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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ㅣ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평점 :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6년이란 세월을 거의 집안에서 보냈다. 나의 관심사는 늘 아이들과 남편, 집안의 대소사이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저녁이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하고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무얼하며 지내면 좋을지를 생각하며 보낸 시간들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회적인 관심이나 이슈에는 무뎌진 것도 사실이고 관심을 기울여도 도통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지극히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관점이라고 해야겠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중심에 내 가족이 놓여 있으니 말이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상처 받는게 두렵고 내 남편이 나가서 일을 하며 겪어야할 일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전부인양 살아온 셈이다. 가끔 책을 읽는 행위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출구였던 것 같다.
2009년 12월에 출간된 책이 어느새 초판 4쇄이면 많은 부수가 팔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보았을까? 그건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인데 우선 가볍게 읽기에 편안하고 좋다. 내용의 깊이와 넓이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더불어 사회에 한발 다가선 느낌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준에서는 이 책이 참 사소한 것들을 과학자와 미학자의 관점으로 거창하게 꾸며 쓴 것처럼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집에서만 보내는 아줌마에겐 사소한 것들에서 찾아낸 과학적이고 미학적인 접근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마치 나의 지적 수준이 높아진 느낌이랄까.
과학자와 미학자가 주거니 받거니 쓴 글은 생각의 합일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에 맞는 문체로 각자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러한 접근이 참 좋다. 그 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거기에 더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 즐거웠다.
21가지의 아이템 모두가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제시한 아이템들 모두 별로였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저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책을 읽는동안 4살 딸아이는 헬로 키티 부분을 자꾸만 보여달라고 졸랐다. 어린 딸 눈에도 키티가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 계속해서 보여달란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난 헬로 키티가 좋아." 그런다. 그리고 자신이 입은 옷에 그려진 헬로 키티를 내려다 보았다.(오천원 주고 산 셔츠다) 사실 그저 아이가 좋아하고 예쁘니까 사주었던 헬로 키티 캐릭터에 많은 이야기와 역사가 담긴 줄은 또 몰랐었기에 흥미로웠다. 그녀의 가족사와 남자친구까지...이 책을 안 봤다면 몰랐을 이야기였다.
또 생수이야기, 우리집도 생수를 마신다. 과학자와 미학자는 사람들이 생수를 마시는 것도 하나의 패션아이콘처럼 자리잡았다고 한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은 매번 물 끓이는게 귀찮아 마신다. 끓인 물은 오래두면 상하기도 해서 가끔 끓이고 끓인 물이 떨어지면 생수로 대체를 한다. 이런 것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그들의 글쓰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또 대중적인 것들 스타벅스나 프라다 혹은 개그맨, 개그콘서트 같은 것들에 대한 그들의 해석도 재미있었다. 물론 그것들의 깊이나 넓이를 따지면 뭐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저자가 독자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사소하게 지나치는 것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사회적인 접근이 어려운 아줌마가 읽기엔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