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아래, 얼음 갈라지는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서늘하고 푸른 하늘 아래,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군상들, 누더기 같은가 하면 곤충 같기도 한군상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혹은 같이하며 가고 있었다.
낡은 상자 같은 트럭이 달리고 짐 실은 우마차도 지나가고 있 - P256

었다. 여인을 신이 만든 꽃이라 했던가, 자연의 열매라 했던가.
꽃으로도 열매로도 볼 수 없는 몸뻬 차림의 우중충한 모습들,
남자들은 한결같이 카키색, 사람들에게는 계절이 없었다. 배급소에서 식량을 달아주고 배급표를 챙기는 그 현실만이 있었을뿐이다. - P257

욕망과 희생의 싸움이었다. 사람 속으로 뛰어들어 자기도 한몫을 하겠다는 충동과 세상을 바라보며국외자로서 흐르는 대로 흘러가겠다는 에고이즘과의 싸움이었다. 집념과 포기의 싸움이었다. 도덕과 반도덕, 그에게는 윤국이 거대한 성(城)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더욱더 자신이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는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은 믿지 못할 자기 성격적 결함이었다. 제2의 혜숙을 또 만들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그의 전진에 제동을 걸었다. 영광은 양현을 사랑했으며이 세상에 나와서, 가장 강렬한 집념이었다. - P266

팽팽하게 당겨진, 결코 누그러질 수 없는 긴장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양현은 계속해서 울었다. 명희는 저도 모르게뜨개질하다 만 것을 집어들었다.
‘언제나 그렇게 엇갈려. 왜 그렇지?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살아가고,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 양현아, 실은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 P271

영미와 전쟁이 시작되고 햇수로만 일 년 팔 개월이 지나간 지금, 확실히 사태는 전과 같지 않았다. 신문지상에서도 금년 들어 일군은 과달카날섬에서 철수를 했고 사월에는 연합함대(聯合艦隊)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山가 비행기 속에서 전사했으며 오월에는 또 아스섬의 일군은 전멸했다는 보도였다. 소위 옥쇄했다는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맹우(友) 독일도 소련의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했으며 북아전선(戰線)의 독일군도 항복했으며 이태리의 무솔리니도 실각, 파시스트당은 해산이 되었다. 일본 - P284

의 패색이 짙은 것은 이제 부인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희망이기도 했지만 조선인에게는 절망이기도 했다. 일본은 결코 그냥 물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옥쇄한다고 떠들지만 저들만 옥쇄할 것인가. 서희는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나가는 어린 처녀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으며 농부며 노동자, 심지어는 도시의 중산층 청년들까지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학생들이 몽땅 전선으로 내어몰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 조선에도 징병제가 실시되어, 그것에 대비하여 중학교에서는 그토록 치열하게 군사훈련을 해오지 않았던가. 식량배급의 통장은 어디든 달아날 수없는 조선 청년들 소녀들, 그리고 중장년들의 무겁고도 무거운멍에였다. - P285

"세상이 그렇게 돼버린 걸 어떻게 해요? 할 수 없지."
"그렇다면 돈 쓰고 공을 들여서, 일본까지 뭘 하러 공부하러가느냐 말이야."
"처음에야 뭐 순사 될려고 그랬겠어요? 전문부 나와가지고사실 조선사람들 취직자리가 어디 쉬워요? 놀고먹기 십상이지.
소사 급사 서기 순사가 고작 아니에요? 고등문관에나 패스하면 모를까, 그건 하늘의별따기, 선생이나 의사가 최고급이지뭐. 하니 어떡하겠어요? 놀고먹다가 징용에라도 잡혀가면 그것으로 그만이에요. 살아서 돌아오기 어렵다 하더구먼요. 차라리군대 가는 편이 낫다 그러고들 말하대요."
"하긴 그래. 징용 안 가려고 성한 다리를 뿌러트리는 사람도있다던가." - P289

불안한 사랑,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랑, 그러나 양현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그 불안한 사랑에 매달려 있는가를 깨닫는다. 외부의 장애보다 영광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이 그 얼마나 큰 것인가를 양현은 새삼스럽게 통감한다. 그것은 그의 처절한 외로움이며 그 외로움을 타고 흐르려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양현은 그를 꽉 붙잡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의 외로움을 녹여주리라! 마치 영광이 옆에 있는 것처럼 그러는가 하면 등을 돌리는 뒷모습에 매달리는 광경을 보기도 하고 영원히자기 앞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그 돈암동 거리를 눈앞에떠올려보기도 한다. - P302

