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5백년 고려사 - 박종기 교수의 살아있는 역사 읽기
박종기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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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묵힌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집의 먼지가 하루만 지나도 쌓이는데 세월이 훌쩍 지나간다면 어떻겠는가. 이 책도 언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묵힌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확인차 뒷면을 보니 2013년 6쇄본이라고 적혀 있었다.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니 신판이 2020년에 나와 있었다. 신판이 나온지도 몇년 전인데 구판을 읽으려니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책을 폐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기에 집어들었다. 내용에 변화가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앞으로 집에 있는 책들을 너무 묵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 책은 5백년에 가까운 고려사를 한 권에 담고 있다. 저자인 박종기 교수는 고려사 전공자로 관련 책들을 많이 내신 분이라 어느 정도 믿음이 갔다. 조선사는 사료가 많아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를 접할 수 있고 고대사는 사료는 적지만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오히려 역사가 제법 다뤄진다. 그러나 고려는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가르치는데다가 그것도 외교와 문화 분야에 치중되어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자는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고려의 역사와 전통을 대한민국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학이 식민주의 근대화론도 아니고 민족주의론도 아닌 제3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전쟁으로 인한 분단 이후 이념의 고착화로 여전히 이분법적 논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고려의 역사를 확인하면서 오늘의 현실에 투영해야할 메시지는 특히 ‘다양성’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고려왕조는 매우 다원적인 사회였습니다. 중앙에 외척이나 문벌집단과 같은 폐쇄적인 정치집단이 존재하면서도, 끊임없이 향리와 같은 지방세력을 중앙으로 흡인하여 새로운 관료집단인 사대부집단을 형성해 다양한 정치사의 전개가 가능했습니다. 또한 군현 지역과 부곡 지역 등 복합적이고 차별적인 지방제도를 통해 민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해나가는 한편, 청자와 불화로 대변되는 고도의 질을 추구하는 고급문화와 거대한 불상∙성황신앙∙향도신앙 등 지방세력의 독자적인 지방문화가 병존하는 사회였습니다.

고려가 이처럼 다원적인 사회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와 백제의 인적∙문화적 자원을 흡수하여 최초의 실질적인 민족통일을 완성했기에 가능했습니다. (P44)


고려왕조는 지방의 호족세력이 주축이 되어 세웠기 때문에 왕건은 그들을 포섭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호족의 근거지를 본관으로 삼고 성씨를 부여해주면서 그 지역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본관제가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덕분에 도망하는 민도 줄어들었고 토지를 개간하여 농업 생산량이 향상되어 향촌이 안정될 수 있었다. 


고려의 기본적인 토지제도는 ‘전시과’였는데 이는 개인, 관청이 독자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국가세입지만 필요한 예산을 지급하고 국가가 조세를 직접 수취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역(직업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토지가 1:1로 지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역 간 발전 격차가 컸기 때문에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해서였다. 다만 사전의 독자적인 운영이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거나 탈점(오늘날의 ‘먹튀’라고 할까)까지 일으켜 항쟁과 민란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고려 신분제는 양천제로 양인에는 직역을 부담하는 정호, 일반 요역을 부담하는 백정, 기능직을 담당한 잡척이 있었고 천인에는 노비가 있었다.

고려는 전국을 경기, 5도, 양계로 나누었다. 경기는 개경을 포함한 중심 지역이고 5도는 지방 중심 구역, 양계는 군사 중심 지역이었다. 지방은 군현-주현-속현-향/소/부곡으로 명칭이 구분되었다. 주현은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되는 곳이고 속현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점이 달랐다. 총 500 여개의 군현 중 370개의 속현, 130개의 주현이 존재했는데 고려 말, 조선 초가 되면 대부분의 군현이 해체가 된다.


고려의 외교를 보통 실리 외교라 부른다. 이 때 강동6주를 포함한 압록강 유역은 고려 뿐 아니라 부근의 국가들에게 중요한 위치였는데 방어적으로 요충지여서만은 아니고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러 외침이 있기는 했지만 고려는 몽골이 등장하기 전까지 실리적 외교를 펼쳐 나갔으나 그 이후에는 불가능해진다. 몽골은 쿠빌라이가 집권하면서 국호를 원으로 바꾸었고 국가의 성격도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고려의 대외정책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으며 고려는 원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 


고려 문화 하면 팔만대장경, 불화, 석불, 청자 정도만 떠올렸는데 나전 기술과 팔관회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특히 팔관회는 고려가 천자국임을 과시하고 다양한 민간 신앙을 국가에 녹여내어 통합력을 높이는 구심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고려 사회에 대표적인 문화가 아니었나 싶다.

