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전집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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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내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읽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약간의 정보를 갖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장르물이나 추리소설 경우에는 정보가 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전의 경우는 다를까?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 대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내 경우 이 소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시작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울프의 소설이 그러하긴 하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올랜도는 올랜도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놀랍게도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는 16세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영국의 귀족 신분으로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척이다. 모두가 그를 흠모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모두 남자라고 알고 있던 그가 여성이 된 것이다. 이후로 그는 여성으로 불멸의 연인처럼 거의 300년 가까이 살아간다. 울프가 1928년에 쓴 소설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아름다운 소년 올랜도에게 당연히 사랑이 찾아온다. 이전과는 다른 사랑이었다. 러시아 공주 사샤와 사랑은 올랜도에게 전부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배신하고 만다. 올랜도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하인과 가정부는 그를 걱정한다.

 

인생이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62~63)

 

이별과 배신의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그는 이제 달라졌다.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왔다. 귀족이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하여 연회를 열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올랜도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었다. 올랜도는 자신만의 글()을 원했고 한 시인과 만났다. 그에게 시와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세속적인 욕망에 좌절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올랜도는 여인들의 추종의 대상이지만 사랑의 실패는 그에게 환멸을 안겨줄 뿐이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가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특사로 가기를 청한다.

 

새로운 곳에서 대사로의 삶을 시작하는 올랜도. 터키에서 대사의 역할도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른 대사를 만나고 국가의 주요 인사와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외교관의 의무로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은 그의 신분을 공작으로 올려놓았고 수여식이 끝나고 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녀가 여자가 되었고 대사가 아닌 집시의 삶을 선택한다. 집시들과 자연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행복했지만 그곳에 정착할 수는 없었고 떠나야만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삶에서 올랜도의 남은 삶은 쭉 여성이었지만 그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봐도 좋다. 어떤 상황에서는 남성성이, 어떤 상황에서는 여성성이 나타났다. 환경에 적응하듯 말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성, 그것은 하나로 국한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올랜도가 남자였던 이전과 꼭 같았다. 성의 변화가 비록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123)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저 올랜도가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그 뒤로는 쭉 여자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124)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우리의 올랜도는 어쩌다가 여자가 되었을까. 대단한 사고가 발생했던 건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여자였던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건 그(그녀)가 올랜도란 사실이다. 어떤 성을 가졌냐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어쩌면 울프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글쓰기다. 올랜도가 끊임없이 쓰는 원고 말이다. 16세 소년이었던 올랜도가 쓰기 시작한 참나무는 항상 그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움직이게 한다. 올랜도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원고는 벌써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 참나무의 원고였다. 올랜도는 이 원고를 벌써 여러 해 동안 위험한 여건에서도 지니고 다녀, 여러 쪽에 얼룩이 졌고, 어떤 것들은 찢어져 있었고, 집시들과 함께 살 때는 종이가 없어서, 여백에 빼곡히 써넣고, 쓴 것에 줄을 긋고 해서, 원고는 마치 꼼꼼하게 짜깁기를 해 놓은 천 조각 같았다. 책의 첫 장을 열어보니, 그녀 자신의 소년다운 필체로 적은 1586년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거의 300년간 이 작업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208)

 

올랜도는 협정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지극히 행복한 상황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한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 (234)

 

소설에서 올랜도의 삶은 192836세까지 다룬다. 300년 가까이 산 인물이기에 소설을 통해 영국의 시대적 변화도 만날 수 있다. 화려했던 엘리자베스 1, 빅토리아의 최전성기, 산업혁명 그 후 습한 영국의 일상까지 세세하게 그려냈다. 울프는 장난삼아 쓴 소설이라 말하지만 올랜도의 성격,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작정한 듯) 보여준다. 옷차림, 올랜도의 집,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한 묘사,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등장하는 것들(기차, 백화점, 서점)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올랜도는 정말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어렵고 난해한 울프의 세계, 그럼에도 그 깊이를 알고 싶다.

 

*소설에서 올랜도는 변화한다. 그 변화(성장)을 위한 장치로 잠이 등장한다. 사샤와의 이별 후 올랜도는 깊은 잠(일주일 동안)에 빠졌고, 터키에서도 여성으로 변화하기 전 술에 취해 잠에 빠졌다. 집시의 생활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도 올랜도는 잠에 취한다. 아들을 낳기 전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잠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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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5-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다가 낭패를 너무 많이 봤네요.... 약간이라도 알면 좋은거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당하고도 정보없이 읽네요. 습관이 참 안고쳐져요ㅎㅎ

자목련 2019-05-21 17: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떤 책은 너무 많은 정보에 실망하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리뷰도 책의 정보에 속하는 거라. ㅎㅎ

coolcat329 2019-05-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프의 책은 단 한권도 안읽고 또 모르지만 이런 환타지 소설을 썼다니 몰랐네요. 性이 바뀌다니 재밌고 무엇보다 300년간 살면서 시대를 다 경험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시대별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유익할듯도 싶습니다. 언젠가! 꼭 읽도록 기억해두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19-05-21 17:58   좋아요 1 | URL
네, 말씀처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소설이었습니다. coolcat329 님,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로링 2019-06-3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먼저 본 케이스라 책을 봐야할지 또다른 고민이네요..영화는 진짜 꼭 보세요~틸다 아닌 올랜도는 상상하기 힘들정도예요..영상도 너무 멋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