윤국은차안에 서서 피안의 양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강을 결코 건너지 못하리라는 것을, 피안에 닿지 못하리라는것을 윤국은 깊이 깨닫는다. 양현은 양현의 길을 가고 자신은자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 P325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자신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는 있다. 죽을지도 모르고 체포될지도 모른다. 언제 딛고 있는땅이 함몰할지 모른다. 그것은 현재 조선인이 처해 있는 입지이기도 했다. 마음으로나마 풀어주자. 양현을 그 인습에서나마풀어주자, 편견에서도 풀어주고 세속적 기준에서도 풀어주자.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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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 - 게르망트 쪽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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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살롱 사이에는 현실이 끝나는 분리선이 놓여 있었다. 게르망트댁에서의 저녁 식사는 마치 오랫동안 욕망해 오던 여행을, 머릿속의 욕망을 내 눈앞에 지나가게 하여 꿈과 친해지는 여행을 시도하는 것과도 같았다. 집주인들이 누군가를 초대하여 "오세요, ‘완전히‘ 우리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친구들이 자기들 사이에 섞인 그를 보며 느낄 두려움을 그 배척받은 자의 탓으로 돌리는 척하면서, 지금까지 그들의 내밀한 친구들에게만 부여해 오던 특권을 본의 아니게 비사교적이고 조금은 호감을 사고 있는 그 따돌림 받는 자에게도 부여하여, 그를 남들이 부러워하는 특권적인 사람으로 변모시키려고 애쓰는 그런 저녁식사 중의 하나라고 나는 믿었을지도 모른다. - P109

'게르망트 쪽'(5,6권)을 읽고 나선 몸도 마음도 어지러웠다. 차라리 찰스 디킨스의 작품처럼 '빈민가와 뒷골목 이야기가 더 나았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음울하고 비참해서 읽기 힘들었는데 말이지).

화자가 청년이 된 뒤 사교계 모임에 하나 둘 참여하게 되고 나서 이런 모임이 이야기의 배경으로 줄곧 등장하는데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현대에도 이런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의 모임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고 이런 세계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문제는 이 배경이 19세기 유럽 프랑스라는 사실! 나는 대략의 프랑스 역사를 알 뿐인데 이 책은 당시의 문학과 예술 전반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도통 모르는 대화가 이어지니 지루할 수밖에(하필 이 부분이 제일 길다). 관찰자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재미가 있을 터인데 말이다. 아무튼 그만큼 힘들게 읽었다는 넋두리였다.

5권 마지막에 할머니가 발작을 일으켰다. 병명은 요독증(신장 기능이 떨어져 소변 배출이 잘 안 되고 체내에 노폐물이 축적되어 각종 합병증을 일으킨다).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의 통증은 더해 가고 본인의 아픔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
나중에 할머니는 눈이 안 보였다가 귀가 안 들리고 언어장애까지 오게 되는데 그 때 가서는 자기가 하는 말을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며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을 지경이 된다. 프랑수아즈는 신문 광고를 보고 전문의를 찾아 데려오는데 할머니는 진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끝내 얼마 후 할머니는 가족들 곁을 떠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병증과 고통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죽더라도 비참한 모습을 보이며 죽고 싶진 않았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를 것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함께 해서 아픔이 덜어질 수만이라도 있다면 하고 생각할 것이다.

베르고트 역시 몸이 아팠고 누군가는 그가 단백뇨에 걸렸다고도 하고 종양에 걸렸다고도 했다. 점점 그의 몸은 쇠약해졌으나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위상이 커지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그 무렵 화자에게 관심이 가는 신인 작가가 생겼는데. 이때부터 그는 베르고트를 그다지 찬미하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오랜동안 우상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경험은 누구나 할 것 같다. 그 우상에게는 어쩌면 잔인한 일일 수도 있으나 이것이 또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세월에 따른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유행은 바뀌고 세상에 사람은 많으니까.

