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그것을 통해서 정신이 현실의 제약성과 우연성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는 두 양식 간의 역학이고 두 양식의 총합이다.

첫 번째 반응‘에서, 개인은 그 자신의 가능성을 정의하고 창조하기 위하여 현실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주어진현실의 한계를 부정한다. - P252

인위적인 수단에 의해 실현된이상에의 추구를 우리는 미학 양식 the Aesthetic Mode이라 부를 것이다.

문화적 반응에 대한 두 번째 종류에서, 현실의 우연성은 현실적 대안의 창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작용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서 극복된다.

현실 자체로부터 추론된 정보의 응용을 통해 현실을 인간의 개념화된 이상에 따르도록 유 - P253

도하는 것을 우리는 테크놀로지 양식 the Technological Modeo이라 부를것이다.

즉 미학적 반응aesthetic response 은 ‘여성의 행동과 부합하는 것이다. 동일한 용어들이 한쪽에 적용될 수 있다. 즉, 주관적이고, 직관적이며, 내성적이고, 갈망하고, 공상적 혹은 환상적이며, 잠재의식(원본)과 관련되어, 감정적이며, 까다롭기까지 하다(신경증적이다). 이에 상응하여, 기술적 반응technological response 은남성의 반응이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외향적이고, 현실적이고, 의식(자아)과 관련되어, 합리적이고, 기계적이며, 실용적이고, 실제적이고, 안정되어 있다.

두 문화적 반응들‘남성의‘ 테크놀로지 양식과 ‘여성의‘ 미학 양식-간의 상호작용은 성의 변증법을 또 다른 차원으로 재창조한다. - P254

성의 변증법적 측면에서문화사의 이 오랜 단계는 문명의 모권적 단계에 대응한다. 여전히어둡고, 신비스럽고, 제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자연에 대한경외심에 빠져있는 여성 원리는 The Female Principle* 인간 자신에 의해 격상되고 군림한다.

문화적 휴머니즘의 정점인 르네상스는학적(여성) 양식의 황금시대였다.
그리고 또한 미학 양식의 종말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16세기에 이르러 문화는 성의 변증법the sex dialectic적인 면에서는 모권제에서 부권제로 옮겨가고, 계급적 변증법the class dialectic에서는 봉건주의의 쇠퇴에 상응하는 심대한 변화를 겪었다. - P258

경험과학과 문화의 관계는 부권제로의 전환과 성의 변증법과의 관계, 그리고 부르주아 시대와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의 관계와 같다. 즉, 혁명에 선행하는 후기 단계이다. 더욱이 세 변증법은 횡적으로뿐만 아니라 종적으로도 서로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부르주아지로부터 성장한 경험과학(부르주아 시대는 그 자체가 부권제 시기의 단계이다)은 귀족제의 휴머니즘(여성원리, 모권제)을 계승하고, 실제적 지식을 축적하기 위한 경험적 방법의발달과 함께(자본축적을 위한 근대 산업의 발달) 결국 그 자체를위협한다. 과학적 발견의 본체(새로운 생산 양식)는 그것을 이용하는 경험적(자본주의적 양식을 끝내 벗어나야만 한다. - P262

또 다른 경험과학의 내적 모순은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이고
‘혼이 없는‘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경험주의의 본질적으로 숭고하고 자주 망각되는 궁극적 목적, 즉 이상의 현실적 실현이라기보다는 그 목적에 대한 수단의 결과이다. - P263

문화적으로 우리는 남성 역할과 여성 역할 간의 선택만을 할 수 있었다. 자의식, 내향성, 패배주의, 염세주의, 과민성, 현실 감각이 부족한 사회적 주변인으로 이끌거나 아니면 전문성을 갖춘‘ 분열된 인격, 감정적 무지, 전문가의 편협한 시각 사이에서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275

다음 문화적 혁명에서 우리가 가질 것은 남성(테크놀로지 양식)과 여성(미학 양식)의 재통합이다. 그것은 문화적 흐름의 최 - P276

고치이거나 혹은 그것들의 총합마저 능가하는 양성성의 문화를창조하기 위한 것으로 문화적 범주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합 그 이상으로 문화 자체가 훅! 하고 끝나버리는 물질반물질 폭발a matterantimatter explosion의 상호 말소이다. - P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줄긋기



