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by Moses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노예로 만든 후 집과 사원을 짓게 하면서도 자신들의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인들은 힘을 키워가니 이집트인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파라오도 이스라엘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나머지 새로 태어나는 이스라엘 아기들을 낳는 즉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무렵 미리암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엄마가 동생을 낳자 몰래 그를 숨긴다. 하지만 그는 울음소리가 크고 건장한 사내 아이였고 결국 담요를 덮은 바구니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 보낸다. 아이는 햇빛을 받으며 강을 따라 내려가 파라오의 딸이 밖에 나왔다가 발견하고 궁으로 데려간다. 미리암이 소식을 듣고 공주 앞에 나서서 아이를 보호하고 키우겠다 말하고 허락을 받는다. 미리암은 엄마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아이는 궁전에서 키워지는데 공주가 아이의 이름을 모세로 지어준다.


The Exodus From Egypt

모세는 이집트 궁에서 자랐으나 이스라엘인이었다. 그는 파라오를 보러 가서 자신은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임을 밝히며 떠날 것을 요청했으나 파라오는 노예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한다. 이에 모세는 신이 이집트에 10개의 plague를 보낼 것이라며 예언한다. 신이 이집트인들에게 개구리를 보내 이집트 집이 온통 개구리 천지가 되는데 이집트인들은 개구리를 평소 끔찍하게 생각했으므로 힘들어했다. 마침내 파라오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해도 된다고 허락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짐을 싼 뒤 어느날 밤 떠나지만 파라오는 약속을 어기고 그들의 뒤를 쫓는다. 홍해에 왔을 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이스라엘인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쫓지 못했다. 

The story of the Exodus shows monotheism winning out over polytheism, because the one god of Israel was able to conquer the many gods of Egypt.


* plague: 전염병, 귀찮은/괴로운 일




추신) 이번 챕터 오디오도 꽤나 재밌습니다! 성우분이 여성 목소리도 흉내 잘내시는 듯해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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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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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형태를 갖추고 시간이란 틀에 복종해야 한다. 연속적인 순간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존재는 한 번에 한 모습밖에 보여 주지않으며, 그 모습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사진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간들의 집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에게 그것은 큰 약점이지만, 또한 큰 힘이기도 하다. 존재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며, 또 어느 한순간의 기억은 그 후 일어난 일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기억이 기록한 순간은, 그리고 그 순간과 더불어 드러난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그런 파편화는 다만 죽은 이를 살아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이를 무한대로 증식한다. - P110


과거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 때의 자신과 만나면서 그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일을 경험하곤 한다. 이 문장을 만나면서 지금의 나도 단 한 순간의 나이며 한 모습의 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도 본인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는 못하고 거울에 비친 한 쪽의 얼굴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도 타인도 나의 한 쪽면을 볼 뿐이다. 단 한 순간의 시점들이 점처럼 모여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알베르틴은 떠났지만 나는 한동안 고뇌를 하지 않는 듯 가장하며 생활해간다. 만약 그녀가 떠난 게 아쉬웠다면 직접적 그녀를 만나러 가거나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주변 사람을 대리자로 보내 지속적으로 떠보는 행동을 한다. 나는 과거 질베르트에게도 그랬었다. 좋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모순적 행동을 자기표절까지 해가면서 왜 할까. 최악이라 느껴졌다. 특히나 연인 관계에서 이런 태도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며 후회를 낳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는 습관이 우리 지각의 독창성과 의식마저 제거하고 무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습관을 우리에게 고정된 무시무시한 신(神)으로 간주했고, 그 무의미한 얼굴이 그토록 우리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만일 우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가거나 멀어지기라도 하면 여태껏 거의 알아볼 수 없던 그 신은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고통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죽음만큼이나 잔인한 존재가 된다. - P16~17


알베르틴이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왜 내게 직접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그랬다면 매우 기쁘게 돌아갔을텐데…” 뒷 문장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첫 문장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걸 보고 나는 후회하면서도 그녀에게 거짓 고백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이때야말로 진심을 보이면 될 텐데 왜 또 거짓 답장인 것인지 모르겠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상황을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나. 


