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이승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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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기록 재료의 역사부터 한자 서체의 역사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유용한데 재미도 있으면서 설명까지 친절해서 만족도가 무척 높았다. 문자를 사랑하고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추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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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5-29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을 읽으셨네요. 뻔하지 않을 것 같은 책이고, 게다가 두꺼운 책을 읽으셔서 뿌듯하셨을 것 같습니다.
경험의 폭을 넑혀 줄 책인 듯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5-30 09:08   좋아요 1 | URL
페크님 정말 멋진 책입니다^^ 두꺼운 책인데 술술 읽혀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분자 조각가들 -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까지 신약을 만드는 현대의 화학자들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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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기호식이 오랜만인데도 반가웠다. 화학자들이 지금껏 해온 노력들에 주목해서 읽을수도 있지만 나처럼 약의 역사로 읽을 수도 있겠다. 수면제 계열로 쓰인 바르비탈계 화합물이 탈리도마이드를 만들어 임산부에게 피해를 준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약은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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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소녀들 -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생의 식민지 경험
히로세 레이코 지음, 서재길.송혜경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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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하라 요코는 '식민지 책임론'을 "식민지주의의 역사에 대해 그 유산이자 지속을 극복하려는 입장에서 다루게 될 문제 영역"이라고 명확히 정의했다. 나아가 '평시의 식민지주의'라는 개념도 제기했다. '평시의 식민지주의'에 대응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전시의 식민지주의'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그 함의는 '일상화한 체제로서의 식민지주의'라는 말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P17).

여성사 연구는 '전쟁 책임'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국적 시야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식민지에서의 전쟁 책임, 그리고 식민지 책임이라는 관점,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P22).

여성의 '식민지 책임' 특히 일본 여성의 '식민지 책임'을 논의함에 있어 저자의 생각을 말하려 한다. 첫 번째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식민지 책임'과 관련하여 개개의 여성이 같은 무게의 죄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P23).

엘리트 여성이 어떤 논리로 식민지 지배에 가담하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연구성과가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로 건너가 식민자로서 그곳에서 생활한 여성이나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식민자 2세에 대해서는 많은 공백이 남아 있다. 여성단체나 식민자의 일상생활에 관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P24).

그동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식민 남성 주체 권력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은 많으나 그 밖의 책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 책은 식민자들의 관점에서 식민지가 어떠했는지 개인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식민지에서 살았던 여성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인터뷰, 이들의 저작을 자료를 기반으로 쓰여졌다. 특이한 점은 식민지에서만의 경험이 아니라 이들이 일본으로 귀환하고 현재까지의 시점을 역추적한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 21명, 인터뷰를 실시한 사람은 16명으로 식민지 시기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에 재학했던 이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조부모나 부모를 따라 경성에 들어왔다.

이들 대부분은 식민지 조선에서 풍요롭게 생활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가 식민지 관리인 경우 수당이 따로 있어서 내지에 비해 수입이 월등히 좋았고 자영업을 하는 경우에도 저렴한 임금으로 조선인을 고용하여 생활했기 때문이다. 고용인을 고유명사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기혼 여성은 오모니, 미혼 여성은 기지배라고 불렀다. '하나짱', '하나양'처럼 일본식 호칭을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인 고용인들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물론 소수의 고용인은 주인과 그 자녀들과 잘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는 "청결, 정돈, 운동, 우애, 공검, 순종"등의 덕목을 강조했고(내지 교육의 연장) "그대들에게는 신부의 동포를 지도해야 할 큰 책임이 있다"라고 지도했다(피식민자 지도 역할). 불평등의 구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수신 시간에는 숙녀로서의 지성과 품격 있는 현모양처가 될 것, 정조관념을 가질 것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A씨). "따분한 시간(M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가 "천손강림 이야기에 대한 의문"을 교사에게 질문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S씨).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938년에 입학한 35회 졸업생부터는 전쟁에 대한 협력, 필승의 신념(L씨), 국가에 진력할 것(U씨) 등이 강조되었다. 다만 개인이 받아들이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어서 10명은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P71~72)
역사와 지리 시간에 배운 것은 일본 신화를 시작으로 한 역사, 조선반도 지도를 중심으로 학습했다고 한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교실에 커다란 중국 지도가 걸려 있었고, 일본군이 점령한 지명에 히노마루 깃발을 세웠다고 한다(I, J씨). ...
여학교에서는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하는 것이 의무였다. 일기장은 「매일의 발걸음」이라는 제목이었는데, 1학년 때는 붓으로 쓰도록 지도받았다(P84). J씨는 이때의 교장에 대해 "군대에 물들어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M씨는 다른 어떤 교장에 대해 "자기 딸에게는 권하지 않으면서 생도에게는 종군간호부를 권했다"라고 기억했다(P85).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다.

