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으로 얻은 군사적 승리 후 자신만만해했지만 삼국간섭으로 자신들의 전리품을 토해내게 된다. 이 사건은 일본에게 외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일이었다.
중국은 생존투쟁을 위한 국력 증강을 선택했다.

조약의 성립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었다. 조약 당사자국 간에 동일한 조건의 조약서가 담겨져 있는게 아니고 결국은 더 힘이 센 강대국의 입김에 따른 조약서가 체결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조약의 해석 문제도 있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언어가 아닌 언어의 경우 조약서 해석에 문제가 생길 소지를 담은 채 성립되는 경우도 있다. 해석에 미묘함을 남겨놓아 향후 분쟁을 일으키게 하기도 한다.

미래에 자유주의는 국제관계 이론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오늘날에도 국제관계를 논하는 자리에서 주류이론이거나 최소한 중요 논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관계 이론은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 대부분의 정치가 갖고 있는 관점이지만 통일된 표현이 있었던 적은 없다. - P1328

사회적 다윈주의는 ‘서방’—유럽이 점차로 애용하게 된 자칭—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국경을 초월한 현상이자 갖가지 이론적 변형을 낳았고, 그 변형들이 다시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 P1330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국제관계는 밀림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다. 전 세계는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상대와 연합을 모색했다. 오늘날에는 아무리 작고 가난한 나라라도 전 세계에 외교기관을 주재시키고 있고, 외교 수장의 회담이 끊이지 않으며, 국가 원수가 만나는 정상회담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런 방식의 외교는 1차 대전 이후 시대의 산물이다. - P1331

1815년 이후부터 효력을 발휘한 새로운 외교규범과 국제행위 준칙은 문명진보의 당연한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호를 개방당한 비유럽국가는 조약을 체결할 때 문명세계의 규칙을 지키겠다는 조항을 포함시켜 이행을 보증해야 했다. 새로운 규범과 준칙의 일부 조항은 타국 내정 불간섭 원칙을 피해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충돌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 P1334

19세기에 비유럽세계와 관련하여 외교관의 주요한 기능은 다양한 종류의 조약—통상조약, 보호조약, 국경조약 등—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국제법에 근거한 조약의 개념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중국은 1689년에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한 적이 있었다) 여러 차례 구체적인 상황에서 문화적 차이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번역 문제만 해도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조약의 실행단계에서 심각한 분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 - P1338

개별적인 조약 하나하나가 모여서 결국에는 여러 당사자에게 영향을 주는 조약의 집합이 되었다. - P1340

1815년 이후 중시되기 시작했고 1840년대부터 영국의 법의 결핍을률가들이 개발하고 영국의 정치가들이 현실 정치에 적용했던 국제법은 유럽 바깥의 영토에 대해서는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또한 이 국제법은 공백으로 남겨둔 영역이 많았는데 특히 해양관리 분야가 그랬다. 예컨대, 같은 해역에서 작업하는 포경선 선장들은 포획물의 발견과 최종적인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구체적인 규칙을 합의해두어야 했다. 영국이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해양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의 원칙에 반해 아무리 선의에서 보더라도 국가로 분류되기 어려운 공동체가 보호국으로 선포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그런가하면 목록의 다른 한쪽 끝에는 세워진 지 이미 수백 년이 넘고 최소한대다수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안정된 정통성을 누려온 합법적인국가였지만 지도에서 지워진 나라가 존재한다. 14세기부터 국가로서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해온 조선은 1905년에 일본의 보호국으로 선포되었다. 1907년, 조선은 제2차 헤이그평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국가적 위상의 강등에 대해 항의하려 했다. 회의 의장단은 근본적으로 조선의 회의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은 조선이 합법적인 국가가 아니거나 현존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입장의 명확한 표현이었다. - P1343

상호 분명한 연관성이 없는 이런 저항에 ‘민족주의’라는 표지를 붙이는 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별로 본다면 저항운동은 각자의 특수한 원인과 동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운동 배후에는 분노에 찬 애국정서와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서서히 강화되어가는 국제적 정의감과 유사한 의식—이것이 각국의 운도을 하나로 연결시켜주었다—이 존재했다. 이러한 새로운 요구와 가치관의 발원지는 우드로 윌슨의 사상이며 1919년의 파리평화회의를 통해 원칙과 선언으로 포장되어 나온 것일 뿐이라는 해석은 그보다 앞서 유럽 밖에서 일어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럽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발원지란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 P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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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9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받은 배상금이 너무 막대해서 이후 군국주의로 향하는 일본의 밑천이 되었다죠. 인용하신 페이지 숫자에 깜놀하고 갑니다. ^^