지난 몇 세기 동안 특히대중문화에서 아마 사회에서 여성의 문제성 있는 지위와 관련되었기 때문이지만 여성은 예술의 주요 주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문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여성들이 있는가? 많지 않다. 여성이 개별적으로 남성 문화에 참여하는 경우, 그들은 남성의 방식대로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들은 남성의 게임에서 남성으로서 경쟁해야만 했기 때문에 여전히 구식 여성의 역할, 스스로 정한 야심과 상충하는 역할을 입증하라는 압력을 받기 때문에 문화의 게임에서 남성만큼 능숙하지 않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228

여성들이 진정한 ‘여성‘ 예술 I true ‘female‘ art 을 만들려면 모든 문화적 전통을 부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성)문화에 참여하는 여성은 그것을 만드는 데 관여하지 않은 전통의 기준에 따라평가되고 성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녀가 여성의 관점을발견할 수 있다 해도, 그러한 전통에서는 확실히 그것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남성 게임에서 지는 데 진절머리가 난 여성이 여성적인 방식으로 문화에 참여하고자 시도한 경우에는, (남성)문화권력에 의해 사소하고 열등한 ‘여성예술가‘로 지명되어 혹평을받고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훌륭하다고‘ (마지못해) 인정되어야만 하는 때조차도 자신의 ‘진지함과 세련된 취향을 나타내는 저급한 방식으로 훌륭하지만 부적합하다고 빗대어 말하는 것이 유행한다. - P231

성 역할은 인간 경험을 분리시킨다. 남성과 여성은 현실의 서로 다른 절반에 산다. 그리고 문화는 그것을 반영한다.
*************************************** - P240

‘여성‘ 예술의 발달을 그것의 반대급부인 남성학파처럼 반동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여성 예술은 오히려 진보적인 것이다. 여성의 현실을 엄밀하게 탐구하는 것은 성적 편견이 있는 문화에서 왜곡을 수정하는 데 필요한 단계다. 우리가 보편적 문화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기시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세계관에 달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the moon**을 통합시킨 후에만 가능해질 것이다. - P243

페미니스트 혁명만이 이러한 문화적 왜곡을 일으키는 성의 분열schism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그때까지 ‘순수예술‘이란 하나의환상이다. 전체적인 (남성)문화의 타락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진짜가 아닌 예술에도 책임이 있는 환상이다.
모두를 아우르는 문화를 창조하기 위하여 무시되어온 절반의 인간 경험-여성의 경험을 문화의 본체와 통합하는 것은 첫 단계이자 전제조건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분열 자체는 진정한문화적 혁명이 있을 수 있기 전에 타도되어야만 한다. - P2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장 로맨스 문화

낭만주의는 여성이 그들의 조건을 알지 못하게 막는 남성 권력의 문화적 도구이다. - P214

남성을 위해 직접적인 성적 쾌락을 지키려는능은 여성의 의존성을 강화한다. 여성은 그들을 즐기는 남성과대리적 동일시에 의해서만 성적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에로티시즘은 성적 계급제도를 보존한다. - P216

여성이 다 똑같다고 믿지만여성에게 그런 생각을 추측하지 못하게 하고 싶을 때, 남성은 무엇을 하는가? 그는 자기의 믿음을 혼자 간직하고, 그녀의 의심을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것이 바로 그녀를 구별 짓는 것인 양 한다. 따라서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결국 그녀의 개성과 동일한 것이 된다. 여성의 성의 사유화는 남성의 눈에 여성을 개인으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여성들의 계급으로서의 일반성generality을 가리는 과정이다. - P217

성의 사유화는 여성을 정형화한다. 그것은 남성으로하여금 여성을그들과 같은 족속이 아닌피상적인 속성들로만 구별되는 ‘인형‘으로 보게 부추기고, 여성으로 하여금 계급으로서의 성적 착취를 못 보게 만들며, 그것에 대항하여 단결하지못하게 막고, 따라서 두 계급을 효과적으로 분리시킨다. - P219

외모는 그것을 지닌 사람의 사랑에서가 아니라 외적 기준의 근사치에 어느 정도 다다랐냐에 따라 ‘좋은 것‘이라고 정의된다.

