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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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점점 더 두꺼워진다. 밤나무는 빠르게 자란다. 물푸레나무가 야구방망이 정도로 자랄 동안 밤나무는 화장대를 만들 정도로 자란다. 몸을 구부려 어린 나무를 보려고 하면, 나무가 당신의 눈을 찌를 것이다. 나무껍질의 갈라진 틈은 몸통이 위쪽으로 비틀려 자라나며 이발소 간판처럼 빙빙 돌아간다. 바람 속에서 가지들은 짙은 녹색과 밝은 녹색으로 번갈아 반짝거린다. 이파리의 넓은 면은 더 많은 햇빛을 찾아 밖으로 뻗어 나온다. (18~19쪽)

 

 어린 시절 마당에는 두 개의 커다란 향나무가 있었다. 마치 우리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말이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에는 정말 아름다웠고 해가 지는 저녁에는 길고 긴 그림자를 마당에 드리웠다.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에 누가 그 나무를 심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향나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감사하게도 다른 나무들이 꽤 많이 있다. 나무, 숲, 나아가 자연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 스토리』는 그런 나무들을 불러온다. 신령스러운 나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 오직 나무만이 알 수 있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 사실 묘하게 아름다운 이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아니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하면 맞을까. 저마다의 사연으로 나무와 연결된 9명의 이야기, 그들이 운명처럼 하나의 나무의 가지로 이어진다.

 

 이 광대한 소설의 시작은 그들에 대한 소개다. 매달 21일 농장의 밤나무를 찍은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그것은 약속이 되었다. 100년 가까이 밤나무를 찍은 사진을 물려받은 화가 닉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어디 화가뿐일까. 아버지에게 받은 두루마리의 그림과 옥으로 된 뽕나무 반지가 자신의 삶을 지배할 거라 엔지니어 미미도 몰랐을 것이다. 나무 덕분에 목숨을 거진 참전 군인 더글라스, 자신의 단풍나무를 사랑했지만 돌고 돌아 그것과 진정하게 마주하는 교수 애덤, 아마추어 연극 무대에서 나무를 연기하고 정원에 나무를 심자던 레이와 도로시, 나무에서 떨어져 얻은 장애로 인해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 게임을 만들어 나무와 숲을 자유롭게 지배하는 닐리, 잘 들리지 않아 어눌한 말 때문에 나무와 친구가 되고 결국은 나무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자 패트리샤, 마약과 술에 찌들어 감전되었지만 놀랍게 살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올리비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오던 그들은 우연처럼 서로에게 연결된다. 성공한 엔지니어 미미는 휴식처가 된 공원의 나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사실에 놀라고 잘려나간 나무의 자리에 돈을 주고 나무를 심는 남자 더글라스를 만난다. 계시처럼 운명의 목소리에 이끌려 길을 떠난 올리비아는 공짜 나무 작품이란 포스터를 보고 닉의 외양간에서 닉의 작품을 마주한다. 벌목을 하는 이들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한다. 사람들의 심리를 관찰하기 위해 애덤은 그곳에 도착하고 마침내 그들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간다. 나무와 숲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공무원과 대치한다.

 

 그들이 밖에 있다면 과학자 패트리샤는 꾸준하게 숲 안에서 자신의 연구를 한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 소통하고 성장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밝혀내는 일. 처음에는 무시했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책을 인정하고 강의를 청한다. 위기에 놓인 나무의 종자 은행을 만들기로 한 패트리샤는 강의를 통해 사람들에게 숲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말한다.

 

 숲의 모든 것들은 숲이다. 경쟁은 협조의 끝없는 변종에 속한다. 나무들은 서로 한 나무에서 이파리들이 싸우는 만큼만 싸운다. 대부분의 자연은 전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생명체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종들은 싸울 수 있는 이나 발톱이 없다. 하지만 나무들이 자신들의 창고를 공유한다면, 모든 무자비함은 초록의 바다 위로 떠가게 될 것이다. (203쪽)

 

