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홀가분하게 나갔다왔다. 이번주부터 2시에 온다는 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우선, 은행에 들러 여행가려고 모아두었던 적금을 깼다. 적금으로 받는 이자보다 대출이자로 나가는 것이 더 크기에 대출금을 좀 줄이기로 했다. 여행 적금을 깨고 마음이 허탈하긴 했지만 요새 변변히 용돈도 못 드렸던 엄마께도 용돈 좀 드리고 왔다. 그랬더니 엄마 왈, 그제 꿈엔 돈봉투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 뜨거운 주전자에 화상을 입었는데 작은 언니가 와서 병원에 다녀왔단다. 어젠 그러니까 오늘 새벽무렵엔 화장실에서 똥을 치우려고 하다가 손에 똥이 범벅이 되었단다. 씻으려고해도 물이 없어 씻기도 못하고 엄청 주무르고 계셨는데 내가 와서 용돈을 드리고 간단다. 그런데 꿈에 오빠 얼굴이 요상하게 나와 꿈이 참 별로다 했단다. 그런데 모아두셨던 500원짜리 동전과 100원짜리 동전을 통장에 넣겠다고해서 동전을 셌는데 38600원이었다. 그런데 기계에 넣은 동전이 38460원이라는 것이다. 분명 100원짜리와 500원짜리만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아니라고 갸우뚱거리는데 직원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기계에 넣는 것을 직접 보지도 못했다. 내가 있던 창구는 가장 바깥쪽이었고 동전기계는 안쪽에 있었다. 여하튼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기계가 그렇게 분류했다는데 마땅히 따질 수도 없었다. 엄마도 500원짜리랑 100원짜리랑 구분해서 모아두셨기에 이상하다 하셨지만 따져서 묻고 싸우지 말자고 하시며 꿈 이야기를 하신다. 그깟 140원으로 오빠에게 생길 나쁜 일이 액땜되었길 바라시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 140원이지만 액땜했다면 다행이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긴 하다. 엄마 동전을 넣기전에 엄청나게 동전 기계가 바쁘긴 했는데 엄마 말로는 고장난 것 같으시단다. 

거주지는 서울인 친구의 직장은 친정 근처이다. 언제든 한번 점심 먹자 말만했다. 년수에 따라 발령이 나는데 올 해까지만 이곳에서 근무를 한다며 다른데로 가기 전에 한번 보자고 했다. 매번 말만했지 막상 만나려고하면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친정엄마랑 시간 보내다보면 못 만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시간을 내어 친구를 만났다. 

오랜 친구는 언제 만나도 참 좋은 것 같다. 서로 많이 바빠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히 커피 한잔 마시고 헤어져 왔다.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무슨 책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네 권의 책을 골라갔다. 워낙 다독을 하는 친구라 유명한 책은 일부러 담지 않았다.  

알라딘 신간평가단활동하면서 작년에 받았던 책들인데 김숨의 <물>은 정말 신선했다. 친구는 어떻게 읽어낼까 궁금하다.  또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도 군더더기없이 쓴 당찬 신인의 작품이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재미있게 읽었으니 친구도 재미있게 읽어내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골랐다. 

<숨김없이 남김없이>는 끝까지 다 읽어내지 못했던 중도에 포기했던 책이다. 실험 소설을 쓴다는 김태용 작가의 의도는 모르는바 아니지만 도저리 스토리라인이 없는 글을 읽어낼 재간이 내게는 없었다. 친구는 과연 어떻게 읽어낼지 궁금하다. 

<사는게 참 행복하다>는 소소한 시골 생활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의 여유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다. 

다행히 네 권 모두 읽어보지 못한 책이라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고마웠는지 자기가 읽고 있던 책을 내게 주었다.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이라는 책인데 여행 좋아하는 내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며 선뜻 건네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 남편의 모자란 이야기 등 두런두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친구는 직장으로 나는 아이들 마중하러 가야하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져왔다. 

친했던 다른 친구의 둘째 아이가 어느새 돌이란다. 애들 키우느라 연락이 뜸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얼굴 보러 다녀와야겠다.  

아이들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지만 요샌 그 아이들과 재밌게 보낼 궁리하느라 더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 아이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나니 아이들이 더 많이 밝아지고 더 많이 자신감에 찬 것 같다. 또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오늘 현준이네 담임샘이 전화하셔서 주말 과제도 잘 해왔고, 현준가 발표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또박또박 자기를 소개하는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의젓하고 멋졌는지 모른다며 현준이가 마냥 사랑스러우시단다. 다행스럽게도 칭찬을 잘 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난 것 같다. 아이가 선생님을 잘 따른다며 너무 좋으시다고해서 나도 많이 고맙다고 전했다. 

