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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평점 :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잠들 때까지 나를 둘러싼 것들은 모두 상품이다. 핸드폰 알람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TV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잠에 든다. 이토록 편리한 세상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많지 않다. 당연히 자본주의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노동력 착취나 다국적기업의 사업 확장이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생존 그 차제인 빈곤 국가의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세계는 점점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로 성장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한쪽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니.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부의 균등한 분배는 왜 어려운 것일까? 모두가 잘 사는 나라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결국 우리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세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병패, 독식하는 재벌, 개선되지 않는 노동 현장. 어쩌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세계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아주 쉽게 자본주의를 설명한다. 할아버지 장 지글러와 손녀가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과거 노예제도, 대주주와 소작농, 17세기 프랑스 혁명,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누구나 들어봤지만 그 배경이나 그 후의 시대 변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장 지글러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가장 쉽고 간단한 것을 살펴보면 이렇다. 문자로 TV 화면으로 거리의 건물 외벽이나 버스를 통한 광고에 숨겨진 의도,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제품 권장 사용시간, 뭐든지 소비하게 만드는 세상, 그 끝에는 누군가의 이익으로 집결된다는 말이다.
소비 사회는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세워졌단다. 구성원들은 사도록, 다시 말해서 소비하도록, 산 것을 버리고 또 최대한 많은 양의 상품을 사들이도록, 필요하지 않아도 자꾸 새로운 상품을 사도록 부추김을 받는 거야. 그러자니 그 상품들은 애초부터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 가능하도록 기획되었고. (89쪽)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이익이지. 그러니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만 있을 뿐이야. 자본주의는 대결에, 전쟁에,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있어. 때문에 자본주의는 전쟁으로부터 마르지 않는 이익을 퍼 올린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구나. 파괴하고, 재건하고, 무기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거지. (176쪽)
이런 설명을 듣고 나니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 기업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흔들리는 욕망은 잊어버리고 말이다. 이처럼 과도한 경쟁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사례는 놀랍게도 너무 많았다. 제3국을 통해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의 대부분이 어린아이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졌고, 콜탄(비행기 동체와 휴대전화를 만드는 필수품)을 채취하기 위한 광산의 좁은 갱도에 마른 어린아이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어린아이는 부모와 형제를 위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 그것들로부터 부를 획득하는 민간 기업.
여전히 하루 한 끼를 먹지 못해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아서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라는 장 지글러의 말은 정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거대한 힘과 권력으로 세계 금융권과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 지글러는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질 거라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유토피아를 꿈꾸고, 희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구촌 시민사회라는 화두는 지극히 다양한 문화, 사회 계층, 연령대에 속하는 수백만 명의 남녀를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있을 뿐이야. “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중앙 위원회나 정당 노선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 지구촌 시민사회는 오늘날 5대륙에서, 가장 예상을 뛰어넘는 장소에서, 식인적인 세계의 질서에 맞서는 수많은 저항 전선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더 이상 다양할 수 없는 사회 운동이 이를 대표하고 있지.(…) 이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신비한 형제애가 형성되고, 이러한 연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되어 자본주의라는 야만에 맞서 투쟁하게 되는 거지. 현재 지구상에는 이렇듯 각성한 사람들이 수억 명에 이른단다. (178~179쪽)
지독하고 끔찍해서 피하고 싶은 현실을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란 말의 힘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다. 아니, 모른 채 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가 굶어죽거나 전쟁의 피해를 보거나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여겼다. 알아야만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 이 책이 그 시작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