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생일을 가진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에서는 음력을 뗀 날을 생일로 챙기고

집에서는 원래의 음력 생일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력 10월 10일 생일이라면

양력 10월 10일일 때 사회적으로 기념하고 음력 10월 10일이 되면 집에서 기념하는 식이다.

내 경우도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다.

실제 내가 태어난 음력 생일은 가족들만 알지 실상은 양력 생일을 기념하다보니 음력 생일이 되면 별 감흥이 없다.


나이를 먹는게 이제는 더 이상 즐겁지가 않고 

그저 나이만 들고 철은 여전히 들지 않은 것 같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늘어만 가고 해 놓은 것은 없고 그 사이의 간극이 커져갈 때 상실감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1년마다 돌아오는 가족의 메시지는 결코 흔하지가 않다.

늘 그 때의 나를 오롯이 느낄 수가 있어서인 것 같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는데 어머니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다.

나의 과거에 대한 본인의 미안함이 담긴 것이었다.

그걸 보고 좀 뭉클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첫째로 컸고 늘 부모와의 관계가 어려웠다.

자라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고 버거울 때가 많아서 부모-자식 관계를 놓고 싶은 경우도 많았다.

엄마와 딸의 관계가 어떤지 사실 잘 모르겠다.

모녀 간 사이가 좋은 경우를 많이 보지만 내게는 역시 멀게 느껴진다.

나는 엄마란 단어보다 어머니란 단어가 더 익숙하다.

여전히 엄마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건 그 때의 힘겨움과 상실감이 여전히 극복되지 못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마음 놓고 터놓기엔 그 세월이 너무 길어져서 이제는 그 기억과 감정조차 희미해지고 사그라들었는지도.


요즘 페미니즘. 그리고 젠더, 여성에 대한 책을 계속 읽어오다보니

어머니의 세월을 놓치지 않아야겠다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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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8 1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모 자식 관계란 참 미묘하죠. 뭔가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집이든 모두가 한두군데는 이런 미묘한 감정들을 다 가지고 있을테죠. 그래도 어머님이 메시지를 보내신 그 마음이 살짝 이해가 돼요. 그렇게 또 시작하는거죠. 어떤 관계든 멈춰 있는건 없으니까요. 힘내세요. 그리도 생일도 축하드려요. 전 요즘 나이먹는게 그리 나쁘지 않아요. 이것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거리의화가 2022-01-18 12:58   좋아요 3 | URL
제 동생들도 저와는 다른 모양이지만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 느껴요.
이제 서로 만나면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게 좋더군요.
부모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나아가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나아지는 거겠지요.
나이가 먹는 건 아쉽지만 지금의 안정됨이 좋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갈래 하면 NO하렵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8 1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녀관계!!! 특히 큰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화가님의 마음을 좀 이해할 것도 같아요. 저는 엄마가 분명 나를 애타게 사랑하는 듯도 한데 엄한 잣대를 대는 것 같은 섭섭함이 한 번씩 있었는데,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지기도 하고...여성으로서의 삶으로 바라보니 엄마가 존경스럽기도 하고...뭐 지금은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 되어 버렸지만요.
화가님을 생각하시는 어머님의 메세지가 화가님의 마음을 더 살갑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 싶네요.
암튼 생일 축하드립니다. 제 지인 중 한 분이 생일을 그렇게 지내시더라구요. 그래서 두 번 생일축하를 받는 것 같아 부러우면서...지켜보니 가족들이 챙겨 주는 생일이 더 의미있어 보이더군요?^^
암튼 가족들이 챙겨 주는 생일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1-18 13:19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큰딸과 엄마. 좀 더 특별한가요? 뭔가 애증관계 같기도 하고...^^;
저도 어머니가 제게 거는 기대가 많이 크셨어요. 동생들도 있고 뭔가 제가 집을 꾸려가는 것도 아니면서 신경질적이었던 것 같아요.
비록 엄마가 되보진 않았지만 결혼을 해보니 어머니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아닌 누군가의 소개로 하는 결혼이어서 그것만으로 난 불가능한 일인데 어머니는 결혼 이후 맞춰가느라 힘드셨겠다란 생각 들더라구요.

