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보내놓고 첫회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위해 서둘러 극장으로 갔다. 아침부터 눈물 흘리는 영화는 보지 말자고 일주일전에 다짐했건만, 또 눈물 많은 나를 내내 울게 만드는 영화를 보았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는 집의 풍경이 따사롭고 아름다웠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이미지에 맞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아서 영화 속에 흠뻑 빠져 들었다.
얼마전 시골에 다녀오는 차안의 라디오에서 '친정엄마'에 대한 평을 들었고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친정엄마하면 떠오르는 애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일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래도 어떤 모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는 영화의 초반부터 울기 시작해서 영화가 끝나갈 무렵까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서서히 부어오른 눈은 여전히 붉게 충혈되어있다.)
봄, 어린 딸 아이의 모습과 어울리는 파릇파릇한 영상이 너무 예뻤다. 다리를 절지만 버스 기사인 아버지, 동네 사람들의 농도 상처가 되고 그 상처에 대한 분노를 엄마에게 푼다. 시골 아낙인 엄마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지만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첫딸을 보내고 둘째딸에 대한 애틋함이 엄마의 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여름, 청소년기의 딸아이.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딸은 엄마의 자랑이며 삶의 이유이고 힘의 원천이다. 하지만 무지랭이 엄마의 모습이 부끄러운 딸은 학부모 참여 수업에 엄마가 오는 것을 싫어하고 엄마가 창피하다고 말한다. 가위로 듬성듬성 자른 머리에 초라한 행색의 엄마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폭력이 잦은 아버지와 이혼하라고 하는 딸에게 딸을 위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 우리 엄마의 모습과 겹쳐졌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딸이 대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버지 시중을 들어야한다면 딸의 공부는 어찌될 것이며 딸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 같아 떠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그때부터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전까지 부모 마음을 어찌 다 알겠는가.
서울예전에 합격한 딸은 서울로 떠나고 엄마는 딸을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고 그녀가 좋아하는 황도캔과 라면봉지 가득한 동전들, 콩나물 500원어치는 400원어치만 사는 등 악착같이 돈들을 모아 딸의 서울길에 보내고 딸은 그 동전들을 가지고 서울 생활을 한다. 비닐봉지조차 귀했던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라면봉지.
가을, 딸의 상견례, 가난한 며느리 얻는게 싫은 시어머니를 향해 자기 딸을 위해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친정엄마의 모습은 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고나서야 비로소 엄마가 된다는게 어떤 것이 알게된 딸은 엄마에게 잘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한다. 마치 나의 모습처럼 첫아이를 낳으며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나를 낳았을까를 깨달았고 왜 나를 낳았냐는 원망 섞인 말을 했던 것을 후회했었던게 생각났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에게 딸은 마냥 어린 딸처럼 안타깝고 불안하고 걱정의 대상이다.
엄마와 딸의 연속되는 말다툼, 하지만 금새 살가운 사이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던지는 비수들이 상처가 되었다고해도 쉽게 아물고, 이제는 그 면역까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 모든 것들이 소멸해가듯 딸아이는 사진 한장 남겨두고 그들의 곁을 떠난다. 하루가 지나니 죽을 날이 하루 앞당겨졌다고, 하루라도 빨리 딸의 곁으로 가겠다는 엄마, 무식해서 딸을 못 찾아갈까 그게 걱정이라던 엄마의 넋두리가 또 가슴 아프게 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좋았지만 사계절의 아름다운 영상도 좋았지만 그래도 좋았던 건 엄마와 딸의 애틋함, 애달픔, 속을 후벼대는 상처들이 좋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친정엄마 모시고 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엄마와 함께 보지 않았던게 더 나았던 것 같다. 엄마를 향한 고마움, 미안함을 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속 대사 하나하나 내 모습이 담겨 있어서 엄마와 내가 함께 부둥켜 안고 울었을 것만 같다.
또한 친정아버지의 죽음에서 딸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하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많았지만 아이들 키우는 부모가 되고나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옆집 친구는 나만큼 울지는 않았다. 그녀는 많이 배우고 잘 사는 집의 딸로 태어나서 어려움이라는 걸 모르고 자란 친구이기에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도 잠깐씩 눈물을 흘리긴 했는데 딸이 췌장암에 걸려 결국 죽게 되었고, 딸의 장례식을 치르는 친정엄마의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팠단다. 그리고 남겨진 딸과 남편.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우리의 삶이 달랐듯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정도도 많이 달랐다.
부모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했었다는 내 얘기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친정엄마가 겪었던 설움에 더 많이 가슴이 아팠다. 우리 엄마가 영화 속 엄마처럼 살갑게 대해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늘 같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또 눈물이 난다.
미리 준비해간 손수건이 축축하게 젖었고 영화가 끝난 뒤 화장실에서 본 내 얼굴이 끔찍했고 여전히 따끔거리는 눈도 불편하긴 하지만, 오늘 또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뒤면 있을 어버이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살아야겠단 생각을 또 한다.
그래도 간간이 웃음을 주었던 장면들도 있었고, 김해숙의 멋드러진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어쩜 그리도 맛나게 부르시던지......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보러갈땐 꼭 손수건을 챙겨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