 우리가 언제나 나무로부터 이것저것 원했던 것처럼, 나무도 우리에게서 뭔가를 원합니다. 이건 신비주의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환경은 살아 있어요. 목적을 가진 서로에게 의존하는 생명들의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미줄이죠. (중략) 우리에게 미끼를 어떻게 찾는지를 가르치면서 나무들은 우리에게 하늘이 파란 걸 보게 가르쳤죠. 우리의 뇌가 숲을 풀어나가도록 진화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호모사피엔스였던 기간보다 더 오래 숲을 형성하고 숲에 의해 형성되었어요. 인간과 나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촌이에요. 우리는 같은 씨앗에서 나와서 공유 장소에서 서로를 이용하며 반대 방향으로 자라난 두 개의 존재예요. (638쪽)

 

 아득한 먼 옛날 밤나무의 씨앗으로 시작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의 끝을 보여준다. 나무의 열매, 나무의 가지, 나무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 모든 것을 준 나무를 정작 눈에 담지 않는 인간의 모습. 소설에서 패트리샤의 목소리는 가장 중요하다. 그녀가 들려주는 나무의 생애는 매혹적이고 황홀한 숲을 상상하게 만든다. 또한 그녀는 경고한다. 나무와 숲과 인간이 공존 해야만 하는 너무도 많은 이유를. 인간이 그것을 모르는 척 살아왔기에 지금 지구의 숲은 망가졌다고. 숲의 외침, 숲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임을 말한다.

 

 정성을 모아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내가 아는 나무의 이름을 가만히 부르고, 울창한 숲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바버라 킹솔버의 『본능의 계절』가 떠오르기도 했다. 은유로 채워진 활자를 통해 삼림욕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숲의 전령사인 수많은 나무의 손짓을 목격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받은 기운의 모양이나 크기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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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24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나무 느낌처럼 초록색이네요.
자목련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자목련 2019-02-27 14:44   좋아요 1 | URL
네, 싱그러움을 전해주는 표지입니다.
서니데이 님, 즐거운 수요일 보내세요^^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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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시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있는데 그 마음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딘가에 흘리고 주워 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훑어보기가 아니라 천천히 시집의 책장을 넘기며 나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이병률의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유독 ‘사람’이란 시어에 끌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나는 사람을 노래한, 사람을 위로한, 사람을 말하는 시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이병률의 시를 많이 읽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시인들, 그 안에 그는 없었다. 여행 에세이 『끌림』을 만났을 뿐, 시는 잘 알지 도 못했다. 어쩌면 이번 시집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방송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좋은 시는 무엇일까, 다시 생각한다. 자꾸만 읽게 되는 시,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시, 그런 시가 좋은 시 일지도 모른다. 우연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인장을 이 시집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을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사람」전문)

 


  사람과 선인장이라니. 누구나 자신만의 가시를 가지고 살아간다. 가시로 방어를 하거나 가시로 존재를 증명하거나. 오래전 선인장을 보면서 나도 선인장처럼 가시를 꽃으로 피우기를 바랐던 마음의 한 조각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번엔 이런 시다.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

 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

 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

 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

 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

 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

 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

 멀쩡한 하날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

 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

 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

 오래 바라보는 이 저녁

 내 손에 굵은 실을 매어줄 사람 하나

 저 나무 뒤에서 오고 있다


 실이 끊어질 듯 손목이 끊어질 듯

 단단히 실을 묶어줄 사람 위해

 이 저녁을 퍼다가 밥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온다」 전문)


 

 「사람이 온다는 제목의 시를 읽으면서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떠올린다. 닮은 듯 다른 시. 우리는 저마다 자기 힘으로는 닫지 못하는 문 하나씩 있는데 마침내 그 문을 닫아줄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다 란 마지막 연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할 수 있는 모든 말들을 이 시집에서 마주한다. 어떤 시는 혼잣말처럼 들리고, 어떤 시는 안부처럼 들리고, 어떤 시는 편지처럼 도착한다. 스치듯 지나가는 당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손을 꼭 잡은 것 같은 당신, 특정한 날에, 어떤 계절에 나를 기억하고 생각해 줄 것만 같은 당신.