한 존재와 우리의 관계는 오로지 우리 사유 속에만 존재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관계는 느슨해지고, 우리는 환상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또 사랑이나 우정, 예의나 체면, 의무감 때문에 타인을 속이면서도 결국은 홀로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안에서만 타자를 인식하며, 그렇지만 그와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하는 존재이다. - P65


나는 지난 9, 10권을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알베르틴에 대한 나의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싶었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상냥함을 불신하는 태도로서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이런 행동은 반복될 것이다. 나의 감정은 그저 알베르틴이라는 얼굴의 이미지와 육체적 욕망 뿐이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알베르틴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가 그녀에 대한 탐색과 욕망을 이어간다. 이 때부터 피로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의 잘못은 다른 이들의 상냥함과 지성에 무관심한 데 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올 때라야 거짓은 분노를, 선의는 항상 우리 마음속에 고마운 마음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육체적 욕망은 우리의 지성에 진정한 가치를, 우리의 정신적 삶에는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는 경이로운 힘을 가지게 된다. 다시는 결코 그 성스러운 존재,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 있으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 P140


설령 내게 가르쳐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해도, 나는 알베르틴이 사귀었거나 사귀었을지도 모르는 여인들, 그녀와 같은 환경이거나 또는 그녀 마음에 들었던 환경의 여인들, 한마디로 알베르틴과 비슷한 매력을 가진, 또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여인이라는 매력을 가진 여인에게만 마음이 끌렸다. 이렇게 알베르틴 자신을, 또는 알베르틴이 좋아했을지 모르는 타입의 여인들을 환기하다 보니, 그 여인들이내게 질투와 회한이 섞인 잔인한 감정을 깨어나게 했는데, 이런 감정은 나중에 슬픔이 진정되었을 때 조금은 매력이 없지도 않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 P229


지난 리뷰에서 주인공이 알베르틴이라는 이미지를 좋아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문장을 보니 내가 느꼈던 감정의 내용이 그대로 문장에 나와서 깜짝 놀랐다. 역시 그는 그런 이미지들의 여자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고 망각의 길로 들어가야했다. 개인적으로 망각은 시간만이 해결해준다고 믿는다. 아무리 힘든 기억이라도 시간은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며 감정을 무뎌지게 만든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주변에 있는 사교계 사람들 등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알베르틴 없는 삶을 살아갈 동력을 점차 얻게 된다.


어쩌면 그때 내가 느낀 피로감과 슬픔은 이미 망각한 것을 헛되이 사랑한다는 사실보다는 살아 있는 새로운 사람들, 순수한 사교계 사람들, 그들 자체로서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단순히 게르망트네의 친구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내가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더 많이 연유하는지 몰랐다. 사랑했던 여인이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추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편이, 활기차지만 기생충과도 같은 인간 식물군으로 우리의 삶을 장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공허한 활동의 발견보다는 어쩌면 더 쉽게 내 마음을 달래 주었을 것이다. 그런 식물군도 죽으면 또한 무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가 알았던 것과도 이미 무관해질 텐데도, 우리의 수다스럽고 우울하고 영합적이며 노쇠한 존재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쓴다. 이제 알베르틴 없이도 쉽게 삶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내 마음속에 출현했다. - P302


어머니는 몇 주일 동안 나를 베네치아에 데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콩브레의 기억이 소환된다. 이는 베네치아의 일상적인 삶이 과거의 콩브레의 풍경과 비슷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산마르코 대성당, 리알토 다리, 대운하…

