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영화관의 시간표를 매일 점검했다.

오전에 편성돼야 애들 보내놓고 볼 수 있을텐데 계속 12시이후부터 편성되어 조바심치게했다.

그러다 오늘 오전에 조조에 영화 시간이 떳다. 다행이다. 14일 금요일에 큰 아이가 종업식을 하고 2교시하고 돌아온다고 했으니 13일 목요일 조조는 볼 수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오후부터 갑자기 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목도 엄청 따끔거리고, 아무래도 감기가 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이 일하는 차가 고장나서 하루종일 수리를 했는데 결국 다 고치지 못했다고 연락이 왔고, 차편이 불편한 곳이라 남편을 데리러 하남 미사리쪽에 가야했다. 아침에 남편이 가져갔던 승용차를 찾아서 남편이 알려준대로 네비도 없이 조마조마하며 찾아갔다. 무사히 만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외식하자하고 집에 두고 왔던 아이들 옷 입고 나오라고해서 집 근처의 추어탕집에 가서 뚝배기 한그릇씩 먹고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기절하듯 잤다.

자기 전 9시반엔 별그대를 봐야하니 깨워달라고 부탁까지, 정말 아픈 애 맞아? 하는 표정의 남편 절대 안 깨울지 알았는데 깨워줘서 별그대를 이불 푹 뒤집어 쓰고 비몽사몽간에 보고는 내일 영화는 포기해야겠다 생각하고 잠이 들었는데 밤보다는 확실히 상태가 좋았다.

요 근래 살빼겠다고 아침마다 거르던 내가 밥을 꾸역꾸역 먹고 약을 먹고는 약간 몽롱했지만 남편 차 맡긴 곳에 따라가서 승용차를 가져와야해서 나갔다. 애들 보내고 서둘러 나갔지만 9시가 넘어서 출발했고 남편을 내려준 시간은 9시34분. 머리는 어지럽고 집에서 쉴 것인가, 영화를 볼 것인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민했다. 게다가 운전자석의 유리창 조절이 안되어서 카센터도 가야했다. 하지만 자꾸만 마음은 극장으로 향하고 잘하면 10시10분 전에 도착하여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을 내려주고 부지런히 극장을 갔다. 유리창문이 고장나서 주차권 발급기를 문을 열고 뽑았다. 뒷차가 뭐야? 했을 거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도 주차권을 낼 때 문을 열고 주차권을 냈더니 아저씨 얼굴이 의문투성이의 표정으로 바뀌었었다. 얼굴은 초췌하고 머리도 부스스한 아줌마가 차 문을 열고 주차권을 내미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어쨌든 결국 영화를 보았고, 보길 잘 했다고 생각하고, 후회는 하지 않는데 부재중전화와 여러통의 문자가 있었고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걸어서 지금으로 돌아오는데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모른다.

 

우리를 잘 살게 만들어준 것은 기업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기업을 잘 살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우리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얼마 전 <변호인>을 보고 그래, 지금 우리는 살만한 사회에 살고 있어. 하고 생각했었던 게 무색할 지경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만하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자꾸만 우울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대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들이 왜 우리를 보호하려고 들지 않지? 하고 분노했다. 나쁜 XX들이라고 욕설이 입에 담겨 밖으로 내뱉어졌다.

오늘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는 욕설이 아니라,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등등의 의문들이 내 머리 속에 엉겨든다.

 

내가 많이 우울한 이유는 아마도 멍게때문인 것 같다. 태어날때는 동물이었던 멍게가 한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뇌가 사라지고 식물이 된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일때와 달리 가족이 생기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꿈꾼다. 처음 전세로 시작했던 신혼시절도 어느새 내 집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구입하고, 대출금과 이자에 허덕이더라도 더이상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집을 갖고 싶다. 내가 살만한 곳에 정착해서 살다보면 그곳에 한정되어 그곳에 맞춰서 살게 된다. 흙과 물과 태양만 있으면 자라는 식물이라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면 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죽은 것인가하고 생각하다보니 더 많이 우울하다. 무조건 비판으로만 받아들일 수가 없다. 멍게가 어때서 삶을 위해 부단히 싸워야하는 동물의 세계가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세상은 무지하고 가난한 사람들 편이 아니다. 를 확인하고나니 더 우울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배움의 기회가 동등하지 않다. 누군가는 선택해야할 위험한 직종의 일에 대한 개선은 절실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가난한 나라에게로 옮겨가게 될 것이란 두려움에 세상은 언제나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만 우울해진다.

지금이라도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야하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크다.

