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특기활동으로 아이가 선택한 것이 세 개. 애니메이션과 영어와 컴퓨터. 오늘은 애니메이션 수업이 처음 시작되는 날이었다.

강사가 전부 미국 사람이라는 원더 어쩌구 하는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떼를 쓴 지 두 달. 한달 수강료가 17만 원인가 18만 원이란다. 나는 무조건 안된다고 했다. 친구가 다니며 재밌다고 자랑하니 저도 다니고 싶겠지. 그렇지만 초등 1학년 영어 공부에 가욋돈 십몇만 원을 쓴다는 건 죄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편도 안되고.(책값은 20만 원을 가볍게 넘기면서...남편의 불만.)

그래서 한달에 3만 원 남짓이라는 방과후 영어공부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나로서는......아주 안 시키자니 찝찝하고. 무엇보다 3만 원은 18만 원에 비하면 껌값 아닌가!

어젠가 그제 운빈현님 페이퍼에서 돈 1000원을 빌려달래서 현금인출기에서 1만 원을 찾아 그 돈을 갚는 남자 이야기를 읽었다. 잔액이 9천 얼마라 그 돈을 못 찾고 현금인출기 앞에서 만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1000원을 빌려달랬다니......그 정도로 단돈 1000원이 몇백 원이 아쉬운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집에 와 점심을 먹고 애니메이션 교실에 다시 가야 하는데 낯선 교실 처음 보는 선생님 보기가 부끄러워 한사코 따라가자고 조르는 아이. 20분쯤 싱갱이를 하다가 결국 조금 전 학교까지 따라나섰다.

어린이집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님이 언덕배기에 빈 차를 세워놓고 끝없이 차를 닦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해온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 끝없이 차만 닦고 있기엔 날씨가 너무 좋고 아저씨가 너무 젊다는 생각.

며칠 전 동네 슈퍼에 갔다오는 길에 꽤 큰 마트의 로고가 찍힌 조끼를 입은 아저씨가 내 앞에 차를 세우더니 사골 좋은 게 있는데 반값에 특별히 주겠다고 은밀한 목소리로 제안을 해왔다. 나는 멸치국물 외 뼈다귀 국물은 좋아하지 않는지라 됐다고 거절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마트의 아저씨가 팔아서 용돈을 좀 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나보다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두 번이나 그 아저씨는 우리 동네 여자와 흥정을 벌였고 차에서 내려 스티로폼 상자의 테이프를 뜯었다가 다시 붙였다가 했다. 그제서야 그 봉고가 몇 시간째 우리 동네 단지를 뺑뺑이 돌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골인지 잡뼌지 모르겠지만 스티로폼 상자의 테이프를 몇 번이고 뗐다가 붙였다가 그것도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 그 아저씨는 어쩌다 길을 잘못 접어들었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연기하며 우리 동네 단지를 몇 바퀴나 돌았을까.

먹고살기 무지 어려운 세상이다.

 


이야기가 칙칙해서 마음을 달래려고 딸래미 사진 한장.(핑계도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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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4-0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얘기 티비에서 봤어요. 나아졌다는데 나아지지 않은 것 같아요 ㅠ.ㅠ

날개 2005-04-0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는 여전히 깜찍한 모습으로 애간장을 녹이고,
로드무비님은 여전히 삶의 이야기를 속삭이듯 풀어놓아 가슴을 짠하게 하는군요..^^

인터라겐 2005-04-0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들 웃으면서 살수 있는날이 빨리 왔으면 싶어요..

깍두기 2005-04-0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예전에 그 사골 아저씨에게 속은 적이 있지요. 우족 좋은 거라길래 덜컥 사서는 국물을 우려냈는데, 뽀얀 국물은 커녕.....흑흑, 아까운 오만원..ㅠ.ㅠ
근데 주하는 방과 후 특기적성 많이도 합니다요? 주하가 적극적인 모양이죠? 우리 소현이는 뭘 하라 하면 고개부터 절래절래 입니다. 영어 하나 꼬셔서 하는 것도 넘 힘들어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 키우기 힘들어...ㅠ.ㅠ

로드무비 2005-04-0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일단 주하는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난리예요.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죠?
일단 한두 달씩 시켜보고 자기가 하겠다면 계속 시키는 거고. 아니면 말고.
그나저나 어쩌다 그 뼉다귀를 샀답니까?^^;;;
인터라겐님, 그런 날이 오겠죠?
날개님, 그 아저씨를 보고 마음이 무거웠어요. 다들 용을 쓰며 산다는 생각.
저라고 뭐 다른 줄 아세요? 나름대로 애환이......^^
물만두님, 그러니까요.
어쩌다 있는 케이스가 아니라니 그게 문제인 거죠.

울보 2005-04-0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사골이시네요..
우리신랑보고는 게를 사라고 하더런데..

로드무비 2005-04-0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빈현님, 그렇지도 않습니다.
요즘은 또 다른 스트레스의 진원지지요.^^;;;
울보님, 게라면 저 샀을 거예요.
너무 좋아하거든요.^^

릴케 현상 2005-04-0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금 거래처에 갔다가 그집 두 아들내미한테 시달리다 왔는데 죽갔습니다. 나 어릴 땐 안 그랬던 거 같은데(정말일까-_-) 막 올라타고 시비 걸고 흙흙... 빨리 내 애를 낳아서 딱아 패야겠다

2005-04-08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4-0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로드무비님. ^______^
아이고, 주하는 참 깜찍하구나 ...

balmas 2005-04-0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자명한 산책님,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 가서 화풀이한다더니 ...

로드무비 2005-04-0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멋있다니 기분좋네요.
(그런데 뭐가 멋지다는 말씀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음.)
속삭이신 님, 님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자명한 산책님 거래처 아이들이 막 올라타고...
ㅎㅎ 욕보셨습니다.
한대 패주지 그러셨어요. 거래처 사람 안 볼 때...ㅋㅋ

날개 2005-04-0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121212 

숫자가 예뻐서.. 노웨이브님이 올리신 엽서에다 자꾸 올릴려니, 참으로 미안스러워 내려왔습니다..ㅎㅎ


로드무비 2005-04-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정말 예쁜 숫자네요.
그런데 미안할 게 뭐 있어유?
전 날개님 보기만 하면 좋아서 웃음이 나오는데......

하얀마녀 2005-04-1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3만 원은 18만 원에 비하면 껌값 아닌가!
너무 인간적이신거 아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