거리의화가 2022-01-19 08:06   좋아요 0 | URL
네 그 배상금을 기반으로 철저히 배를 불렸죠.
페이지수는 총 3권인데 각 권의 페이지수를 따로 안 세고 이어져서 그런거예요 2권이 몇백페이지부터 시작합니다ㅋㅋ
 

음력 생일을 가진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에서는 음력을 뗀 날을 생일로 챙기고

집에서는 원래의 음력 생일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력 10월 10일 생일이라면

양력 10월 10일일 때 사회적으로 기념하고 음력 10월 10일이 되면 집에서 기념하는 식이다.

내 경우도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다.

실제 내가 태어난 음력 생일은 가족들만 알지 실상은 양력 생일을 기념하다보니 음력 생일이 되면 별 감흥이 없다.


나이를 먹는게 이제는 더 이상 즐겁지가 않고 

그저 나이만 들고 철은 여전히 들지 않은 것 같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늘어만 가고 해 놓은 것은 없고 그 사이의 간극이 커져갈 때 상실감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1년마다 돌아오는 가족의 메시지는 결코 흔하지가 않다.

늘 그 때의 나를 오롯이 느낄 수가 있어서인 것 같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는데 어머니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다.

나의 과거에 대한 본인의 미안함이 담긴 것이었다.

그걸 보고 좀 뭉클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첫째로 컸고 늘 부모와의 관계가 어려웠다.

자라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고 버거울 때가 많아서 부모-자식 관계를 놓고 싶은 경우도 많았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어떤지 사실 잘 모르겠다.

모녀 간 사이가 좋은 경우를 많이 보지만 내게는 역시 멀게 느껴진다.

나는 엄마란 단어보다 어머니란 단어가 더 익숙하다.

여전히 엄마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건 그 때의 힘겨움과 상실감이 여전히 극복되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놓고 터놓기엔 그 세월이 너무 길어져서 이제는 그 기억과 감정조차 희미해지고 사그라들었는지도.


요즘 페미니즘. 그리고 젠더, 여성에 대한 책을 계속 읽어오다보니

어머니의 세월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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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8 1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모 자식 관계란 참 미묘하죠. 뭔가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집이든 모두가 한두군데는 이런 미묘한 감정들을 다 가지고 있을테죠. 그래도 어머님이 메시지를 보내신 그 마음이 살짝 이해가 돼요. 그렇게 또 시작하는거죠. 어떤 관계든 멈춰 있는건 없으니까요. 힘내세요. 그리도 생일도 축하드려요. 전 요즘 나이먹는게 그리 나쁘지 않아요. 이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거리의화가 2022-01-18 12:58   좋아요 3 | URL
제 동생들도 저와는 다른 모양이지만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 느껴요.
이제 서로 만나면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게 좋더군요.
부모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나아가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나아지는 거겠지요.
나이가 먹는 건 아쉽지만 지금의 안정됨이 좋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래 하면 NO하렵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8 1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녀관계!!! 특히 큰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화가님의 마음을 좀 이해할 것도 같아요. 저는 엄마가 분명 나를 애타게 사랑하는 듯도 한데 엄한 잣대를 대는 것 같은 섭섭함이 한 번씩 있었는데,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지기도 하고...여성으로서의 삶으로 바라보니 엄마가 존경스럽기도 하고...뭐 지금은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 되어 버렸지만요.
화가님을 생각하시는 어머님의 메세지가 화가님의 마음을 더 살갑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싶네요.
암튼 생일 축하드립니다. 제 지인 중 한 분이 생일을 그렇게 지내시더라구요. 그래서 두 번 생일축하를 받는 것 같아 부러우면서...지켜보니 가족들이 챙겨 주는 생일이 더 의미있어 보이더군요?^^
암튼 가족들이 챙겨 주는 생일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1-18 13:19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큰딸과 엄마. 좀 더 특별한가요? 뭔가 애증관계 같기도 하고...^^;
저도 어머니가 제게 거는 기대가 많이 크셨어요. 동생들도 있고 뭔가 제가 집을 꾸려가는 것도 아니면서 신경질적이었던 것 같아요.
비록 엄마가 되보진 않았지만 결혼을 해보니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아닌 누군가의 소개로 하는 결혼이어서 그것만으로 난 불가능한 일인데 어머니는 결혼 이후 맞춰가느라 힘드셨겠다란 생각 들더라구요.