고려 사회는 균분상속, 윤행봉사,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는 등 남성에게만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 문화였다는 것도 다시 새겨두고 간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Korea라는 명칭은 고려를 외국이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2주 전인가 <역사저널 그날> TV 프로그램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는데 ‘고려’라는 명칭은 궁예가 먼저 쓴 것이라고 하더라. 물론 이것도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나 가설일 뿐 알 수 없다. 


고려의 역사는 우리에게 전쟁과 외교, 화려한 문화 정도만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조차도 시험 공부를 할 때는 핵심만을 공부하듯 해당 부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어 반성의 마음이 일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측면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학문인 것 같다. 


얇지만 꽤나 알찬 책이다. 책의 각 페이지에는 고려의 역사적 사건이 연도별로 적혀 있어 센스를 더했고 거의 매 챕터마다 저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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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14 0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사둔 책이지만 지금이라도 보셨군요 얼마전에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을 보셔서 이것도 보신 게 아닌가 싶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1-14 08:49   좋아요 1 | URL
네. 고려사 읽기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고려거란전쟁> 사극이 시작된 것도 있어서 겸사겸사로요^^
 
칭기스 칸기 라시드 앗 딘의 집사 2
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옮김 / 사계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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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드 앗 딘의 집사 시리즈 중 2편과 3편의 내용에 호기심이 있었다. 한반도의 역사와 더 연관 있는 것은 3권이겠지만(무신 정변, 몽골과의 항쟁 등) 2권은 테무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칸의 자리에 오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칭기스 칸은 1155년에 출생하여 1227년 73세에 사망했다. 1155년 그 해는 금나라가 세워지고 1126년 정강의 변이 있은지도 거의 30여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칭기스 칸은 1115년 적대 관계였던 타타르 종족에 대한 원정을 나갔다가 어머니인 우엘룬 에케가 그를 임신하였다고 한다. 


그는 손에 마치 간처럼 생긴 복사뼈만한 응혈을 움켜잡고 있었고, 그의 이마에는 세계 정복자의 징표가 분명히 보였으며, 행운과 번영의 빛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바로 얼마 전에 이수게이 바하두르가 타타르와 그 군주인 테무진 우게에게 승리를 거두고 적을 눌렀기 때문에, 그것을 상서로운 징표라고 생각하여 그 타타르 군주의 이름을 따서 영광스런 자식에게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P126)


일단 어느 영웅의 평전을 읽는 것처럼 일화 등을 미화시켰음을 감안하면서 읽어야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테무진의 이름에 대한 유래다. 승리한 전투를 기념하여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좋은 기운을 아들에게 불어넣어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버지 이수게이 바하두르는 자신의 형과 아우들 및 친족들의 지도자로 있는 동안 다른 종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수게이가 13년 만에 사망했을 때 테무진과 형제들은 어렸고 자신의 종족을 보호하는데 최우선을 두어야 했다. 게다가 테무진이 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형제들과 벌인 싸움은 오죽하겠는가. 이 과정을 겪고 최종 승리자가 된 테무진은 어쨌든 남다른 점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이수게이 바하두르의 아들은 테무진 말고도 주치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옷치긴, 벨구테이 노얀이 있었다. 초반에는 그의 친족과 사촌들, 부형들이 그가 있던 목초지와 가까이 있어 그들을 처리하는 데 30여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나서 테무진이 칭기즈 칸에 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두 번의 단계가 있었다. 일단 케레이트의 군주인 옹 칸을 패배시키면서 ‘칭기지’(‘위대한 군주’라는 뜻)가 된 것이 첫 번째, 그 뒤 나이만의 군주인 타양 칸을 죽이고 스스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칭호를 ‘칭기스 칸’으로 한 것이 두 번째다. 


