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짐은 내 날개다
노은님 지음 / 샨티 / 2004년 5월
절판


물고기, 나비, 사람, 하늘, 새 등의 자연물을 단순하게 그려낸 그림에는 밝은 생명의 기운이 담겨 있으며, 천진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유럽에서는 그를 일컬어 "동양의 명상과 독일의 표현주의가 만나는 다리", "그림의 시인"이라 부른다.

1970년 독일 간호보조원을 자원하여 함부르크로 떠난 뒤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노은님. 그녀의 그림이 있는 에세이집 <내 짐은 내 날개다>.

-2002년 9월 3일, 내 나이 만 쉰여섯, 남편 나이 쉰아홉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의 남편 게하르트는 나처럼 그림을 그렸고 오랫동안 예술 속에서 지내온 착한 노총각이다. 같은 대학(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에서 미학사를 가르치는 동료교수인데 한 학교에서 일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게 울림을 준 것은 알고 지낸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였다. (그림 123쪽)

내 머리속의 가장 달콤한 만남은 헌책방을 경영하던 신동엽 시인과 손님으로 온 인병선 여사(현 짚풀생활사 박물관 관장)의 만남과 결혼이다.
포천군 면사무소에서 결핵관리요원으로 일하다 간호보조원으로
독일에 가서 취미로 그림을 그려 화가가 되고 또 영혼의 짝을 만난
화가 노은님의 라이프 스토리도 그에 못지 않게 충분히 감동적이다.

이 책에 실린 그림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134쪽)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고독이 느껴진다.

--처음엔 남몰래 쓰레기통을 뒤져 그곳에서 나온 재료들을 가지고 그리고 또 그렸다. 쓰레기통에 들어온 것들은 이제 더이상 필요 없고 하찮아진 것 같지만 실은 모두 제 역할을 다하고 들어온 것들이 아닌가. 구멍난 노동자의 손장갑에서도 그 구멍에 무진장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3년 전 친구 김원숙(화가)과 베네수엘라에 여행을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큰바람이 파도를 육지 쪽으로 몰고와 우리를 던져주었고 때마침 지나가던 아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인생을 공짜로 사는 것 같다. 그날을 생각하면 뭐든 못할 게 없어진다. 그 후로 우리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 또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기로 했다.

쉰여섯에 결혼한 화가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에 지은 작은 로코코 성을 빌려 산다. 숲속에 위치한 이 성은 3층의 작은 건물로 거실에는 열두 개의 창이 나 있어 여우며 새들이며 개울가의 숭어가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이 3층짜리 성을 무려 35년간 빌리기로 했다니 부럽기 짝이 없다.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뿐입니다."
예술을 하다보면 마티스 같은 고집스런 면이 나오게 마련이다. (...)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감동시키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버린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술로 가는 길이 아닐 것이다.

--평범한 존재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이고 세세한 사실들이 예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의 느낌을 표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여러 가지 금지된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제멋대로이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화가 노은님의 예술론이다. 인정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조급하면 안된다는 것. 그녀의 그림 몇 점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순한 선과 요란하지 않은 색채로 인간의 기쁨과 심연을 보여주는 듯한 그림들이 좋다.

--어떤 독일 교수가 내게 물었다. 너의 나라 사람들 얼굴이 얼마나 인상적인데 아직도 석고 데생, 그것도 너의 나라 것도 아닌 그리스의 죽은 사람들 머리를 베끼고 시험을 보느냐고.

참다운 예술은 진정한 순수함을 원한다. 1982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전시회를 마치고 배웅하기 위해 백남준을 역에서 만났는데 웬 거지 중의 상거지 하나가 서 있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혼자 보기 아까웠다고.
아마도 진정한 예술가들은 겉을 꾸미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쓰지 않을 것이다. 간략한 소개지만 노은님과 백남준, 노은님과 중광 스님의 만남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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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7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5-06-0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석고상.. 재밌군요.
질문 있어요. 현재 보이는 사진은 작은데, 클릭하면 커지는 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가르쳐 주세요.

돌바람 2005-06-0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좋네요. 돈 생기면 꼭 사야쥐. 제가 인사는 제대로 드렸던가요. 좀 있다 찬찬히 들러보고 인사드릴게요. 땡스투우!

stella.K 2005-06-0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요.^^

로드무비 2005-06-07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화가의 결혼 일화 너무 좋지 않아요?
같은 직장에서 데면데면하게 보고 지내던 사람이 10년 뒤
마음속에 들어오다니!^^
stonywind님, 반갑습니다.
최근에 몇 번 다른 분 방에 댓글 다신 거 눈에 띄었어요.
저도 나중에 님 방에 가봐야겠군요.^^
하루님, 그건 제가 만든 기능이 아니고 본래 그렇게 되어 있답니다.
클릭하면 화면이 커지는 거 너무 신기하죠?ㅎㅎ

날개 2005-06-0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책이네요..^^
예술가는 예술가끼리 통한다는 건가요? 예술가들이 사는 거 보면 범상치가 않아요..

로드무비 2005-06-0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표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 사랑하고 함께 부부로 사는 것 보면
뭔지 안심이 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 부부는 예술로 통했다기보다 지극한 선과 선으로
만난 것 같아요.
호호, 혹시 또 모르지요.^^

2005-06-07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안 그래도 책이 좀 쌓였는데 한꺼번에 보낼게요. 이 책이랑 함께......
말씀해주신 코스는 그대로 꼭 한번 가보겠습니다.^^

플레져 2005-06-07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원숙 화가를 좋아하는데, 그분의 친구군요. 아, 노은님의 친구 김원숙이라고 해야 하나요? ^^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고독의 그림이라니... 너무나 멋진 표현이에욧!!

낯선바람 2005-06-0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책인가 하고 들어와봤더니 이 책이네요. 그림 정말 좋아요^^ 이 책의 출간 배경에 관한 멋진 기사가 생각나서 링크할게요. 읽어보세요.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473923



로드무비 2005-06-08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수자리님, 읽어봤습니다.
개인의 자발적인 후원 참 좋네요. 흐뭇한 소식입니다.^^
플레져님, 그림도 그림이지만 살아온 이야기나 소박한 예술철학도 좋네요.^^

2005-06-08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 2005-07-09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고상 데생 문제도 틀이 한번 만들어지고 안바뀐다는게 문제죠. 일제시대 교육 받은 세대가 대학을 장악하고는 제자들에게 숭배만 강요하기 때문에 이꼴로 이어져 옵니다.

루니앤 2007-12-2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쿠오레님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