독서괭 2022-01-18 1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나의 가련한 지배자> 읽고 있는 책이라 반갑습니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도 이 책 보고 사볼까 했는데 리뷰 읽어보니 별로일 것 같아서^^; 안 보려하는데 화가님은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장녀들의 경우 엄마가 의지하면서도 지배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저희 집도 언니랑 엄마 관계가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었답니다. 서로 나이들면서 많이 나아졌지만요. 둘째들은 첫째가 혼나는 거 보면서 눈치껏 몸 사리기 땜에 덜 혼나고 관계도 덜 망가지는 것 같아요.. 저도 애들 보면 확실히 둘째가 눈치가 발달했더라구요. 생존 본능인지..

거리의화가 2022-01-18 13:44   좋아요 4 | URL
저 책들 괭님 페이퍼 보고 담아놓은거고 아직 읽진 못했어요. 그 글 보고 좀 많이 마음이 뭉클했고 아팠어요. 읽고 있는 책들이 많아서 조금씩 짬짬이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읽고 나서 공유할게요.
엄마가 맏딸에게 거는 기대는 확실히 좀 큰 것 같아요. 둘째인 제 여동생 생존본능 강합니다 눈치도 빠르고 약삭빠르구요^^

독서괭 2022-01-18 14:11   좋아요 2 | URL
앗 제 페이퍼 보고 담으신 거라니🥰

다락방 2022-01-18 14: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에 대해 아주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장녀입니다. 엄마가 결혼하지 않고 그래서 나를 낳지 않았다면 엄마 인생은 얼마나 자유로웠을까를 아주 자주 생각하고, 아빠 때문에 속상해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면 엄마에게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아빠랑 이혼하라고도 얘기를 해요. 엄마가 엄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저는 알고, 그래서 제가 엄마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엄마랑 친하고 엄마가 자식들 키우느라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엄마 비행기 처음 태워드린 것도 저고 엄마를 모시고 미술관에 다녀온 것도 저예요. 아무리 뭘 더 해드려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엄마의 가장 젊은 시절과 그 때의 에너지를 몽땅 저희들에게 쏟았다는 걸 자꾸 인식하게 돼서요. 이것도 장녀 컴플렉스, 그런걸까요?

그런 한편 아빠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미움이 자리하고 있어요. 아빠가 무능력했기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다는 생각을 저는 버릴 수가 없어서요. 아빠에 대해서라면 저희 삼남매가 가진 감정이 다 다르더라고요. 아빠는 하나이고 우리 모두 자식인데 저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늙고 가진 것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만을 가졌달까요. 잘해드려야지, 생각하다가도 불쑥 엄마를 고생시킨 사람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장녀들 중에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1-18 15:03   좋아요 3 | URL
음. 다락방님 말 들으니 전 참 많이 이기적이고 쌀쌀맞거나 매몰찬 딸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거는 기대에 부응한다고 온갖 폼은 다 잡고 달려간다고 했지만 그 끝은 그닥 좋진 않았어요.
집안 형편을 별개로 동생들이 저로 인해 분명 손해본 면도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미안함도 있는데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저는 오히려 그것을 큰 소리로 숨기려 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어머니와 동생들도 저로 인해 상처받았던 경우가 많았을겁니다.
저도 제 성격이 모나고 모자른 것이 많다 여기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그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다락방님 말씀처럼 많이 달라요.
전 아버지께 많이 분노를 느끼며 자랐고 아버지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앙금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을 겁니다. 이건 장녀에게 거는 기대와는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1-18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옛날 일 생각하면 한 번씩 엄마에게 섭섭한 게 있지만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꾸 엄마의 세월이 먼저 생각되고 엄마가 이해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희미해지고 사그라들고 ㅎㅎ

거리의화가 2022-01-18 19:05   좋아요 3 | URL
네 어머니하고 한번씩 이야기해요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냐면서. 힘들었던 시간들도 살다보니 희석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이것저것 경험해보니 이해가 되는 면도 있구요 감사합니다.
 