칭기스 칸이 옹 칸의 군대를 공격하여 그와 그의 아들을 패주시키자, 케레이트 종족들은 그에게 복속했고, 그는 그 나라와 울루스를 장악했다. 1203년에 해당한다. 그가 이처럼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군주의 대업이 그에게 확정되었고, 주변에서 종족들이 그에게 귀순해 들어왔다. 거대한 회의를 열고 크나큰 은총에 감사하면서 준엄하고 자비로운 법령들을 선포하고, 상서롭게 칸의 자리에 앉았다. (P226)


1206년 초봄에 칭기스 칸은 9개의 다리를 지닌 흰 깃발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장엄하게 쿠릴타이를 열어, 축복을 받으며 보좌에 앉았다. 이 칭호를 정한 사람은 콩코탄 종족 출신인 뭉릭 에치게의 아들 쿠케추-텝 텡그리라고도 부른다-였다. ‘칭’의 뜻은 ‘강하고 단단하다’는 것이며, ‘칭기스’는 그 복수형이다. (P252)



그렇다면 당시 몽골은 동아시아에 있는 부족들의 이름을 어떻게 불렀을까. 아무래도 우리와 연관이 깊은 동네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데 (부록에 있는) 지도를 보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몽골인들은 그 지방들을 ‘자우쿠트’라고 부르고, 키타이 주민들의 용어로는 키타이를 ‘한지(漢地)’라고 부른다. 그 지방과 마친과의 경계는 카라무렌 건너편에서부터 바다에까지 이어진다. 키타이 사람들은 마친을 ‘만지(蠻子)’라고 부른다. [키타이 지방의] 또 다른 경계는 주르체 지방과 접하고 있다. 주르체라는 말은 몽골인들의 표현이고, 키타이 언어로는 그것을 ‘누지(女眞)’라고 부른다. 또 다른 경계는 카라키타이 지방과 평원과 접해 있다. 그[곳의] 종족들은 모두 유목민이다. 그들은 유목민들과 접해 있으며, 언어와 외모와 풍습도 비슷하다. 키타이 언어로는 [카라]키타이의 주민들을 ‘치단야르(契丹)’라고 부른다. 또 다른 경계는 거듭 칭기스칸에게 복속했던 지방들과 접해 있는데, 각자 독자적인 명칭과 군주를 갖고 있다. 그들의 외모와 풍습은 키타이와 힌두와 비슷하며,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다. 상술한 지방들 가운데 일부는 티베트 지방에, 또 일부는 카라장 지방과 접해 있다. 키타이 사람들은 카라장을 ‘다이류’라고 부르는데, ‘커다란 지방’이라는 뜻이다. (P273~274)


칭기스 칸의 몽골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지금의 키르기즈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의 중앙아시아, 더 넘어 이란(이라키 아잠),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이라크(이라키 아랍)의 서아시아까지 진출했다. 특히 1211년에는 키타이, 카라키타이, 주르체 등의 지방을 정복하기 위해 출정했다. 


몽골군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즉시 키타이와 카라키타이와 주르체의 군대를 격파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그 부근의 평원이 온통 악취로 진동할 정도였다. (P278)

간략하게 적었지만 이런 모습은 책에서 거의 매 전투마다 나온다. 너무 끔찍하고 잔혹해서 입에 담기도 불편한 장면들이었다. 


칭기스 칸은 탕구트 지방을 정복하고 난 뒤 돌아와 아들들과 있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 1년이나 걸리는 거리인 광대한 왕국을 너희 자식들을 위해 정복하여 완성시켰노라. 이제 나의 遺志는 너희들이 적을 물리치고 친구를 치켜세워 주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편안하고 풍요롭게 인생을 보내고 왕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우구데이 카안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이렇게 충고했다. “너희들은 각자의 왕국과 울루스로 가라. 너희들은 내가 죽은 뒤 법령을 바꾸지 말라.” 

칭기스 칸이 사망한 1227년은 무신 집권 시기였고 집권자는 최우였다. 불과 4년 뒤 1231년 고려와 몽골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이전 일이라 해도 감정 이입이 안 될수는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몽골 전쟁 당시 칸의 일대기는 3권을 읽으면 정리가 가능할 것이다.  


참고로 책에서는 몽골의 역사를 앞에서 설명하고 뒤에는 동시대의 키타이와 카라키타이와 주르체, 투르키스탄, 서아시아에 있던 이란, 시리아, 이집트의 칼리프와 술탄의 연대기를 다루지만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기록이 소략하고 뒤쪽 비중이 자세하다. 아무래도 이는 저자가 이란 출신이기 때문에 자국의 역사에 대한 접근(자료 등)이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대기 동안 벌어진 사건들과 일화들(성경 말씀 같기는 하지만… 예를 들어 “자신의 내면을 깨끗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왕국에서 악을 없앨 수 있다.” 이런 것들…)도 흥미로운 것이 많았다. 사건은 대부분 자연 재해의 기록이 보인다. 조선왕조실록도 보면 ‘지진’이나 ‘가뭄’ 등의 기록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백성들에게도 피해였으나 지배층에게는 하늘의 경고처럼 받아들여졌음을 느끼게 한다. 