10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던 적이 있다. 그러다 회복이 어느 정도 되려니까 몇 년 전 또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항암 치료-재활하는 기간이 이어졌다. 그 때는 무신론자인 나도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사셨던 분들이어서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다행히 두 분 다 회복이 되셨다. 물론 계속 관리해야 하지만). 두 분 다 이후 독실한 교인이 되시기도 했는데 사람이 크게 앓고 나면 신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인 중에서도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있으시고 췌장암으로 사망하신 분도 있다.
이런 각종 일을 겪다 보니 사람이 아픈 것이 쉬운 것이구나 나만 피해갈 순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죽음의 시간이 불확실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뭔가 막연하고도 먼 공간에 위치한 것처럼 상상하는 탓에, 그 시간이 이미 시작된 날과 관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ㅡ 혹은 우릴 먼저 부분적으로 차지하고 나서 그 후엔 결코 손에서 놓아주지 않는―이렇게 확실한 오후, 모든 시간표가 미리 정해진 오후에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달 동안 필요한 신선한 공기 전부를 마시려고 산책하기를 열망하면서도, 입고 나갈 외투나 우리가 부를 마부를 고르면서는 망설이고, 그런 후 합승 마차에 오르면 하루가 당신 앞에 온전히 놓인 듯 보이지만, 여자 친구를 맞이하려고 때맞춰 집에 돌아가기를 바라기에 하루가 짧다고 느끼고 다음 날에도 날씨가 좋기를 바라곤 한다. 그리하여 다른 쪽에서 당신을 향해 걸어오던 죽음이,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 바로 그날 몇 분 후 마차가 거의 샹젤리제에 도착할 바로 그 순간을 선택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어쩌면 보통 때는 죽음 특유의 기이함 때문에 그 공포에 시달리던 이들은 이런 종류의 죽음에서 - 처음으로 맞이하는 죽음과의 접촉에서 - 그것이 우리가 아는 일상의 친숙한 모습을 띤다는 사실에 오히려 어떤 안도감 같은 걸 느낄지도 모른다. 죽음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찾아오기도 하고, 건강한 사람의 외출길에 찾아오기도 한다. - P11~12

생루 어머니는 생루와 애인(라셸)을 헤어지게 했고 생루로 하여금 라셸을 잊게 만들려고 모로코로 보내버린다. 생루는 어느 날 짧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프랑스에 도착할 거라는 소식을 화자에게 전한다.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만나야 하는데 자기 대신 파리에서 그를 만나 달라 부탁한 것이다(이것은 나를 잡아두기 위한 생루의 작전이었다. 생루는 여전히 라셸과 나의 사이를 의심하며 질투했고 그는 라셸을 여전히 자신에게서 떼어놓지 못했다). 

우리의 말과 생각을 닮지 않게 하는 것은 욕망 뿐이다. 시간은 촉박한데, 우리는 마음을 사로잡는 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벌고 싶어 한다. 입 밖에 내는 말에 이미 어떤 몸짓이 따를 때도 ㅡ 즉각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또 그 몸짓이 초래할 반응에 대해 느끼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ㅡ 우리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어떤 허락도 구하는 일 없이, 마치 그 몸짓을 하지 않은 척 가장하면서 얘기를 계속한다. - P74

알베르틴이 화자의 집에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더는 예전처럼 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는다 느끼면서도 신체적 욕구를 넘기지 못한다. 화자는 이제 알베르틴이 자신에게 여자가 아님을 깨닫는데 그가 더는 붙잡아두기 어려운 여자가 아니며 금방 소유할 수 있는 여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여자를 소유한다는 고정 관념은 벗어던지시지!)
화자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 육체적 욕망을 느꼈고 불로뉴 숲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으나 거절의 편지를 보내며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는 절망과 분노를 느끼고 칩거하는 상황에서 생루가 자신을 찾아온다.
생루는 화자의 애정에 대한 갈증(?)을 조금은 이해했을 것 같다. 그는 부모님의 반대로 라셸과 억지로 떨어져야 했으니 말이다. 어른들이 원하는 스타일과 자식이 원하는 스타일은 왜 이다지도 다를까.

