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도 잇신의 <황색 눈물>.
별 신통할 것도 없는 인연을 내세워, 만화가 에이스케의 단칸방에 한 명 한 명 기어들어와
1963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여름을 났던 청년들.
일본의 아이돌 그룹 아라시 멤버들이 더이상 어울릴 수 없는 역들을 맡아
청춘의 얼굴로 표상되는 연기를 펼쳤다.

어쩌다 보니 자신의 손바닥만한 방이 네 청년의 합숙소가 되어 만화 한 컷 그리는 것조차 
여의치 않게 되었지만 에이스케는 친구들을 내치기는커녕
유명 만화가의 밤샘작업을 돕는 아르바이트로 얼마간의 목돈을 마련하여
여름을 함께 날 자금을 마련한다.
자기가 돌아오기만 바라며 친구들이 굶고 있지 않나 달려왔더니
운좋게 케이의 그림 한 점이 팔려 양식집에서 배 터지게 이것저것 시켜 먹고 있는 녀석들.

아마추어 화가 케이, 가수 지망생 쇼이치, 소설을 구상중인 슈조는 꿈만 거창할 뿐이다.
그들은 배가 고프면 동네 전당포에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혀 돈까스 덮밥을 시켜먹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화구 세트, 기타, 만년필.

동네 쌀집 배달부로 또래의 예술가 지망생인 그들에게
군둥내 나는 쌀을 제공하는 등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푸는 근로청년 유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달을 하는 동안, 꼴에 예술을 한답시고 아무 하는 일 없이
몰려 다니며 무위도식하는 녀석들이 눈꼴 시려울 만도 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친절을 베푼다.

모처럼 돈이 생겨 조그만 양철 세숫대야를 하나씩 들고 그들이 떼로 목욕 가는 장면.
클래식 카페에서 제목만 거창하게 적힌 원고지 뭉치를 앞에 놓고
작품구상은 고사하고 곁눈질로 웨이트리스만 훔쳐보는 슈조.
꼬질꼬질한 그의 단벌 재킷.

재떨이에서 쓸만한 담배꽁초를 주워 피며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만화를 그리는 에이스케.
백지 위에 펜촉이 슥슥 지나가는 소리가 듣기 좋다.

케이와 친구들이 에이스케에게 보낸 편지로 소개되는
'인생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좋았다.
더 기가 막힌 건 집 앞 모퉁이의 담배가게 할머니와 담벼락 밑의 개,
돈까스덮밥집 주방장(겸 주인)까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엔딩크레딧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따뜻하고 세심한 눈길이 좋아서 극장 계단을 내려올 때 실실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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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6-17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꼭 보고 싶어요^^

로드무비 2007-06-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 님,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특히 엔딩 크레딧.^^

Mephistopheles 2007-06-1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혹시 나무님의 서재이미지로 걸려 있는 그 영화인가요..??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면 무조건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로드무비 2007-06-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맞습니다. 다소 감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의 영화가 좋아요.^^

플레져 2007-06-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개봉했군요.
낼롬 보러가야겠어요!

로드무비 2007-06-17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 님, 어떻게 새 페이퍼 올린 거 알고 찾아들 오시는지 신기합니다.^^
(당장 보러 가세요.)

비로그인 2007-06-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6,70년대와 한국의 8,90년대는 닮았습니다.
소박함, 순수함, 배려, 끈끈한 정, 나눔 ... 훈훈한 공기까지.
하지만 지금은...

로드무비 2007-06-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 님, 약 20년 정도씩 차이가 나나요?
설마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요.
전 허름한 풍경과 사람들이 좋아요.
요즘 세상은 너무 휘황하달까.
겉모습만.
40여 년 전의 도쿄 한 골목, 낡은 집들과 식당,
어리숙한 청년들의 꿈과 우정이 눈물겨웠어요.^^

비로그인 2007-06-19 10:3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상대적 시간 차이'가 난다고 할까요. (웃음)
예를 들어, IT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거의 없고,
선진적 의식 사고, 친절, 서비스는 아직도 한국이 일본보다 느리니까요.
초.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 왕따, 청소년 자살, 원조교제 등 나쁜 것들은..
이제 시대의 차이 없이 두 나라가 똑같이 합니다.

