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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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형태를 갖추고 시간이란 틀에 복종해야 한다. 연속적인 순간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존재는 한 번에 한 모습밖에 보여 주지않으며, 그 모습에 대해서도 단 하나의 사진밖에 생산하지 않는다. 오로지 순간들의 집합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에게 그것은 큰 약점이지만, 또한 큰 힘이기도 하다. 존재는 기억의 영역에 속하며, 또 어느 한순간의 기억은 그 후 일어난 일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기억이 기록한 순간은, 그리고 그 순간과 더불어 드러난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여전히 지속된다. 그리고 그런 파편화는 다만 죽은 이를 살아나게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이를 무한대로 증식한다. - P110


과거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 때의 자신과 만나면서 그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일을 경험하곤 한다. 이 문장을 만나면서 지금의 나도 단 한 순간의 나이며 한 모습의 나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도 본인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는 못하고 거울에 비친 한 쪽의 얼굴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도 타인도 나의 한 쪽면을 볼 뿐이다. 단 한 순간의 시점들이 점처럼 모여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알베르틴은 떠났지만 나는 한동안 고뇌를 하지 않는 듯 가장하며 생활해간다. 만약 그녀가 떠난 게 아쉬웠다면 직접적 그녀를 만나러 가거나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주변 사람을 대리자로 보내 지속적으로 떠보는 행동을 한다. 나는 과거 질베르트에게도 그랬었다. 좋은 일을 반복하는 것도 아니고 모순적 행동을 자기표절까지 해가면서 왜 할까. 최악이라 느껴졌다. 특히나 연인 관계에서 이런 태도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며 후회를 낳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는 습관이 우리 지각의 독창성과 의식마저 제거하고 무로 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습관을 우리에게 고정된 무시무시한 신(神)으로 간주했고, 그 무의미한 얼굴이 그토록 우리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어서, 만일 우리가 거기서 떨어져 나가거나 멀어지기라도 하면 여태껏 거의 알아볼 수 없던 그 신은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고통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죽음만큼이나 잔인한 존재가 된다. - P16~17


알베르틴이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왜 내게 직접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그랬다면 매우 기쁘게 돌아갔을텐데…” 뒷 문장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첫 문장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걸 보고 나는 후회하면서도 그녀에게 거짓 고백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이때야말로 진심을 보이면 될 텐데 왜 또 거짓 답장인 것인지 모르겠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상황을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나. 


한 존재와 우리의 관계는 오로지 우리 사유 속에만 존재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관계는 느슨해지고, 우리는 환상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또 사랑이나 우정, 예의나 체면, 의무감 때문에 타인을 속이면서도 결국은 홀로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안에서만 타자를 인식하며, 그렇지만 그와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하는 존재이다. - P65


나는 지난 9, 10권을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알베르틴에 대한 나의 감정이 과연 사랑일까 싶었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상냥함을 불신하는 태도로서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이런 행동은 반복될 것이다. 나의 감정은 그저 알베르틴이라는 얼굴의 이미지와 육체적 욕망 뿐이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알베르틴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가 그녀에 대한 탐색과 욕망을 이어간다. 이 때부터 피로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의 잘못은 다른 이들의 상냥함과 지성에 무관심한 데 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올 때라야 거짓은 분노를, 선의는 항상 우리 마음속에 고마운 마음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육체적 욕망은 우리의 지성에 진정한 가치를, 우리의 정신적 삶에는 단단한 토대를 마련하는 경이로운 힘을 가지게 된다. 다시는 결코 그 성스러운 존재, 다시 말해 모든 것을 다 얘기할 수 있으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 P140


설령 내게 가르쳐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해도, 나는 알베르틴이 사귀었거나 사귀었을지도 모르는 여인들, 그녀와 같은 환경이거나 또는 그녀 마음에 들었던 환경의 여인들, 한마디로 알베르틴과 비슷한 매력을 가진, 또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여인이라는 매력을 가진 여인에게만 마음이 끌렸다. 이렇게 알베르틴 자신을, 또는 알베르틴이 좋아했을지 모르는 타입의 여인들을 환기하다 보니, 그 여인들이내게 질투와 회한이 섞인 잔인한 감정을 깨어나게 했는데, 이런 감정은 나중에 슬픔이 진정되었을 때 조금은 매력이 없지도 않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 P229


지난 리뷰에서 주인공이 알베르틴이라는 이미지를 좋아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문장을 보니 내가 느꼈던 감정의 내용이 그대로 문장에 나와서 깜짝 놀랐다. 역시 그는 그런 이미지들의 여자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고 망각의 길로 들어가야했다. 개인적으로 망각은 시간만이 해결해준다고 믿는다. 아무리 힘든 기억이라도 시간은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며 감정을 무뎌지게 만든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을 당장은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주변에 있는 사교계 사람들 등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알베르틴 없는 삶을 살아갈 동력을 점차 얻게 된다.