게르망트 부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나는 마치 파브리스가 자신의 고모 집에 도착하면서 느꼈던 그 보랏빛 아름다움과, 모스카 백작에게 소개되었을 때의 그 기적 같은 일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가진 최상의 것을 내게 음미하게 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금요일에 혹시 시간 되세요? 아주 작은 모임이에요. 마음에 드실 거예요. 파름 대공 부인께서 오실 텐데 아주 매력적인분이랍니다. 기분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아니라면 당신을 초대하지도 않을 테지만요." - P110

게르망트 부인 댁에 초대에 응한 화자는 그 곳에서 많은 이들과 교류를 갖는다. 대부분은 귀족 가문들이 많은데 자신의 가문의 이력을 드러냄으로써 '나 이런 권위(뼈대) 있는 집안이야!' 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참석자들 대부분 자신의 가문 이력을 자랑하고(저 먼 곳까지 거슬러 가는) 거기에 물론 문학과 예술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급에 맞지 않는다 싶으면 설왕설래 논변이 이어진다.
유독 많이 거론되는 두 사람이 톨스토이와 바그너다. 바그너는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던 인물인 것 같다. 나는 그의 개인사는 별로지만 그가 관악기를 잘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톨스토이는 아직은 제대로 된 작품을 읽어보지를 못해서 언급하기가 좀 그렇다. '부활'만큼은 읽어보고 싶다.

게르망트 사람에게 있어(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적인 존재란 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악의적인 말을 할 줄 알고 논쟁에서 이긴다는 걸, 또 그림이나 음악과 건축에 관해 상대방에게 맞서고 영어를 말할 줄 안다는 걸 뜻했다. - P217
"제가 맹세해요.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겨요. 그런데 실은 가진 의견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의 의견을 묻는 데 인생을 보내고, 다음에는 그 의견을 우리에게 다시 전해 주는 데 허비하죠. 그들은 기어코 이건 좋은 연주였다, 저건 좋지 않은 연주였다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테오도시우스의 동생이(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요.) 한 오케스트라의 모티프에 대해 그게 무언지 제게 물었죠. 그래서 전 대답했어요."라고 공작부인은 반짝이는 눈과 아름다운 붉은 입술로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아, 물론 그건 오케스트라의 모티프라고 불리는 거죠.‘라고요. 사실 그는 내 말에 만족하지 않았나 봐요. " - P468

이런 사교 모임이 화자에게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같으면 기가 빨렸을 것 같은데... 그는 몇 차례나 기회를 살피다 막판에 빠져나온다. 노르푸아 남작이 찾는다는 소식에 갔으나 '내 마음도 몰라주고 서운했어!'를 표현하는 듯 '내 말대로 따르지 않았던 너를 버릴 거야!' 계속 여지를 남기다가 결국 꼬리를 자르지 않는 모습이 웃펐다. 좀 애처롭기도 했고. 결국 계속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무렵 화자는 게르망트 대공 부인의 초대를 받는다. 게르망트 대공 부인은 왕족에서 기원하는 배타성과 엄격함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왕족과 공작들만을 우선시하는 그런 사람이 자신을 초대하다니 화자는 도무지 믿지 못한다. 사교계 인사들은 대공 부부가 더 현대적이고 똑똑한 데다가 지적이라며 말들을 내놓으니 초대장의 주인을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르망트씨 부부가 파리에 왔다는 소식에 화자는 일부러 찾아간다. 게르망트 사촌이 오늘 내일 하여 들여다보려고 한다는 거였다. 나는 대공 부인의 초대장의 진위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있었다. 스완은 건강이 좋지가 않았다. 의사가 몇 달 살지 못할 거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뒷 시리즈는 스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난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숨겨진 의미가 많다고도 하는데 이야기 자체도 이해 못하면서 무슨 숨은 의미까지를 해석하겠는가. 내겐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물의 실재를 추구한다. 그러나 실재는 지속적으로 우리 곁을 빠져나가고, 온갖 시도도 헛되이 우리는 허무를 발견하고, 그러나 그 자리에 뭔가 단단한 것이 남아 있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던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고 인식하면서, 설령 인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는 그것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믿음이 사라지고 나면 옷이 의도적인 환상이라는 수단에 의해 그 믿음을 대신한다. - P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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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6-30 0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게르망트가에서의 오랜 대화는 저도 많이 지루했어요. 부르주아계급의 사람들이 끝까지 귀족 계급에 들어가려는 것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요.
그 당시는 지금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 없던 시절이라 살롱이 출세를 위한 정보를 얻고 세상의 소식을 듣기 좋았던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5권 마지막과 6권 초반, 할머니의 고통을 서술한 문장들이 저는 넘 맘에 와 닿았어요.

