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잘도 흘러간다. 벌써 4월도 중순이 훌쩍이라니. 요즘은 산책을 하며 꽃 사진 찍는데 열을 올린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미세먼지와 황사가 잦아서 쾌청한 하늘을 기대할 수 없어서인지 하늘 사진은 덜 찍게 된다.
꽃의 화사함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우울했다가도 맑아짐을 느낀다. 내 안의 더러운 때가 맑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옆지기는 2주 연속 야근 모드라 아침에 배웅하고 나면 내내 홀로 집을 지켰다. 왠지 집순이가 된 것 같아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한동안은 이럴 것 같다. 돌이켜보니 예전에 옆지기가 한동안 지방에 내려가 일을 해야해서 강제로 주말부부가 되어야했던 적이 있다. 사실 주말부부가 별건가. 지금도 주중에는 아침/저녁에 잠깐 얼굴 보는 게 다인걸. 그 때는 당연히 지금보다 어렸고 더 뜨거웠을(!) 때니 허전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뭐 혼자 있어도 너무나 잘 논다. 혼자 있어도 참 잘 놀고 잘 살아서 옆지기가 한때 물어본 적도 있다. “뭐 그렇게 할 일이 많아?” 사실 내가 하는 일의 범위란 크게 벗어난 적은 없다. 기껏해야 쌓여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읽고 한 번씩 기지개를 켰다가 가까운 곳에서 산책을 하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이따금 사람들을 구경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 그게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아! 정말 가끔 문화 생활을 하는 것도.

지난 주부터는 철쭉이 하나 둘 피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에는 철쭉이 참 많기도 한데 찍고 보니 이상하게 자줏빛, 빨강, 하얀 철쭉만 있다. 분홍색 철쭉은 안 찍었군(여기서 내가 분홍을 참 싫어하는구나 느낀다^^;).


주말에는 사기열전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코리아 체스판 상권을 완독했다. 사기열전은 역사책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여기 실린 인물들은 역사에 이렇게 남게 되었으니 어떤 느낌일까 싶다. 당연히 모르시겠지만^^). 그리고 코리아 체스판은 역시나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반도는 늘 화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이라는 것을 되새기면서. 책을 읽을수록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수학처럼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모르는 질문들에 다양한 선택지를 채워나갈 뿐이다.


행복의 약속은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고 1장은 뭘 읽었는지 모르게 지나갔다(어려웠다). 그리고 오늘까지 해서 3장을 읽었고 소설이나 영화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해주니 이해하기 쉬웠다. 비록 내가 다 안 읽은 책과 영화들이지만^^; 역시 사례는 소설과 영화만한 것이 없다 싶다. 특히 2장의 내용 중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여러 생각을 하며 읽었다. 나는 가족에게서 안정감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친밀함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이질적이고 껄끄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혼을 했고 옆에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관계를 통해서 무언가를 채우기에는 내가 너무 비좁나 싶기도 하고 스스로가 불안정하다 느껴서 벽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자녀의 의무는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행복함으로써 혹은 올바른 방식으로 행복하다는 신호를 보여 줌으로써 이런 의무를 행복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의무를 따른다는 것은 현상유지를 위해 행복의 - 행복한 것으로 전달된 - 기호들에 단순히 가까이 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계보들은 그런 올바른 것들에 행복에 대한 희망을 걸지 않을 뿐만아니라 자신들의 불행은 그런 것들에 의해 행복해져야 한다는 바로 그 의무 때문이라고 목소리 높인 여성들의 계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역사는 문제 일으키기의 역사,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르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을 거부함으로써 소피가 되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역사다. - P111


세월호 9주기가 되었다는 걸 달력을 뜯어보며 새삼 되새겼다. 이제 노란색은 내게 개나리와 더불어 세월호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김윤아의 라이브 앨범을 들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강’을 듣다가 울 뻔했다. 강물에 흘러간 사람들처럼 우리도 언젠가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오긴 할까.


그리고 과학의 고전이라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펀딩해서 책을 받았다. 사진을 미처 찍지를 못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면서^^; 과학 책은 정말 드문 드문 읽는데 그래도 꾸준히 조금씩은 읽는 것 같다. 무엇보다 번역이 어떨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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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4-17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강렬하네요 빨강!!!!!!

저도 행복의 약속 4장 들어갔어요. 거리의 화가님처럼 가족 부분에서도 킬조이페미 부분에서도 많은 생각이…..🙄

거리의화가 2023-04-18 09:33   좋아요 1 | URL
빨강 철쭉 이쁘죠^^ 자줏빛 철쭉이 주로 보이더니 요즘은 빨강 철쭉도 많이 보이더라구요.

