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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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내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읽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약간의 정보를 갖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장르물이나 추리소설 경우에는 정보가 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전의 경우는 다를까?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 대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내 경우 이 소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시작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울프의 소설이 그러하긴 하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올랜도는 올랜도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놀랍게도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는 16세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영국의 귀족 신분으로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척이다. 모두가 그를 흠모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모두 남자라고 알고 있던 그가 여성이 된 것이다. 이후로 그는 여성으로 불멸의 연인처럼 거의 300년 가까이 살아간다. 울프가 1928년에 쓴 소설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아름다운 소년 올랜도에게 당연히 사랑이 찾아온다. 이전과는 다른 사랑이었다. 러시아 공주 사샤와 사랑은 올랜도에게 전부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배신하고 만다. 올랜도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하인과 가정부는 그를 걱정한다.

 

인생이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62~63)

 

이별과 배신의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그는 이제 달라졌다.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왔다. 귀족이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하여 연회를 열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올랜도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었다. 올랜도는 자신만의 글()을 원했고 한 시인과 만났다. 그에게 시와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세속적인 욕망에 좌절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올랜도는 여인들의 추종의 대상이지만 사랑의 실패는 그에게 환멸을 안겨줄 뿐이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가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특사로 가기를 청한다.

 

새로운 곳에서 대사로의 삶을 시작하는 올랜도. 터키에서 대사의 역할도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른 대사를 만나고 국가의 주요 인사와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외교관의 의무로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은 그의 신분을 공작으로 올려놓았고 수여식이 끝나고 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녀가 여자가 되었고 대사가 아닌 집시의 삶을 선택한다. 집시들과 자연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행복했지만 그곳에 정착할 수는 없었고 떠나야만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삶에서 올랜도의 남은 삶은 쭉 여성이었지만 그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봐도 좋다. 어떤 상황에서는 남성성이, 어떤 상황에서는 여성성이 나타났다. 환경에 적응하듯 말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성, 그것은 하나로 국한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올랜도가 남자였던 이전과 꼭 같았다. 성의 변화가 비록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123)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저 올랜도가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그 뒤로는 쭉 여자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124)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우리의 올랜도는 어쩌다가 여자가 되었을까. 대단한 사고가 발생했던 건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여자였던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건 그(그녀)가 올랜도란 사실이다. 어떤 성을 가졌냐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어쩌면 울프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글쓰기다. 올랜도가 끊임없이 쓰는 원고 말이다. 16세 소년이었던 올랜도가 쓰기 시작한 참나무는 항상 그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움직이게 한다. 올랜도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원고는 벌써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 참나무의 원고였다. 올랜도는 이 원고를 벌써 여러 해 동안 위험한 여건에서도 지니고 다녀, 여러 쪽에 얼룩이 졌고, 어떤 것들은 찢어져 있었고, 집시들과 함께 살 때는 종이가 없어서, 여백에 빼곡히 써넣고, 쓴 것에 줄을 긋고 해서, 원고는 마치 꼼꼼하게 짜깁기를 해 놓은 천 조각 같았다. 책의 첫 장을 열어보니, 그녀 자신의 소년다운 필체로 적은 1586년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거의 300년간 이 작업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208)

 

올랜도는 협정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지극히 행복한 상황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한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 (234)

 

소설에서 올랜도의 삶은 192836세까지 다룬다. 300년 가까이 산 인물이기에 소설을 통해 영국의 시대적 변화도 만날 수 있다. 화려했던 엘리자베스 1, 빅토리아의 최전성기, 산업혁명 그 후 습한 영국의 일상까지 세세하게 그려냈다. 울프는 장난삼아 쓴 소설이라 말하지만 올랜도의 성격,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작정한 듯) 보여준다. 옷차림, 올랜도의 집,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한 묘사,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등장하는 것들(기차, 백화점, 서점)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올랜도는 정말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어렵고 난해한 울프의 세계, 그럼에도 그 깊이를 알고 싶다.

 

*소설에서 올랜도는 변화한다. 그 변화(성장)을 위한 장치로 잠이 등장한다. 사샤와의 이별 후 올랜도는 깊은 잠(일주일 동안)에 빠졌고, 터키에서도 여성으로 변화하기 전 술에 취해 잠에 빠졌다. 집시의 생활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도 올랜도는 잠에 취한다. 아들을 낳기 전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잠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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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5-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다가 낭패를 너무 많이 봤네요.... 약간이라도 알면 좋은거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당하고도 정보없이 읽네요. 습관이 참 안고쳐져요ㅎㅎ

자목련 2019-05-21 17: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떤 책은 너무 많은 정보에 실망하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리뷰도 책의 정보에 속하는 거라. ㅎㅎ

coolcat329 2019-05-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프의 책은 단 한권도 안읽고 또 모르지만 이런 환타지 소설을 썼다니 몰랐네요. 性이 바뀌다니 재밌고 무엇보다 300년간 살면서 시대를 다 경험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시대별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유익할듯도 싶습니다. 언젠가! 꼭 읽도록 기억해두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19-05-21 17:58   좋아요 1 | URL
네, 말씀처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소설이었습니다. coolcat329 님,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로링 2019-06-3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먼저 본 케이스라 책을 봐야할지 또다른 고민이네요..영화는 진짜 꼭 보세요~틸다 아닌 올랜도는 상상하기 힘들정도예요..영상도 너무 멋지고..
 