그나저나 혼자서 잃.시.찾 읽어 나가시는 모습에 감탄, 감동 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06-30 09:02   좋아요 1 | URL
저도요. 페넬로페님 마음과 딱 같아요. 부르주아 계급이 굳이 귀족 계급을 열망하며 그들에 합류하려는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네요. 당시 중상류층은 그만큼 폐쇄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사교 모임에 굳이 끼여들면서까지 만남을 가지려 노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할머니에 대한 서술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뒷 시리즈에서도 많은 죽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전조로도 읽히는 듯 합니다.
긴 시리즈라서 단 번에 읽어야 하는데 역시 쉽지 않은 책이라 한달에 한 권을 겨우 읽어내고 있네요. 페넬로페님이 꾸준히 응원해주셔서 힘을 내봅니다. 감사합니다.

청아 2023-06-29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렵고 알아야할 배경 지식도 많아보이지만 그럼에도 또 그래서 재독을 부르는 책이라는건 분명하네요. 다른 분들 리뷰만 봐도요ㅎㅎ 화가님 완독향해 가시는 길 응원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30 09: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려워서 재독을 할 수밖에 없는 책인 것 같아요. 속에 담긴 의미까지 알려면 몇 번은 읽어야 가능한건지...ㅎㅎ 미미님 응원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3-06-30 0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왜이렇게 읽고 싶죠? ㅋㅋㅋ 부르주아들의 사교모임 같은 건 저랑도 거리가 멀고 그래서 아마 읽다가 어떤 지점에서 분노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되게 읽고 싶네요. 늙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고 또 한편에선 사랑하는 혹은 사랑이 식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 도전이 쉽진 않겠지만 도전해보고 싶긴 하네요.

거리의화가 님, 화이팅!!

거리의화가 2023-06-30 09: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다락방님은 왠지 저보다는 덜 지루하게 읽으실 것 같아요. 사랑과 죽음이라는 테마가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프루스트만의 세밀한 묘사로 표현되어서 이 책을 읽어나가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락방님도 이 책을 도전하시게 되실 듯!ㅎㅎ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3-06-30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해놓고 혼자 꾸준히 읽어가기 쉽지 않은데 대단하십니다.
살롱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세세하고 길게 쓸 일인가 싶었습니다.
예민함이 그의 병인듯!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6-30 09:08   좋아요 1 | URL
올해부터 읽기 시작해서 한 달에 한 권 읽기를 놓치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입니다. 세밀한 묘사가 어쩔 때는 지치기도 하는데 이것이 또 프루스트 글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고노 후쓰모노, 한갸쿠샤(이 불충자, 반역자)!",
뺨을 연달아 갈긴다. 그러더니 선자를 벽면 쪽으로 끌고 가서 벽에다 머리를 짓찧기 시작했다. 쓰러지니까 발로 차고 짓밟고 이시다는 완전히 짐승이 되었으며 들린 사람 같았다. 학생들 속에서 고함과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일본학생들만은 차갑게 구타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서운 폭행이다. 선자의비명과 이시다의 으르렁거리는, 포효하듯 외쳐대는 소리, 무시무시한 폭행이다.
바로 이것이, 이시다의 광란하는 모습이야말로 일본인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 P198

중학생, 그들은 과연 학생인가? 카키색 교복에 전투모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고 각반을 다리에 감고 그들은 등교한다. 운동장에서는 연일 목(木)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그 - P221