교육 내용에서도 짐작이 되지만 이들이 받은 교육은 식민지 지배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식민지민들의 지도를 주문받고 시작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3.1운동 후 일본은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일본인 여학생과 조선인 여학생 합동음악회 등이 열렸고, 만주사변 후에는 음악회에 <기미가요> 등 황국찬미의 색채가 강화되는 음악들과 고사기 신화 등을 기반으로 한 <조국> 음악이 울려퍼졌다. 전쟁이 심화될수록 군사 훈련 등이 강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1942년 부여신궁 조영을 위해서 근로봉사가 할당되고 비행기 등에 들어가는 운모 깍기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조선인들이 사는 주거 지역과 엄연히 분리되어 있었다. 식민지에서 일본인의 격리된 집단주거=피식민자인 주민과의 거주지 구분에 의한 공간의 분할, 지배 언어와 피지배 언어라고 하는 언어의 분할 및 식민자의 모노링구얼한 언어상황은 타자와의 만남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었고, 황민화 정책은 만나야 할 타자 그 자체를 말살하려는 기획 그 자체였다(P124).
인포먼트(설문자+인터뷰인)는 조선인을 종속자의 입장으로 바라보았고, 일본어의 강제는 당연한 풍경으로 여겼으며 창씨 개명을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특별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이처럼 그들은 분명 조선이 식민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한 일은 없었다.

그런 그들은 1945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뒤 충격과 혼란을 겪는다.
"학교는 청진에서 온 피난민과 군인들로 가득차 있었고 직원실은 몹시 혼잡했다. (...) 재학증명서를 받고 마지막으로 교장실과 직원실의 당번을 했다. 그 다음에 각 교실에 걸려 있는 '청소년 학생에게 내리는 칙어' 및 '황국신민의 서사', 후지산 액자, 그 외 전쟁에 관한 이러저러한 사진, 그리고 '특공혼으로 임무완수'라 적힌 종이 등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장실에 있는, 행사 때마다 봉독되던 여러 종류의 칙어도 일동이 큰절을 하는 가운데 소각해 드렸다. 선생님들과도 이루 다할 수 없는 이별을 고하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봉안전을 받들어 깊고도 깊게 길고도 길게 큰절을 한 뒤 하교했다(P156).

한반도에 미군이 들어오고 위험을 인지한 이들은 인양(=일본으로의 귀환)을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식민자 2세로서 조선에서 태어난 이들은 인양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 곤란을 느꼈던 것 같다. 일본은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이들은 조선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일본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어째서 인양해야 하는 걸까, 어디로 인양해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Q씨. "조선인이 되어도 좋으니까 경성에 남고 싶었다"는 O씨. 그러나 이들은 인양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조선인들 사이에서 폭발했기 때문이다. 막상 일본에 도착한 이들은 "침략자인 너희들이 돌아와서 우리가 굶주린다"라고 쓰인 벽보를 맞닥뜨린다(T씨).

인양을 했더니 이번에는 '인양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이 말은 규슈의 치쿠고 부근에서는 차별어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입장이 뒤바뀌어 이번에는 조국의 사람들로부터 '인양자'라고 차별을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집이 없고, 땅이 없다는 두 가지 이유로 '인양자, 인양자'라고 불렸다. 견뎌내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인양자'라는 차별어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이후 내 속에는 늘 일본인이면서도 '재일 일본인'이라는 의식이 있었다(P174~175). 이들은 기존에 자신들이 가졌던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들의 인양자로서의 차별의 경험을 지켜보면서 조선인이 식민지에서 겪었던 차별,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겪었던 차별(ex: 파친코) 등을 떠올렸다.