 

 

 도시는 불빛이 많으니까 스스로의 빛도 필요하다

 바깥 불빛보다는 안쪽의 불빛에 의지해야 하므로

 감정도 필요하다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감정은 한 방향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을 모은다 (「생활이라는 감정의 궤도」부분)


 

 바깥의 일은 어쩔 수 있어도 내부는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슬란드에 남습니다


 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이별의 원심력」부분)

 

 숱한 날들을 꺼내 놓지 않아도 이 시집으로 다 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랄까.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감정을 꺼내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구겨지고 너덜너덜해진 감정을 말이다. 한 번쯤은 다시 만나고 싶은 당신이 생각나는 시집이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우습게도 그런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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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 인류를 사로잡은 32가지 이즘, 개정증보판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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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대든 유행이 있다. 지난 유행은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사상이나 철학도 그런 게 아닐까. 안광복의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나의 시대를 이끄는 사상, 철학. 완벽한 사상은 존재하지 않기에 시대에 맞게 보완과 수정을 거쳐 새로운 사상으로 재탄생되기도 하니까.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가장 대표적인 사상이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인류는 발전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상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 안광복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32가지 사상(이즘)을 소개한다. 사상으로 시대를 읽는다고 할까.

 

 책은 정치, 철학 예술, 국가, 경제, 사회로 나누어 32가지 사상을 설명한다. 각 사상에 대해 시대에 맞춰 사상이 발생한 사회적 배경과 더불어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현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독자는 32가지 질문을 받는 셈이다.

 

 공화주의, 계몽주의, 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아나키즘, 포플리즘이란 사상을 통해 정치의 권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하나씩 잘 정리된 사상을 통해 우리는 현 시대와 접목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살피게 된다. ‘모두를 위한 나라’를 지향하던 고대 아테네의 공화주의는 지금 우리가 갈구하는 목표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정치권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도를 자유 민주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의 대립으로 정리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사회 민주주의자들에게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정의를 위해 연대하여 끊임없이 나아갈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손을 내미는 열린 자세와 가장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72쪽)

 

 철학 예술에 영향을 미친 사상은 무엇일까. 저자는 불안한 세상에서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매달렸던 사상들, 낭만주의, 니힐리즘, 실존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차례로 소개한다. 예술로 가장 활발하게 보여줬던 낭만주의, 니체로 대표되는 니힐리즘, 20세기 가장 뜨거웠던 포스트모더니즘은 학창시절의 기억을 불러온다. 우리가 끊임없이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는 건 이런 글과 맞닿은 게 아닐까 싶다.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간절한 다짐과 투쟁처럼 보여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죽음으로 끝날 우리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나 허무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무엇이건 될 수 있다. 세상은 허무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할지, 어떤 인생을 살지는 오롯이 우리의 자유에 달렸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더 나아지려는 내 안의 욕망을 충실하게 사는 삶,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긍정의 니힐리즘이다. (115쪽)

 

 이제는 다양한 사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국가는 좋은 나라로 성장하고 발전한 것인지 살펴봐야 할 차례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프런티어 정신, 대동아 공영권, 마오이즘, 주체사상을 통해 과거 한 나라를 지배하고 통치했던 사상이 현재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말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제국주의는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제국주의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다국적 기업, 세계적인 기업의 횡포, 자본주의와 겹쳐 보인다. 같은 민족을 외치며 뭉치고 애국으로 이어졌던 민족주의는 파시즘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파시즘, 마오이즘, 주체사상은 강력한 독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시절 그들만의 사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이들, 어떤 사상이 가장 훌륭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적합한 사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정치가 안정되었다 해서 좋은 국가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니 경제활동을 위한 다양한 이념들이 등장하는 건 당연하다. 물건을 생산하고 수익을 남기고 투자를 하는 자본주의,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분배하자는 공산주의, 우선을 잘 살아야 한다는 목표로 개발만 외치는 과거 우리의 모습인 개발 독재, 충과 효를 중시하던 유교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신유교 윤리, 규제가 완화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창조적 혁신의 기업가 정신은 경제의 흐름을 정리한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걸 상기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는 자인하기도 하다. 돈만 된다면 온갖 못된 짓을 서슴지 않고 벌인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중노동을 시키는 잔혹한 짓이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돈 앞에서는 가치와 양심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모습이다. (247쪽)

 

 신자유주의는 빈부 격차를 벌려 놓았다. 반면에 실업자는 늘고 복지 정책은 줄었다. 힘센 기업 몇몇이 시장을 휩쓰는 독과점도 늘어나는 중이다. (290쪽)

 

 이토록 치열한 세상,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 저자가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사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직시하게 만든다. 다문화 다민족의 시대를 살면서 뽑아내지 못한 오리엔탈리즘,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를 위한 페미니즘, 환경을 생각하고 다음 세대와 공존해야 할 것을 기억하라는 생태주의, 가장 이상적인 체제를 꿈꾸는 관료주의.