지난달 그러니까 팔월에는 드디어 조선에도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조선인에게는 병역을 실시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무장시켜선 아니 된다 하고 명치천황(明治天皇)이 유언을다던가 어쨌다던가. 사실이 그렇다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유언을 무시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겠는가. 아무튼 앞으로 중학교 군사훈련에 박차를 가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공부 안 하기로는 여학교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전보다 교련시간이 많아졌고 목검(木劍)이다, 나기나타다 하며 무술시간은 체육이나 무용시간을 완전히 점령했고 모내기에서 보리 베기, 벼 베기에 동원됐으며 폐품수집에서 국채 팔러 다니기, 센닌바리 만들어주기, 공장에서 미완성으로 나온 군테* 마무리 작업, 게다가 방학의 십일 간을 반납하고 교사부지 고르는 데 동원된 근로봉사,
그런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고통스러운 것이 방공연습이었다. - P222

빈 바케쓰는 다른 한 줄을 통하여 강가로 돌아오고, 들것에 학생을 싣고 나르는가 하면 구급가방을 멘 아이가뛰어간다. 사장에는 헤일 수 없이 많은 인원이 우왕좌왕, 호각소리는 날카롭고 요란했으나 실상 교내에서 한 학교 단위로 연습을 할 때보다 훨씬 느슨했다. 선생들도 워낙 학생 수가 많은지라 통제가 잘 안 되는 눈치였고 학생들 정신 자체가 벌써 장난기에다가 좀체 없었던 남녀학생 혼성의 행동인 만큼 완연하게 들떠 있었다. 수를 믿고 농땡이를 부리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에게는 이런 행사 자체가 우스웠던것이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데 즈킨이다 고테다 하는 것이 재봉시간에 만든 것으로 홑겹 검은 천인데 그것으로 머리를보호하고 손등을 보호하겠느냐는 것이었고 갈고리 총채 몇 자루 들고 흔든다고 불이 꺼지겠느냐는 것이었다. 강물은 이 만화와도 같은 행사를 무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으며 하늘은 자꾸만 내려앉았고 강가의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 따라 드러눕곤했다. - P235

그 무용 선생은 성격이 음산했고 거칠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비꼬여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그의 무용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고들 했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 뒤뜰에서 조선말을 쓰고 있던 여학생 두 명을적발하여 교무실에 불러다가 꿇어앉히는 벌을 준 때문이었다.
그 일은 금방 교내에 퍼졌고 학생들은 흥분하고 분개했다. 같은 조선인이면서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조선말을 쓰다가 선생에게 들키면 어떤 형식으로든 벌은 받게 돼있었다. 그러나 벌을 준 선생이 조선인이었다는 것에서 학생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못 들은 척, 얼마든지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던 일인데 일본인과 다름없이 그것을 집어내어 벌을 주었다는 것이 학생들을 심히 자극했던 것이다. - P236

본시 ES여학교는 미션스쿨이었으나 조선인이 인수하여 조선인 교사들로 구성이 된 사립학교로서 배일감정이 농후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오년전에 당국에서는 사립을 폐지하고 내선공학(內鮮共學)이라는 기치를 내어걸면서 공립으로 학급 증설하여 새로 출발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교장 이하 모든 선생들은 축출되었고 완벽하게 일본인 손으로 넘어갔다. 어쨌거나 그는 그렇고,
파문을 일으킨 무용 선생 처사에 대해서 학생들이 교묘하게 은밀하게 배척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절 안 하기, 무용시간에 - P237

는 이 수 저 수 써가며 골탕먹이기, 무리지어 가다가 무용 선생을 만나게 되면 일제히 노려보기, 지나가다 뒷모습을 향하여 야유하기, 그런 일들은 누가 지휘한 것도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조선인 학생들이 단결하여 행해진 일이었다. 한두 명의 학생도 아니었고 일본인을 제외한 전교생이 그러는 데는 무용 선생도 속수무책,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 선생들이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지식인 특유의 냉담과 방관으로시종했고 더러는 잔인한 쾌감을 맛보며 그를 바라보기도 했다.
남자 선생들 중에도 조선인이 한 사람 있었다. 나이 지긋한 실업(業) 선생으로 매우 심지가 굳은 사람이어서 무용 선생은 그동족으로부터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학교를 떠났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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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은 몇 세기가 지나도 그 의미가 변하지 않는 데 반해, 이름은몇 해도 안 되는 기간에 의미가 변한다. 우리의 기억과 마음은 누군가에게 충실하게 머무를 정도로 그렇게 크지 않다. 우리의 현재 상념에는 산 사람 옆에 망자를 간직할 자리가 충분치 않다. - P374