성의 사유화에 대한 요구는 미적 이상에 대한 요구와 모순되며, 개인의 외모에 관한 심각한 여성적 신경증을 일으킨다.
이러한 갈등 그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하고 있다. 여성이 점점 더 닮아 보이기 시작하고 가공의 이상과 다른 정도에 의해서만 구별될 때, 더 쉽게 계급으로서 정형화될 수 있다. 그들은서로 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하게 생각하고, 설상가상으로 너무어리석어서 서로 비슷하지 않다고 믿는 계급이 되는 것이다. - P221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확장이 된다. 만일 실제 인간의 내면 Person Underneath이 완전히 증발하지않는다면 진정한 인격과 최근의 이미지를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다. - P222

여성은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성적 매력의 이미지이다. 여성에 대한 정형화는 확장된다.
그리고 에로티시즘은 이상성욕erotomania이 된다. 극한까지 자극되어 역사상 견줄 데 없는 광적인 것에 이르렀다. - P223

감각에 대한 포격은 결국 성적 도발을 훨씬 더 강화시킨다. 즉, 성적으로 흥분시키는 일반적 수단들은 모든 효과를 상실한다.

이 고도로 효과적인 선동 체계의 내적 모순 중 하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여성이 겪는 정형화 과정을 노출시킨다는것이다. 그 생각은 여성들에게 그들의 여성적 역할에 더 익숙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TV를 켠 남성 역시 최신형의 복부 보정, 가짜 속눈썹, 그리고 바닥 광택제("그녀는 합니까.
하지 않습니까?")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교차하는 성적 유희와 폭로는어떤 남성이라도 여성을 혐오하도록 만드는 데 충분하다. 그가이미 혐오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 - P224

페미니스트들이 보그 Vogue 지의 표지 얼굴의 아름다움을 단호하게 부정해야 한다고 느낄 정도로 경건해질 필요는 없다. 그것이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그 얼굴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장과 변화와 쇠퇴를 허용하는가,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들도 표현하는가, 인위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허물어지는가, 혹은 금속이 되려고 하는 나무처럼 무생물적 대상의 다른 아름다움 자체까지 거짓으로 모방하는가 등의문제이다. - P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용한 미국인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정효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원치 않아요."
"이 사람들은 먹고 살아갈 쌀만 넉넉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말했다. "그들은 총에 맞아 죽기를 바라지 않아요. 하루하루 무사히 지내기만을 원한다고요." (P210~211)

보통 한국인이 인식하고 있는 베트남 전쟁의 기간은 1964년의 한국의 베트남 후방 지원, 1965년 본격적인 군사 지원 이후이다. 그러나 전쟁 기간은 그보다 훨씬 더 길었다. 1955년 11월 1일부터 시작된 전쟁은 1975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으니 말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호찌민이 베트남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가 이에 불복하여(프랑스는 베트남을 식민지로 소유하고 있었다) 벌어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이 패배, 베트남이 분단된 것까지 베트남 전쟁의 배경이라 따진다면 그보다 더 오랜 기간 영향권에 있는 셈이다.

조용한 미국인은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 동안을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향후 베트남의 암울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이후의 결과를 원치도 않았을 것이고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쟁사를 읽다 보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결단하지만 그 피해는 대중이 원치 않게 받는다. 일상은 대중에게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지만 전쟁은 살아갈 기반 자체를 모조리 파괴할 수 있고 후폭풍(언제 또 나를 공격할 지 모른다는 의심과 불신, 그로 인한 피해 망상의 발생)을 낳게 한다는 의미에서 결단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데도 경제적인 이득과 국가적 이익을 위해 전쟁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인간들을 생각하면 기시감과 혐오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 이라는 제목에서 꽤나 의미심장함을 느꼈다. 미국은 20세기 전쟁사에서 많은 족적을 남긴 국가인데 '조용한 미국인이라니?' 미국인을 통칭해서 하는 말일까 궁금했다.