19세기 말에 상호 대립적인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하나는 모든 국제관계는 단일한 세계체제의 한 요소로 보아야 한다.
는 확신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유럽 정치와 주변부를 개념적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전부터 내려오는) 주장이었다. 제국주의 열강은 세계 여러 장소—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 중국,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심지어 1902-1903년 겨울에는 베네수엘라 —— 에서 부딪쳐쟁탈전을 벌였다. 그러나 제국의 충돌은 모두 해결될 수 있었거나 그영향이 충분히 억제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제국주의 열강이 불문율인 ‘놀이규칙‘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이놀이규칙‘ 이란 어떤 제국주의 국가의 야심이 좌절되었을 때 그 국가가 다른 지역에서 ‘보상‘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거나 용인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충돌과 대립은 유럽 각국 사이에 항구적인 불신감을낳았지만 어떤 충돌도 유럽에 주는 영향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촉발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 P1291

중요한 해외 이익의 균형은 모두가 예외 없이 쌍방의 협조하에 실현되었다.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집단행동은 오직 한 차례뿐이었다.
1900년 여름, 8국 연합군이 의화단에게 포위된 공사관 구역을 포위망을 뚫고 구조했다. 연합군 군대 가운데서 일본과 미국 군대가 주도작용을 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참여는 이 제국의 역사에서최초의 가장 야심찬 외교행동이었다.24)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유럽의 제국주의는 개별 제국주의의 집합에 지나지 않았다. 5대 강국이 대륙을 초월한 강국이 아니라 유럽의 강국으로서 등장했을 때 유럽의 국제체제는 5대 강국 사이에서 작동했다. 이 체제는 ‘국제정치의 기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 - P1292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제국주의 확장은 정치질서가 혼란한 지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간단하게 유럽과 ‘기타지역‘으로 대립시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유럽 내부에도 준(準)식민지 형태의 종속관계가 존재했다. 전통 외교사는 유럽의 약소국이라 불리던 나라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있고강대국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약소국의 행동공간에 대해서는 거의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P1293

먼로 대통령의 "아메리카는 아메리카인에게!"란 선언은 하나의 주의가 되었고 1867넌 프랑스가 멕시코에게 패배한 이후 수십 년 동안에 그 영향이 정점에 이르렀다. 1895-96년의 베네수엘라 위기에서 미국은 전쟁의 위협을 통해 처음으로 파나마 지협 이남 지역에서 영국을 대체하고 패권적 지위를 확립했다. 1904년, 시어도어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먼로주의를 한층 더 강화한새로운 원칙을 선포했다. 그는 미국이 전체 남아메리카에서 "문명화를 위한 개입의 권리를 보유한다고 주장했다. 먼로의 원래 입장이여기서 뒤바뀌었다. 먼로는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루스벨트는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억압하려 했다. 먼로주의는 남아메리카 각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반대했으나 루스벨트는 북아메리카의 군사적 우위에 의존했다. - P1299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뿌리 깊은 ‘중화세계질서‘ (Chinese world order)의 사유방식은 이른바 ‘서방의 충격’으로 하룻밤 사이에사라질 수는 없었다. 예를 들자면, 근대 초기에 외적이 침입했을 때조선은 청나라와의 전통적인 틀 안에서 대응했다. 생사존망이 걸린최후의 순간에도 조선의 실권파는 청나라 조정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1905년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겠다고 선포하기직전까지도 —1895년부터 조선은 중국에 대한 조공을 중단했고, 현대 사조는 중국을 ‘문명세계의 변두리에 있는 야만국‘으로 취급하 시작했는데도 조선은 중국의 종주권 이외에 다른 대안을 상상할 수 없었다. 러일전쟁은 "국제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불러왔고 그 영향이 유럽의 중심지역에까지 미쳤다. 이 전쟁은 중화세계질서를 완벽하게종결시켰다. 중화세계질서가 종결된 뒤 40여 년 동안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공간을 만들려 시도했다. 일본은 2차 대전 시기에 이런 구상에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연속성을 고려할 때 1차 대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에서 역사의 중요 분기점은1905년과 1945년이었다. - P1306