일본에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뒤 1965년 한일국교 수립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들은 여러 가지로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대부분은 조선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불편한 마음, 아무 것도 몰랐던 것에 대한 고통과 미안함을 느꼈고 소수지만 식민지 책임에 대한 자각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체험을 수기로 남기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표명을 하기도 했다.

L씨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빈부의 차이는 왜 생겼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한 권의 책(노로 에이타로의 『일본자본주의발달사』)과의 만남으로 해결되었다고 한다.

일본과 조선의 관계가 식민지 지배에 의한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마치 구름 낀 하늘이 맑아지는 것처럼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 식민지 지배라고 한마디로 말하지만, 그 내용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경찰 등 다방면에 걸쳐 모든 분야에서 지배와 압력이 가해졌다는 것, 그 때문에 조선인은 35년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 우리 가족의 생활-그것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아주 컸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범한 일본인의 죄를, 내가 어리고 또 아주 무지했다 하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생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지 않을까,라고."(P200)

이케다 마사에는 전후 앰네스티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에서 성장한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엠네스티 회원이 되어 남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심각한 차별을 보고 아연실색했던 날,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식민자로 같은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린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일하러 온 중년 부인에게, 그녀의 이름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오모니'라고 부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허드렛일을 시켰던 일,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조선어를 금지하고 일본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조선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험 아동이라고 낙인찍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일본인에게는 6할의 수당이 붙었습니다. TV 화면을 통해서 "나는 흑인을 차별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백인 소녀의 모습, 그것은 우리들 그 자체였습니다. 무지했습니다. 과거 제자들이 서울에서 정신대, 즉 위안부였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입니다만, 종군위안부 문제에도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하갱도에서 일했던 사람도 강제 연행된 조선 분들입니다. 그 사실에 대한 목소리를 이제 겨우 내기 시작했습니다."(P202)

오다 미노루는 글에서 "자기 안에 있는 가해자 체험(혹은 그 가능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타자의 가해자 체험과 동시에 집요하게 고발해 가는 태도가 요구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수지만 식민지 책임을 자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이들이 있음에 다행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역시 마음이 찜찜하고 불편하다. 이들의 다수는 여전히 당시의 조선을 모르고 조선인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이 권력자인 동시에 가해자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식민지에서 겪은 체험만 이야기했다면 실망했을텐데 일본에 귀환한 후 그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었고,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알게 되어서 그래도 수확이 있었다. 그리고 식민자 2세, 그것도 여성의 이야기는 희소성이 있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관련 연구가 나오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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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31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는 잘 모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어쩐지... 일본 사람은 자기들이 전쟁에서 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아주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모르지 않을까 싶어요 독도 문제는 여전하고...


희선

거리의화가 2023-05-31 09:5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었을텐데 뭘 알았겠습니까. 보고 배우는 환경이 그런 것도 있었고(부모, 국가의 영향 등) 갈수록 전쟁이 심화되면서 배우는 교육도 전쟁필패를 외치니 끌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가서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해보는 일은 필요했을텐데 대부분은 조선에 살았던 시기를 ‘좋았던 시기, 향수‘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아쉽죠^^;;;
 
小王子(精美典藏版) (精裝, 第1版)
天津人民出版社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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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원서로 내가 어린 왕자를 읽게 될 줄이야. 한글 번역본과 비교했을 때 중국어 문장이 간단하게 표현되기도 하고 더 길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재미있었다. 초보자 원서로 많이들 권하나 결코 쉽지 않은 수준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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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26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왕자라는 말은, only child, spoiled child에 쓰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린왕자와 같은 한자어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중국어로 읽으시다니 화가님 정말 대단하세요

거리의화가 2023-05-26 10:18   좋아요 2 | URL
알라님 어린 왕자는 중국어(간자체), 한자 동일합니다^^ 말 그대로 직역했다는 생각이에요. ‘어린‘ + ‘왕자‘ 이렇게. 말 그대로 어린 아이라고 표현하려면 ‘小孩子‘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간자체라 읽기 쉽지 않았어요. 2월달부터 읽었으니 거의 4달 소요되었네요! 막판에는 대강 읽은 느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완독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5-26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저는 ‘간자체‘가 뭔지도 모르는 그런...까막눈입니다^^;; 4개월간 열독, 이제 완독까지 따블로 축하드려요~~

다락방 2023-05-26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거리의화가 님 너무 멋져요! 완전 짱멋져 짱 근사해요!! 거리의화가 님 삶에 축복 있으라!!