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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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의사는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간주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화자인 는 그저 상한 음식을 먹었을 뿐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오랫동안 방치된 냉장고 속 음식을 살기 위해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안의 독이 나를 이렇게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복되는 과정에 같은 병실의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바로 조몽구란 남자의 인생을 지배하고 함께 살아온 독에 대한 이야기다.

 

‘독’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마비, 살인, 공포, 죽음이란 말이 따라온다. 우리는 위협하는 존재(독거미, 독버섯, 독사)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독을 몸에 지닌 남자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조몽구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다. 작가인 아버지 조영로에게서 이어진 독과 그걸 해독하는 유일한 약인 어머니 고운선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이어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가진 어머니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에 더욱 자신에게 죄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어려서부터 두통으로 힘겨워했던 조몽구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달래주는 존재도 어머니였으니까.

 

조몽구는 두통 때문에 항상 이마에 대고 있어야 했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딱히 방법을 없었고 이로 인해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친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얼핏 주인공 조몽구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일 뿐 독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삼촌 수호의 등장으로 소설은 독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반대의 개념인 약이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어렵고 복잡하다. 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떠나서 그것을 몸으로 직접 연구하고 실험을 하는 수호와 그런 수호를 통해 자신 안의 독에 대해 확신하는 몽구의 욕망과 심리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수호가 몽구에게 인생을 설명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공감하면서도 말이다.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100)

 

소설엔 독을 연구하고 그것에 빠져들거나 스스로 독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것에서 약을 발견하는 삶을 사는 인물로 수호뿐 아니라 몽구와 운명적으로 연결된 부모와 유약하게 태어나 갖은 질병으로 삶 자체가 힘든 자경과 그의 오빠 정우, 술이라는 독을 품고 살아온 아버지를 독주로 인해 죽음으로 몰고 간 군대 동기 광수,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보편적인 삶이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 자랐다. 자신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독을 품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해. 하지만 에 대항해서 우리를 지키게 하는 도 얼마든지 있어.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거야. 너는 늘 두통에 시달리느라 거기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지.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순간도 멍하니 보내는 일이 없이 항상 깨어 있는 거야. 네 두통은 너를 마비시키지 않고 각성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독이자 약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198~199)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소설은 더욱 복잡하게 독을 보여준다. 독으로 인한 삶의 파면과 그럼에도 독에 매몰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라고 할까. 소설을 읽을수록 화자인 독자는 가 조몽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 몸에 가득한 독이 빠져나가는 동안 경험한 환각이 만들어낸 인물 혹은 괴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으로 두렵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독과 약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수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다만 독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타이밍이 다를 뿐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520)

   

보편적이지 않은 독이라는 주제를 독특하고도 폭넓게 파헤친 소설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산재한 독을 생각한다. 모르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독,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치명적인 독.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까다로운 소설로 남을 듯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미묘한 여운이 남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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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 - 나는 하루 한번, [나]라는 브랜드를 만난다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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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란 제목은 이 책을 통해 들려줄 이야기가 경영이나, 마케팅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로 분류할 것이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 말이 짐작대로 어렵고 재미 없는(?)내용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보통의 에세이라 할 정도로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브랜드와 마케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광고, 전략, 상품, 서비스로 비슷할 것이다.

 

무엇을 팔고자 할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해, 혹은 그것을 얻고자 할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팔고 산다는 개념은 물건에 대해 국한된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물론 마케터를 꿈꾸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분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으로 들어가 보면 「끊임없는 일상의 관찰」과 「꾸임없는 브랜드의 통찰」로 나눠 브랜드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끊임없는 일상의 관찰」부분에서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보통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선배로 진실한 조언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장인’과 ‘직업인’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나 자신의 이력(초졸, 검정고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면서 자신을 성장하게 한 원동력으로 결핍과 열등감이라고 말하는 진솔한 태도가 무척 좋았다.

 

어쩌면 경험자로 혹은 전문가의 입장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신감에 찬 우월감 비슷한 이야기라ㅗ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전해지는 건 그런 감동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말이다. 막연하게 취업을 하고 직장에 출근하고 일을 하면서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과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런 조언처럼 말이다.

 

일이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일은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단지 아직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54쪽)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요? 결국 무슨 일이든 그 시작과 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18족)

 

결국엔 ‘나’라는 브랜드와 다른 누군가가 만나 무언가를 이루는 것, 그것이 모두가 지향하는 일의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건 아닐까.