주요 등장인물인 파울러와 파일의 성향은 정 반대라 할 수 있겠다.
파울러는 종군 기자로 왔으나 기자정신이 없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건조해보이고 적당히 현실에 타협한 채 진지함이 없는 듯하며 무엇보다 심각한 일에는 끼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난 그런 일에 끼어들지 않는다고요." 인간적인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라면 남들이 싸우건 말건 내버려 두고, 사랑을 하건 말건 내버려 두고, 하물며 살인을 저질러도 가만 내버려 둔 채 나는 끼어들지 말아야 했다. 나는 내가 본 사실들을 그저 글로 적어 보내기만 한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견해 또한 일종의 행동이므로(P68~69).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 와서 2년을 지내다 보니 모든 게 시큰둥해진 것일까. 하긴 전쟁이 벌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니까. 하지만 후엉이라는 현지 여성을 만나 살면서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원하는 대로 이 곳에서 어떤 사건이든 개입하지 않고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시니컬한 그의 태도와는 다르게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파일은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며 사회와 세계를 진단하고 분석한다. 그는 어느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대륙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P47). 파일의 대의는 지나치리만큼 거창하지만 그것이 옳은 대의라 해도 어떤 방법을 쓰는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과연 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까.


당시 내가 베트남에 살아가고 있던 시민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군인을 구분할 수 없다.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이 사람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해야한다니 상상만으로도 힘겹다. 믿을 수 없는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래서 결국 신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무슨 종교를 믿든 이곳에서라면 안전하리라고 믿었다. "여기선 중립을 지켜야 해요. 이곳은 하느님의 영역이니까요." '하느님의 왕국에서는 길 잃고 가난한 백성이 춥고, 굶주리고 겁에 질린 채로 살아가는구나.' 신부가 말을 이었다. "위대한 왕이 이곳에 임한다면 이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당신은 생각하겠죠." 하지만 나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디를 가든 다 마찬가지여서 - 가장 강력한 지배자의 백성인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진 않겠지.(P113~114)' 파울러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왕국에서는 전쟁의 포화도 막을 수 있나? 보이는 인간도 믿을 수 없는 마당에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다는 것이 무신론자로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중립'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질문이 남는다. 한국전쟁에서도 이념이라는 허울 하에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고 지금까지 앙금이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은 지나친 이상이 아닐까.
내 세상에서는 죽음이 유일한 절대 가치였다. 인간은 목숨을 잃으면 아무것도 영원히 잃지 않게 된다(P105).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구절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고 무섭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불안이 엄습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슬프지만은 않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 둘 잃어가는데 죽고 나면 더 이상 잃을 일이 없는 것 아닌가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잘 알고, 내가 얼마나 속속들이 이기적인 인간인지를 분명히 안다. (내 가장 큰 소망은 마음 편한 삶이며)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을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감촉으로 느낄 때면 나는 그저 불안하고 속이 몹시 메스꺼워져서 견디기가 어렵다. 때때로 순진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박애주의 정신이라고 착각하지만, 내 행동은-가령 내 아픈 상처를 치료하는 일보다 소년병을 먼저 챙긴 선택은 기껏해야 훨씬 더 큰 어떤 선을 위해 작은 선 하나를 희생했던 데에 불과했으니,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해야 할 때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행한 선심의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P254). 적나라한 인간성의 묘사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내 마음이 편하기를 원할 뿐 타인에 대한 박애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한다. 인간은 결코 인류애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기적인 본성을 소유하되 이런 조그마한 선심성 행동들로 스스로를 덜 이기적이라고 위안을 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인류는 결코 평화로워질 수 없는 것 같다.


순진함은 무모함과 결합하면 돌발적이고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순진한 사람이란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고 판단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실행하는 사람이라 무모하고 두려운 법이 아닐까. 하지만 의문도 동시에 들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법이라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오류가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한다면 이 세상에 남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제노사이드라는 끔찍한 단어가 떠올랐다.

