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후쓰모노, 한갸쿠샤(이 불충자, 반역자)!",
뺨을 연달아 갈긴다. 그러더니 선자를 벽면 쪽으로 끌고 가서 벽에다 머리를 짓찧기 시작했다. 쓰러지니까 발로 차고 짓밟고 이시다는 완전히 짐승이 되었으며 들린 사람 같았다. 학생들 속에서 고함과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일본학생들만은 차갑게 구타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서운 폭행이다. 선자의비명과 이시다의 으르렁거리는, 포효하듯 외쳐대는 소리, 무시무시한 폭행이다.
바로 이것이, 이시다의 광란하는 모습이야말로 일본인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 P198

중학생, 그들은 과연 학생인가? 카키색 교복에 전투모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고 각반을 다리에 감고 그들은 등교한다. 운동장에서는 연일 목(木)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그 - P221

지난달 그러니까 팔월에는 드디어 조선에도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조선인에게는 병역을 실시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무장시켜선 아니 된다 하고 명치천황(明治天皇)이 유언을다던가 어쨌다던가. 사실이 그렇다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유언을 무시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겠는가. 아무튼 앞으로 중학교 군사훈련에 박차를 가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공부 안 하기로는 여학교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전보다 교련시간이 많아졌고 목검(木劍)이다, 나기나타다 하며 무술시간은 체육이나 무용시간을 완전히 점령했고 모내기에서 보리 베기, 벼 베기에 동원됐으며 폐품수집에서 국채 팔러 다니기, 센닌바리 만들어주기, 공장에서 미완성으로 나온 군테* 마무리 작업, 게다가 방학의 십일 간을 반납하고 교사부지 고르는 데 동원된 근로봉사,
그런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고통스러운 것이 방공연습이었다. - P222

빈 바케쓰는 다른 한 줄을 통하여 강가로 돌아오고, 들것에 학생을 싣고 나르는가 하면 구급가방을 멘 아이가뛰어간다. 사장에는 헤일 수 없이 많은 인원이 우왕좌왕, 호각소리는 날카롭고 요란했으나 실상 교내에서 한 학교 단위로 연습을 할 때보다 훨씬 느슨했다. 선생들도 워낙 학생 수가 많은지라 통제가 잘 안 되는 눈치였고 학생들 정신 자체가 벌써 장난기에다가 좀체 없었던 남녀학생 혼성의 행동인 만큼 완연하게 들떠 있었다. 수를 믿고 농땡이를 부리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에게는 이런 행사 자체가 우스웠던것이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지는데 즈킨이다 고테다 하는 것이 재봉시간에 만든 것으로 홑겹 검은 천인데 그것으로 머리를보호하고 손등을 보호하겠느냐는 것이었고 갈고리 총채 몇 자루 들고 흔든다고 불이 꺼지겠느냐는 것이었다. 강물은 이 만화와도 같은 행사를 무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으며 하늘은 자꾸만 내려앉았고 강가의 이름 모를 풀들이 바람 따라 드러눕곤했다. - P235

그 무용 선생은 성격이 음산했고 거칠었으며 어딘지 모르게 비꼬여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그의 무용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고들 했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 뒤뜰에서 조선말을 쓰고 있던 여학생 두 명을적발하여 교무실에 불러다가 꿇어앉히는 벌을 준 때문이었다.
그 일은 금방 교내에 퍼졌고 학생들은 흥분하고 분개했다. 같은 조선인이면서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조선말을 쓰다가 선생에게 들키면 어떤 형식으로든 벌은 받게 돼있었다. 그러나 벌을 준 선생이 조선인이었다는 것에서 학생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못 들은 척, 얼마든지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던 일인데 일본인과 다름없이 그것을 집어내어 벌을 주었다는 것이 학생들을 심히 자극했던 것이다. - P236

본시 ES여학교는 미션스쿨이었으나 조선인이 인수하여 조선인 교사들로 구성이 된 사립학교로서 배일감정이 농후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오년전에 당국에서는 사립을 폐지하고 내선공학(內鮮共學)이라는 기치를 내어걸면서 공립으로 학급 증설하여 새로 출발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교장 이하 모든 선생들은 축출되었고 완벽하게 일본인 손으로 넘어갔다. 어쨌거나 그는 그렇고,
파문을 일으킨 무용 선생 처사에 대해서 학생들이 교묘하게 은밀하게 배척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절 안 하기, 무용시간에 - P237

는 이 수 저 수 써가며 골탕먹이기, 무리지어 가다가 무용 선생을 만나게 되면 일제히 노려보기, 지나가다 뒷모습을 향하여 야유하기, 그런 일들은 누가 지휘한 것도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조선인 학생들이 단결하여 행해진 일이었다. 한두 명의 학생도 아니었고 일본인을 제외한 전교생이 그러는 데는 무용 선생도 속수무책,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 선생들이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지식인 특유의 냉담과 방관으로시종했고 더러는 잔인한 쾌감을 맛보며 그를 바라보기도 했다.
남자 선생들 중에도 조선인이 한 사람 있었다. 나이 지긋한 실업(業) 선생으로 매우 심지가 굳은 사람이어서 무용 선생은 그동족으로부터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학교를 떠났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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