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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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 안다고 확신하는 일은 어렵다. 기준을 모르기도 하고 그것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가 아니라 내가 보는 나는 항상 흔들리니까. 『소설 보다 : 봄 2022』 수록된 세 편의 소설은 어쩌면 그런 정체성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를 알아가는 일, 나에 대한 확실과 불확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은 모습은 고민의 종류만 다를 뿐 우리와 같다.


김병운의 「윤광호」는 화자인 ‘나’가 ‘윤광호’라는 인물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다. 소설은 폐암으로 투병하다 죽은 윤광호의 소식을 시작으로 과거 그와 알고 지냈던 시간을 소환한다. ‘나’와 윤광호는 게이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처음 만났고 둘 다 게이였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일찍 커밍아웃을 한 광호와 달리 ‘나’는 그들 무리에서만 소속감을 느끼고 안정감을 얻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음지에서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지만 밖으로 나와서는 굳이 그걸 말해야 한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2010년을 생각하면 ‘나’의 태도는 그들에게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나’는 글을 쓰고자 했지만 결코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거라 했던 ‘나’에게 광호는 쓰게 될 거라고 말했다. 단체에서 퀴어 문학을 읽는 모임을 해보자는 광호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그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이유도 그런 맥락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소설에서 이광수의 「윤광호」가 등장하는데 읽지 않는 단편이라 그와 김병운의 「윤광호」가 연결되는 부분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어느 시대를 살든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산다는 것. 중요한 건 시간의 문제라는 광호의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어떤 일은 때로 많은 시간을 감내해야 하므로. 물론 무작정 시간이 기다리기를 바라서는 안 되고 소설 속 광호처럼 약자와 소수에 대한 차별 폐지와 인권을 위해 연대하는 활동을 기반을 하겠지만. ‘나’의 말처럼 현재 우리 사회는 광호 씨 같은 이가 더욱 필요하고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우리가 더욱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광호 씨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윤광호」, 33쪽)


김병운의 「윤광호」가 사회적인 인식 개선과 동시에 개인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위수정의 「아무도」는 조금 더 개인의 내밀한 감정을 다룬다. ‘나’는 남편 수형과 별거를 시작했고 그 이유는 수형이 아닌 그 사람을 사랑해서다. 하지만 별거가 이혼 후 그 사람과의 결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혼자 지내면서 직장에 나가고 동료와 수다를 떨고 가족과 관계를 이어간다. 다만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과거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시절을 떠올린다. 누가 봐도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였기에 ‘나’는 그 이후로 아버지를 신뢰할 수 없었다. 아버지 역시 가정을 버리지 않았고 여전히 어머니와 잘 지낸다. ‘나’가 사랑하는 그 사람도 가정이 있다. 소설에서 ‘나’가 숨이 막힐 때까지 달리기를 하고 노숙자가 되고 싶은 마음과 물과 상비약도 없는 집은 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겪는 혼란과 양가감정은 독자에게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 듯하다.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미래가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건가?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나는 할 수 없었다. ( 「아무도」, 88쪽)


그럴 거면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혼을 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부모처럼 누구도 ‘나’에게 어떤 강요도 할 수 없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꿈에서 빨리 깨고 싶지 않은 ‘나’. 어쩌면 그래서 고독하고 쓸쓸한 ‘나’에게 연민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아무도」라는 제목이 주는 텅 빈 공허감처럼.


이주혜의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수술대 위에 오른 53세 여성 구은정의 21그램의 영혼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며 시작한다.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돌보지 못한 몸. 은정이 여성을 상징하는 자궁 적출 수술을 받는 설정은 또 다른 상징으로 이어진다. 여성이 아닌 인간 구은정의 몸이 되는 일.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가구회사에 일하며 가장 역할을 해 온 거구의 은정을 향한 직장 동료의 시선들. 그런 은정을 동반해 일본 출장길에 오르며 일본에 있는 연인을 만난 사장, 둘 사이의 소문을 감당하는 몫은 은정이었다. 은정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직장 선배 소희 언니만 있으면 좋았다. 하지만 소희도 다른 이들처럼 은정을 대했다.


나는 회복실 천장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있지도 않을 영의 뺨을 어루만졌다. 21그램 더하기 자궁의 무게만큼 가벼워진 내 몸이 억울하게 뺨을 맞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내 몸을 구해줄 생각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것들의 무게가 궁금했다. (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136쪽)


은정은 앞선 세대의 K- 장녀였다. 그녀의 감정이나 사랑은 존중받지 못했고 스스로를 돌보는 대신 누군가를 돌보거나 돌봄의 도구였다. 그러니 텅 빈 자루 같은 몸에서 벗어난 은정의 영혼은 자유롭고 평안하다. 은정을 짓눌렀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은정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역시 여성이고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면 조금 괜찮아질까.


나를 아는 일이 어려운 만큼 누군가를 안다는 일 역시 그러하다. 아는 척 하지 말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소설 보다 : 봄 2022』. 공감하고 연대하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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