독서괭 2022-01-18 1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나의 가련한 지배자> 읽고 있는 책이라 반갑습니다^^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도 이 책 보고 사볼까 했는데 리뷰 읽어보니 별로일 것 같아서^^; 안 보려하는데 화가님은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장녀들의 경우 엄마가 의지하면서도 지배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저희 집도 언니랑 엄마 관계가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었답니다. 서로 나이들면서 많이 나아졌지만요. 둘째들은 첫째가 혼나는 거 보면서 눈치껏 몸 사리기 땜에 덜 혼나고 관계도 덜 망가지는 것 같아요.. 저도 애들 보면 확실히 둘째가 눈치가 발달했더라구요. 생존 본능인지..

거리의화가 2022-01-18 13:44   좋아요 4 | URL
저 책들 괭님 페이퍼 보고 담아놓은거고 아직 읽진 못했어요. 그 글 보고 좀 많이 마음이 뭉클했고 아팠어요. 읽고 있는 책들이 많아서 조금씩 짬짬이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읽고 나서 공유할게요.
엄마가 맏딸에게 거는 기대는 확실히 좀 큰 것 같아요. 둘째인 제 여동생 생존본능 강합니다 눈치도 빠르고 약삭빠르구요^^

독서괭 2022-01-18 14:11   좋아요 2 | URL
앗 제 페이퍼 보고 담으신 거라니🥰

다락방 2022-01-18 14: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엄마에 대해 아주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장녀입니다. 엄마가 결혼하지 않고 그래서 나를 낳지 않았다면 엄마 인생은 얼마나 자유로웠을까를 아주 자주 생각하고, 아빠 때문에 속상해하고 스트레스 받을 때면 엄마에게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아빠랑 이혼하라고도 얘기를 해요. 엄마가 엄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저는 알고, 그래서 제가 엄마를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엄마랑 친하고 엄마가 자식들 키우느라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엄마 비행기 처음 태워드린 것도 저고 엄마를 모시고 미술관에 다녀온 것도 저예요. 아무리 뭘 더 해드려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엄마의 가장 젊은 시절과 그 때의 에너지를 몽땅 저희들에게 쏟았다는 걸 자꾸 인식하게 돼서요. 이것도 장녀 컴플렉스, 그런걸까요?

그런 한편 아빠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미움이 자리하고 있어요. 아빠가 무능력했기 때문에 엄마가 고생했다는 생각을 저는 버릴 수가 없어서요. 아빠에 대해서라면 저희 삼남매가 가진 감정이 다 다르더라고요. 아빠는 하나이고 우리 모두 자식인데 저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늙고 가진 것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만을 가졌달까요. 잘해드려야지, 생각하다가도 불쑥 엄마를 고생시킨 사람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장녀들 중에 아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1-18 15:03   좋아요 3 | URL
음. 다락방님 말 들으니 전 참 많이 이기적이고 쌀쌀맞거나 매몰찬 딸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서 거는 기대에 부응한다고 온갖 폼은 다 잡고 달려간다고 했지만 그 끝은 그닥 좋진 않았어요.
집안 형편을 별개로 동생들이 저로 인해 분명 손해본 면도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미안함도 있는데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저는 오히려 그것을 큰 소리로 숨기려 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어머니와 동생들도 저로 인해 상처받았던 경우가 많았을겁니다.
저도 제 성격이 모나고 모자른 것이 많다 여기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그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다락방님 말씀처럼 많이 달라요.
전 아버지께 많이 분노를 느끼며 자랐고 아버지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앙금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을 겁니다. 이건 장녀에게 거는 기대와는 또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1-18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루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옛날 일 생각하면 한 번씩 엄마에게 섭섭한 게 있지만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꾸 엄마의 세월이 먼저 생각되고 엄마가 이해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희미해지고 사그라들고 ㅎㅎ

거리의화가 2022-01-18 19:05   좋아요 3 | URL
네 어머니하고 한번씩 이야기해요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니냐면서. 힘들었던 시간들도 살다보니 희석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이것저것 경험해보니 이해가 되는 면도 있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