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에겐 오빠의 방학을 비밀에 부쳤다. 어린이집 안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대책이 없다. 그래서 현준이에게도 말하고 싶겠지만 현수에겐 말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었다. 그랬더니 우리 아들,
"현수야, 오빠 유치원 안가도 엄마랑 아무데도 안가." 그러는거다. 아이구야~~ 현수가 어려서 이 말뜻을 모르니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어쨌든 녀석 말은 하고 싶고, 말은 하지 말라고 했으니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역시 아이다.
현수를 보내놓고, 현준이와 둘이 미용실을 가기로 했다. 날은 비가 더 올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현준이랑 나는 머리를 좀 다듬을 필요가 있기에 미용실로 갔다. 원래 계획은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남편의 배려로 차를 가지고 나갔다. 우리가 이용하는 미용실은 다름아닌 현준이 외숙모가 하는 곳이다. 그리고 현준이 외할머니네 아파트 상가에 있다. 결국 미용실에 간다는 건 외갓집에 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선 도착해서 집으로 먼저 올라가 인사를 드리고 미용실로 내려왔다.
미용실에서 예쁘게 머리를 다듬었다. 한동안 머리 관리를 안했더니 엄청 길었던 머리를 좀 가볍게 깎았다. 현준이도 나도 둘다 만족스러웠다. 엄마가 머리를 다듬는 동안 녀석은 열손가락 모두 제각각 예쁜 매니큐어를 칠했다. 남자녀석이 어째 그리 매니큐어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슈퍼에서 사온 과자를 먹어치우더니 급기야 아이스크림까지 하나 먹었다. 엄마의 잔소리없이 그렇게 많은 과자를 먹은게 언제였던지 녀석 정말 잘 먹었다. 그리고 할머니네 올라가서 사촌동생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 현수를 데리러 서둘러 돌아왔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신간평가단 도서를 놓고와서 다시 차를 돌려 책을 찾아오기까지 했다. 피곤했던지 돌아오는 차안에서 살짝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너무 늦어 현수네 어린이집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데려왔다. 그랬더니 현수 "엄마, 왜 차 가지고 왔어? 근데 오빠는 왜 여기서 자?"하고 물었다. "어, 그냥, 오빠가 피곤한가 잠이 들었네." 했더니 "엄마, 오빠 머리 잘랐어?"하고 다시 묻는다. "응" 그랬더니 더 이상 묻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수가 조금은 눈치를 챘을 것 같다. 현준이만 데리고 나갔다오니 또 현수에게 미안한 일이 생긴다. 그래도 오전에 자기만 데리고 외출했던게 좋았던지 오후에 나의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어제, 사실, 어제, 참, 많이, 속상했었다.
아이가 그렇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걸 깨고 강해지는 것이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간식 먹고 잠깐 쉬었다가 태권도장에 간다. 7세 아이 둘이 함께 다니는데 태권도장을 가려면 그 두 아이가 우리집을 경유한다. 그래서 세 아이가 만나서 태권도장에 다닌다. 그런데 어제 태권도장에 두 아이 모두 못간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번주에도 전화를 받고 현준이를 달래서 태권도장에 데려다주었는데 울고불고 눈물바람을 하였다. 난 현준이의 그런 모습을 참 싫어한다. 내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여서 그럴것이다. 어느새 3개월이 되어가는데도 그 두 아이가 없으면 태권도장에 가기 싫다는게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그 일로 눈물까지 흘린다는게 나도 속이 상한다. 그런데 어제 전화를 받고는 또 눈물 먼저 흘리고 앉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가길 바란다고 설득을 했지만 아이는 가기 싫다고 계속 울었다. 그래서 네방가서 생각해보고 가겠으면 얘기해달라고 하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애를 태권도장에 보내려고 안달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이는 울다가 잠이 들었고, 난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 들어와 현준이와 얘기하고 다음부터는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늘 함께 다니다가 어느날 또 그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현준이는 또 가지 않겠다고 말할게 분명하다. 그건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다. 함께 다니는 사람이 가지 않는다고하면 가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물론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간다. 현준이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오늘 현준이에게 부탁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다니자고, 형들 기다리지말고 먼저 가서 형들을 기다리자고 말이다. 그리고 형들이 오지 않아도 씩씩하게 신나게 태권도 하고 오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시무룩하다. 그래서 <한반도의 공룡> 세권을 가져오라고하고 읽어주었다. 1권은 점박이의 탄생, 2권은 점박이의 홀로서기, 3권은 숲의 제왕 점박이, 이다. 현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고 또 현준이가 홀로서기 위해 겪어야할 두려움을 없애고 싶은 욕심에 이 세권의 책을 열심히 읽어주었다. 그랬더니 녀석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권 점박이의 홀로서기에서 말이다) 한번 해보겠다고 오늘부터 혼자 다녀보겠다고 말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두 아이의 엄마중 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앞으로는 혼자 가고 올때 함께 오는 걸로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창밖을 내다보며 잘 다녀오라고 외쳐주었다. 그리고 현준이가 혼자서 태권도장을 다녀왔다. 너무도 기특하고 예뻤다. 물론 나의 기대에 부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권도를 배우는 걸 즐거워하는 녀석이니 잘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에 현준이가 응해주니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혼자 다니는 것도 좋다고 말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남편은 오늘 회식을 한다고해서 아이들과 셋이서만 저녁을 먹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현수는 아침인줄 아는지 오늘 어린이집 가냐고 물었다. 현수에게 아직 시간개념이 서질 않으니 현준이와 나의 비밀 데이트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아이들이 자기 전에 읽을 책을 골라오라고 했더니
현수는
사시사철 우리놀이 우리문화를 가져왔다. 이 책을 너무 좋아한다. 닥종이 인형이 사랑스러워 그런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는 모두 현수라고 한다.
남편도 없고 아이들과 새해에 하는 윷놀이를 한판했다. 물론 이기고 싶어하는 현준이가 이겼다. 녀석이 욕심이 많아 지는 걸 너무 싫어한다. 걱정이다.
현준이는
해님 달님을 가져왔다. 전래동화중 이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옛날에 잠자리에 들면 이 이야기를 많이 해주어서 그런 것도 같고 의젓한 오빠가 되고 싶어 그런 것도 같고 하여간 이 책은 우리 아들, 딸 모두 좋아하는 책이다.
엄마는 <물방울의 여행>이란 책을 골랐다. 아침에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현준이가 엄마 비는 어떻게 내리는거야? 하고 물었었다. 그에 대한 답을 해주긴 했는데 밤에 다시 얘기해보고 싶어 이 책을 읽어주고 함께 물방울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퍼킨스 과학동화 시리즈에 있는 책이라 알라딘에는 정보가 없다.)
내일은 주말이니 현수도 모두 쉬는 날이다. 남편은 아마도 만취해서 들어오면 오전내내 쓰러져 잠을 잘 것 같다. 내일은 오전에 날이 좋다면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서 실컷 놀려주어야겠다. 그럼 아이들은 신이 날 것이고, 남편은 단잠을 잘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