 

예전엔 동경만하던 삶으로 바꾸어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일자리, 밥벌이를 회사에서 제공한다고해서 우리의 신체를 병들게 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 일을 은닉하기 급급한 기업의 윤리는 썩은 게 분명하고, 그 기업들이 우리를 먹여살렸다고 운운하는 경제의 힘으로 누루려는 행위를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 같다. 자급자족하며 사는 농경사회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 제대로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은 아줌마의 넋두리가 될지라도, 자꾸만 땅으로 돌아가 내 삶을 가꾸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2007년 개봉했던 영화 <행복>의 임수정처럼 한적한 공기좋고 물 맑은 곳에 자리잡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입의 밥알이 튀어나오게 열변하던 황정민의 말도 안되는 황금노년기를 보내는데 필요한 돈의 액수에 연연하지 않고 단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천원짜리 지폐 몇장 바들바들 아껴 쓸 수 있는 그런 삶을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나를 다독여야겠다.

 

과연 우리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돈, 그것은 정말 아닐 것이다. 세상에 돈이 있어서 편리한 것은 많겠지만 돈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하게 되는 것, 그걸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돈일수도 있지만 그 돈때문에 자신의 도덕적양심을 버리는 일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양심적으로 사는 일이 과연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과 멀지라도 그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회인 것 같다. 제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돈 많이 버는 일에만 집중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의미있는 삶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해도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의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 영화관의 가장 작은 관에서 상영되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들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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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4-02-1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내 보셨군요, 꿈섬님.
여긴 소도시라 개봉관이 안 보여여요.
안 봐도 본 듯한 내용이겠지만 화면으로 보면 더 절절하고 절실하고, 분노에 휩싸일듯^^*

꿈꾸는섬 2014-02-13 14:48   좋아요 0 | URL
보고와서 바로 페이퍼쓰지 않으면 못 쓸 것 같아서 얼른 올렸어요.
너무 절절해서 영화관 안에서는 엄청 울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두렵고 무서운 세상, 힘없는 우리는 어찌 살까요? 하고 한숨만 나와요.ㅠㅠ

여울 2014-02-1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많은 생각들이 겹쳐들었나봐요. 먹먹함, 막막함은 어쩌면 기대면 서로 조금은 힘이 되는 것이겠죠. 절절함 마음에 녹여갑니다. 작은도시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듯 싶어요. 20:55분 롯데시네마에서 있더군요. 하루에 달랑 세번... ...

꿈꾸는섬 2014-02-17 10:29   좋아요 0 | URL
여울마당님 댓글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수퍼남매맘 2014-02-1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는 의무감으로 봐줘야죠.
저도 내일 종업식이니 이 영화 개봉하였는지 찾아봐야겠네요.


꿈꾸는섬 2014-02-17 10:31   좋아요 0 | URL
수퍼남매맘님 보셨지요?
의무감만으로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좋은 영화이고, 이 사회의 부조리함도 그렇지만, 끝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응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을뿐이에요.

기억의집 2014-02-14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이건희가 올해 1000억원의 배당금을 받는다고 기사를 떠올리며 당신, 그 천억원은 수 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일한 덕이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한 개인이 천억원의 배당금을 받는 사이 어느 곳에선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겠죠. 딸을 잃은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받을려고 저러냐란 수군거림이 저는 더 압박이었을 것이라 추정돼요. 우리 사회에서 삼성은 이 땅의 수 많은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는 애국기업이니깐요. 예전에 시어머님랑 무슨 이야기 하다 애아빠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죽어가는 20대 초반 여자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할 때 우리 시어머님은 절대 안 믿더라구요.삼성이 그럴 리가 없다고.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일 겁니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건 살림을 하건 학교 졸업 이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려고 하기 보단 자신의 안위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죠. 그리고 정확한 팩트를 말하는 사람들을 잘.난.척 하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는 사회다 보니,
썩은 기업과 썩은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많이 배운다는 거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오죽하면 저도 변호인 보고 나와 적어도 내 자식은 멍청하게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에휴... 그래도 이렇게 바위에 계란 던지는 분들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라고 위로해 봅니다.

꿈꾸는섬 2014-02-17 10:34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말씀이 맞아요. 한 개인이 천억원의 배당금을 받는다는 게 온전히 그가 잘나서가 아니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같은 눈먼 소비자의 주머니에게 나간 것들이잖아요.
보수적인 어른들은 사회의 양면을 모두 보려고 하지 않으셔서 정말 갑갑해요.ㅜㅜ
정말 우리 아이들은 현명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지식만 잔뜩 담고, 돈과 명예만 탐욕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와 맞설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