나는 산마르코 대성당을 보면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꼈다. 시간의 색조의 선명함을 보존한 곳에서 성당은 마치 거대한 벌집 모양의 밀랍 모형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로 만들어진 듯 보였고, 반대로 시간이 재료를 딱딱하게 만들고 또 예술가들이 투조 세공하고 금박으로 장식한 곳에서는 코르도바 가죽으로 장정한 베네치아의 복음서 귀중본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마귀 쫓는 의식을 거행하는 그라도의 총대주교」란 그림을 보았다. 높은 굴뚝을 상감하듯 박아 넣은 선홍빛과 보랏빛의 그 경이로운 하늘을 나는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데,튤립꽃이 피어나듯 벌어진 굴뚝모양과 붉은색이 휘슬러가 그린 많은 베네치아 풍경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내 시선은 오래된 리알토 나무다리에서 금빛 기둥머리로 장식된 대리석 궁전이 있는 그 ‘15세기의 베키오 다리‘로 갔다가 다시 대운하로 돌아갔는데, 분홍빛 재킷 차림에 깃털 달린 챙 없는 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작은 배를 모는 모습이, 마치세르트와 슈트라우스와 케슬러가 만든 그 경탄할 만한 발레 「요셉의전설」에 나오는, 진짜 카르파초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혼동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떠나기 전, 내 눈은 당시 베네치아 삶의 정경으로 가득한 운하 기슭으로 되돌아갔다. 면도기를 문지르는 이발사, 술통 든 흑인, 대화 중인 이슬람 교도들, 다마스쿠스산의 화려한 비단 옷과 버찌 빛깔의챙 없는 벨벳 모자를 쓴 베네치아 귀족들. 그러다 나는 갑자기 가슴을 가볍게 깨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소매와 깃에 금박과 진주로 수놓은 장식에서 그들이 가입한 즐거운 협회의 표시를 알아볼 수 있는 그 ‘칼차의 동반자들 중 한 사람의 등에서,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베르사유로 무개차를 타고 갔을 때 입었던 망토를 알아본 것이다. - P392~394


이 그림은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십자가의 기적’으로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으로 실제 내용은 그라도의 총대주교가 리알토 다리 옆에서 마귀 쫓는 의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주인공은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환기했다.



나는 베네치아에서 돌아와 앙드레와 만나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알베르틴이 베르뒤랭 연회에 참석하고 싶어했던 이유가 봉탕 부인이 알베르틴의 결혼 상대로 생각한 베르뒤랭 부인의 조카를 만나기 위한 것이지, 뱅퇴유 딸과의 만남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 알베르틴의 필체로 오인한 질베르트의 전보가 실은 질베르트와 생루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생루가 질베르트와 결혼한 것도 그녀가 가진 부와 모렐과의 관계를 숨길 수 있어서이고, 샤를뤼스가 모렐로부터 버림받은 쥐피앵의 조카딸을 양녀로 삼은 뒤 캉브르메르 후작의 아들과 결혼시킨 것도 모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 질베르트는 파리의 포르슈빌 가에 상속녀가 되었지만 부와 명예에 철저히 이용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은 불행히 이어간다. 


그 먼 시절이 긴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로부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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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03 1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11권! 이제 얼마 안남으셨군요~! 전 개인적으로 11권이 가장 좋았었습니다.
역시 화가님이어서 그림도 찾아보셨군요 ~!!

거리의화가 2023-10-03 15:49   좋아요 1 | URL
네. 힘들어서 얼른 끝내고 싶은데 아직도 2권이 남았습니다ㅋㅋㅋ 그림은 항상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더군요^^; 책의 설명과 비교하면서 보는 맛도 있고요^^
새파랑님은 11권이 가장 좋으셨군요! 저는 아직까지도 1~3권이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3-10-03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책을 읽느라 레 미제라블2에 머물러 있어요.님의 꾸준함을 본받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0-03 15:51   좋아요 1 | URL
페크님 거의 10개월째 읽다보니 힘들어서 이제는 좀 끝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평소 여러 권의 책을 읽는데 잃시찾 시리즈는 한번에 몰아읽기가 힘들어서 계속 쉬다 읽다를 반복하고 있네요. 어쨌든 남은 2권은 올해 안에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크님의 독서 생활도 응원합니다^^
 

우리의 지성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우리마음 깊은 곳을 구성하는 요소들, 또 그것들이 대부분의 시간동안 머무는 휘발성의 상태로부터 어떤 현상에 의해 분리되고 고정되기 전까지는 짐작도 못하는 그런 요소들을 인지할수는 없다. 내 마음속을 뚜렷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은 것도틀린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장 예리한 정신적 지각으로도 깨닫지 못했던 이 인식이, 고통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의해 마치 - P16

소금의 결정체처럼 단단하고 눈부신 기이한 형태로 방금 내게 주어졌다. 알베르틴이 내 옆에 있다는 그토록 큰 확신 속에살아온 내가, 돌연 ‘습관‘의 새로운 얼굴을 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습관이 우리 지각의 독창성과 의식마저 제거하고 무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습관을우리에게 고정된 무시무시한 신(神)으로 간주했고, 그 무의미한 얼굴이 그토록 우리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만일 우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가거나 멀어지기라도 하면 여태껏 거의알아볼 수 없던 그 신은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고통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죽음만큼이나 잔인한 존재가 된다. - P17