1권의 리뷰에서도 적은 것 같지만 집사 시리즈를 읽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일단 이름들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뒤적뒤적해야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름은 '이즈 앗 딘 마수드 이븐 누르 앗 딘 아르슬란샤 이븐 이즈 앗 딘 마수드 이븐 쿠틉 앗 딘 마우두드 이븐 이마드 앗 딘 젱기 이븐 악크 송코르' -> 이러했다. 어느 지방의 영주 이름이고 물론 단 한 번의 출연이지만 이리 길다니 당시 사람들은 이를 외우기나 했을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읽었던 이름을 잊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나오는 이름을 옆에 적고 뒤에 나오는 이름들을 확인하면서 관계도를 그리는 것을 추천한다. 

부록으로 칭기스 칸과 조상들의 족보들을 싣고 있는데 『집사』 버전과 『몽골비사』 버전을 함께 넣어서 비교하며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정리 차원에서 보거나 추후에 계보를 확인할 때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인데 부록에 있는 지도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형(강, 산맥 등)과 도시명을 짚어가면서 공부해야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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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y Ball (Hardcover)
白希那 / 接力出版社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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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동화에 짧은 내용으로 중국어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혼자 노는 일에 익숙한 아이가 알사탕을 접하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소리를 벗삼는 아이의 마음이 짠하기도 하면서 조그마한 일에도 의미를 담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 가을의 풍경과 닮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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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7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07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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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을 생각하기 힘든 시대다. 점점 더 사회는 각박해지고 개인은 각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타인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그들을 외면한다. 나도 마음으로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장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마음을 실천하는가 물어보면 선뜻 답할수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 사회 문제의 원인을 다룬 철학/사상가들의 이론들과 현실의 미국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을 쉽게 그 세계로 안내한다. 


차별과 혐오라는 단어가 익숙해졌음은 과거보다 그만큼 그것들을 이슈화하면서 문제시여기고 개선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타인을 배제하려는 감정을 여러 모로 분석하고 있는데 시작은 ‘두려움’부터다. 

저자는 두려움이 인간이 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자 동물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인식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 원초적인  감각이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자신의 행복에 위협이 닥쳤음을 느낄 때 일어난다. 

나쁜 일들은 쉽게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진실에 무관심하고 서로의 거짓말을 반복하는 폐쇄적인 집단의 안락함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앞장서서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자궁과 같은 평온함을 제공하는 지도자의 위안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려움의 고통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그들을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 P94


두려움은 분노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 분노는 보복을 포함하고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저자는 자기 안의 분노에 저항하고 정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부정의한 정치 문화에 대한 분노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숙고하지 않고 성급하게 내린 판단에 의한 분노나 이유 없는 분노는 돌아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정돈된 세상을 갈망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헛된 해결책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복잡한 진실을 파고드는 일은 어렵고 개인의 기쁨을 보장하지 않는 세상에서 희망을 품고 사는 것보다 마녀를 불태우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분노는 확실한 생각을 동반하는 명확한 감정이다. 강하고 남성다운 중요한 감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노는 두려움의 산물이다. - P118


혐오는 인지하는 감정으로 두려움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혐오를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다. 원초적 혐오는 죽음이나 동물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상에 대한 것이고 투사적 혐오는 나(우리)는 순수하고 그들은 내 발 밑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 전래동화에서 악당들은 사회적 혐오의 투사 대상이었고 현실에서 유대인, 장애인, 성소수자들에 대한 배제와 혐오까지 이어졌다. 혐오를 조장하는 두려움이 극대화되면 범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큰 불안을 느낄 때 취약한 집단을 비난하며 성급하게 희생양으로 삼는다. 우리는 이제 혐오를 외부로 투사하는 그들이 자기 신체의 취약성과 유한한 목숨을 인식하고 있음을 안다. 혐오는 언제나 두려움을 유발하는 특정한 생각과 결합된다. 하지만 혐오가 두려움에 관한 것이며 구체적인 두려움들의 집합이 연료가 된다면, 다른 조건이 같을때 불안정한 시기일수록 혐오 집단의 필요성이나 낙인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를 인식한다면 숨겨진,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난 편견을 물리치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P170