'순진한 사람은 항상 죄가 없으니 순진함을 탓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람들을 저지하려면 통제하거나 제거하는 길 말고는 대책이 없다. 순진함은 일종의 광기다.'(P363)

"La liberté, qu'est-ce que la liberté ? 자유, 자유란 무엇인가요?" - P216~217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07-20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추카추카 ㅎ <토지>보다 오래 걸리신 거 아닌가효 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7-20 17:01   좋아요 1 | URL
유독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토지는 그나마 배경을 더 잘 이해하고 있어서 좀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3-07-20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엣남 전쟁에 대해 어려서부터 관심
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우리 세상을 만든 100대 소설이라는
문구가 눈길이 확 가네요.

1955년 작품이라고 하니, 미국이
개입하기 전 식민종주국 프랑스
와 맞짱을 뜬 시절의 이야기인가
보네요. 호기심 발동...

거리의화가 2023-07-20 17:05   좋아요 1 | URL
1952년 즈음으로 본격적인 냉전이 들어설 무렵이라 냉전 배경 소설이라고 익히 알려져 있더군요. 매냐님도 흥미롭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독서괭 2023-07-20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잠자냥님 리뷰로도 봤지만 참 표지가 안 어울리는 책이 아닌지..ㅎㅎ 인간성에 대한 심도 깊은 고뇌가 담긴 작품일 것 같습니다. 화가님 완독 추카요~~^^

거리의화가 2023-07-21 10:03   좋아요 1 | URL
표지만 봐서는 책의 내용이 연상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의 숲과 밀림이 배경인 것 같긴 하지만 사실 책의 주요 내용은 그렇지는 않은데 말이죠^^; 괭님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7-21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좋아하시는 화가님과 잘 맞는 소설인거 같습니다~! 저도 얼마전에 그레이엄 그린 단편집 구매했는데 이런 우연이! 역설적인 제목이군요 ^^

거리의화가 2023-07-21 10:06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읽은 것도 있어요. 저는 역사적 배경이 있지 않은 소설은 난해해서 읽기 어렵더라구요. 그린 단편집 새파랑님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나중에 공유 부탁드려요!^^

희선 2023-07-22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트남 전쟁이 꽤 길었군요 전쟁이라는 건 알아도 그걸 자세하게 모르기도 하네요 제트남 남과 북이 통일을 하려던 전쟁이었다는 말이 있기는 한데... 거기에 미국이나 한국은 미국 때문에 가야 했고... 남의 나라 전쟁으로 돈을 벌기도 하는 건 참 안 좋기도 하네요 전쟁이 일어난 곳에서 사람이라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지만...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22 19:51   좋아요 1 | URL
네. 베트남 전쟁 순수 기간만 따져도 20년 동안입니다. 한국전쟁도 그 짧은 시간 안에 피해가 컸는데 베트남은 오죽할까 싶더군요. 책에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몇 차례 언급되어 놀라기도 했습니다.
 
토지 19 - 5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9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먹는 데서 인심 나더라고 밥 한술, 술 한잔 나누어 먹을 것이 없게 된 세상,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의지할 남정네 없는 젊은 아낙들 아이들, 이슬같이 서글픈 명줄이나마 잇기 위해 식량배급에만 매달려 있는 일상에서 사람들은 원시세계로 돌아간 듯 일체를 생략하고 살았으며 냉수 한 그릇 떠놓고 혼례하는 것이 예사요, 장례식인들 무슨 수로 조문객 대접을 하겠는가. 징용 나가는 아들 남편을 위해 주먹밥이라도 몇 개 뭉치고 나면 식구들 죽그릇에서 푸성귀만 돌아야 했다. 극도로 이기적인가 하면 극도로 외로워하고 거리에서 직장에서 혹은 집 마당에서 기둥 뽑아 가듯 젊은이들을 잡아가지만 그것도 거의 일상화되어 울음소리 한숨 소리 위로의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 같았다. 배급을 받아 절반은 팔아서 다음 배급 탈 돈을 마련해놓고 배급의 절반으로 연명하는 기막힌 처지도 있었고 생산량이 날로 줄어만 가는 양조장의 술 찌꺼기, 두부공장의 비지조차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식량 배급소의 유세는 대단했으며 배급계 관리들은 살림이 윤택하여 태평성세였다. - P42

인간이란 의식주가 모름지기 중요한 법이다. 그 중에서도 먹는 행위가 가장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먹을 것을 뺏긴다? 먹고 살 길이 없어진다? 막막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먹을 수 없으면 인간은 죽는다. 내 것을 뺏기지 않으려면 최소한 지키거나 남의 것을 뺏어야 하니 인심은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중하층 계급의 이야기고 상층 계급은 없는 사람들을 더 착취하고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년도는 안 나와서 알 수 없지만 전시 체제 막바지임이 느껴진다. 아마도 1944년 무렵이 아닐까 싶다. 학병제는 진작 시작되었고 조선인 징용제가 시작된 것을 보면 말이다.

