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학>인가에서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를 읽고 그 지명에 꽂혔다가 
십여 년 전  평일 대낮, 월차를 내어 혼자 그 곳을 무작정 찾아간 일이 있다.
하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그런데 가도가도 묵호는 없었다.
알고보니 그 얼마 전 '동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던 것.

황당했다.
예전 지명이 묵호였던 동해에 내렸는데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기차나 버스에서 내리면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그런 일은 현실에서 좀체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눈이 빠지도록 창밖을 내다보다가 하릴없이 내린 곳이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큰 시장 앞.
아무 작정없이 나서고 보는 허랑방탕한 그런 짧은 여행이 참 좋았다.
그렇게 무작정 들른 시장통에서 기껏 사먹는 음식이라야 노점의 빈대떡, 아니면
치킨 반 마리와 생맥주 한잔.

요기를 했으니 그래도 바다는 보고 가야지 하여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망상해수욕장.
똥개처럼 혼자 비실거렸던 젊음, 그리고 그 몰골을 맞아준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았던
그 바닷가.

몇 년 뒤 남편이 된 남자랑 동해에 가서 곰치국을 먹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흐물흐물한 살이 한 숟가락 입에 들어오자마자
미끄러지듯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국물맛이 시원하고 담백했다.
남자와 함께이니  묵호가 동해이든 깻묵이든 상관없었다.
그때는 얼마나 황망했던가.
찾던 묵호가 없어서.
그리고 심상대는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곰치국은 물곰이라는 동해 쪽에서만 잡히는 아귀 비슷하게 생긴 큰 생선을 몇 도막 잘라
무 큼직하게 썰어넣고 마늘과 대파, 그리고 고춧가루만 풀어 넣고 팔팔 끓이는 국이다.
신 김치를 넣고 끓여도 맛나다.

해장국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모 방송 프로그램에 곰치국이 나왔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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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0-1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여전히 항구 이름은 '묵호항'입니다. 울릉도로 가는 배가 묵호항에서도 뜨죠.

야클 2006-10-1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곰치국. 물메기탕이랑 비슷하더군요. 회사앞에 파는 곳이 있어 술마신 다음날 먹어봤어요. 약간 맑은듯 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죠. ^^

로드무비 2006-10-1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는 '여기가 묵호'라는 현수막이 저를 반겨 맞아줄 줄 알았거든요.^^

blowup 2006-10-1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서 묵호까지라니. 정말 로드무비잖아요.
묵호도, 곰치도, 참 둥글고 둔중한 울림을 가진 말이에요.
이름은 곰치인 주제에, 살은 흐물거린단 말이죠. 어째 귀엽네요.
그나저나, 맛이 궁금한데. 거기가 아님 먹을 수 없죠?

하루(春) 2006-10-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런 환영문구가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홍상수 영화 분위기도 나고... ^^;

urblue 2006-10-1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물곰탕 맛 없어서 안 먹는뎅. -_-

로드무비 2006-10-1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헹, 고향 사람에게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그런 이치인가,
블루님이 아직 국물 맛을 모르시는 건가.^^
(제가 좋아하는 바로 그 맑고 화끈한 맛인데......)

하루님, 그러게요.
여주인공이 좀 신통치 않았지만...^^

namu님, 김곰치 씨도 있잖아요. 히히~
물곰을 울진 사람들은 물꽁이라고 하던데
농수산물시장에서 운좋게 발견하고 사다가 국 끓여 먹어본 적 있거든요.
묵호에서 먹은 맛은 안 납디다만 그래도 맛나더라고요. 제 입에는.^^


로드무비 2006-10-1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그 국물맛을 아시는군요.
아귀탕과도 비슷해요. 그죠?^^

Mephistopheles 2006-10-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쪽에 가격대성능비로 제법 푸짐하게 나오는 횟집이름이 묵호집인데...^^

건우와 연우 2006-10-1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픈 시간, 곰치국도 좋지만 사진에 보이는 무말랭이랑 삭힌고추랑 고추잎, 취나물...저는 이런류의 밑반찬들이 더 당기는군요...^^

waits 2006-10-16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분위기 좋은 글인데요. 십여 년 전에 헤매던 허랑방탕한 길이 떠오릅니다.
님처럼 아무 작정 없이도 아니었고 함께 떠오르는 맛도 없는 걸 보면, 좀 다르기도 하지만요. 찬 바람 슬슬 불기 시작하면, 늘 꿈꾸게 된다지요.