시기심은 상대에 대한 적대감과 파괴욕이다. 시기심은 타인이 가진 것에 주목하여 자신의 상황이 그보다 못하다 비교하면서 느끼는 열등감으로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긴장과 적대감으로 발전한다. 화려한 스타를 좇는다거나 SNS에서의 자기 자랑 경쟁에 열중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고 타인 경시에 대한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시기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은 인간의 불안한 삶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인간관계든 정치계든 순수함에 대한 추구가 자신 혹은 타인에 대한 증오의 해결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시기심이 통제불가능할 정도로 자라지 않는 조건, 사랑과 창조적인 업적을 국가의 길을 밝히는 조건으로 만들어 시기심의 고삐를 묶어야 한다. - P205


두려움과 혐오, 시기심은 동시에 발생하여 서로를 강화한다. 여성의 평등을 방해하는 사회적 조건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 육체성을 가진 여성, 성공한 경쟁자로서의 여성이다. 저자는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를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 성차별주의는 “불쌍한 여성들. 언제나 능력 발휘를 못하지.” 같이 무능력함에 기반하는 것이고 여성 혐오는 “여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같이 자신들의 영역 안으로 여성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행동 양식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 당연하다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다.
성차별주의는 문제다. 하지만 성차별주의자들의 믿음은 증거로 반박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이다. 여성 혐오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전적으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영리한 전략은 아니다. 이는 아이들이 싫다고 외치며 발로 바닥을 치는 것과 비슷하다. 변화를 거부한다고 여성혐오자들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계급 남성의 건강 악화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얻게 되지도 않는다. 그들이 아직 직면하지 못한 문제 역시 해결해주지 못한다. 다시 사랑과 돌봄을 주고받는 방법, 여성들의 경제 활동과 성취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새로운 핵가족을만들어나가는 방법 말이다. 여성 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유독한 감정들의 조합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모든 감정을 뛰어넘어 모두를 위해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전략이다. - P242~243


저자는 미래를 위해 신중하고 이성적인 비판 정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행동과 헌신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칸트의 실천적 요구 개념을 가져왔다. 

칸트는 우리가 사는 동안 가치 있는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행동의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서로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행동 말이다. (칸트는 개인적으로 세계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칸트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노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절감하고 있었다. 옳지 않은 행동과 증오가 난무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다운 행동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된다. ‘인간이라는 종은 전반적으로 호감이 가는 종인가 아니면 재앙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칸트는 전제 군주제, 노예 매매, 침략적 민족주의, 종교의 자유와 언론 자유의 부재 등과 같은 악도 공격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치 있는 사회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면 스스로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희망을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칸트는 ‘실천적 요구‘로서의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충분한 이유 없이도 올바른 행동을 위해 취해야 할 태도다. - P258


희망을 품고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상적 지침들이 있다. 가정, 개인 간 우정을 잘 돌보기,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집단 간 토론을 이용한 비판적 사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 단체, 폭력을 지양하는 정의적 대화를 추구하는 연대 단체, 정의에 대한 이론들이다. 결국 개인에서부터 나아가 서로 연대하여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악법을 개정해나가는 것들이 그 노력의 일환이 될 것이다. 말은 쉽지 실천은 어려운 일들이다. 그렇지만 넋놓고 있으면 후퇴할 뿐이다. 결국 희망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한다. 온당한 사회라면 사회 제도를 설계해 집단적 증오를 최소화할 방법에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일반 교실에 편입시키는 간단한 정책만으로도 두려움과 공격성의 형태는 눈에 띄게 변화한다. 다른 많은 이슈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증오와 혐오를 유발하는 정책 대신 희망, 사랑, 협력을 장려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증오를 숨긴 채 행동 양식만 바꾸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 아동의 일반 교실 편입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느끼는 관점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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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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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올라와 계속 몸을 뒤척였다. 좋은 책은 이렇게 많은 감정을 오가게 하는구나 싶다. 한편 정말 좋을 때는 오히려 정리하기가 힘든 것 같은데 이 책도 그렇다.

