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사촌동생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부산의 부모님이 상경하셨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과 얘기 나누는 것이 즐거우셨는지 식이 끝나고도 이틀을 그분들 집을 방문하며 어울리시다 월요일 오전 열한 시, 우리 집을 기습방문하셨다. 세 분을 모시고......
아침에 아이들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내고 세수도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 타가지고 알라딘과 접속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일단 반갑게 맞아들인 후 "아니 왜 전화도 안해주시고?" 했더니 온다고 미리 전화하면 시장보고 뭐 준비하느라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그냥 왔단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속이 깊은(?) 분이다.
청소를 며칠째 하지 않은 집 안은 엉망이고 눈곱도 떼지 않은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콧등에 물만 묻히는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나는 점심준비에 돌입했다. 마침 생고등어 사둔 것이 한 봉다리 있어 무 깔고 그것을 얼큰하게 지지기로 했다. 그리고 된장국과 버섯야채전으로 어찌어찌 점심상이 마련되었다. 그냥 자장면이나 시켜먹고 말자고 하셨지만 알라딘 서재 '허름한 밥상'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그런 치욕적인 제의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 생각에 친척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나를 지켜보았다는 그 사실 한 가지로 남의 인생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마음대로 들었다 놓는다. 나는 그분들이 나에 대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국을 끓이고 파를 다듬었다. 결론은, 로드무비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좋았으며 깔끔하게 해놓고 살지는 못하지만 음식 솜씨가 좋아 남편에게 그럭저럭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스럽지 못하고 상냥하지 못함에도......
아무튼 고등어 지진 것을 주메뉴로 한 점심을 맛있게 드시고 한 케이블 방송국 스포츠 담당 기자인 사촌이 차를 가지고 모시러 와서 그분들은 가셨다. 급히 오느라 과자봉다리도 하나 못 사왔다며 내 경대 위에 지폐 두 장을 놓고 가셨다. 내 고등어 조림 맛이 감격적이었는지 사촌은 자발적으로 김민기 CD 6개 전집을 택배로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갔다.
부모님은 이틀을 동생집과 우리집을 왔다갔다하며 지내시다가 오늘 아침 내려가셨다. 동생 부부가 일찍 출근하는 관계로 우리집에 와서 아침을 들고 가시라고 신신당부했으나 끝까지 그냥 가시겠다고 하더니 그래서 엄마 손에 몇푼 쥐어드리고 어젯밤 작별인사까지 마쳤던 것인데 아뿔싸, 아침에 아이를 맡기러 온 동생 부부 뒤에 부모님이 서계셨다. 한잠 자고 일어나 아주 오랜만에 새벽에 서재 마실을 다녔던 나는 책을 좀 읽고 여섯 시경에 잠이 드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고......화들짝 놀란 내가 들어오시라고 아침 금방 차리겠다고 붙들었지만 부모님은 그냥 얼굴만 잠시 보려고 들렀다며 뿌리치고 휑하니 가셨다.
아버지는 내일모레 일흔다섯이신데 아직도 서울 오실 때 직접 차를 몰고 오신다. 우리 엄마 칠순도 두세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떠지지 않는 눈으로 흘낏 본 두 분의 쪼글쪼글한 모습. 며느리도 딸도 먼길 떠나시는 두 분께 아침을 차려드리지 않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사실이 못내 가슴이 아프네?! 지금쯤 대구 부근을 지나셨을라나......
(오랜만에 서울에 오신 부모님에게조차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