19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요소는 지휘구조의 집중화 기민화 체계화였다. 프로이센이 다시 일어서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1807-1813년에 실시한 전면적인 군사개혁이 프로이센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프로이센은 지휘관과 병사 사이의 전통적인 지시-복종 관계를 보다 이성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국가였다. 국왕이 프로이센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 되었고 그 아래에 군사기술과 지식 전시 동원을 담당하는 모든 참모부서가 집중 배치되었다. - P1309

19세기 중반부터 각국이 갖춘 무기의 수적인 차이가 전쟁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군비경쟁은 이제 국제관계의 영속적인 표지가 되었다. - P1311

상대가 백인이었을 때는 식민전쟁의 목적은 정복이 아니라 어떤 지역의 이탈을 막거나 이미 이탈한 지역을 탈환하는 것이었으며 인종주의적 이념은 적용되지 않았다. - P1315

‘종족’이란 요인 하나만으로는 식민전쟁의 잔혹함을 설명할 수 없다. 1812-1813년의 발칸전쟁 과정에서 백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의 잔혹한 정도는 같은 시기의 식민전쟁에 뒤지지 않았다. 전쟁포로는 전혀 보호받지 못했고 종족의 동질화를 위해 체계적인 테러가 자행되었다. - P1316

어떤 군대든 폭력을 통해 약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유격대와 에릭 홉스봄이 ‘사회적 반란자’라고 명명한 집단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로빈 후드 유형의 사회적 반란자에 대한 정의는 그들의 목표와 지지자에 의해 결정된다. ‘소규모 매복전’, 신출귀몰한 기습이 이들의 행동 방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 P1318

19세기는 전면전 요소가 형성된 시기였으며, 1914년 이전에는 전면전의 영향이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 P1321

1866년, 중국은 해외로부터 함선을 사들이기 시작하는 한편 국영 조선소를 세워 현대적인 함대를 보유하려 시도했다. 1891년까지 중국은 95척의 현대화된 함선을 취역시켰고 많은 해군장교가 외국 교관으로부터 훈련받았다. 이렇게 하여중국은 지역의 강자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서방의 관찰자들은 함대 건설에 역점을 둔 중국의 군사 현대화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해군함대는 온갖 유형의 함선을 끌어 모아 구성된 데다 4개의 독립함대로 나뉘어서 연해지역 성의 총독 관할 아래 예속되었다. 함대를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관할 성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휘 협조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함대가 출동했다. 1896년 중국 함대는 일본에 패했고 그 뒤로 반세기 동안 중국은 해군을 갖지 못했다. - P1324

원대한 안목을 갖추었던 중국의 일부 총독들처럼 일본 정치엘리트 계층의 지도적 인물들은 메이지유신 이전에 이미 강대한 해군을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1868년 이후로, 특히1880년대 중반부터 해군 건설계획은 국가의 첫 번째 중요 목표가 되었고 여기에 더하여 군비확장 경쟁의 자극도 받아 일본은 해군 증강 힘을 쏟았다. 해군 확장 ——늘 언급되는 공업화만이 아니라 은일본이 강국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비결이었다. - P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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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주문해 월요일 도착한 책들
그러나 오늘 또 주문해서 이번주 중 추가로 온다ㅠㅜ



주문한 책들이 모두 한 번씩 더 고민하고 주문한 것인데 잘 고른 것 같다.
물론 읽어봐야 더 판단할 수 있겠지만.

오른쪽은 굿즈로 노트광인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보다 이뻐서 더 만족!
그리고 사진엔 없지만 알라딘 이달의 커피까지.



빅터 프랭클은 몇몇 페이퍼에서 보고

그의 삶이 궁금해져서였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그가 과연 어떤 생각을 희망을 갖고 또 절망을 딛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궁금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보내는 메시지가 어떨지.
















숭배 애도 적대.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키워드를 갖고 있다.

유독 자살이 많은 한국.죽어 있는 한국 정치. 

죽음으로 내몰린 영령들.

분명 읽고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읽어야만 할 책이라 생각했다.




해외에 나갈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종종 보러 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미술을 너무 몰라 답답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하나 둘씩 이런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모르고 어렵지만 이런 친절한 안내서가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대한계년사를 읽고 있는 중이라 고종이 많이 등장한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국내에선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에서는 망국의 왕,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것.