상부층은 협력을 해야만 조선 민족이 살아남는다는, 자기 자신조차 믿지 않는 논리를 리코딩하여 되풀이 되풀이하여 판을 돌리고 있었다. 열혈의 조선 청소년들이여! 국가 위난을 보고만 있을 쏜가, 총칼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라! 대군(大君)의 신금을 우리는 보위해야 하느니, 펜을 버리고 총을 들라! 오오 감읍(感泣)의 극(極)이로소이다. 폐하의 적자로 조선 백성을 안으신 그 크나큰 성은을 어찌 우리가 잊을 쏜가! 저 하늘의 태양이 영구불멸이듯 우리의 인군 또한 그 영광이 무궁하리, 오오 조선의 청소년들이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가 적을 무찌르라! - P63

이광수가 每新에 새해 첫 날 발표한 시로 조선인들이 황국신민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일장 연설해놓았다. 한문 해석하면서도 부들부들했다. 대체 그 좋은 머리 갖다 무얼 했는가. 그러면서도 나중에 본인은 억울하다, 해방이 될 줄 몰랐다 세례라니. 1940년 이후의 신문 기사를 찾고 싶었으나 이 무렵은 이미 조선, 동아일보 폐간으로 기사 자체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광수를 비롯한 친일 지식인들은 연설회나 강연, 논문 등을 통해 친일 행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학병들을 동원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는 점이다. 생각할수록 기가 찬다.

<새해>(1944년 1월 1일 『每新』)
새해가 왔네.
地球(지구)가 처음 보는 偉大(위대)한 새해
貪慾(탐욕)의 地獄(지옥) 舊世界(구세계)가 무너지고
仁義(인의)와 禮(예)의 새 世界(세계)의 터를 닦는 새해.
太平洋(태평양)의 물결에 잔잔함이 돌아오고
亞細亞(아세아)의 天地(천지)에 復興(부흥)의 萬歲(만세)소리가
우렁차게 일어날 새해.
기뻐라. 나는 이 새해를 보았어라
開闢 以來(개벽 이래)에 처음오는 偉大(위대)한 새해를
노래하는 나의 幸運(제군)이어
그러나 一億(일억)의 同胞(동포)여
이 해 새해는 또 땀을 많이 흘려야할 해.
農夫(농부)는 논밭을 갈기에 가꾸기에 일구기에 鑛夫(광부)는 땅속에서 파기에 깨뜨리기에 저내이기에
工夫(공부)는 공장에서 갈기에 두들기기에 漁夫(어부)는 바다에서 그물치기에 낚기 끌기에 男,女,老,少, 一億一心(남,녀,노,소,일억일심) 쉬일새없이 흘리는 땀이 日本의 國土를 흠씬 적실 때에- 오직 그 때에만야
榮光(영광)의 勝利(승리)는 오는 것이다.
이를 일러 一億 戰鬪配置 戰力增强(일억 전투배치 전력증강) 빛나는 새해 偉大(위대)한 새해
씩씩한 우리 아들들은 銃(총)을 메고
戰場(전장)으로 나가고
어여뿐 우리 딸들은 몸빼를 입고
工場(공장)으로 農場(농장)으로 나서네
말 모르는 마소까지도 나라 일 위해
나서는 느들이 아닌가
千年和平 道義世界(천년화평 도의세계)를 세우랍신 우리 임금님의 命(명)을 받자와 ‘예’ ‘예’하고 집에서 뛰어 나오는 무리 이 날 설날에 半島三千里(반도삼천리)도 기쁨의 日章旗(일장기) 바다.
無限(무한)한 榮光(영광)과 希望(희망)의 偉大(위대)한 새해여! ;