어쩌면 그때 내가 느낀 피로감과 슬픔은 이미 망각한 것을 헛되이 사랑한다는 사실보다는 살아 있는 새로운 사람들, 순수한 사교계 사람들, 그들 자체로서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단순히 게르망트네의 친구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내가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더 많이 연유하는지 몰랐다. 사랑했던 여인이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추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편이, 활기차지만 기생충과도 같은 인간 식물군으로 우리의 삶을 장식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공허한 활동의 발견보다는 어쩌면 더 쉽게 내 마음을 달래 주었을 것이다. 그런 식물군도 죽으면 또한 무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가 알았던 것과도 이미 무관해질 텐데도, 우리의 수다스럽고 우울하고 영합적이며 노쇠한 존재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쓴다. 이제 알베르틴 없이도 쉽게 삶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존재가 내 마음속에 출현했다. - P302


어머니는 몇 주일 동안 나를 베네치아에 데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콩브레의 기억이 소환된다. 이는 베네치아의 일상적인 삶이 과거의 콩브레의 풍경과 비슷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산마르코 대성당, 리알토 다리, 대운하…

나는 산마르코 대성당을 보면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꼈다. 시간의 색조의 선명함을 보존한 곳에서 성당은 마치 거대한 벌집 모양의 밀랍 모형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로 만들어진 듯 보였고, 반대로 시간이 재료를 딱딱하게 만들고 또 예술가들이 투조 세공하고 금박으로 장식한 곳에서는 코르도바 가죽으로 장정한 베네치아의 복음서 귀중본처럼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마귀 쫓는 의식을 거행하는 그라도의 총대주교」란 그림을 보았다. 높은 굴뚝을 상감하듯 박아 넣은 선홍빛과 보랏빛의 그 경이로운 하늘을 나는 오래 바라보고 있었는데,튤립꽃이 피어나듯 벌어진 굴뚝모양과 붉은색이 휘슬러가 그린 많은 베네치아 풍경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내 시선은 오래된 리알토 나무다리에서 금빛 기둥머리로 장식된 대리석 궁전이 있는 그 ‘15세기의 베키오 다리‘로 갔다가 다시 대운하로 돌아갔는데, 분홍빛 재킷 차림에 깃털 달린 챙 없는 모자를 쓴 젊은이들이 작은 배를 모는 모습이, 마치세르트와 슈트라우스와 케슬러가 만든 그 경탄할 만한 발레 「요셉의전설」에 나오는, 진짜 카르파초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혼동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떠나기 전, 내 눈은 당시 베네치아 삶의 정경으로 가득한 운하 기슭으로 되돌아갔다. 면도기를 문지르는 이발사, 술통 든 흑인, 대화 중인 이슬람 교도들, 다마스쿠스산의 화려한 비단 옷과 버찌 빛깔의챙 없는 벨벳 모자를 쓴 베네치아 귀족들. 그러다 나는 갑자기 가슴을 가볍게 깨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소매와 깃에 금박과 진주로 수놓은 장식에서 그들이 가입한 즐거운 협회의 표시를 알아볼 수 있는 그 ‘칼차의 동반자들 중 한 사람의 등에서, 알베르틴이 나와 함께 베르사유로 무개차를 타고 갔을 때 입었던 망토를 알아본 것이다. - P392~394


이 그림은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십자가의 기적’으로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으로 실제 내용은 그라도의 총대주교가 리알토 다리 옆에서 마귀 쫓는 의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주인공은 알베르틴에 대한 사랑을 환기했다.



나는 베네치아에서 돌아와 앙드레와 만나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알베르틴이 베르뒤랭 연회에 참석하고 싶어했던 이유가 봉탕 부인이 알베르틴의 결혼 상대로 생각한 베르뒤랭 부인의 조카를 만나기 위한 것이지, 뱅퇴유 딸과의 만남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 알베르틴의 필체로 오인한 질베르트의 전보가 실은 질베르트와 생루의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생루가 질베르트와 결혼한 것도 그녀가 가진 부와 모렐과의 관계를 숨길 수 있어서이고, 샤를뤼스가 모렐로부터 버림받은 쥐피앵의 조카딸을 양녀로 삼은 뒤 캉브르메르 후작의 아들과 결혼시킨 것도 모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 질베르트는 파리의 포르슈빌 가에 상속녀가 되었지만 부와 명예에 철저히 이용되면서 정작 본인의 삶은 불행히 이어간다. 


그 먼 시절이 긴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로부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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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0-03 1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11권! 이제 얼마 안남으셨군요~! 전 개인적으로 11권이 가장 좋았었습니다.
역시 화가님이어서 그림도 찾아보셨군요 ~!!

거리의화가 2023-10-03 15:49   좋아요 1 | URL
네. 힘들어서 얼른 끝내고 싶은데 아직도 2권이 남았습니다ㅋㅋㅋ 그림은 항상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더군요^^; 책의 설명과 비교하면서 보는 맛도 있고요^^
새파랑님은 11권이 가장 좋으셨군요! 저는 아직까지도 1~3권이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하네요.

페크pek0501 2023-10-03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책을 읽느라 레 미제라블2에 머물러 있어요.님의 꾸준함을 본받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0-03 15:51   좋아요 1 | URL
페크님 거의 10개월째 읽다보니 힘들어서 이제는 좀 끝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평소 여러 권의 책을 읽는데 잃시찾 시리즈는 한번에 몰아읽기가 힘들어서 계속 쉬다 읽다를 반복하고 있네요. 어쨌든 남은 2권은 올해 안에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페크님의 독서 생활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