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층 기술: 해석적 문화이론을 향하여

우리가 어떤 학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이론들이나 조사결과를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학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인류학, 최소한 사회인류학의 경우, 사람들이 하는 작업은 민족지(民族誌)이다. 따라서 민족지라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보다 더 정확히 말해서 민족지적 연구조사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지식의 한 형태로서 인류학적 분석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민족지란 하나의 지적인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길버트 라일의 개념을 빌리면 그것은 "중층 기술(thick description)"의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 P14

하나의 행위는 곧 그 문화의 일부가 되며, 그럴 경우 그것은 단순한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 P15

분석이란 의미구조를 분류하는 것이며 거기에 사회적 근거와 중요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된다. - P19

문화가 사회적으로 설정된 의미체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곧 문화를 하나의 심리적 현상, 즉 어느 한 개인의 정신상태 또는 인성적 특질이나 인지구조 등으로 파악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전자가 나의 견해라면 후자는 굿이너프나 타일러 등의 견해라고 볼 수 있으며,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입장이 분명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탄트리즘(tantrism, 성력파(性力派] : 탄트라교의 철학 또는 교리/역주)이나 유전학 또는 동사의 진행형, 포도주의 분류방식, 관습법 혹은 "조건부 저주"의 개념(웨스터마크는 이 개념에 의해서 코헨이 자신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던 아르의 관습을 정의했다) 중 어느 하나가 곧 문화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억지일 것이다. - P24

인류학의 목적은 곧 인간들간의 의사 소통의 세계를 넓히는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만이 인류학의 목적은 아니다. 그 이외에도 교육, 흥미, 실용적 조언, 윤리적 진보, 인간 행위에 나타나는 자연적 질서의발견 등이 다른 목적으로 열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류학만이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학문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목적에 부합시킴으로써 우리는 기호론적인 문화 개념을 특별히 잘 파악할 수 있다. 해석 가능한 부호들(나 나름으로 상징이라고 칭하고자 한다)의 상호 연결된 체계로서의 문화는 어떤 사회적 사건이나 행위, 제도 내지 과정 등을 인과적으로 설명해주는 하나의 원동력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맥락이며 그러한 맥락 안에서 우리는 앞의 사회적 사건이나 행위, 제도, 과정 등을 이해할 수있도록, 즉 중층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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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민족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 생활의 일상적이고평범한 면을 밝히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개개의 사건이나 행위가 지니는 특수성을 감소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 P26

문화 분석은 의미의 대륙을 발견하여 거기에 형상도 없는 풍경화를 그려나가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를 추측하고 그 추측이 어느 정도 정확한가를 따져보고 보다 더 나은 추측으로부터 설명을 위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다(또는 그래야만 한다). - P34

민족지 기술은 다음 세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로 그것은 해석적이며, 둘째로 그것이 해석하는 것은 사회적 대화의 흐름이며, 셋째로 여기서 해석이란 그러한 대화가 소멸되어버리지 않도록 그중 "말해진 부분"을구출하여, 해독 가능한 형태로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뿐 아니라 민족지 기술에는, 적어도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한가지 특징을 더 첨가해야겠는데, 그것은 민족지는 미시적이라는 점이다. - P35

우리는 이론을 진술할 수 있는 힘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회적 이론에 머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론화를 보통보다 훨씬 더 어렵게 만드는 문화 해석상의 여러 특징이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만 한다. 첫번째는 상상을 통한 추상화에 보다 더 몰두할 수 있는 과학의 경우보다 훨씬 더 현실에 근접한 이론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인류학에서는 약간의 추론만이 효과적인데, 지나친 추론은 논리적 환상에 빠지거나 형식적인 균형성에 학문적으로 도취되게 한다.

문화이론은 스스로 제약을 받는다. 문화이론이 이룩하려는 일반성은 미묘한 차별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추상화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 분석은 결과물이 축적되어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대담한 돌격을 반복하여 행하는 듯한, 서로 관련성은 없지만 일관된 시도로 분해된다. - P40

문화 분석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불완전해진다는 점이다. - P45

인류학 또는 최소한 해석적 인류학은 합의의 완성보다는 논의의 세련화에 의해서 진보하는 특성을 가진 학문이다. 더 좋아지는 것은 우리가 서로 논의할 때의 정밀도이다. - P46

사회적 행위의 상징적 차원 예술, 종교, 이데올로기, 과학, 법, 도덕성, 상식을 고찰한다는 것은 삶의 실존적 딜레마를 외면하고 탈감정화된 형태의 어떤 천상의 영역으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다. 해석인류학의 본질적 임무는 우리의 가장 심오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다른 계곡의 다른 양들을 돌보는)사람들이 준 대답을 우리가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것들을 인간이 말한 것에 대한 참고 기록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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