징용은 처음에는 모집 방식이었으나 반응이 없자(시, 도에서 인원을 배분받았을텐데 인원 충족수에 거의 미달이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강제 차출 방식이 되었다. 길에 가다가도 눈에 띄면 끌려가는 형편이었는데 이는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을 원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강제로 시집을 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조선인들 징용에 비하면 일본인 징용은 천국입니다. 조선인 노동자는 사람도 짐승도 아닌 기계지요. 일본은 언젠가 벌을 받을 것입니다. 도시락 싸들고 공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젊은 여자들, 그들이 불만에 차서 못 견디겠다, 못 견디겠다 하고 있을 때 전선에서는 마구 무차별로 끌고 온 조선 처녀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 심할 때는 오십 명 이상의 군인 놈들을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유키코 얼굴에 피가 모여들었다. 수치와 분노였다. - P152~153

유키코의 수치와 분노, 오가타의 분노를 넘어선 절망 어린 반응을 보면서 이것은 식민지인 조선의 상황을 떠나 인권, 인류애로도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두 사람의 씁쓸함과 참담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말이야 차차 지 맘 내킬 때 하것지마는 지가 걱정하는 것은 핵교를 그만두는 일보다, 건강이 나쁘다는 것도 큰일이기는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치로 정신대에 뽑혀가지 않을까 그기이 걱정입니다." 정신대라 했을 때 남희는 강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어쩌면 그는 정신대 내막에 관하여 소상하게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대라 카믄 여자 보국대 말가."
"예, 수을찮이 처녀 아이들이 뽑히 나간 모앵인데, 이 동네서도 더러 나갔을 걸요?" - P35

국민징용령은 저항을 우려한 ‘모집’형식 노무동원이었는데 직업소개령에서는 이를 구체화시켜 6개의 관영직업소개소를 설치하고 보다 대대적인 노동력 동원을 강행하였다. 이때 조선인 노동자들은 「종업자이동방지령」「국민노무수첩법」등에 구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39년부터 조선노무협회가 만들어지는 1941년 6월 이전까지의 강제동원은 명목상 ‘모집’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모집에는 시종일관 국가권력에 의한 엄격한 통제가 가해졌다. 즉 조선총독부, 경찰당국, 직업소개소 등의 긴밀한 연계와 계획 아래 사실상의 연행이 실시된 것이다.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행선지도 모르고 연행되었으며 연행된 후에는 강제적 노무관리에 의해 육체와 정신까지 구속되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때의 모집지역은 경기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의 7개도였다. 1942년 3월 이후, 종래의 연행형식은 모집에서 이른바 관알선(官斡旋)으로 바뀌었다. 본부는 총독부에 있었고 지부는 각 도청에, 분회를 부·군·도에 둔 조선노무협회는 관청과 경찰, 일본 사업주가 파견한 노무지도원 등과 협력하여 강제연행을 수행하였다. 관알선은 44년 9월, 징용령이 적용되어 명실공히 강제연행이 시작되기까지 시행되었고 이 시기의 대상지역에는 ‘모집’시기의 7개도에다 강원도와 황해도가 추가되었다. 연행된 노무자들의 생활은 비참한 것이었다. 일본의 탄광노동조건을 예로 보면, 일본의 노동자들이 비교적 조건이 좋은 군수공장으로 이동하자 일제는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조선인 노동자의 도입, 여자 및 연소광부의 갱내 사용허가, 심야작업 금지의 완화, 광부의 취업시간 제한의 완화에 의하여 재생산을 꾀했기 때문에 그 악조건은 이입 조선인 노동자들이 그대로 감수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또한 이 조선인 강제연행은 일본인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 또는 인하시키는 정책으로 이용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토지관리란 명목하에서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갖가지 훈련이 가해졌다. 그것은 조선현지훈련, 취로지 도착훈련, 황민훈련, 일본어 훈련, 작업훈련, 생활훈련, 체력훈련, 취로 후의 재훈련, 불량자 특별훈련 등 9가지 종류가 있었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10~12시간이었으며 아침밥을 먹은 후 갱내에 들어가면서 점심을 먹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을 때 “감독님, 죽여주십시오 일어설 수가 없어요”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주(九州:큐우슈우 도요스)탄광의 한국인 합숙소 벽에 남아 있는 한글 낙서 중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절규는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민독립운동사 중 3)강제연행 中)

