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읽고 있다. 읽고는 있으니 다행이다. 짧은 가을은 하루하루가 아쉽게 흐른다. 맑고 높은 가을 속 흰 구름은 기량을 뽐내기느라 바쁘다. 작정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풍덩 하늘 바닷속으로 빠져든다. 눈 닿는 동네 산에는 아직 단풍을 찾기가 어렵다. 아파트 단풍나무만 곱게 물든 모습이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레몬빛을 닮은 모과를 보는 일도 즐겁다.
밤에는 보일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물 온도를 가을로 변경했다. 그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보일러는 계획이 다 있겠지. 보일러에 주황빛 불이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보일러는 일을 한다. 그 순간을 위해 보일러는 기다리고 기다린다. 어쩌면 보일러는 오매불망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능을 가진 물건은 그 자체로 든든하기 보다 기능을 보여줄 때 던 든든하니까.

더디게 읽고 있는 책도 그런 마음일까. 나를 읽어줘, 나를 만져줘, 나를 돌아봐 줘. 그런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쌓아두고 북엔드에 세워둔 책만으로 나는 기분이 좋은데 책의 마음은 다를지도. 조금 더 세심하게 책의 마음을 들여다봐야겠다.
10월에 읽겠다고 구매한 책이지만 11월에 읽게 될 것이다. 좋은 책은 좋은 이웃님 덕분에 알게 된다. blanca 님 덕분에 이 두 권의 책이 나왔다는 걸았다. 김연덕이 쓴 10월 이야기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유디트 헤르만의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를 땡스투와 함께 구매했다. 제목을 보자 마자 이책이구나 싶었던 책은 하재영의 『지극히 나라는 통증』를 이제 읽으려 한다. 세 권의 책이 도착했을 때 기쁨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리고 곧 김연수와 황정은의 단편이 수록된 책도 구매할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더딘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읽고 있는 책을 마무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