한 존재와 우리의 관계는 오로지 우리 사유 속에만 존재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관계는 느슨해지고, 우리는 환상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또 사랑이나 우정, 예의나체면, 의무감 때문에 타인을 속이면서도 결국은 홀로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안에서만 타자를 인식하며, 그렇지만 그와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하는 존재이다. - P65

한 존재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형태를 갖추고 시간이란 틀에 복종해야 한다. 연속적인 순간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존재는 한 번에 한 모습밖에 보여 주지않으며, 그 모습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사진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간들의 집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에게 그것은 큰 약점이지만, 또한 큰 힘이기도 하다. 존재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며, 또 어느 한순간의 기억은 그 후 일어난 일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기억이 기록한 순간은,
그리고 그 순간과 더불어 드러난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그런 파편화는 다만 죽은 이를 살아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이를 무한대로 증식한다. - P110

우리의 잘못은 다른 이들의 상냥함과 지성에 무관심한 데 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올 때라야 거짓은 분노를, 선의는 항상 우리 마음속에 고마운 마음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육체적 욕망은 우리의 지성에 진정한 가치를, 우리의 정신적 삶에는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는 경이로운 힘을 가지게 된다. 다시는 결코 그 성스러운 존재,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 있으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 P140

설령 내게 가르쳐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해도, 나는 알베르틴이 사귀었거나 사귀었을지도 모르는 여인들, 그녀와 같은 환경이거나 또는 그녀 마음에 들었던 환경의 여인들, 한마디로 알베르틴과 비슷한 매력을 가진, 또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여인이라는 매력을 가진 여인에게만 마음이 끌렸다. 이렇게 알베르틴 자신을, 또는 알베르틴이 좋아했을지 모르는 타입의 여인들을 환기하다 보니, 그 여인들이내게 질투와 회한이 섞인 잔인한 감정을 깨어나게 했는데, 이런 감정은 나중에 슬픔이 진정되었을 때 조금은 매력이 없지도 않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 P229

어쩌면 그때 내가 느낀 피로감과 슬픔은 이미 망각한 것을헛되이 사랑한다는 사실보다는 살아 있는 새로운 사람들, 순수한 사교계 사람들, 그들 자체로서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단순히 게르망트네의 친구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을내가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더 많이 연유하는지로랐다. 사랑했던 여인이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추억에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편이, 활기차지만 기생충과도 같은 인간 식물군으로 우리의 삶을 장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공허한 활동의 발견보다는 어쩌면 더 쉽게 내 마음을 달래 주었을 것이다. 그런 식물군도 죽으면 또한 무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가 알았던 것과도 이미 무관해질 텐데도, 우리의 수다스럽고 우울하고 영합적이며 노쇠한 존재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쓴다. 이제 알베르틴 없이도 쉽게 삶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내 마음속에 출현했다. - P302

나는 처음으로 「마귀 쫓는 의식을 거행하는 그라도의 총대주교」란 그림을 보았다. 높은 굴뚝을 상감하듯 박아 넣은 선홍빛과 보랏빛의 그 경이로운 하늘을 나는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데,튤립꽃이 피어나듯 벌어진 굴뚝모양과 붉은색이 휘슬러**가 그린 많은 베네치아 풍경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내 시선은 오래된 리알토 나무다리에서 금빛 기둥머리로 장식된대리석 궁전이 있는 그 ‘15세기의 베키오 다리‘로 갔다가 다시대운하로 돌아갔는데,*** 분홍빛 재킷 차림에 깃털 달린 챙 없 - P392

는 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작은 배를 모는 모습이, 마치 세르트와 슈트라우스와 케슬러가 만든 그 경탄할 만한 발레 「요셉의전설」에 나오는, 진짜 카르파초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혼동될정도로 닮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떠나기 전, 내 눈은당시 베네치아 삶의 정경으로 가득한 운하 기슭으로 되돌아갔다. 면도기를 문지르는 이발사, 술통 든 흑인, 대화 중인 이슬람교도들, 다마스쿠스산의 화려한 비단 옷과 버찌 빛깔의챙 없는 벨벳 모자를 쓴 베네치아 귀족들. 그러다 나는 갑자기가슴을 가볍게 깨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소매와 깃에 금박과 진주로 수놓은 장식에서 그들이 가입한 즐거운 협회의 표 - P393