아... 오늘 아침에 4장 읽으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일이 생겨 못 읽었습니다. 난티나무님도 비슷한 곳에서 많은 생각이 드셨었군요. 특히 2장은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3-04-17 1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행복의 약속> 앞부분만 읽다가 멈춘 상태인데 거리의화가님 인용문 보니 얼른 읽고 싶어지네요. 사기열전 재미있다고 하셔서 거리의화가님에 대한 궁금증이 100정도 상승했습니다. 책에 대한 감상과 예쁜 꽃사진 덕분에 맘이 화사해지네요^^

거리의화가 2023-04-18 09:39   좋아요 1 | URL
<행복의 약속> 앞부분이 특히나 좀 어려워서 저도 계속 붙들고만 있을 듯하여 일단은 읽자하고 읽어내려갔어요. 사라 아메드의 ‘정동‘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1장까지는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은 듯한데 그래도 2장부터는 예시들도 많고 현실의 내용들이라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사기열전 읽어보셨나요? 특히 열전은 더 재밌답니다. 본기, 세가도 재밌지만 열전의 인물들이 더 실감나게 그려져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화사해지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책을 읽으면서 감상이 종종 떠오르는데 놓쳐서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그 횟수를 늘려가야겠다 싶네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04-18 0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말에 외출하는데 철쭉이 지천이라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어요. 제가 멈춰서 꽃 사진을 찍었던 그 때부터가 아마 노화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노화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고요.

행복의 약속은 진도가 쉬이 나가질 않아요. 어렵지 않은것 같은데 그렇다면 쉬운가 하면 그게 아니고 말이지요.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대상은 저마다 다른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는 가족에게서 찾을 수 있고 누군가는 연인에게서 찾을 수 있고, 어쩌면 누군가는,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인간 존재로부터 그것을 느낄테고요. 얼마전에 투비에 올리신 잠자냥 님의 글을 보니, 그것은 예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4-18 09:4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말씀처럼 저도 꽃이 좋아지는 걸 생각하며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구나를 느낀답니다. 예전에는 꽃이 그닥 들어오지 않았었거든요. 요즘은 꽃이 그렇게나 이쁘더라구요. 역시 사람의 앞 일은 알 수 없나 봅니다^^

<행복의 약속> 오묘하죠?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1장까지는 용을 쓰면서 읽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비웠습니다. 다행히 2장, 3장은 1장에 비하면 수월하게 읽었어요. 과연 제가 이 책을 다 읽고 소감을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단 하나의 가르침이라도 들어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며 읽고 있습니다.

저도 잠자냥님 글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예술, 특히 음악에 많이 위로를 받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대부분 비대칭인 경우가 많잖아요. 결코 5:5가 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더 주면 다른 누군가는 더 받고 그런 거겠죠. 저는 정말 친정 식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하다 느끼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이 싫은 건 아니고 거의 연락도 잘 하지 않는데다가 시큰둥하고 무신경한 경우가 많아서 내가 너무 못됐나 관심이 없는게 정상인가 이렇게 느껴서 생각이 많아졌던 겁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한데 그게 쉽지는 않네요. 성격이 쉽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4-18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아름다운 꽃사진 좋네요^^ 꽃이나 나무 사진 단체창에 올리고 그러면 노화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ㅎㅎ) 꽃 보기 좋아하는 건 아이들에게도 해당됩니다. 첫쨰 아이가 꽃 보고, 예쁘게 떨어진 꽃 있으면 줍는 걸 좋아해요.
<사기열전>이 그렇게나 재밌는 책인가요? (약간 의심의 눈초리ㅋㅋㅋ)
4월 일력, 커다란 16의 노랑이 마음 아프네요.

거리의화가 2023-04-18 15:54   좋아요 1 | URL
이맘때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죠. ㅋㅋㅋ 저는 카톡 단체창이 몇 개 있지만 아직까지 올려보지는 않았어요^^; 확실히 점점 꽃사진을 더 많이 찍는 것 같기는 합니다.
꽃을 보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구요? 감성적인 아이들이네요! 3년간 코로나를 겪은 상실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닐까요?ㅎㅎ 아무튼 감성적인 아이인 듯 싶어요!
ㅋㅋㅋㅋ <사기열전> 재미난 책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읽어도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공한 사람만 나오는 게 아니라 종국에는 실패했거나 찌질하거나 빈틈이 많은 인물들도 나와서 흥미로워요^^
4월 16일을 기억하도록 업자들이, 또는 업체들이 저렇게 고려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일력 말고 저 왼쪽에 있는 건 마스킹테이프인데 노란 리본이 달려 있어서 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