요즘 현준이도 같은 반이 된 친구가 같은 태권도장에 다니게 되었다며 신이났다. 요새 현준이가 신이나서 유치원에 다니고 태권도장에 가는 걸 보는 엄마도 같이 신이 난다. 사는 게 참 행복하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11-03-1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니터 너머로도 평온한 기운이 흘러요. 요즘처럼 모든 것이 위태위태로운 때에 안정적인 내용의 글을 보니 절로 마음이 편해지네요. 덕분에 자그마하게 웃어봅니다.^^

꿈꾸는섬 2011-03-15 22:21   좋아요 0 | URL
TV보는게 두려울 정도에요. 일본의 대참사가 너무 끔찍해서 자꾸 회피하고 싶어요.ㅜㅜ
오랜만에 친구 만나 정다운 시간 보내고 왔어요. 1년도 넘게 못 본 것 같지만 늘 한결같아서 좋았어요.

blanca 2011-03-1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시. 꿈꾸는섬님 제 아이 유치원에서 세 시에 온다고 엄마들이 참 부러워하더라요^^ 종일 데리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참 시간이 빨리 가더라구요^^;; 저도 요새 아이에 집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답니다. 요맘때부터 그런가봐요. 그래서 그런 걸 몰랐던 아기 시절이 참 아쉽네요. 현준이가 참 의젓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부럽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은 책을 가끔이라도 읽는 친구가 몇 안되어 책 얘기는 참 안하게 되네요.

꿈꾸는섬 2011-03-15 22:24   좋아요 0 | URL
와우, 블랑카님 좋으시겠어요.ㅎㅎ 저도 부러운걸요. 두시는 어찌나 빨리 오는지......
제가 친구가 많지 않은데 중학교 1학년때부터 쭈욱 친한 친구에요. 서로 책 읽는 것 좋아해서 못 보더라도 가끔 무슨 책 읽는지 문자 보내곤 해요. 서로 좋았던 책 얘기도 하구요. 그런 친구가 있다는게 참 좋지요.^^
알라딘에도 그럴 수 있는 분들이 많지요. 저도 블랑카님께 언젠가 책선물하고 싶었는데 답글이 없어서 그냥 지나가버렸지요.ㅎㅎ 다음 기회를 노리겠어요.ㅎㅎ

blanca 2011-03-16 23:22   좋아요 0 | URL
아, 꿈섬님 그 댓글 기억해요. 너무 감사했지만 괜히 부끄럽고 죄송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순오기 2011-03-1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평화를 누리고 사는 게 참 행복하지요~~ 의젓하게 자란 현준이도 멋지고요.
어머니의 꿈도 해석하기 나름인가요~ 역시 좋은 쪽으로 마음을 잡는 어머니의 현명함을 배워야겠어요.^^
책 나누는 친구는 최고에요, 초등 단짝이었던 친구에게 일년에 책 두어 권 선물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막 자랑한대요~ 책도 보내주는 친구 있다고.ㅋㅋ


꿈꾸는섬 2011-03-16 17: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초등 단짝이 있으시군요.ㅎㅎ
책 나누고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친구라 정말 좋아요. 작년인가 친구 집에 갔다가 김연수 책 엄청 가져왔었잖아요.^^ 예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책 잘 나눠봤었거든요.

양철나무꾼 2011-03-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을 보면 야무진 살림꾼, 똑순이가 절로 떠올라요.
저는 경제 감각이 빵점이어서 적금이자, 대출이자의 상관관계를 구분할 줄 몰라요~ㅠ.ㅠ

책을 나누는 친구도 부럽구요.
님의 글 속에서 점점 의젖해지는 현준이, 현수를 만나는 것도 즐겁구요~^^

꿈꾸는섬 2011-03-16 17:03   좋아요 0 | URL
야무진 살림꾼, 똑순이는 과포장이에요.ㅎㅎ
적금이자보다 대출이자가 너무 비싸더라구요.ㅜㅜ

책을 나누는 친구, 알라딘에도 많잖아요.ㅎㅎ
현준이, 현수가 의젓하게 잘 자라는 게 요즘 너무 행복해요.

근데 양철댁으로 기어이 바꾸셨군요.ㅎㅎ 좋아요.ㅎㅎ

마녀고양이 2011-03-1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게 행복하다... 이런 말 쉽게 나오는게 아닌데 말이죠, 참 좋네요~ ^^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여자라니까, 꿈섬님은.
친구 오랜만에 만나니 좋지요? 한번씩 수다는 보약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꿈꾸는섬 2011-03-16 17: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요새 사는 게 행복해요. 아무 탈없이 살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뿐이에요. 큰 욕심은 없어요. 우리 가족 건강하게 웃으며 사는 거에요. 일본 생각하면 제가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많이 깨달아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여자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어요.ㅎㅎ
친구 만나니 너무 좋아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잘 아는 사람이라 부담이 없더라구요. 서로 재는 사이가 아니니 얼마나 편하고 좋던지......친구와의 수다는 보약..맞아요.^^

하늘바람 2011-03-1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현준이가 기특하네요
님 오랫만의 외출에 제가 다 후련해지네요

꿈꾸는섬 2011-03-16 17:07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고마워요.^^
태은이도 잘 자라고 있는거죠. 하늘바람님 힘내세요.^^

소나무집 2011-03-1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게 참 행복하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서 콕 박히네요.
잘 지내시죠?
건강 챙기면서 사세요.
병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올 수 있다는 걸 제가 경험해 보고 알았어요. ^^

꿈꾸는섬 2011-03-16 17:08   좋아요 0 | URL
행복하게 살아야겠어요.
어느날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소나무집님 이제 몸은 많이 좋아지셨죠? 다행이에요.
건강 챙기면서 재미나게 살겠어요.^^
소나무집님도 건강하게 재미나게 사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