠복해 있었다. 러시아 백군이 홍군에 의해 박살이 나고 연합국 최고회의는 1920년 1월 16일 볼셰비키 정권과의 통상을 재개하면서 군대 철수를 선언했지만 일본은 버팅기며 철수하지 않고 있었다. 같은 해 4월에 러시아 빨치산 부대가 니콜리스크에 와 있던 일본군을 살해하면서 연해주의 러시아 혁명군 무장해제를 요구, 블라디보스토크와 니콜리스크 등지의 한인독립운동세력에 대한 공격 및 학살을 벌인다. 이 때 최재형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사망했다. 이것이 '4월참변'이다.
문제는 일본군이 4월 참변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은 채 한인마을을 공격하는 와중에 1921년 3월 소련정부 코민테른 동양비서부는 모든 대한독립단 부대를 소련군 한인보병자유대대에 강제편입시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자유시에 집결하라는 요구를 한쪽은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은 거부하면서 분열은 증대한다. 이것이 흑하 사변의 계기가 되었다. 홍범도는 이 때 독립 세력 간의 갈등을 보며 무척 환멸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통합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쉽지 않았고 결국 흑하사변이라는 비극으로 끝맺음이 났다. 서로 총을 겨눈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에게 큰 상실감과 슬픔을 남겼다.


2021년 8월 15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담긴 관이 크즐오르다 공항을 출발하여 같은날 저녁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8월 17일 정부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 훈장 최고의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8월 18일 국립대전현충원 제3묘역에 안장되어 78년 만의 고향 땅에 묻혔다. 


"이 땅에서 왜적을 말끔히 물리치는 날, 그날에 나는 비로소 죽을 수 있으리라. 그날까지 나는 제국주의자 침략자들과 싸우고 또 싸우리라. -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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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9-06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 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9-07 09:03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선 2023-09-09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0년에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100년 기념 우표가 나왔어요 2021년엔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2023년엔... 나라를 생각한 홍범도 장군일 텐데... 봐야 하는 건 안 보고 다른 걸 보는군요 한국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9-09 08:22   좋아요 1 | URL
네. 기념우표 소식은 들었는데 정작 사지는 못했어요. 예전엔 그런거 나오면 곧잘 사곤 했는데 정작 제가 관리도 못해서 안 사게 되더군요.
이념에 의한 정쟁이 피곤합니다. 정작 중요한 나라 현안들은 다 내팽개쳐져있어서 한숨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