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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해의 마지막날을 나는 <처녀치마> 리뷰 쓰기와 딸아이 방 옷과 장난감 상자를 정리하는 것으로 보내기로 했다. 삶에는 뭔가 구체적인 실적이 중요하다. 내 아무리 허랑방탕한 인생이기로서니 2004년 마지막날을 맥주 깡통이나 우그러뜨리며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새벽 두 시쯤 책을 읽기 시작, 졸다 깨어 다시 읽다 또 침대밑에 책을 떨어뜨리는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 쓰윽 침을 닦고 책을 집어들어 다시 읽기를 반복하다보니 책읽기는 다섯 시쯤 끝났다. 스탠드 불을 끄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나는 맹렬하게 리뷰를 쓰고 있었다. 제목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다리는 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
권여선의 1996년 제 2회 상상문학상 수상작 <푸르른 틈새>는 북아현동 북풍한설 한옥 자취방 거주 경험이 있는 내게는 거의 나 자신, 혹은 친구의 일기장을 보는 것같은 쾌감을 불러일으킨 장편소설이었다. 방이 습해 푸른 곰팡이가 가득한 단칸방에는 옷장과 침대가 벽에서 뚝 떨어져 있고, 곰보유리문과 꽃무늬 이불호청을 찢어 철사에 걸어 둔 것에 불과한 문짝의 커튼, 매일밤 나에게 간택되기를 기다리는 아무렇게나 쌓인 책들, 중국집 홀에서의 대학 신입생 환영회, 가슴 떨리는 자기소개 시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간결하면서 시니컬한 문장은 또 얼마나 마음에 쏙 들었는지......
아줌마 치마도 아니고 '처녀치마'가 뭔가 했더니 펼치면 치마 같다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풀 이름이었다. 근 10년 만에 들고 나온 이 소설집은 자신을 기다려왔을지 모를 단 한 명의 독자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당연히 그 한 명의 독자가 나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실 끝은 쥐고 이곳까지 찾아온 그 남자도 마당에 서서 느꼈을 것이다. 산다는 일엔 애당초 그 어떤 아름다운 실마리도 없다는 걸, 누군가 우연히 제 손가락 마디를 이용해 실을 감고 조심스럽게 덧감아나가면서 만들어놓은 빈 공간, 누군가의 손가락이 빠져나가버린 그 허사의 자리에 자신이 도착했다는 걸.('처녀치마' 중)
두 번 이혼한 남자와 10년째 사귀는 미혼의 주인공, 사흘 휴가를 내어 어머니가 죽은 지 6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아무도 몰라주는 화가였던 아버지, 그리고 그악스럽게 남편과 자식을 돌보았던 엄마. 그녀는 부모님이 경영했던 여관 구석방에 아무도 모르게 기어드는데 서울에서 단체로 내려온 어느 극단의 단원들이 새벽까지 여관 마당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 혼자 방안에서 소주를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흘려 듣는 주인공 .
혼자 여행을 떠나 허름한 방을 잡아놓고 어둑어둑할 무렵 근처 가게에 가 소주 한 병을 사는 일은 나도 여러 번 해보았다. 사람의 기억은 간사하기 짝이 없어서 그걸 굉장히 미화시키고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 저녁으로 시켜먹은 백반의 반찬을 안주로 해서 소주 한 병으로 모자라 청하 한 병을 주인집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고 새벽에 모두 토했던 것은 운문사 언저리 민박집이었던가, 오대산 별장이었던가? 아무튼 <푸르른 틈새>의 여주인공 손미옥도 딱 내 이야기 같더니<처녀치마>에 나오는 세상에 마음붙이지 못하고 부유하는 등장인물들도 마음이 쓰이는 게 남의 일 같지 않다.
믹스 커피를 마시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언제나 같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결코 매혹되지 않을 것들에 둘러싸여 살기. 이제 그만, 다 고아먹은 사골 같은, 여생(餘生)이라 불리는 가볍고 다공한 삶을 살기. 이게 요즘 그녀가 거짓되이 추구하는 삶이었다. 꿈꾸는 데에 진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두리번거리다' 중.)
나도 요즘은 100개들이 커피믹스를 사다놓고 커피를 마신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행위도 귀찮아 정수기의 뜨신 물을 받아 뿌연 거품이 이는 커피를 휘젓기도 한다. 커피콩을 직접 볶아 갈아 커피를 마셔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언제부터 맛있는 커피를 골라 마시는 일조차 귀찮은 일로 여겨지게 되었을까.
어찌 보면 <처녀치마>는 <푸르른 틈새>에 대학 신입생으로 등장했던 인물들의 15년쯤 뒤 후일담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들이 받은 상처는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고 상처는 서둘러 봉합되었다. 내게는 가혹하지만 아름다운 성장소설로 읽혔던 <푸르른 틈새>. <처녀치마>는 내게 세월의 무상함과 기다리는 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씁쓸함만을 확인시켰을 뿐이다. 이 두 책 앞날개를 펼쳐놓고 10년 전과 10년 후 작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월은 사람들을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간다. 이 작가의 편지를 앞으로도 가끔 받아보고 싶다.
(이 책의 제목과 상관없이 국가보안법은 가까운 시일 내 꼭 폐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