 

「꾸임없는 브랜드의 통찰」에서는 브래드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브랜드, 광고 공식, 리더의 역할,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에 대한 사례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확인시킨다.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런 적절한 설명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내뱉는 한마디의 언어는 생각의 프레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용카드의 이름이 신용카드가 아닌 외상카드나 부채카드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87쪽) 

 

어떤 직업에 속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아니, 일을 떠나 ‘나’라는 가치를 만들고 브랜드를 원하는 모두에게 훌륭한 책이다. 오늘만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대중을 움직이는 차별적 가치는 누구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발견에 새겨진 이름의 가치가 곧 브랜드인 것입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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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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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시리즈가 이토록 사랑받은 이유를 정확하게 잘 몰랐다. 그냥 무민이란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무민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을 읽게 되었고 나는 토베 얀손의 따뜻하고 다정한 글에 빠져들었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특징에 대해서도 나는 잘 몰랐다. 다만 그들이 모두 무민 가족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는 건 안다. 무민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져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걸 말이다. 마지막이라서 그랬을까. 소설은 조금 쓸쓸하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무민 골짜기로 향한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12)

 

어쩌면 무민 가족은 벌써 떠나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스너프킨은 숲길을 걷는다. 스너프긴을 시작으로 혼잣말을 하는 토프트, 심각한 결병 증세로 청소를 하던 필리용크, 드디어 배를 타고 떠나기로 마음먹은 헤물렌, 뭐든 금세 잊어버려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리는 그럼블 할아버지, 무민 가족에게 입양된 여동생 미이를 보고 싶은 밈블까지 모두가 무민 골짜기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무민 가족은 모두 떠나고 집엔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여섯 명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무민 가족은 언제 등장하는 것일까? 처음엔 나도 막연하게 그들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쓸쓸하고 누군가는 외롭고 누군가는 불안하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이 무민 집에서 사소한 일로 다투며 지내며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가는 모습에 미소가 번졌다. 청소와 요리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필리용크는 무민 마미처럼 생선 요리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토프트는 헤물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무민 마미를 생각한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민 가족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란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몰라. 섬은 지도에 나와 있으니까. 거룻배는 물이 새지 않게 구멍을 막으면 되고. 하지만 왜? 그냥 내버려두자. 무민 가족들도 외따로 떨어져 있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132)

  

 

 

 

혼자였던 시간을 뒤로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 모두가 무민 가족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빈 집에서 혼자가 아닌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그럼블 할아버지를 위한 연회를 열고 돌아올 무민 가족을 위해 청소를 한다. 마치 여섯 명은 하나의 가족처럼 토닥거린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서로의 삶을 나눠 갖는 것은 아닐까. 곁에 없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민 가족이 떠난 집에서 무민 가족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무민 시리즈지만 그들과 내내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민 시리즈의 마지막이라서 그런 걸까. 여섯 명의 캐릭터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들은 모두 깊은 사유를 던진다. 특히 헤물런의 생각을 전하는 이런 글은 가슴에 스며든다. 삶이 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천천히 항해해 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서둘러 가고 또 어떤 이들의 배는 뒤집히기도 한다. (40)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을 말이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나고 혼자 남은 토프트는 무민 가족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의 곁에 가만히 앉아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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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5-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이~ 좋아해요^^♡

자목련 2019-05-09 19:39   좋아요 0 | URL
나는 이 책을 읽고 겨우 무민 캐릭터에 대해 알았는데 이미 ‘미이‘의 팬이었네^^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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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의 휴대폰을 해지했다. 정지 상태로 유지되었던 언니의 번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휴대폰으로 11개의 번호를 꾹꾹 누르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휴대폰에 담겼던 이름과 연락처는 이제 사라진 것일까. 지난 일, 지난 삶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것일까. 간직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일까. 어쩌다 보니 기억과 시간에 대한 소설을 읽고 계속 그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나는 두 편의 소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미 다른 곳에서 만난 소설이다. 

 

소설은 종종 기억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나를 이곳이 아닌 그곳으로 지금이 아닌 그때로 데려다 놓는다. 후회라기보다는 아쉬움 같은 그런 감정을 불러온다. 소설 속 화자의 감정을 빌려 그리워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나 할까.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은 파리에서 만난 언니나 화자 ‘나’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시간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원했던 ‘나’와 파리 주재원인 언니가 보낸 시간들, 하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어디서부턴지 어긋나버리는 관계. 아니, 그 어긋남을 포착했지만 모른 척했을지도 모를 그 시절의 미묘한 감정의 파장.

 

 

 

 

그 모든 일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우리는 그 일을 이야기하며 같이 웃었다. (「시간의 궤적」)

 

잿빛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짙푸른 물결이 이쪽으로 다가오다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황금색으로 빛나던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파라솔의 몸체가 흔들렸고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옅은 슬픔 같은 것이 가슴 안에서 서서히 퍼졌다. (「시간의 궤적」)

 

지나간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누군가와 다시는 그 일을 꺼내볼 수 없는 관계가 된다는 건 울적한 일이다. 완벽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부질없는 것일까. 헤어짐의 순간이 그를 기억하는 장면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는 건 아니다. 나를 기억하는 당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과 같을까. 여전히 이 구절에 마음이 머문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으니까. (「우리들」)

 

당신과 나 사이의 시간은 그 어딘가에 정지되었음을 느낀다. 다시 그 시간은 흘러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걸 안다. 용기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고 나는 내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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