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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린과 비니의 사진 가게 - 408일 세계 곳곳의 감성을 훔친
좌린과 비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골목, 콘크리트로 대충 발라 지은 집, 빨래, 아이들...'두 아이' 인도 카냐쿠마리 2004 비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좋겠다, 때려치울 직장이 있어서...) 408일 동안 세계 22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부부가 있다. 30세 동갑의 주하아린, 빈진향 부부. 전세금을 빼내어 여행을 떠났다거나 직장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갔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촌스럽고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한 부분은 이것이다. 그렇게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 젊은 부부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뽑아 홍대앞 희망시장에 내다놓고 한 장 두 장 팔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꿈꾸던 생활이 아닌가! 사진 기술이 없으니 사진을 팔아 생활하진 못하겠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한 구절씩 예쁜 종이에 지렁이 기어가는 내 글씨로 적어주고 1000원씩 받는 것이다. 뭐 그렇게......안 될까? 아무튼 나는 집이 너무 멀어 홍대앞 희망시장에 갈 형편이 못되었으므로 당장에 이 책을 주문했다.
홍대앞 희망시장이라면 3,4년 전 두세 번 가보았다. 한번은 거리의 화가가 주하의 얼굴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사진기를 손에 든 청년이 우리 부부에게 정중하게 부탁해왔다. 아이의 사진을 좀 찍고 싶다고. 우리는 입가로 삐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감추고 그런 일은 하도 많이 겪어 자연스럽다는 듯이 그러라고 했다. 아이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지금이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겨우 서너 살 무렵. 청년에게 사진을 어디 실을 거냐고 했더니 '타나토스'라는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할 거라고 했다. 사흘 후인가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들어가 봤다. 세상에, 내 딸의 얼굴이 거기에 터억하니 실려 있었다. 조금 덜 오만상을 찡그린 모습의 사진이......
그러니까 비니는 어쩌면 내딸의 사진을 찍어준 그때 그 청년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지만 컴맹에 가까운 나, 그 사진을 따로 보관해 두지도 못했다. 오오 아까워라. 그 사진을 간직해 뒀다면 알라딘 서재에서도 그렇고 두고두고 자랑질할 수 있었을 텐데...... 나라면 덜컥 사서 책상머리에 붙여놓았을 것 같은 사진 몇 장을 소개한다.
'술래잡기' 몰디브 굴히 섬 2004 비니
'고기 말리기' 인도 트라반드롬 2004 비니
책에는 없는 사진. 좌린과 비니의 블로그에서 퍼옴.
어느 여행지에서의 식사. 좌린과 비니 부부.
칠레 안데스 고원의 버려진 교회와 영극 런던의 해저문 거리의 적막과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의 무시무시한 가로수와 이집트 서쪽 강변 마을......젊은이들이 임시로 모여들어 좌판을 펼치는 희망시장에 당신들이 내다판 사진 한 장 한 장은 내 맘에 쏙 들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에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은 점이 또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언젠가 당신들의 좌판 옆에 꾀죄죄한 나의 좌판을 펼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