대한제국을 바라본 저자의 시선이 궁금해진다.




거시사보다는 미시사를 좋아한다.

나는 숲보다는 나무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역사의 큰 흐름에서 놓치기 쉬운, 그리고 역사의 뒤안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찾는 것이 좋다.

미국의 역사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빈틈을 채워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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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들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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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근대 국가로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사건이다.

하지만 한국과 결코 뗄 수 없는 사건임에도 우리는 잊고 살거나 또는 잊고 싶거나 눈을 질끈 만들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 되던 2018년 출간된 것으로

메이지 유신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시각에서 바라보는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다.

작가는 기존의 메이지 유신 관련 서적들을 읽었지만 스스로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더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고 식민지 전쟁에 뛰어든 후 군국주의로 흘러간 이후의 역사는 오히려 익숙했지만

메이지 유신의 배경과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뒤로 미뤄져서 어느덧 이렇게 되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메이지 유신 사건 딱 그것만 설명하지 않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바쿠후(막부)와 번의 변화에 대해 긴 호흡으로 독자들을 이끌며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가톨릭을 조선보다 훨씬 일찍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도 가톨릭에 대한 극심한 탄압의 과정이 이어진다.


일본에 가톨릭을 전한 사람은 스페인 나바라 왕국, 지금의 바스크 지방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다. 

하비에르는 포교를 위해 인도 고아에 도착했고 말라카에서 일본인 안지로를 만나 일본땅으로 함께 가게 된다. 

이로써 일본의 가톨릭 신자 기리시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작년 말 크리스마스 때 TV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 조선의 천주교 신자 정약종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 때 기리시탄이라는 용어도 들었고 조선의 천주교의 유래와 가톨릭 특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이 부분을 읽을 때 더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바테렌 추방령(덴쇼 15년 6월 19일)으로 예수회와 기리시탄 다이묘(영주)들은 조선 침략 선봉에 서게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인도 고아의 알레산드로 발리냐노(예수회 동인도 선교 총책임자)는 히데요시를 달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협력을 부탁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출병한 일본 병사 중 기리시탄들이 이 때문에 많았다고 한다.

그럼 이후 일본에서 가톨릭은 순항을 했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포르투갈의 예수회로 가톨릭을 받아들인 것을 시기한 스페인의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도자기와 도기공에 대한 이야기다.

임진왜란 이후 도기공들이 많이 끌려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후 그들이 일본에서 어떻게 정착했는지 그 끝은 어떠했는지 다루고 있다.

그들의 노고로 일본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도자기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제 정세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누르하치가 명을 무너뜨리고 청을 세우는 동안 이어진 혼란으로 청나라는 1656년과 1661년 사이 해외 무역을 금지시킴으로써 자국의 도자기 수출이 중단되었다.

이 때 네덜란드는 중국 도자기로 이득을 보고 있었는데 그 대안으로 일본의 아리타에 주문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으로 갈 수 없는 정성공도 나가사키로 가 도자기를 사들였다.


정성공은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해상무역을 하던 정지룡의 아들로 타이완에서는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이 때의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역사는 이전에 읽었던 '도해 타이완사'를 통해서 읽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메이지 유신이 발생하는 1800년대 이후의 역사다.

메이지 유신은 조슈, 사쓰마, 사가 이 세 개의 번에 의해 달성되었다.

바쿠후(막부) 말기 번이 270여 개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 중 세 개의 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었나?

세 개의 번은 임진왜란 때 조선 출병에 가장 앞섰고 도쿠가와 바쿠후(막부)와 맞섰던 세력이며 영국 무기상과 밀착 관계를 가지며 무기를 사들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군대가 있었고 막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대를 움직일 무기가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책에서는 세 번에 대해서 챕터를 따로 두어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각 번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단점도 눈에 들어왔다.


물론 역사에서 빈 부분은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추측이 많다보니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남은 기록이 숨겨졌거나 지워졌을 뿐이지 

작가가 말한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고 그대로 신뢰하기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독자에게 머릿 속으로 상상해보는 묘미는 줄 수 있겠지만

역사는 팩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별 세 개를 준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장점이 더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니 직접 읽고 판단하기 바란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든 읽기 전이든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연구해오신 이 분의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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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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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1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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