작년 말 출간된 솔닛의 책 <야만의 꿈들>을 읽어보고 싶어 사두고는 여전히 읽지 못했다. 그녀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선뜻 도전할 수가 없어 그 책을 읽기 전 먼저 입문서 성격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이 책은 얇은데 솔닛의 대표작이기도 해서 선택했다.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데 정작 솔닛은 이 책에서 말하길 자신은 그 단어의 탄생과 관계가 없고 심지어 그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모든 남자에게 그런 타고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느낌 때문). 어쨌든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는 분명하지만 그 용어가 이제는 통용되고 있다.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내가 그동안 해왔던 생각과 행동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그러면서 좌절감이 이는데 자꾸 내 과거의 흑역사를 떠올리면서 자기고백이 되는 것이다. 왜 페미니즘 책은 자기고백 현장이 되는지... 결국 내가 여전히 지식의 깊이가 얕고 앎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말을 무시하거나 가로막는 태도에 대해서는 <워드 슬럿>이란 책에서 살펴본 바가 있었다.

[15]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모든 남자들이 여자들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솔닛도 친절한 남자들이 존재하며 그들과의 대화는 즐겁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나부터 어릴 적 소극적인 태도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나서는 것에 대하여 숱하게 들어왔던 험한 말들은 나를 열등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지나친 자기비하로 이어져 꽤 오랜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 과잉과 자기 확신에서 상대를 찍어누르려는 권력 지향의 발현이다. 이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언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45]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폭력의 극단적인 형태는 강간을 넘어선 살인일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폭력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데이트폭력 같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이것은 요즘 이슈화된 것 같지만) 같은 것이다. 너무나 흔해서 문제시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이라 생각하며 공동체와 국가가 가볍게 여기는 현장이다. 이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죽는데 이를 왜 좌시하는지 모르겠다.

[63] 이 나라에서는 매년 87,000건이 넘는 강간이 벌어지지만, 모든 사건은 제각각 동떨어진 일화로만 묘사된다. 점들은 하도 바싹 붙어 있어서 하나의 얼룩으로 녹아들 지경이지만, 그 점들을 잇거나 그 얼룩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침 이번 달 정희진의 오디오 매거진에서 ‘가정폭력‘에 대해서 다루어서 자연스레 내용이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폭력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가정에서 얻은 폭력의 경험들이 사회로까지 나아가기 무척 쉽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이를 공동체에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98] 아내의 인생은 아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것이었다.
이제 그런 시대에는 단호히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 대신 다른 문을 열 때다. 모든 상황에 놓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서로 다른 젠더들 사이의 평등과 결혼한 파트너들 사이의 평등을 반갑게 맞아들일 문을. 평등결혼은 위협이다. 불평등에 대한 위협이다. 평등결혼은 평등을 소중히 여기고 평등으로 혜택을 입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

울프와 손택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솔닛에 따르면 둘이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달라서 흥미로웠다.

[126~129] 세상에는 다른 울프도 많지만, 나의 울프는 내게 방랑하기, 길 잃기, 익명성, 몰입, 불확실성, 그리고 미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안내해준 나의 베르길리우스였다.
손택은 우리에게 어둠을, 미지를, 불가지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에 현혹되어 다 이해한다고 믿어버리거나 스스로가 고통에 무감해지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말한다. 그녀는 앎이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마비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그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가지 손택이 말하지 않은 점은, 우리가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해서는 반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148~149] 계량 가능한 것의 폭압은 우리의 언어와 담론이 좀더 복잡미묘하고 유동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데 실패한 탓이기도 하다. 그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고 아끼자는 의견을 형성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실패한 탓이기도 하다. 호명할 수 없거나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아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불가능할 때도 있다. 따라서 호명과 묘사는 현 상태의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항하는 어떤 반란에서도 긴요한 작업이다. 반란은 상상력의 반란이다. 미묘한 것, 돈으로 살 수 없고 기업이 구사할 수 없는 즐거움, 의미의 소비자가 되기보다 생산자가 되는 것, 그리고 느린 것, 배회하는 것, 일탈하는 것, 캐묻는 것, 신비스러운 것, 불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반란이다.

6번 챕터는 통째로 기억해두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내용들이 많았다. ‘판단하지 않고 유보하기‘, ‘불확실한 것을 인정하기‘, ‘계량 가능한 것에 대해 저항하기‘ 등. 모두 다 내가 잘 실천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보여야 들어오는 사람이며 계획이 우선시되는 사람이며 방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큰 사람이다. 울프는 밀림에서 길을 잃을 줄 알아야 창조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산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떨어서 산책을 한다거나 불확실한 상황에 내던졌을 때 두려움을 이길 용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눈을 크게 뜨고 어둠 속으로 들어갈 힘은 책을 읽을 때도 적극적인 독자로서 필요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제 정말 울프와 손택의 책을 읽어야겠다 결심했다.


