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현수 유치원 학습발표회가 있었다.

8살이 되었으니 이제 마지막 발표회이다. 아빠는 오전만 일하고 오후 3시에 시작하는 발표회에 함께 참석하였다.

 

순서지를 보니 20개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도 엄청 늦게 끝날 것 같다는 불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이다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공연 시작 전 유친원에서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 감동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일찍 서두르지 않은 탓에 가까이 앉지 못하고, 다른 엄마들처럼 열심히 촬영하기 위해 앞쪽으로 나가는 일을 하지 않아서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이 없다. 그나마 우리 현수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눈으로 담고 손뼉치기에 바빴다. 키가 크고 늘씬한 탓에 늘 돋보이는데 워낙 열심히 최선을 다하기에 정말 예쁘다.

 

3시간의 긴 발표회가 끝나고, 조카 초등학교 졸업 축하를 위해 춘천에 다녀왔다. 남편에게는 첫 조카라 애정이 남다르다.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자고 했지만 역시나 고모부와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끝낼 줄을 몰랐다. 고모네 집에 가서 술을 더 마시고 자고 가자고 하는 걸 그건 안된다고 뿌리쳤다. 토요일에 영동 시댁에 간다고, 설에 친정에 다녀오지 못한 시누이의 마음을 알기에 술을 더 마시면 서로가 힘들뿐이라고 만류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자정이 넘어서야 춘천에서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1시반정도 되었고, 차에서 잠이 든 아이들 깨우니 징징거리고, 술 취한 남편도 허우적거리고 정말 피곤했다. 그래도 기분 좋게 딸의 발표회를 보고 흐뭇해했고, 다 큰 조카와 나눈 이야기도 즐거웠던 탓에 짜증을 내진 않았다.

당연히 다음날 우린 늦잠을 잤고, 9시쯤 일어나 아침을 지어 먹였다. 그랬더니 대뜸 남편하는 말이 우리도 시골갈까? 한다.

어젯밤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기에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 하고 말했지만 사실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가자 소리가 나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들은 시골 가자고 하면 무조건 좋다고 환호하고, 늘 속마음과 다르게 좀 피곤하겠지만 여행다녀온다 생각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럼, 영동 옆이 무주니까 무주에 가볼까? 했다. 묵묵부답. 좀 피곤할까? 그럼 다음 날 올라오는 길에 농다리라도 들러 올까? 날씨가 푸근하니까 애들이랑 농다리에서 산책 겸 들러 오는 것도 좋겠다했다. 그랬더니 그럼 그렇게 하자. 한다. 그래서 집안일들을 서둘러 해놓고 간단한 짐을 챙겨 시골로 내려갔다. 가는 차안에서 피곤했지만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갔고, 오는 줄 모르셨던 시부모님은 깜짝 놀라며 반가워하셨다.

 

5시반쯤 도착하여 또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사위와 딸이 온 반가움, 거기에 뜻하지 않은 아들네의 방문에 신이 나신 아버님은 막걸리 한잔 하시자고 하고 시누이가 준비해온 매운갈비찜과 먹고 마시고를 하다보니 어느새 늦은 밤이 되었다. 아이들은 틈틈이 오고가며 얻어 먹고, 마장휴게소에서 사온 햄버거(이건 우리 시어머니가 좋아하신다)와 도넛으로 저녁을 때웠다. 드라마매니아이신 시부모님과 왕가네식구들을 시청하고, 시누이네는 왕가네같은 드라마는 너무 싫다고 뭐라하고, 나는 나름 세상 사는데 있음직한 인물들이라고 역성을 들고, 광박이가 제일 싫다는 시누이의 의견과 달리 난 광박이가 안타깝고, 시아버지가 너무한다고 직설을 하며 이런 저런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저녁쯤 시작한 술판은 밤이 새도록 이어졌고, 도저히 체력이 딸리는 나는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시골 내려오기 전에 도착해서 아직 읽지 못했던 '가부와 메이'를 챙겨가서 그것을 읽고 잠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을 잤단다. 무서운 주당 가족임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아침에 아이들 일어나는 소리에 나도 잠에서 깼고, 아버님이 어젯밤의 뒷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수면이 부족해서 몽롱한 탓에 아침은 어머님이 하라는대로 청국장을 끓이고, 나물 해 놓은 것과 차려서 시누이네 식구를 빼고 먹었다. 시누이와 고모부는 한 나절이 될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하긴, 일어나 있는 나조차도 힘들었다.

 

