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틀 전 모처럼 영화를 보러 나가며 차 안에서 읽으려고 이 책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영화의 제목은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이 리뷰의 제목을 가져왔다.)
마을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는데 몇 장 읽지 않아 호흡이 가빠졌다.

교실에서도 체육시간에도 샤워실에서도 자신의 뚱뚱한 몸이 거추장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녀가 나오는데 그건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닌가.

'자연스럽고 당당하게'가 삶의 기치이건만, 웬일인지 나는 항상 자신이 쩔쩔매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깨닫는다.
'쩔쩔매는 병'은 나의 지병이라고.
이 책의 주인공 에바는 너무 뚱뚱해서 이 병에 걸렸다.
소녀는 사람들의 눈에 안 띄었으면 싶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하교길에 혼자 으슥한 덤불숲에 숨는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산 연어샐러드를 몰래 먹기 위해.

사실 알고보면 에바는 좀 퉁퉁한 것일 뿐, 스쳐 지나는 사람이 뒤돌아볼 정도로는 뚱뚱하지 않다.
머리숱도 풍성하고 얼굴은 자세히 보면 귀염성스럽다.
남자친구도 한 명 생겼다. 미헬.
공부도 잘하고, 부모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봐줄 만하고.
그 정도면 양호하지 않나?!

그러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사소한 문제가 세상의 어떤 기막힌 문제보다
더 큰 것으로 해일처럼 덮쳐온다.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어느 순간 절망한다.
종잡을 수가 없다.
소심한 성격이나 부족한 재능, 성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열등감은 나이 몇 살에 이르렀다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안녕!"하며 감쪽같이 사라져 주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두 가지씩 열등감이 있고,  평생 자신만이 아는  열등감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야밤이나 새벽에 냉장고 앞에서 문짝도 씹어 삼킬 기세로 아구아구 음식을 먹어치우고 나서
극심한 자기 혐오에 빠져보지 못한 이라면 에바의 슬픔이, 괴로움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에바가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를 할 때,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출 때 해방감을 느꼈다.
나 또한 오죽하면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 신혼여행 길에 오르며  만세삼창을 외쳤겠는가!

난생 처음 연분홍 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자기 자신도 깜짝 놀라버릴 정도로
잘 어울렸다는 에바가 조금 부러웠다.

소설이라기보다 텔레비전에서 한 편의 세미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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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2-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리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군요..^^
평들이 대체로 좋으네요..

blowup 2006-02-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를 네 개쯤 보았는데, 읽지 않은 채 이런 말 하는 거 조심스럽지만, 조금 안이한 결말이라는 느낌도 들어요. 열일곱, 여덟 아이들이 이런 결말에 수긍할까요? 이런 긍정이 그애들을 위로할까요?
그런데, 로드무비 님의 결혼은 도대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걸까요? 서재 어딘가에 그 사연이 공개되어 있나요?

로드무비 2006-02-1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어요.
사실 에바의 문제는 그리 크지도 않고(본인은 너무도 괴로워 하지만)
대오각성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잔잔하게 펼쳐지거든요.
그렇지만 안이한 결말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한달까.^^

날개님, 효주 나중에 읽게 빌려드릴까요?
몇 권 있었죠?^^

로드무비 2006-02-1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아참, 그리고 별다른 사연 같은 거 없어요.
저렇게 쓰면 좋아들 하셔서 그냥 한 번 더 썼을뿐.^^

blowup 2006-02-15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오각성은 믿지도 않아요. 그 나이에 무얼 크게 깨닫는다고!(이런 말을 내가 할 줄이야~)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니, 오히려 믿음직하네요. 제가 읽지도 않고 저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졌나봐요. ㅋㅋ

하이드 2006-02-15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슬쩍 얘기합니다만, 엠아이 블루와 같은 청소년 소설은 굉장히 와 닿았어요. 뭔가 제가 모르는 세계를 이야기해줬거든요. 근데, 이 세계는 글쎄요. 이야기가 나쁜게 아니라, 제가 너무 나이들었단 느낌 들었어요.

로드무비 2006-02-1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님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저는 어땠겠습니까.ㅎㅎ
너무 평이하고 무난한 감이 없잖아 있죠?^^

namu 님, 에바가 약간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이 꽤 설득력 있어요.
대오각성은 이 나이에도 한 번 못해 봤는데!ㅎㅎ

Mephistopheles 2006-02-1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반대의 경우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한달동안 식음을 전폐함으로써
오는 자학도 만만치 않더라구요..열등감...하니씩은..품고 있겠죠..^^

하루(春) 2006-02-1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리뷰만으로도 재밌고, 끄덕끄덕 하고 갑니다.

mong 2006-02-1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제가 리뷰에 쓸 얘기들을 댓글에 쓰시면
어쩌시자는 거여요~~엉엉
리뷰 어찌 쓸까요 로드무비님~
독자의 취향을 고려하시는 로드무비님의 서비스 문장
오늘도 마음에 들어요 ㅎㅎㅎ

로드무비 2006-02-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어떤 책에서도 리뷰의 실마리를 잘 뽑아내시는 분께서
엄살은!!
그런데 솔직히 리뷰 쓰기 조금 곤란한 책이었어요.^^;

하루님, 끄덕끄덕하신 부분이 어딘지?
혹 냉장고 문짝?^^

메피스토님, 식음을 전폐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을 말씀하시는군요.^^


플레져 2006-02-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바처럼 저도 열다섯살에는 살 찌는 걸 두려워했어요.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사춘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요...
에바 로드무비님!

비로그인 2006-02-1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을 둘러싼 이야기라면 그게 사회가 주는 부당한 편견이든, 구질구질한 그 무엇이 되든 저도 에바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는 건 사실이네요. 가끔 제 벗은 몸을 볼 때 심한 징그러움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흐흐.

로드무비 2006-02-1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그러니까요.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 자체가
얼마나 이상하게 굴절되고 세뇌되었는지!
자신의 벗은 몸은 어떤 때 보면 귀엽고, 어떤 때 보면
님 말마따나 징그럽지요.ㅎㅎ

플레져님, 사춘기 자체가 먹먹하고 막막한 거니까요.^^
(님이야, 뭐, 그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사실은
살이 붙어본 적 없지요? 흥=3)

검둥개 2006-02-17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공감이 너무 잘 되어서 책을 읽기가 두렵나이다, 로드무비님. ^^ "'자연스럽고 당당하게'가 삶의 기치이건만," (저두 그래요) "'쩔쩔매는 병'은 나의 지병이라고." (그러니까 기치만 높이 세우는 건 해결책이 아닌가봐요. 흑. )

로드무비 2006-02-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은 가만 보면 이상한 부분에서 저와 일치하더라?!
얼마나 그 부분이 잘 안 되면 저런 기치를 세웠겠냐고요. 흑.

로드무비 2006-02-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그 무렵 읽었다면 물론 더 좋았겠죠?
따라서 만세삼창을 해주시다니, 고마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