저자인 솔닛은 기본적으로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는 것 같다.

[134] 내게 희망의 근거는 단순하다. 우리는 다음에 벌어질 일을 모른다는 것, 세상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꽤 자주 벌어진다는 것. 비공식적인 세계사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헌신하는 개인들과 대중운동들이 역사를 만들 수 있으며 만들고 있다는 것.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이길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절망은 확실성의 한 형태다. 미래가 현재와 거의 같거나 현재보다 쇠락하리라고 믿는 확실성이다. 절망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다. 절망과 낙관은 둘 다 행동하지 않을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현실이 반드시 우리 계획과 일치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희망일 수 있다.

현재는 더 이상 나빠질 게 없을 정도로 암담하더라도 과거의 많은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현재가 더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사실 나도 이 부분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현재를 더 잘 알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준비하기 위함이다. 준비는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다음과 같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는 있다.

[213] 심오한 사회변화는-가령 페미니즘의 득세처럼-전혀 다른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 현실에 혁명의 이상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시대 혁명가들은 현대의 바스띠유 습격에 해당하는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시점에는 우리가 이미 아는 역사로 되돌아가서 이렇게 물어보는 게 도움이 되는 법이다. 정말로 혁명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것이었을까?

[221] 나는 미래에는 더이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 논의가 앞으로 남성에 대한 더 깊은 탐구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페미니즘은 인간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벌써 많은 남자들이 이 사업에 가담했으나, 이 사업이 어떻게 남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현재의 상태가 어떻게 남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고민이 가능하다.

매일 신문을 읽는데 금요일마다 젠더살롱이라는 코너를 눈여겨본다. 거기에는 남녀 필진이 함께 있는데 남성 필진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여 세심히 챙겨본다. 나는 페미니즘이 여성에 대한 권리 주장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남성에 대한 탐구도 같이 이루어짐으로써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혁명은 균열, 파열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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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1-03 14: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대다수의 남자들은 여자가 말하는 것 자체를 못참더라고요. 응, 그거 아니야^^ 라는 말을 이해를 못함. 지들끼리 경쟁에서 진게 억울해서 여자한테는 무조건 우쭈쭈, 존중 받아야 하는 계란 껍질처럼 유약한 자아…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한 건데 남자여서 존중받는 게 당연함. 존중은 당연한 거 아니라고 하면 어딜감히ㅋㅋㅋㅋㅋ. 인간의 기준=남자

잠자냥 2023-11-03 15:07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 저한테도 여기서 첫 댓글로 맨스플레인 하던 분 있어서 그 후 결코 말 섞지 않음. 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1-03 16:05   좋아요 1 | URL
@공쟝쟝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네요ㅋㅋㅋ

@잠자냥
경험이 있으셨군요!ㅠㅠ

책읽는나무 2023-11-03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을 읽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게 되는 경험.
저도 요즘따라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여성주의 관련책들이 주로 그러한 것 같던데 화가 님의 첫 문장부터 와 닿네요.
솔닛의 예전에 알라디너님들이 몇 년 전 이 책 읽으시고 쓰신 리뷰들을 찬찬히 읽던 지난 기억들도 떠오릅니다.
그시절 페미니즘이란 용어도 아마 처음 접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 문장, 생각의 혁명은 균열, 파열부터가 시작이다. 밑줄 긋고 담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3-11-04 16:27   좋아요 1 | URL
그런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솔닛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한참 리뷰가 올라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솔닛, 울프, 손택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점점 독서할 목록이 늘어갑니다^^ㅋㅋㅋ 나무님 감사해요.

은오 2023-11-04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책 읽으면 흑역사 떠오르면서 괴로운거 저도 그래요...ㅠㅠ 하 정작 흑역사 현재진행형으로 산더미처럼 쌓고 있는 놈들은 페미니즘책 안 읽음.... 그 사람들도 좀 괴로웠으면 좋겠네요 우리만 괴롭기 억울하다!!

거리의화가 2023-11-05 06:50   좋아요 1 | URL
그렇죠?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공부의 시작인데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