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만에 처음으로 혼자 김치를 담갔다. 새로 막 담근 김치가 먹고 싶다는 남편에게 그까짓거 해주지 하며 달려들었는데 생각보다 배추 절이는게 쉽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담가주시는 김치 넙죽넙죽 받아 먹다가 요새 아버지 병간호하시느라 더 늙으신 엄마께 부탁하는 건 도저히 염치없는 짓인 것 같아 배추, 무, 쪽파, 대파, 마늘, 생강을 사고 배추는 반씩 쪼개 소금물에 담그고 나머지 양념 준비를 한참했다. 무는 채썰어놓고 쪽파와 대파도 다듬어 썰어놓고 워낙 많은 양의 쪽파도 김치 담으려고 남겨두고 마늘과 생강은 갈아놓았다. 이렇게 준비를 해놓고 배추가 얼마나 절었나 보았는데 전혀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얼마나 걸릴까? 남편이랑 혼자서 알아서 하겠다고 엄마께 전화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라 전화걸어 물어보기도 그래서 마냥 기다렸는데 5시간이 지나서야 한 반쯤 절었던 것 같다. 결국 완전히 절이지 않은 상태에서 양념을 만들어 배추 속에 넣고 마무리를 지었는데 하루 종일 김치에 매달려 있었던 느낌이다. 여하튼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김치를 담가놓고 뿌듯했다. 포기로 담아둔 것은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우선 겉절이로 무친 것만 상에 내놓았는데 남편이 맛있다고 하니 하루종일 종종거렸던 건 금새 잊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우리 현준이, 김치 맛있다고 밥을 엄청 먹었다. 조금 매웠겠지만 현수도 잘 먹고, 이렇게 또 하나를 해내고나니 나 스스로도 내가 대견스러웠다. 

문득 엄마가 없으면 어쩌나 싶었던 마음 속에서 엄마 뒤꽁무니에서 배웠던 것들을 나 스스로 해내고 있는 모습을 엄마가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고 다음에 우리집에 놀러오신다니 그때 내가 담근 김치 내놓으며 맛 좀 봐달라고 해야지. 엄만 뭐라고 하실까? 잘했다고 하시겠지. 맛있다고 하시겠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며칠전 몸이 아팠을때, 내 몸 아픈 것과 상관없이 아이들 먹을거리 준비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울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엄마 생각도 났었고 결혼전이었다면 엄마가 만들어주신 맛난 음식 먹으며 이불 속에서 누워있었겠지. 엄마는 나보다 더 많이 힘들었던 시절을 살았고 힘들었지만 늘 가족들을 위해 분주히 바쁘게 사셨지. 당신 입에 넣는 것보다 자식들 입에 넣어주기 바쁘셨지. 그렇게 넙죽넙죽 받아 먹기만했던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서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엄마, 미안해. 엄마를 아직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겪고나서야 비로소 엄마도 그랬겠지하고 생각하네. 난 너무 바보같아.  

앞으로는 엄마께 김치 얻어먹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 일을, 매번 엄마께서 자청해주셨지만,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 내 가족들에게 이제부턴 내가 만들어서 먹어야하는게 도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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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9-0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로한 김치가 먹고싶어 몇번 도전해 보았는데 재료가 부실한지 늘 실패인데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네요 ^^ 아이고.. 몸은 좀 괜찮으세요?

꿈꾸는섬 2009-09-11 22:16   좋아요 0 | URL
엄마 담그시는 것 어깨너머로 배운거라 저도 많이 서툴러요. 배추는 늘 절여져 있는 상태여서 얼마나 절여야하는지 몰랐는데 직접 해보니 알겠네요.^^
식구들이 맛있다고 잘 먹으니 다행이에요.^^

소나무집 2009-09-0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성하게 되네요.
저도 내내 김치는 친정엄마가 해서 대주시거든요.

꿈꾸는섬 2009-09-11 22:17   좋아요 0 | URL
저도 아마 엄마께서 힘든 상황이 아니셨다면 얻어 먹었을거에요.^^
이젠 엄마 짐을 좀 덜어드려야할때인 것 같아요.

水巖 2009-09-0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석이네도 늘 가져가죠. 김치 담그는 날엔 아예 오라고 불르더군요. 가끔 걱정도 돼요.

꿈꾸는섬 2009-09-11 22:19   좋아요 0 | URL
저도 매번 엄마 김치 담그는 날에 가서 얻어왔었어요.
그런데 이젠 너무 늙으시고 아버지 병간호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거든요.
이젠 저도 도전해볼만한 것 같아 직접 담가봤는데 나름 괜찮더라구요.
직접 해보니 얼마나 힘든 줄도 알았구요. 그래서 엄마께 더많이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같은하늘 2009-09-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해서 살다 세월이 흐르니 하나씩 하게 되더라구요.
김치도 담가보고 새로운 반찬도 해보게 되고...
저는 오이지를 정말 좋아하는데 맨날 엄마한테 얻어 먹다가 얼마전에 처음으로
담갔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냉장고를 보면 흐뭇하다지요~~~ㅎㅎㅎ

꿈꾸는섬 2009-09-11 22:20   좋아요 0 | URL
아, 저희도 오이지 잘 먹어요. 저도 곧 도전해봐야죠.^^ 내년엔 저도 한번 해볼까봐요.ㅎㅎ 오이지는 잘 씻어서 소금물을 끓여서 붓는거죠?, 식혀서 부으면 되는 건가요?

같은하늘 2009-09-17 21:41   좋아요 0 | URL
아니요~~ 끓는 물을 부어야 오이가 색도 이쁘고 아삭하고 맛있데요.

꿈꾸는섬 2009-09-17 23:37   좋아요 0 | URL
내년에 같은하늘님 레시피 올려주세요. 그럼 제가 보고 도전해볼게요.^^
담가야하는 시기도 알려주시구요.ㅎㅎ 부탁드립니다.^^

하늘바람 2009-09-18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매번 망쳐요. 당장 배추김치 한쪽 없어서 시장가서 사와야겠단 생각했어요. 맛있게 담그셨다니 부럽네요.
저도 제가 담가야겠단 생각했어요 그래야 나중에 우리딸 김치 담가주죠.

꿈꾸는섬 2009-09-18 22:26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어렵진 않더라구요. 저흰 남편이 액젓을 좋아해요.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섞어서 간을 봤어요. 까나리액젓을 쓰는 것도 좋다고 하더라구요. 요새 배추가 가장 맛있을때라고 하던데 하늘바람님도 꼭 성공하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