우리는 두 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몰두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우리가 받은 심오한 인상으로부터 오 - P402

는 힘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다. 첫 번째 힘을동반하는 것은 기쁨으로, 창조자의 삶에서 발산된다. 또 다른힘은 외부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우리 안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즐거움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위적인 도취감을 느끼고 즐거움을덧붙이지만, 이런 도취감은 금방 권태나 서글픔으로 바뀌곤해서 그토록 많은 사교계 인사들의 얼굴이 울적해 보이며, 또그토록 불안한 상태가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 P403

한 인물을 인위적으로 확대할 때는 다양한 주관적 관점이 작용하는 법이며, 그럼에도 이 모든존재들에게는 어떤 객관적 현실이 존재하며,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그래도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P439

상상력이 함께 하지 않기에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며 권태를 느끼고, 상상력이 함께하기에 책을 읽으며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문제의인간은 항상 동일하다. 퐁파두르 부인이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까닭에 우리는 부인을 알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녀 옆에서 느끼는 권태감은 현대의 예술 후원자들 옆에서, 너무 평범한 탓에 감히 그들 곁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조차 하지못하는, 그런 후원자들 옆에서 느끼는 바로 그 감정이다. 하지만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이 다 같은 친구라고 - P439

생각하지만, 우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차이를 드러내며, 그러나 이 차이는 결국은 상쇄되기 마련이다. - P440

나는 스완과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나서어쩌다 게르망트 사람들이 전부 드레퓌스 반대파가 되었는지물었다. "우선 그 사람들 모두가 사실은 유대인 반대파기 때문이라네." 경험상 그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잘 아는 스완이, 하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견해를 공유하지 않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유를 대기보다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선입관이나 편견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가정하는 편을 더 좋아했다. 게다가 너무 일찍 삶의 끝에이른 그는 괴롭힘에 시달리느라 지쳐 버린 짐승마냥, 이런 박해를 증오하고 조상들의 종교적인 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게르망트 대공에 대해서는, 사실 유대인 반대파라는 말을들었습니다만." 하고 나는 말했다. - P458

드레퓌스 지지가 스완을 지극히 순진한 사람으로 만들어그의 사물을 보는 방식에, 지난날 오데트와 결혼했을 때보다더 현저하게 충동적이고 일탈적인 양상을 부여했다. 이런 최근의 계급 이탈은 실은 자기 계급으로의 복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에게는 명예로운 일이었으며, 그리하여 조상들이걸어온 길, 귀족들과의 교제로 이탈했던 길로 그를 다시 돌려보냈다. 스완은 그토록 명철한 순간에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자질 덕분에 사교계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기회가 있는 그런 순간에도, 조금은 희극적이고 무분별한 행동을 했다. 그는 자신의 찬미와 경멸의 온갖 기준을 드레퓌스주의라는 새로운 기준에 맞춰 재정립했다. - P460

"제가 맹세해요. 그들은 언제나모든 것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는 못 배겨요. 그런데실은 가진 의견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의 의견을 묻는 데 인생을 보내고, 다음에는 그 의견을 우리에게 다시 전해 주는 데 허비하죠. 그들은 기어코 이건 좋은연주였다, 저건 좋지 않은 연주였다라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니까요.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테오도시우스의 동생이(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네요.) 한 오케스트라의 모티프에 대해그게 무언지 제게 물었죠. 그래서 전 대답했어요."라고 공작부인은 반짝이는 눈과 아름다운 붉은 입술로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아, 물론 그건 오케스트라의 모티프라고 불리는 거죠.‘라고요. 사실 그는 내 말에 만족하지 않았나 봐요. "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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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도 아주 구식이어서 그런지 저는 옛 작품이 그렇게 싫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말을 안 믿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녁에 제 아내가 피아노 앞에 앉으면 오베르나 부아엘디외, 심지어는 베토벤의 옛 곡을 청하는 일이 가끔 있죠. 바로제가 좋아하는 곡들이니까요. 하지만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 바로 잠이 오더군요."
"그 점은 당신이 틀렸어요."라고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바그너 음악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는 천재예요. 「로엔그린」은 걸작이고, 「트리스탄」에도 여기저기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실 잣는 소녀들의 합창은 일품이죠." - P299