報道特別挺身隊(보도특별정신대)의 結成式(결성식)이 朝鮮神宮(조선신궁)에서 거행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침략 한국 36년 사 13권 매일신보 1944.2.1 기사 中)

"국민을 제물로 삼으려는 의도가 뭡니까? 바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본능 아니겠어요? 그 본능 때문에 눈이 어두워 이미 사리판단을 못하고 있어요. 만일 자신들이 죽겠다 한다면 국민은 살릴 수 있겠지요. 군부나 황실이나."
어쨌든 이들은 좋았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 침략과 약탈 덕분에, 저변의 그 많은 생명들이 남의 산하에 뼈를 묻어준 덕분에 누릴 수 있었던 좋은 시절, 그렇다고 본다면 이들 역시 나라의 은공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숱하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도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죽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들 아닌가, 미묘한 심리적 딜레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를 성토하고 비난할 것인가. - P162~163

요시에이와 오가타의 대화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졸지에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국민이 되어 버린 두 사람은 자국을 욕하면서도 국가가 전쟁과 약탈에 힘을 쏟아 얻은 이익으로 특수를 누렸기 때문에 제 얼굴에 침뱉기라는 것을 느낀다. 내가 두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나라면 이꼴 저꼴 다 보기 싫어서 술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오가타는 쇼지의 반쪽이 이 나라, 가난하고 핍박받는 조선의, 그 민족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 내 아들아! 너의 어머니는 바로 저 불쌍한 동족을 위하여 북만주, 네가 보고 싶어하는 황량한 벌판에서 지금 싸우고 있단다. 가해자로서 괴로워하고 있는 일본인, 나를 언제인가 아버지로 네가 받아들이듯 동족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의 여성도 언젠가는 네가 어머니로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은 민족과 민족의 투쟁이 없어지고 억압하는 자와 억압당하는 자의 투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지상에는 식민지라는 존재가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 어머니와 나의 슬픈 사랑, 비극도 없어질 것이다.' - P192~193

오가타는 아들인 쇼지와 여행을 하면서 인실을 떠올린다. 어디선가 조국을 위해 독립 운동을 하고 있을 인실을 생각하면 이것은 부군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경심을 갖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인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아마 마지막 권에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고통스럽고 힘든 세월이지만 이 때 인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조선의 민중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정면대결 해보아야 뭐 나오는 것 있어? 피장파장인데, 갈 때가 되면 가는 거고, 올 때가 되면 오는 거고, 팔다리에서 힘을 빼버리고, 바다 위에 떠다니는 해파리같이 사는 거지 뭐. (...) 온갖 잡신들이 한낮에 한길을 활보하는 세상, 평범하게 저속하게 진담 반 농담 반 그렇게, 아암 그렇게 살아야지." - P110

유인배는 나일성(송영광)에게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힘을 빼고 생활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영광이 양현과의 관계에서 갖는 아픔만이 아니라 전선에 있는 위문 공연을 가서 웃으며 연주를 해야 하는 고뇌까지 적용되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서 조선 민중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어느 편이든 극단은 살기 힘들었을 시기가 아니었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박쥐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미친 것처럼 모든 것에 일희일비하고 목숨을 걸기에는 36년이란 세월은 참 녹록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곱씹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토지 19권은 큰 사건들이 있으나 모두 스포가 될 만한 사건이라 거론하기에는 그렇다. 대부분은 무거운 사건이었지만 스파이가 암살되기도 하고 동네를 쥐새끼처럼 훼방 놓던 놈은 쫓겨나는 일처럼 빛이 되는 일도 있었다. 그 얼마나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그 둘도 죽어도 싸다, 맞아도 싸다 하기에는 찝찝함이 남는다. 어쨌든 그들이 해방 후까지 살아 남았다면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늘어놓는 이야기와 비슷한 변명을 했을 것이라는 점은 거의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