 

 성의 차이는 오랫동안 차별의 근거가 되어 왔다. 이제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324쪽)

 

 이 한 권의 책으로 마주하는 32가지 사상(이즘)으로 역사와 사회를 전부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와 맞춰 철학과 사상을 접목시킨 부분은 내용은 무척 유용하다. 가장 좋은 사상, 최고의 사상은 어디에도 없다. 단숨에 더 나은 세상으로 도약할 수 없다. 그 사상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상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알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한 철학과 사상에 대한 입문서로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은 만족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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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16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것이든 다 좋은 것만 있지 않겠지요 하나가 아닌 여러 가지를 알고 무엇이 좋은지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삶이 덧없기에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니 좋은 말이네요 덧없다고 막 살면 안 되겠지요 문제가 있는 것도 고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것도 빨리 되지 않고 천천히 되겠지요 조금씩이라도 좋아진다면 좋겠습니다


희선

자목련 2019-02-21 14:42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사상을 접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사상들로 인해 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요.
 
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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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로 성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남긴 것일까? 그렇다면 <절규>를 그림 화가 뭉크는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절규’란 단어를 듣자마자 떠올리는 건 그의 그림이니까. 노르웨이의 국민작가 뭉크를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만났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무엇이 그를 불안으로 이끌었는지 유성혜가 들려주는 뭉크의 삶과 사랑, 그리고 인생.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기억이란 감정과 생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기억을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이 화가의 뜻대로 ‘해석’되고 ‘편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뭉크의 그림이 바로 그러했다. <절규>에서 배와 난간, 후경의 두 사람이 단순히 ‘보이는 것’이라면, 역동적으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듯한 자연 풍경과 공포에 떠는 중심인물은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강렬한 기억을 시각화 한 것이었다. 화가로서 그는 한발 물러선 관찰자가 아니라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였다. (13~14쪽)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란 말은 뭉크의 그림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그것은 뭉크가 무엇을 본 것일까, 상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뭉크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었다. 아내를 잃은 상실감으로 인해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병약했던 뭉크는 학교를 그만두고 방에서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때 정물이나 창밖 풍경을 그렸다. 어쩌면 이때 느꼈던 고독과 외로움이 그의 작품의 바탕이 된 건 아닐까 싶다. 뭉크의 예술을 완성시킨 노르웨이의 자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노르웨이, 그 차가움 속에서 뭉크를 만나는 일은 그곳을 여행하는 일이기도 했다. 저자 유성혜는 뭉크가 살았던 노르웨이의 도시를 이동하면서 뭉크가 영향을 받은 이들을 언급하고 그가 사랑한 여인에 대해 들려준다. 점점 화가로 인정받고 성장하는 뭉크의 예술의 세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했을 때 달라지는 모습, 그림을 그릴 당시 뭉크의 심리적 상황까지 말이. 독자는 뭉크의 그림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림과 함께 뭉크가 노트에 기록한 글을 소개하고 있어 더욱더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무슨 본질을 신경 써야 하나,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힘없는 움직임이다. 떨리는 눈꺼풀, 속삭이는 듯한 입술, 그녀는 숨을 들이쉰다. 마치 살고 싶다고 말하듯. -뭉크의 노트(MM T 2771, 1890~1891)

 

 뭉크가 살던 시대에는 화가들이 그림에 담을 모티브, 주제, 화풍, 기법에 집중했을 뿐 그림을 어떻게 전시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뭉크는 그림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림 하나하나가 모여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어떻게 배치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이도를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뭉크는 그림에서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과 디자인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였다. (223쪽)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그림들을 그릴 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모아보았을 때, 각각의 그림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들이 전시되자 그림들 사이에서 하나의 울림이 터져 나왔고, 그림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교향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되었다. -뭉크의 노트(MM N 46, 1930~1931)

