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5년째 입고 있는 단벌 청바지의 엉덩이 밑쪽이 타졌다.
구멍이 뚫린  건 아니고 낡아서 미어진 것.
유명 브랜드도 아니고 동대문 시장에서 사입은 싸구려 보세 제품인데
왠지 마음에 들어 이때까지 애용해 왔다.
신기한 건, 그동안 10킬로그램이 넘게 살이 쪘는데 아직도 맞다는 것.
예전에는 이 청바지의 헐렁함이 좋았고, 지금은 허리 부분이 폭발할 지경이지만
다른 청바지를 사서 입고 싶지 않다.

나이도 그렇고, 이번 기회에 패션을 좀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나는 세탁소에 청바지를 들고 가 수선을 부탁했다.
'오바로꾸'인가 뭔가, 바느질로 교묘하게 '꼬매고' 났더니  앞으로도 10년간은 입을 만하다.

그 청바지를 입고 외출, 영화 <언러브드>를 보고 왔다.
나처럼 자신의 청바지를 끝까지 고수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청바지는 영화에 안 나온다!)

이런 영화는 또 처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곱만큼도 멋부리지 않고, 여주인공은 확고하게 자신의 기분과 입장을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거든.
하는 일도 괜찮고 내 방이 마음에 들거든.
그런데 뭘 바꾸라고?
왜 그래야 하는데?

시청의 말단공무원.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는 상사의 말에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여주인공.

--지금의 제 일이 마음에 듭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무슨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절망하고 체념한 것도 아니고,
그녀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일에 세상은 왜 그리 가타부타 말이 많은지......

여주인공도 그렇지만, 난 이렇게 멋부리지 않는, 덤덤한 어조의  영화를 처음 보았다.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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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1 0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waits 2006-05-31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포스터 멋져요~ 친구한테 대한극장 예매권이 생겼다해서 '구타유발자들'을 보기로 했는데... 필름포럼으로 가고 싶어지네요. ㅎㅎ

mong 2006-05-3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요하거나 넘치지 않고
담담한 맛이 좋을때가 있어요 그쵸?

마늘빵 2006-05-31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 필름포럼에서 하나요?

nada 2006-05-3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리뷰와 포스터의 느낌은 좀 다르네요. 뭐랄까.. 포스터만으론 그냥 평범한 사랑 얘기처럼 보인달까요. (근데 포스터에 저 엑스 표시는 원래 있는 걸까요?)

로드무비 2006-05-3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네.
조조는 11시 20분이에요.^^

몽님, 영화가 참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에 들었어요.
자신의 삶을 고수하지만 답답해 보이지 않더군요.^^

나어릴때님, 구타유발자들도 재밌을 것 같죠?
시간 되면 둘 다 보세요.^^

중퇴 전문님, 배수아 씨는 공무원이라는 것 외엔
저 여주인공과 매치가 잘 안 됩니다.
혹 모르죠.^^

산삼 한 뿌리님,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6-05-3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저도 포스터는 별로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뭐 리뷰랄 것 있나요.
여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라는 핵심만 짧게 전달했을 뿐인데요.^^

플로라 2006-05-3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말에 이 영화 보려구요. 전 남자주인공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청연에 나왔던 나카무라 도오루) 정말 다양한 층위의 영화들이 작은 공간에서라도 개봉을 해서 다행이에요...^^

로드무비 2006-05-3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나카무라 도오루 정말 묘한 얼굴이더군요.
허무퇴폐잔혹극에도 잘 어울릴 듯.
님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플레져 2006-05-31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 잘 찾아내는 로드무비님...^^
내곁에 있어줘도 봐야하고, 이영화도 땡기고...엉엉...

DJ뽀스 2006-06-0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부산에도 하겠죠! 꼭 볼랍니다.

2006-06-01 0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