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골라주세요~
일명 에너지 여사 순오기님,
건강하시죠? 많이 바쁘게 사시는 건 알지만, 숲해설 소식지까지 관여하고 계시는군요.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려서 어느새 봄이 오려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세 편중 한 편을 골라 드리는 게 더 좋긴 하겠지만, 봄에 읽으면 좋겠다 싶은 시가 있어서 먼댓글을 써요.^^
최두석 시인의 <꽃에게 길을 묻는다>
에 실린 세 편의 시에요.
냉잇국
노모가 텃밭에서 캐온 냉이에
묵은 된장을 풀어 끓인 국을 먹으며
경칩을 맞는다
얼었다 녹았다 하는 땅에
깊이 뿌리내려 추위를 물리친
냉이의 생태를 음미하며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바라본다
콩을 심고 메주를 띄우고
냉이를 캐고 다듬은 손을 잡아본다
눈을 뜨고 있는 한
잠시도 쉬지 않는 손을 잡아본다
밥 먹다가 뭐 하냐는 핀잔에
나를 기른 손을 놓으며 새삼
힘내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상큼한 봄내음이 냉잇국을 먹으며
어머니의 등을 휘게 한 세월과
나의 발등을 붓게 하는 계절을
되새기고 응시한다.
(p.29)
경칩에 겨울잠 자던 개구리도 나온다죠. 그즈음은 되어야 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봄이면 엄마가 끓여주시던 냉잇국, 저도 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봄되면 된장 풀어 냉잇국 끓여 식탁위에 올려 놓으면 그때만큼 맛있진 않지만 그래도 봄이구나 싶어요.
노루귀
봄이 오는 소리
민감하게 듣는 귀 있어
쌓인 낙엽 비집고
쫑긋쫑긋 노루귀 핀다
한 떨기 조촐한 미소가
한 떨기 조촐한 희망이다
지도에 없는 희미한 산길 더듬는 이 있어
노루귀에게 길을 묻는다.
(p.35)





<사진은 다음에서 가져옴>
야생화, 노루귀는 봄에 피는 꽃이라지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꽃이구요. 아이들 데리고 봄 산 가서 한번 찾아보고 싶단 생각을 잠깐 했어요. 앙증맞고 귀여운 꽃이 추운 겨울 이겨내고 봄이 왔다고 알려준다고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어여쁘네요.
느티나무와 민들레
간혹 부러 찾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 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 펼치고
바람 타고 날으는 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새 꽃씨로 변해 날으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 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과
민들레 꽃 필 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 떠올린다.
(p.23)
이 시는 제가 참 좋아하던 시에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 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이 구절요. 느티나무와 민들레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이 정말 좋아요. 숲을 걸으며 큰 나무 아래 작은 꽃을 살피며 걸었던 적이 없는 제게 주변을 좀 더 둘러 보며 살라고 말하는 것 같더라구요. 아이들도 나무처럼 자라길 바랐는데, 나무가 아니라 작은 꽃이 될지라도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는 생각을 잠깐 했어요. 그 어떤 것도 경중을 가릴 순 없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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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광주에 다녀왔던 추억에 잠겨요.
순오기님, 프레이야님, 나비님 그리고 저
여름이었고,
소쇄원에선 장대비가 쏟아졌죠.
푸짐했던 저녁 밥상, 정갈하고 맛있어서 폭풍흡입했던 기억이.
우리 아이들이 얼른 자라서
순오기님 작은 도서관에 놀러 가고 싶단 생각 해요.
그 전에라도 또 시간이 되면 다시 또 만나고 싶어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로 웃으며 사시길 바랄게요.
그럼, 이만.
(사진은 원치 않으시면 내릴게요. 나비님, 프레이야님, 순오기님, 귀띔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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