시를 알아볼 수 있는 그 ‘칼차의 동반자들 중 한 사람의 등에서,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베르사유로 무개차를 타고 갔을 때입었던 망토를 알아본 것이다. - P394

모든 것은첫 번째 오류에서 비롯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오류는(그리고이것은 편지나 전보 읽기에만, 모든 독서 행위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출발점이 같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놀랍게 보일지라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것의 상당부분은, 그 최종적인 결론까지도 똑같이 완강하고 충실하게사물의 전조를 처음 오인한 데서 비롯한다. - P410

그 먼 시절이 긴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로부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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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테니스 선수로도 유명한 안과의사 리처드 라스킨드가 생식기 수술과 호르몬 요법 그리고 의상의 변화를 통해 레니 리처즈가 된 이래, 트랜스젠더는 뭇사람들의 의식 속에 ‘실재하는 하나의 사실로 자리잡았다.
1950년대에 크리스틴 조르겐슨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그 경험을 책으로 드러낸 바 있지만, 레니 리처즈는 페미니즘 운동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진행되고 있을 때 등장해서 더 크게 주목받았다. 페미니즘은 성역할의 불평등성을 비판했고 성역할이 신체적 조건에 기초한 것이라는 생각을 공격하고 있었다. 따라서 리처즈는 조르겐슨과는 달리 단지 기묘한 예외나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성역할 전환의 본보기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이 낳을 수 있는 끔찍한 결과의 한 예라고 주장되기도 했다. 또다른 한편에서는 페미니즘이 필요없다는 산 증거로 취급되었다. 말하자면여자가 되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는 남자도 있는데, 생물학적 여성들이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나 하는 이야기였다. - P42

음핵절제는 포경보다는 페니스 절단에 가깝다. 음핵에는 페니스만큼이나 많은 신경말단이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할례는 페니스를 보호하는 포피 덮개‘ 의 끝만을 잘라내며 페니스 자체에는아무런 손상도 가하지 않는다. 이 덮개‘ 부분에 있는 신경말단은 고작해야 귓불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남성할례는 대상자가 성적 쾌락을 느끼는 능력을 파괴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이들은 남성할례가 성기의 민감한부분을 더 많이 노출시키기 때문에 성감을 증대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 P51

이제 페미니스트들은 각 지역 문화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으며, 여성성기 절단 반대 운동을 지지,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그 지역의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 여성들이 주도하는 운동이 시작된 것은 정확히 1979년 2월이었다. 수단 카르툼에서 열린 역사적인 회의에는 아프리카와 아랍의 10개국대표들(외과의사, 산파, 보건 공무원 등)이 참석했고, 그 밖의 많은 나라들 - P55

은 대표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지지를 표명했다. 이 회의는 세계보건기구동지중해 지역사무국이 수단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것이었다. 이 회의의 이름은 조심스럽게도 "여성과 아동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전통적 시술에 대한 세미나로 정해졌다. 구체적인 주제들은 아동 결혼, 임신 수유기동안의 음식 금기, 그리고 성기절단이었다. 회의의 결과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권고사항이 정해졌다.
통합1. 국가정책으로 여성 할례를 폐지할 것.
2. 여성 할례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설치할 것.
3. 성기 절단 시술의 위험과 불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
4. 산파, 치료사 등 의료 시술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 - P56

1990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EDAW 준수를감시하는 UN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권고안은 여성 성기절단이여성에게 해롭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권고안은 여성 성기 절단은 단지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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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01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이 책 다 읽고나서의 리뷰도 기다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10-03 08:00   좋아요 0 | URL
12월에 읽을 책에서 여러 편에 언급되길래 읽어보려고 사두었습니다.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여러 사상가의 책을 접해보는 것은 수확이 있더군요^^
 

중층 기술: 해석적 문화이론을 향하여

우리가 어떤 학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이론들이나 조사결과를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학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인류학, 최소한 사회인류학의 경우, 사람들이 하는 작업은 민족지(民族誌)이다. 따라서 민족지라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보다 더 정확히 말해서 민족지적 연구조사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지식의 한 형태로서 인류학적 분석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민족지란 하나의 지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길버트 라일의 개념을 빌리면 그것은 "중층 기술(thick description)"의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P14