나는 그녀의 눈과 무겁게 질질 끌면서 씁쓸한 맛을 풍기는 목소리를아보기 시작했다. 이 눈과 이 목소리에서 나는 콩브레 자연의많은 걸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목소리가 때때로 거친 대지를나타내기까지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했다. 거기에는 게르망트가문의 한 분파로서 지방에 더 오래 남아 보다 대담하고 야생적이며 도발적인 가문의 지방색 짙은 근원이 있었으며, 품위란 것이 입술 끝으로 말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님을 잘 아는 진짜 품위 있는 사람들과 지적인 사람들의 습관, 그리고 또한 부르주아들보다 그들 영지의 농민들과 더 가깝게 지내는 귀족들의 습관이 있었다. 이 모든 특징들은 게르망트부인의 여왕과 같은 위치 덕분에 더 쉽게 전시되었고, 감추어진 모든 것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할 수 있었다. - P306

"마마께서는 졸라가 손에 닿는 것은 모두 웅장하게 만든다는 걸 주목하셨겠죠. 바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만 만진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그는 그걸로 뭔가 거대한 걸 만든답니다. 그는 서사시에서 말하는 진흙탕의 시인이에요! 분뇨담의 호메로스예요! 그 사람은 캉브론의 말을 쓰는 데 대문자가 충분치 않나봐요." - P314

"엘스티르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딱히 박식할 필요도 없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채색 스케치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게 정교하게 작업된 것도 아니네. 스완은 뻔뻔스럽게도 우리에게 그가 그린 「아스파라거스 한다발」을 사게 하려고 했네. 그 그림은 여기 우리 집에 며칠 동안 있었네. 그림 속에는 자네가 지금 삼키는 것과 똑같은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밖에 아무것도 없었지. 하지만 나는 엘스티르가 그린 아스파라거스를 삼키길 거절했네. 300프랑이나 요구했거든.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에 300프랑이라니! 맏물이라고 해도 20프랑이면 족한데 말이야!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 값으로는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했네. 이런 것들에 그가 인물을 추가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뭔가 경박하고도 비관적인면을 띠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에는 들지 않더군. 자네처럼 세련된 정신과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이 그런 것들을 좋아하다니 좀 놀랍네." - P318

억양이나 단어 선택에서 사람들은 게르망트 부인의 대화를 이루는바탕이 직접 게르망트 가문에서 나온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공작 부인은 새로운 사상과표현에 젖은 조카 생루와는 전적으로 달랐다. 칸트의 사상과 보들레르에 대한 향수로 혼란스러울 때 앙리 4세 시대의 세련된 프랑스어를 구사하기란 힘든 일이며, 따라서 공작 부인의 언어가 가진 순수함 자체도 실은 어떤 한계의 표시로 그녀에게서 지성과 감성 - P321

은 온갖 새로운 것들에 닫혀 있었다. 이 점에서도 게르망트 부인의 정신은 바로 그것이 배제하고(바로 나 자신의 상념을 구성하는 질료인) 또 그것이 배제함으로써 간직할 수 있었던 것, 즉우리를 진력나게 하는 성찰이나 도덕적인 배려와 신경증으로왜곡되지 않은 그런 유연한 몸의 멋진 활기로 나를 기쁘게 했다. 내 정신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부인의 정신은 해변에서작은 무리의 소녀들이 걷는 모습이 내게 주었던 것과 유사했다. - P322

전에는 그들이 내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삶을 누린다고 상상했으나, 지금은 다른 남자들이나 다른 여자들과 비슷하며 단지 동시대 사람들에 비해 조금 뒤처진, 그러나 불균등하게 뒤처진 모습이었다. 즉 대다수 포부르생제르맹 부부들처럼 아내는 황금시대에 멈출 정도로 현명했지만, 남편은 과거의 척박한 시대로 내려갈 만큼 불운했으며, 다시 말해 아내는 여전히루이 15세 시대에 머무르는 데 반해, 남편은 말만 화려한 루이필리프 시대에 살고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이 다른 여자들과비슷하다는 사실에 나는 처음에는 일종의 환멸 같은 것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 좋은 포도주의 도움을 받아 찬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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