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라;봄 - 정신과 의사의 일상 사유 심리학
김건종 지음 / 포르체 / 2022년 4월
평점 :
매일 마주하는 물건과 풍경이 어느 순간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거기 그 자리에 항상 존재하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타자는 변한 게 없고 내가 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각이 변하는 순간은 어떻게 오는 걸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공부를 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상의 사유는 쉬운 듯 보입지만 어렵고 힘들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김건종의 에세이 『바라;봄』은 그런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사유를 전한다.
그가 바라보는 것들을 함께 보고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순간 조금씩 사유가 확장되는 걸 느낀다. 아마도 이 책을 만난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이라는 직업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사물과 사람을 향한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다정하다. 살피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알아보고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그의 개인적인 일상이면서도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깊게 공감한다.
병원을 찾는 이들을 상대하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 두 아들을 키우며 경험하는 것들, 산책을 하고 바다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포착한 순간을 기록한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문장이 치유로 다가오는 건 그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가로수’를 시작으로 마지막 ‘흉내’까지 사물을 바라보고 단어를 바라보고 행동을 바라보며 기록한 문장은 일기처럼 은밀하면서도 안내처럼 꺼릴 게 없다. 그가 바라본 것들의 어느 하나를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좋다. 특히 주택을 손질하며 두 아들과의 지내는 일상이 허물없이 다가온다. 사고가 성장하는 큰아들과 나누는 대화, 활동량이 많은 작은아들의 모습을 보며 추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넘치는 생을 마음껏 낭비할 수 있는 부유한 시간을 아이는 살고 있구나. 우리 모두가 한때 누렸던 순수한 과잉의 기쁨. 오로지 놀이 속에서 어른들도 잠깐씩 이 순간으로 되돌아온다. (「날뛰다」, 중에서)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출하는 아이를 통해 그 시간이 아이에게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인지 알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밖이 아닌 안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뒷모습에 대한 그의 사유는 나의 뒷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뒷모습은 준비할 수도 없고, 조절할 수도 없고, 꾸밀 수도 없다. 항상 활짝 열려있어서 얼굴 표정처럼 닫을 수도 없다. 팔다리 휘둘러 방어할 수도 없다. 말이 없기에 침묵의 온도가 느껴지고, 표정이 없기에 온몸이 말하고, 무력하기에 오히려 존재 자체가 오롯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 사람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이다. (「뒷모습」, 중에서)
쉽고 친근하게 읽다가도 이런 부분에서는 감탄하고 그의 상담실에 입장한 기분이 든다. 고민하고 걱정하던 것들이 사사로운 감정에 불과하며 앞으로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 전하는 강한 어조가 들린다고 할까. 삶의 균형을 잡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죽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감사한 삶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한 눈으로는 변화를 추구하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 눈으로는 우리가 내일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면서 다른 한 눈으로는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얼굴에 나란히 자리한 두 눈으로 우리는 정반대의 세계를 보며, 그 모순의 관계 속에서 삶의 균형이 지탱된다. (「양안」, 중에서)
내가 두 눈으로 보는 것들은 얼마나 정확할까. 때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건 아닐까. 무언가를 바라봄에는 그런 고찰도 필요할 것이다.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당연한 게 아니며 감사할 일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볼 수 있는 것들을 언제라도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연하게 맞이한 오늘이 누군가 간절하게 바란 내일이라는 것처럼.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더라도 기억해야 한다.
피어나는 것들은 다 그렇다. 불꽃도, 향기도, 웃음도, 홍조도, 사랑도, 그렇게 잠깐 제 몸을 태워 빛을 내고 스러진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피어나기에 애달프다. 그래서 소중하다. (「피어나다」, 중에서)
보통의 일상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사유가 가득한 책이다.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면 어떨까. 그리고 마주한 풍경과 눈을 맞춰봐도 좋을 봄이다. 저자가 바라본 사물과 단어를 따라 그에 따른 나의 시선을 기록해도 좋을 것이다. 하나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은 저마다 다르고 그것들은 모두 고유하고 특별하고 소중하다. 이 봄을 바라보는 나만의 바라봄을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