거리의화가 2023-05-26 13: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다락방님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페넬로페 2023-05-26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국어로 어린왕자 읽으시다니👍👍
외국어는 뭐니뭐니해도 꾸준한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거리의화가님!
멋져용^^

거리의화가 2023-05-26 13:07   좋아요 2 | URL
네. 4개월동안 정말 느리지만 꾸준히 읽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 페이지 읽고 어떤 날은 좀 더 읽기도 하고...ㅎㅎ 그러다보니 읽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순철이와 길상의 만남
서희를 만나러 간 홍성숙과 배설자. 유혹에 농락당한 허정윤.
동학당의 해체 선언.

"내 생각에는 말기에 접어들지 않았나 싶어. 얼마 전에 일본은 불인(佛印)에 진주했는데 일본의 계산으로는 장개석의 원조루트를 차단한다 그거지만 의외로 전선은 확대되어 일본이 말라죽게 되는 거 아닌지."
"말라죽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고 미국이 나서지 않을까 싶어. 미국만 나서주면 일본의 패망은 눈앞에 있게 되는데."
"일본이 그거 생각지 않고 불인에 진주했을 리는 없고."
"물론이지. 그러나 미국의 참전은 미지수. 참전한다는 확률이 구십 프로라 하더라도 일본은 십 프로에 희망을 걸 수밖에없는 다급한 사정이거든. 당장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지. 장개석 원조의 루트를 차단하는 것도 그렇지만전쟁물자 고갈이야말로 발등에 불 떨어진 격이니."
"어쨌거나 일본에 승산이 없는 것만은 확실하지?" - P11

참 자네도 알 거야, 김두만이라고. 왜 그때 우리 집하고 함께 털린 그 작자, 술도가 하는."
"알지."
"그 작자 아들 김기성도 아는지 모르겠네."
"동경서 본 일이 있지."
"명색이 대학이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를 학교를 유학이랍시고 다니면서 뽐내기로는 구역나게 뽐내던 놈인데 지금 뭘 하는지 아나? 돈을 처넣었겠지만 경방단警防團) 단장이야."
"출세했네."
"알고 보면 경찰서 시녀 노릇이나 하는 별 실속 없는 거지만이 작자가 진주 거리를 활갯짓하고 다니면서 어리석은 사람들을 꽤 울리는 모양이야. 옛날엔 내 앞에서 쪽도 못 쓰던 놈이하참, 세상 더럽아서." - P12

"실은 그 작자하고 우리 집하고도 앙숙이네. 자네나 우리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하기는 뭐 그자뿐이겠나. 평사리 작은 마을에도 면서기가 날뛰고 걸핏하면 반국가다 반정부다,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감정이 격해지면 술잔 기울이는 횟수도 잦아진다. 동경에서일류대학의 법과를 나온 이순철이고 보면 김기성이 같은 날건달에게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말단말직, 실속 없는 명예직이라도 하나 얻어 걸치고 보면 세력의판도는 여지없이 뒤집히는 현실. 가진 자 못 가진 자 할 것 없이, 눈먼 구렁이처럼 얽히어 친일에 열을 올리는 군상들. - P13

"일사불란이 천치들의 행진이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그들은 더욱더 무섭다. 아프리카에서 개미의 대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남은 것이 없다 하는데 마치 그 개미떼처럼 일본인들은 일치단결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우리들 식자 중에서도 그들단결을 일본인의 장점으로 꼽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 일치단결이 파괴로 돌진할 때 가공할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군. 파괴란 새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휴머니즘을 결여한 새 질서란 허구이며 허구에서 시작되는파괴란, 남뿐만 아니라 자신도 무너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지. 오늘의 일본을 보면 명백해. 그리고 일본이 패망하는 날 그것은 증명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혁명은 없을거야. 자멸할지언정 그들은 허구를 존재케 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잡동사니로 호도해왔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움이 없다는 얘기고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 그들은 뻔뻔하게도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요 문화의 어머니라 했다."
평소 환국이답지 않게 그의 어투는 매우 신랄했다.
"나는 그 의견에 반대다. 민족성에다가 못 박는 것은 반대다.
체제에 따라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보편성 아닌가."
"민족성에 못을 박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역사를 말한거야. 인간의 보편성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일본의 역사는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 P21