하나의 행위는 곧 그 문화의 일부가 되며, 그럴 경우 그것은 단순한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 P15

분석이란 의미구조를 분류하는 것이며 거기에 사회적 근거와 중요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된다. - P19

문화가 사회적으로 설정된 의미체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곧 문화를 하나의 심리적 현상, 즉 어느 한 개인의 정신상태 또는 인성적 특질이나 인지구조 등으로 파악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전자가 나의 견해라면 후자는 굿이너프나 타일러 등의 견해라고 볼 수 있으며,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입장이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탄트리즘(tantrism, 성력파(性力派] : 탄트라교의 철학 또는 교리/역주)이나 유전학 또는 동사의 진행형, 포도주의 분류방식, 관습법 혹은 "조건부 저주"의 개념(웨스터마크는 이 개념에 의해서 코헨이 자신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던 아르의 관습을 정의했다) 중 어느 하나가 곧 문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억지일 것이다. - P24

인류학의 목적은 곧 인간들간의 의사 소통의 세계를 넓히는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만이 인류학의 목적은 아니다. 그 이외에도 교육, 흥미, 실용적 조언, 윤리적 진보, 인간 행위에 나타나는 자연적 질서의발견 등이 다른 목적으로 열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류학만이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학문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목적에 부합시킴으로써 우리는 기호론적인 문화 개념을 특별히 잘 파악할 수 있다. 해석 가능한 부호들(나 나름으로 상징이라고 칭하고자 한다)의 상호 연결된 체계로서의 문화는 어떤 사회적 사건이나 행위, 제도 내지 과정 등을 인과적으로 설명해주는 하나의 원동력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맥락이며 그러한 맥락 안에서 우리는 앞의 사회적 사건이나 행위, 제도, 과정 등을 이해할 수있도록, 즉 중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 - P25

어떤 한 민족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 생활의 일상적이고평범한 면을 밝히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개개의 사건이나 행위가 지니는 특수성을 감소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 P26

문화 분석은 의미의 대륙을 발견하여 거기에 형상도 없는 풍경화를 그려나가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를 추측하고 그 추측이 어느 정도 정확한가를 따져보고 보다 더 나은 추측으로부터 설명을 위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또는 그래야만 한다). - P34

민족지 기술은 다음 세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로 그것은 해석적이며, 둘째로 그것이 해석하는 것은 사회적 대화의 흐름이며, 셋째로 여기서 해석이란 그러한 대화가 소멸되어버리지 않도록 그중 "말해진 부분"을구출하여, 해독 가능한 형태로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뿐 아니라 민족지 기술에는, 적어도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한가지 특징을 더 첨가해야겠는데, 그것은 민족지는 미시적이라는 점이다. - P35

우리는 이론을 진술할 수 있는 힘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회적 이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론화를 보통보다 훨씬 더 어렵게 만드는 문화 해석상의 여러 특징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첫번째는 상상을 통한 추상화에 보다 더 몰두할 수 있는 과학의 경우보다 훨씬 더 현실에 근접한 이론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인류학에서는 약간의 추론만이 효과적인데, 지나친 추론은 논리적 환상에 빠지거나 형식적인 균형성에 학문적으로 도취되게 한다.

문화이론은 스스로 제약을 받는다. 문화이론이 이룩하려는 일반성은 미묘한 차별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추상화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 분석은 결과물이 축적되어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대담한 돌격을 반복하여 행하는 듯한, 서로 관련성은 없지만 일관된 시도로 분해된다. - P40

문화 분석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불완전해진다는 점이다. - P45

인류학 또는 최소한 해석적 인류학은 합의의 완성보다는 논의의 세련화에 의해서 진보하는 특성을 가진 학문이다. 더 좋아지는 것은 우리가 서로 논의할 때의 정밀도이다. - P46

사회적 행위의 상징적 차원 예술, 종교, 이데올로기, 과학, 법, 도덕성, 상식을 고찰한다는 것은 삶의 실존적 딜레마를 외면하고 탈감정화된 형태의 어떤 천상의 영역으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다. 해석인류학의 본질적 임무는 우리의 가장 심오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다른 계곡의 다른 양들을 돌보는)사람들이 준 대답을 우리가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것들을 인간이 말한 것에 대한 참고 기록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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