에로이카 2006-10-17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땐가, 독서실에서 밤샌다고 집에다 뻥치고 혼자서 청량리역에서 비둘기호 타고 묵호역에 갔던 적이 있었더랬어요. 일곱시간인가 걸렸던 거 같아요. 눈이 끝없이 내리던 어슴푸레한 새벽 묵호 푸른 바다가 눈에 선하네요. 뱃사람들 밥 먹는 식당에서 무슨 국밥을 먹었는데, 쏘주 한 병 달라고는 차마 못하겠더라구요.. 너무 어려서.. ㅎㅎ 세상이 티꺼웠던 고삐리 시절 새벽 아침 밥상에서 들리던 뱃사람들의 푸념에 내 티꺼움이란 얼마나 얄팍했던지... 부끄러웠지요...

2006-10-18 0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6-10-18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치... 오... 못먹어봤지만 저 물커덩해 보이는 살이 넘 땡깁니다. 해장에는 시원한 해물 국물이 역시!

로드무비 2006-10-1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물커덩한 살, 호호~~
맹물에 끓인 것과 진배없는 아주 담백하고 슴슴한 맛이랍니다.^^

잘 먹고 가요 님, 엄마가 고도의 유머를 구사한 걸로 보이는데요, 저는.ㅎㅎ
대구탕 같은 것 잘하는 데 없나요? 거기는?
한 냄비 끓여드리고 싶어라.^^

FTA반대 새벽별님, 님이 그러실 정도이니 그날 제가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흑흑~

에로이카님, 청량리역, 비둘기호, 새벽 묵호 푸른 바다...캬~
님의 댓글이 한 편의 서정시입니다.
너무 어려서 쏘주를 못 시켰다는 말에 제가 안타깝네요.
국밥용 국이 설설 끓는 솥단지라든지, 성에가 낀 간유리나
허름하지만 두툼한 외투가 걸린 식당 의자....
그런 풍경을 미치도록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빠졌군요.^^

평택, 나어릴때 님, 낯선 길이나 허름한 술집을 맴돌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뻐근합니다.
'너무 늦은 나이'란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살아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제가 너무 욕심 사납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님의 허랑방탕 여행기 한 자락도 풀어주세요.^^

건우와 연우님, 전 아직 밑반찬보다 메인디쉬 쪽입니다.^^

메피스토님, 세상의 모든 '묵호집'에 들어가보고 싶어요.
의정부 쪽에도 하나 봐둔 데 있습니다.=3=3=3


2006-10-18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 담요 님, 아이고, 연녹색 바바리 페이퍼는 살짝
서랍에 옮겨올까 했는데.....
저 보라고 잠시 열어두셨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그런데 가게에 달려가봤더니 빨강이 아니고 짙은 핑크더군요.
아쉬워 하지 마시라고.....^^

가랑비 2006-10-1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 묵호에서 곰치국에서 해장국까지. ^^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국물맛"이란 어떤 맛일까요.

로드무비 2006-10-1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백하고 슴슴한 맛.^^

가랑비 2006-10-1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 먹으러 사무실 근처 분식집 갔다가 김밥에 딸려 나온 된장국 맛보고 그 말이 떠올랐어요. "진짜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국물맛이네" 하고. ^^ 그것도 나름 좋더라구요.

2006-10-23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23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2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로윈 몬스터 인형들이 너무 예뻤어요.
사진도 근사했고요.
고정희 시인의 생가를 찾는 짧은 여정을 담은 글이 있는데
보시라고 서랍을 열어뒀습니다.
'묵은지' 카테고리 제일 앞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대화가 가능하군요.
님이 말씀하시는 그 환영이라는 것, 저도 잘 알아요.
그 골목, 그 자취.....^^

이사예정 님, 용케 떠올리셨군요.
11월 말에 이사합니다.
그때 새 주소지로 보내주세요.^^

FTA반대벼리꼬리님, 저도 그 된장국 먹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