이제 그만 가자고 눈짓을 보내는데 점심까지 먹고 가자고 남편은 얘기하고, 아버님은 뭐 기왕 온 거 저녁까지 먹고 가지? 하신다. 이건 내려올때의 이야기와 다르다. 난 분명 계획이 있었다. 농다리를 들러서 올라오자는, 하지만 남편은 자기 마음대로 계획을 수정하고, 아버님은 어느새 나가셔서 고기를 사오시고는 구워서 애들 먹이자고 하시더니 또 다시 한잔 하시자고 자리를 잡으신다. 고기를 굽자 고모부가 어느새 일어나 나오고 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빈정상한 며느리는 밥 생각도 없고, 얘기하기도 싫고, 애들 밥 챙겨 먹이고는 방으로 들어가 누워 있었다. 이제 또 운전은 내 몫이구나 생각하니 체력을 비축해둘 생각만이 간절해졌다.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데 이제 가자 하고 남편이 들어왔고, 그때 시간이 2시. 커피를 마시고 출발하자고 말하고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 고모부는 또 남편을 데려가 술을 권하고, 아버님도 계속 권하시고, 눈치빠른 시어머니는 이제 그만들 좀 마시라고 하셨지만 결국 4시가 조금 넘어 출발하게 되었다. 이제 내 목표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는 일로 바뀌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잠이 들었고, 남편도 간간이 졸려했지만 절대 재우지 않았다. 올라오는 차 안에서 이런 식이면 정말 곤란하다고 못을 박고, 이렇게 힘들게 하면 내가 시골 오는 일이 즐겁겠냐고 쐐기를 박았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건 정말이지 곤란하다. 술을 마시며 서로의 안부와 생각을 나누는 일은 전날 밤으로 족했다. 했던 말 또하고 또하는 다음의 술자리는 정말 지루할 수밖에 없다. 어른들은 모이면 술만 마시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은연중 인식시키는 일 또한 너무 싫다. 내가 시골을 내려오는 일이 즐거울 수 있는 건 적당한 술자리와 또다른 즐거움을 갖는 일이다.라고 못을 박으니 남편은 그때부터 안절부절한다. 왜 그런 걸 말로 해야만 아는지, 십년을 넘게 살았는데 그걸 아직도 모른다는 게 이해되지 않으면서 몸도 아파오고 피곤하고 머리도 띵하고 점점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짜증이 치밀었다. 이렇게 돌아와서 또 밥 차리고 치우고 정리해야하는 것도 내 몫일테니 난 너무 피곤하다. 하니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가자는데 가려고 했던 곳이 쉬는 날이라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그냥 들어왔다. 우선 밥솥에 밥을 앉히고 남편이 라면을 끓이겠다고 해서 우선 라면을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자고해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왕가네식구들 마지막회를 보고는 모두 방으로 들어가서 폭풍처럼 밀려오는 잠을 잤다.

 

새벽에 출근해야하는 남편은 도저히 못 나가겠다고 하다가 7시반쯤되어 나갔고, 둘째만 유치원 보내면 되는 엄마는 8시까지 이불 속에 있었다. 아이들도 조용했다. 8시에 나가서 밥 차리는 소리가 나니 아이들은 깼고 아침을 먹이고 둘째는 유치원 보내고 큰애는 혼자 놀이를 하며 보내고 있다.

 

그리고 전화기에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는 반가운 문자가 있어서 컴을 켜고 알라딘에 접속했다.

<놓치면 안될 우리 아이 책>을 읽고 구매자평이나 페이퍼 리뷰를 올린 세명에게 원하는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신다는 순오기님의 문자였다. 알라딘 서재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이벤트에 오랜만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몸이 피곤해서 늘어져있었는데 활기를 찾았다.

 

 순오기님께 <100년 전 우리는> 책을 선택했다고 댓글을 달았다.

 다른 많은 좋은 책들을 찜해두었는데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골랐다.

어린이용이라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그 당시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담겨 있을 것 같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가부와 메이>시리즈는 정말 훌륭했다. 읽는내내 가부처럼 멋진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다. 가부야, 넌 정말 멋진 친구야. 약한 메이를 지켜내는 가부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아이들도 가부와 메이를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동화책이다. 다음에 마음 허전하거나 속상한 일 있을때 가만히 앉아 가부와 메이 시리즈를 펼쳐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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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2-1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은 왜그리 술자리를 좋아할까요? 울 신랑도...ㅎㅎ
많이 피곤한 1박 2일 여정이네요. 이벤트 당첨 축하드려요~~

꿈꾸는섬 2014-02-19 09:08   좋아요 0 | URL
많이 피곤한 2박3일이였어요.ㅜㅜ
이벤트 당첨은 정말 기분 좋아요.ㅎㅎ

2014-02-17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9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4-02-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때 학교에 입학 할 아이를 두고 걱정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학년~~
그리고 현수도 학교에 입학하네요...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모두들 잘 적응하고...
음~~ 시댁과 술자리에 얽힌 이야기라면 모두들 할 말이 많을 거예요. ^^

꿈꾸는섬 2014-02-19 09:13   좋아요 0 | URL
네, 현수가 어느새 입학을 하네요.ㅎㅎ 다 컸다는 느낌이에요.ㅎㅎ

시댁의 술자리에 얽힌 이야기 좀 풀어놓아보세요.ㅎㅎ

하늘바람 2014-02-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피곤하시겠어요. 현수 입학 이젠 정말 준비해야할 시기네요 전 어제 책가방 주문했네요. 완전 싸서 좋았는데 태은양도 좋다해요. 현수는 준비 다 하셨지요?

꿈꾸는섬 2014-02-19 09:16   좋아요 0 | URL
입학준비랄게 뭐 있나요.ㅎㅎ
저도 완전 저렴한 책가방을 샀다죠.ㅎㅎ
전날까지 49000원에 판매하던 걸 14000원에 구입했어요.ㅎㅎ
애들은 절대 가격을 몰라요.
현수 책가방 득템하고는 완전 좋아서 애들 옷도 사줬어요.ㅎㅎ
아울렛매장가면 이월상품 싸게 팔잖아요.ㅎㅎ

수퍼남매맘 2014-02-1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많은 일을 다 치르다니.....저 같으면 앓아누웠을 거예요.
키 크고 날씬한 현수가 어디쯤 있을까요?

꿈꾸는섬 2014-02-19 09:18   좋아요 0 | URL
키 크고 날씬한 현수는 허리에 손 올리고 있는 아이에요.ㅎㅎ
가까운 곳에 가서 찍지 않아서 잘 나온 사진이 없어요.ㅎㅎ
완전 열심히 잘 하는데 늘 키가 크다고 3년내내 뒷줄에만 서서 잘 안 보였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