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주 오랜만에,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 둘째 주려고 챙겨두었던 옷가지들을 가지러 직접 왔다.
친구는 내게 부담이 될까봐 일부러 점심을 먹고 출발해서 일찍 가겠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놀러오는 친구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권했다.
자동차로 30~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살지만 아이들 키우다보니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 친구가 일하던 세무서에 찾아가 점심을 먹긴 했지만 가족 동반한 방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못 본 사이 아이들은 쑥 자랐다.
중학교 1학년, 14살때부터 친구이니 어느새 26년지기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속속들이 아는 사이라 서로가 점잖을 빼지도 않았고, 허물없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친구는 사교적이지 못한 남편 대동하여 친구집에 오는 게 불편하다고 하지만 사실 친구가 걱정하는 것처럼 친구의 남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남편과 동갑이라 우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친구네를 위해 우리가 준비한 건, 삼합(돼지고지수육, 홍어, 묵은 김치)과 훈제연어 샐러드 그리고 각종 술(소주, 막걸리, 맥주)을 준비했다. 삼합이 있으니 가볍게 막걸리를 마시자고 했는데, 주당 넷이서 막걸리 3병은 금새 비워졌다. 그리고 소주는 부담스러우니 맥주로 마시자고, 우리가 사다놓은 건 큐팩 3병이었는데, 그것도 어느새 비워졌다. 그래서 남편이 얼른 나가서 큐팩 3병을 더 사왔는데, 그것마저 다 마셨다. 헐, 우리는 정말 엄청나게 마셨다. 오늘 하루 종일 힘들만큼.
사실 친구가 술을 잘 마신다. 그녀의 남편도, 그리고 우리 부부도.(난 소주는 잘 못 마셔도 맥주는 좀 마신다)
우리 아이들이 9살, 7살. 친구 아이들이 8살, 5살. 아이들은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금새 친해져서 우리 집 구석구석을 마구 헤집고 다녔다. 아이들 방의 모든 장난감이며 물건들은 모두 어질러져 있었지만 어제는 아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가끔 친구 남편이 아이들이 사고 칠까 걱정된다며 조심하라고 하긴 했다. 남편은 아랫집에 딸기 한팩 가져다 드리며 미리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은 그 덕에 정말 신나게 놀았다. 친구 둘째가 밥 먹고 침대에서 뛰는 바람에 이불에 토해서 친구와 그녀의 남편이 엄청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 이불은 어차피 빨아야할 거였다. 오늘 아침 깨끗하게 빨아서 말렸다.
술도 많이 마셨으니 자고 가라고 했지만 끝내 거절하고 대리기사 불러 친구네는 12시전에 돌아갔다. 하긴 나도 집에서 자는 게 더 편하고 좋긴 하니 말리기도 쉽지 않았다.
남편은 가끔 나 좀 만나고,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오라고,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고마웠다. 사람 만나는 걸 불편해하는 나에게는 오랜 친구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서로를 속이거나 불편해하지 않는 오랜 친구,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가 있어줘서 고마웠다.
중학교 때 서로 책읽기 경쟁이 붙어서 누가 더 많이 읽나 서로 얘기하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서로 형편이 좋지 않아 부잣집에나 있었던 세계문학전집을 친구 집에서 같이 빌려 봤던 친구. 종로에서 만나기로 하면 종로서적에서 책읽으며 서로를 기다렸던 친구. 좋은 시를 읽으면 추천해주던 친구. 자기가 읽고 좋았던 책은 책 사기 힘들었던 내게 선물로 주었던 친구. 어려운 일이 있을때 물어보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던 그런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니 좋았다. 그녀의 가족, 우리 가족은 또 다른 친구가 되어 함께 나이들어가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친구 [親舊,親口]
뜻
1)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 2) 숭상하고 존경하는 대상에 대하여 경의와 복종을 표하기 위해 입을 맞춤
아이들도 이제 어느정도 자랐으니, 가끔 만나 소소한 이야기 나누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