 

 뭉크의 그림과 인생에 대해 읽노라니 자꾸만 고흐가 어른거렸다.(저자도 언급했지만) 비슷한 세대에 활동한 화가라 그랬을까. 사랑에 대한 갈증, 연인에 대한 상처, 고독,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닮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뭉크가 어머니와 일찍 이별하지 않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그랬다면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을 그렸을까. 화가가 아니라 아버지처럼 의사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통해 뭉크의 많은 그림를 마주할 수 있어 즐겁고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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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1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뭉크 하면 절규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그것 말고도 많은 그림을 그렸을 텐데... 절규는 참 어두운 느낌이에요 제목부터 그렇군요 어머니가 일찍 죽고 아버지는 자기 슬픔에만 빠졌다니... 아버지라도 뭉크와 다른 아이를 잘 돌봤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머니가 일찍 죽지 않았다 해도... 벌써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지요 어린시절에는 그림을 그리고 쓸쓸함을 달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자목련 2019-02-15 17:14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그랬어요. 이 책을 통해 뭉크의 다야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이 예술로 확장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무척 안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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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고 수군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지금 여기가 얼토당토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사회는 좋아진다. (218쪽) 


 어떤 일이든 그 일의 주체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 대체로 나쁜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타인의 경우 동요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거나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뉴스에 나온 대로 믿거나 내게 일어나지 않은 것에 조용히 안도할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벌어지면 격하게 감정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층간 소음에 대해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밤늦게 쿵쿵거리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래층에서 층간 소음 때문에 벨을 눌렀을 때 너무도 화가 났다. 우선 죄송하다고 조심하겠다고 인사를 하고 소음 발생 시간을 물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다. 항상 그렇다는 것이다. 뛰는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답을 할 수 있을까. 관리실에 전화를 걸어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답은 더욱 놀라웠다. 아래층에서 관리실에 전화를 했고 괸리실은 그것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아래층 사람이 올라온 것이다. 항상 층간 소음으로 힘들다는 아래층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관리사무소에 더욱 화가 났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 불쑥 그때 일이 떠올라 글이 길어졌다. 층간 소음에 대해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사람들의 인식에 놀라웠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약자에게는 강하게 강자에게는 약하게, 대한민국의 인식이 아닐까 싶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의 점거 현장을 다룬 뉴스를 보면서 씁쓸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국회의원의 특혜 응원 논란도 그러했다. 지켜야 하는 규칙을 무시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꼼수를 부리는 기업.

 

 오찬호의 글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우리 사회의 병폐, 그러니까  권력과 힘을 내세워 여전히 이어지는 차별, 곳곳에 만연한 혐오,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예외적이라는 말로 무시하는 기준.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이니 그 대책을 이야기하라고 제안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에 좋아질 수는 없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다 경험했다. 틀렸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바로 그것을 표현해야 하며 경청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좋은 책이며 알찬 책이다. 많은 이들이 읽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면 좋겠다.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읽고 공부하는 방법, 어렵지 않다. 쉽고 친근하게 말하는 사회학자 오찬호의 책으로도 충분하다.

 

 공감의 시작은 타인의 상황에서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의 실천은 “나도 네 마음 안다”는 기만적인 사람이 되길 거부하고, 아픈 것도 서러운 사람에게 “어쩌다가 그랬어?”라고 묻는 황당한 사람이 되지 않는 거다. “내가 감히 너의 슬픔을 알 순 없겠지만, 노력할게”라고 말하면서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성찰적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입으로만 ‘공감’을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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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2-1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사람이 잘못된 것을 알고 고치려고 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어떤지를 더 잘 알면 좋겠네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아야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의 잘못만 보려 하지 않아야겠네요

밑에 층에서 늘 소리가 들렸다고 하다니, 소리가 난다고 해서 꼭 바로 위층에서 나는 건 아닐지도 모를 텐데... 저도 잘 모르지만 그럴 것도 같아요 그 뒤로는 어땠는지...


희선

자목련 2019-02-15 17:15   좋아요 1 | URL
우선은 나부터 고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소음에 대한 민원으로 밤에는 세탁기를 돌리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아요. 이사를 간 것 같기도 하고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