할 것이 변해왔다. 그렇게 본다. 나는 민족성에 근거를 두고말한 것은 아니다. 길들여진 상태를 말했을 뿐, 그러니까 그들스스로도 피해자인 셈이지."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고 변해서는 안 될 것이 변했다.
그게 뭔데?"
"우라시마 타로의 다마테바코처럼 속이 텅텅 비어 있는 신도(神道), 혹은 신국사상과 현신이라 부제가 붙은 만세일계世一系)는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고 변해서는 안 되는 진리와진실, 또는 사실은 그들 형편 따라 변화무상이지. 결국 그것들은 일맥(一脈)으로써 변하건 변치 않는 것이건 허구다 그 얘기야." - P22

"현실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또 추상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 비하여 물질이 가시적이며 확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시 밖을 생각하면, 확실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것은 하나의 점(點)에 불과해. 시간 역시 정체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의 시간들은 한순간에 불과한 거고, 한 점에다가 한순간을 붙잡아서 아무리 견고한 성을 쌓아도 그게 뭐겠어? 가시 밖을, 불확실한 것을 탐구하고 과거와 미래가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만이 창조는 가능해. 창조는 생명이야. 창조 없는 곳에선 파괴뿐이고 사람이 짐승으로 전락하지."
"예술가인 자네가 지향하는 길과 다른 대부분 사람들이 지향하는 길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야.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현실적 동물이며 잘산다는 것의 기준을 물질의 다과寡)에 두고 있지. 그건 생존본능으로 당연한 거고, 올바르게 소신껏, 큰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러한 삶을 잘사는 것으로인식하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라 할 수 있다. 그건 엄연한 현실이구, 정치란 예외 없이 그런 대다수를 상대로 하는 체제 아니겠어? 얼마나 그 대다수를 말아먹느냐, 얼마나 그 대다수의 허리를 펴게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 P23

울분과 초조, 오뇌와 권태, 사그라지지 않는 야망을 안고 뒹구는 가정생활은 황폐 그것이었고 살림에 무관심한 나태한 생활은 그를 겉늙게 했다. 무골호인이지만 무미건조한 남편에,
슬하에는 자식도 없었다. 욕구불만에서 정신없이 먹어대는 음식, 소화불량은 반복이 되고 비대해질밖에 없었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배설자를 만났고 어울리면서 홍성숙은 별수 없이 유한마담으로 전락해갔다. 배설자는 그런 홍성숙을 앞세워 그 방면의 사회, 부유하면서 부패의 냄새가 감도는 소위 상류층에 교묘히 잠입해갔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배설자는 애국지사, 독립운동가의 딸이라는 탈을 더이상 쓸 필 - P37

요가 없었다. 그의 부친이 다롄에 살았던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해에 있었던 것도, 그러나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일본의 밀정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배설자는 조선을 통치하는 당국과 맥이 통하는 여자, 권력을 배경으로 한 무용가 배설자로서그는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가 경찰의 끄나풀인 것은 사실이었다. 경찰의 간부이자 죽은 부친과도 지면이던 곤도 게이지[近藤]의 정부인 것도 사실이었고, 언젠가 배설자는무심한 듯 꾸미면서 홍성숙에게 흘린 말이 있었다. 조선의 예술가들을 통합하는 단체를 관(官)의 주도하에 결성할 것을 추진중이라는 말이었다. 홍성숙을 사로잡는데 그 이상의 달콤한미끼는 없었다. 관의 산하단체, 그 후원으로 재기하고 싶은 욕망, 헛된 꿈을 꾸게 되었으며 통합예술단체에서 감투라도 하나얻었으면, 홍성숙은 멋지게 자신을 추방하고 소외한 무리에게일격을 가하고 싶었다. 아니 최소한 예술가로서 낙오되지 않고그 명맥이라도 잇고 싶었다. 이리하여 배설자와 홍성숙의 공생관계는 굳어졌던 것이다. 공생관계라기보다 실은 배설자라는매발톱에 홍성숙은 꼼짝없이 채인 것이다. - P38