재밌는 것은, 한국은 '일본을 싫어해' 라고 입버릇처럼 하면서 가장 많이 문화가
닮아가는 것이 일본입니다. 그만큼 '가까운 나라'로써 문화적 교류,상업적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죠.
반면에, 중국은 '싸고 질 나쁜 물건들' '인체에 해를 끼치는 음식'이라는 오점으로
한국인들의 관심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밉다던 일본에 대해서는 이거저거 할 이야기가 많은데, 중국에 대해서는
이야기거리가 없어 입을 꾹 다물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미움도 다 관심과 애정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두 나라가 서로의 좋은 점만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로드무비 2007-06-19 10:54   좋아요 0 | URL
아아, 마이크 테스트. L-SHiN 님이 단 댓글처럼 이것도 그렇게 될라나요?

로드무비 2007-06-19 11:05   좋아요 0 | URL
긴 댓글 알라딘이 잡아먹었어요.
모처럼 열변을 토했더만. 김 빠져서.....
님의 생각과 거의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좋은 점이 뭐라도 남아 있긴 한 걸까요?

비로그인 2007-06-20 09:53   좋아요 0 | URL
좋은 것..아주 많죠. ^^

로드무비 2007-06-21 14:42   좋아요 0 | URL
그런 대답을 듣고 싶었어요.^^*

blowup 2007-06-1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것 같았어요.
포스터, 스틸 모두 좋더군요.
이걸 보려면 서울 나들이를 해야겠네요.^-^
눅눅한 바람 같은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chika 2007-06-17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읽을라구요. (과연 이곳에서는 개봉을 할런지! ㅠ.ㅠ)
첨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주연, 일본 자니스의 아이돌 중 하나인 아라시멤버가 주연인거잖아요. 니노밍은 연기를 잘한다고 들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을 안해봤거든요.(마츠모토 준은 여기서 빠져있고)
그래도 영화는 주연이 아니라 감독을 보고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억하면서.... (그치만 전 아라시 팬이니까 감독을 안봤더라도 영화 봤을꺼 같구만요. ㅋㅋㅋ)
- 참, 페이퍼 안읽어도 충분히 추천받을만한 글 쓰신거 맞죠? (아, 뭐라 썼을지 궁금하지만...영화관련글은 영화보기 전엔 읽고싶지 않다는 강박관념이...ㅠ.ㅠ)

향기로운 2007-06-1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싶은데..ㅠㅠ;; 시험기간이 얼렁 끝나면 좋겠네요~^^;;

waits 2007-06-18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토요일날 봤어요, 엔딩크레딧까지 보고 괜히 너무 좋아서 막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분화가 끝난 화산은 한낱(?) 산일 뿐이라는, 자기 세계를 좀더 소중히 하고 싶다는, 우리들은 평범했다는. 그 철부지들의 독백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어요. 아라시라는 그룹이 있다는 건 영화 보고나서야 알았다는...^^;;

로드무비 2007-06-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 님, 우리의 무능과 어쩌고 하는 독백도 좋았는데.
아라시는 우리나라에도 팬들이 많다네요. 고1인 조카만 해도 아라시 때문에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으로 유학가겠다고 난리를 쳤거든요.^^

향기로운 님, 시험 잘 치시고요, 영화도 꼭 보세요.^^

치카 님, 페이퍼 안 읽고 먼저 추천을 눌러주시다니! 감사.^^
<스틸 라이프> 보기 전날 전초전으로 본 영화인데 정말 좋았어요.
역시 저에겐 아직 소녀의 감수성이.=3=3=3
(치카 님, 반가워유. 영화 꼭 극장에서 보실 수 있길 기도할께용)

namu 님, '이럴 것 같았어요'라는 말이 무지 웃겨요.
서울 아니라 일본 나들이라도 하셔야죠.=3=3=3
눅눅하고 콤콤한데 고소한 영화예요.


네꼬 2007-06-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읽고 싶지만 재빨리 스크롤해서 내려왔어요. 저도 이 영화 보고 싶은데 조심하지 않으면 님께 홀려 버리거든요. 꼭 그러시더라.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다 보시고, 보기도 님의 의견에 혹하게 하시고. (네꼬, 게으른 주제에 왜 입을 내미냐!)

로드무비 2007-06-19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님, 제가 딱 하나, 좋아하는 영화 보는 일만큼은 동작이 빠른 편입니다. 보시고 나서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알려주세요.=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