기왕지사 이렇게 된 바에야 일본과 서로 손잡고 상부상조하는 길밖에 더 있겠습니까? 조선 민족이 다 죽을 수는 없지요. 제가 듣기로는부인께서 일본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이며 일본에 대한 이해도깊다 하더군요. 다만 바깥분이 그래서 심려가 큰 줄 압니다만그것도 부인께서 하시기 나름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런 일에 대한 복안이라도 있어서 찾아왔단 말입니까?"
서희는 짐짓 관심이 있다는 듯 물었다.
"네?"
"어리둥절하다가 당황한다. 어디서 얘기가 그리로 빠졌을까 - P32

생각하듯 그러나 강하게 부정하는 몸짓으로,
"아, 아닙니다. 이번에 찾아뵌 것은 그런 일이 아니며."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필요하다면 복안이야 왜 없겠습니까."
재빨리 배설자가 받았다. 그의 말에는 왠지 모르지만 소름끼치는 것이 있었다.
"네……………"
애매하게 대답하고 서희는 배설자를 한동안 쳐다본다. 백해무익의 인물이라는 것은 초장부터 간파하고 있었지만 배설자의 마지막 말에서 서희는 결코 소홀히 넘겨서는 안 될 여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횡설수설,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홍성숙에게 들러붙은 찰거머리 같았고 검정 옷에 핏빛이 스쳐가는 것을 느낀다.
레이
‘섣불리 상대했다가는 큰일 날 여자다. 이런 종류의 여자는흔치 않아.‘ - P43

"우리들의 천국은 바로 눈앞에, 손이 닿는 곳에 있고 예수쟁이들 천국은 알지 못할 먼 미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게 천국 아니겠어요?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예술 긴 거야 뭐우리가 죽은 뒤 일이니까 상관할 바 없고, 인생은 짧아요. 다만짧을 뿐, 욕망을 위해 사는 것만도 너무나 모자라. 안 그래요?
닥터 허."
"그렇군요."
"극기하고 인생의 가치를 찾고 도덕을 준수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따윈 모두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지. 안 그래요? 닥터허."
"허무주의군요."
"천만에, 나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인생을 사랑하는 쾌락주의예요. 술 몇 잔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내 옆의 이 여인은 쾌락주의도 도덕주의도 아닌 오락가락, 명성만 잡으려고 기를 쓰다가 이 지경으로 무너진 거 아니겠어요?"
"너무 심한 말씀 아닙니까?"
"심한 말? 언제나 사실을 말하면 심하다고들 하지. 인간이란뭣이든 걸치고 가리기를 좋아하는 동물인가 봐요." - P56

해체를 결심한 것은 길상이었다. 길상은 진작부터 독립자금강탈을 실패로 보고 있었다. 자금이 국외로 나가서 그쪽의 도움이 된 것은 다행이나 그것은 거사의 큰 비중이 되질 않았다.
체념하고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친일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경 - P100

향에 대한 일깨움과 푸석푸석 속에서만 타고 있는 불길에 기름역할을 하려 했던 의도는 크게 주효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쉽게 가라앉고 말았다. 조직의 응집을 계산에 넣었는데 그것도오히려 반전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도화선이 되려면 희생자가 났어야 했다. 반대로 조직을 응집하려 했으면 혐의 밖에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혐의를 받았고 송관수를 위시하여적잖은 일꾼들이 만주로 탈출했으며 조직은 약화되었다. 게다가 길상이 자신 꽁꽁 묶이어 파상적으로 지속하려던 일은 정지상태로 빠져버린 것이다. 무위도식의 세월은 적잖게 그의 신념을 무너뜨렸고 왜소한 상태로 퇴화한 느낌을 주었다. 해체하리라 마음먹은 것은 정세가 날로 각박해졌고 자신이 수감될 것을예감했기 때문이며 무의미한 침체상태에서 조직의 멍에를 벗겨주는 편이 나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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