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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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며 내 존재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그들에게, 나자신에게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을 것만 같아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소설에서처럼 신분을 조작하고 위조할 수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서류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더 이상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에 그렇게 되더라도 가족들과 지인들이 '나'를 나라고 인정한다면 그건 아무런 일도 아닌 일종의 해프닝으로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언노운'의 마틴 해리스처럼 그 모든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잃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저명한 식물학자 마틴 해리스는 프랑스에 연구를 위해 아내와 함께 도착한 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72시간의 코마 후 홀로 병원에서 깨어난다. 그가 탔던 택시 기사만이 그의 병상을 지키며 그가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마틴 해리스는 아내가 아직까지도 자신의 사고를 모르고 생사를 궁금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간 집에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자신이 진짜 마틴 해리스라고 하고 그의 아내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며 그를 부정하게 되고 마틴 해리스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나'를 증명할 모든 것을 잃고 존재를 부정당하고 자신이 마틴 해리스라고 주장하는 남자에 의해 그의 주변 모든 상황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마틴 해리스는 모두에게 부정당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가 갖고 있는 기억에만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빠지게 되고 그를 믿어주는 택시기사 뮈리엘뿐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부투하게 되며 뮈리엘은 그를 유일하게 도와주고 믿어주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노력하던 중에 얼핏얼핏 드는 또 다른 기억들이 그를 혼란 속에 빠지게 하고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를 이끌게 된다. 

'언노운'은 마틴 해리스가 처한 모든 상황이 나였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줄곧 하게 된다. 소설 속 마틴 해리스처럼 그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상만 해도 스멀거리며 공포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더구나 '나'의 존재를 가장 강력하게 인정해주어야만 하는 가족과 지인들에 의해 부정된다면, 나를 둘러싼 세상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자실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끊임없는 의문을 갖게 하며 수많은 생각 속으로 몰아붙인다. 혼란과 혼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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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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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하고 있을 때는 조금은 지겹고 힘들게 느껴지고 시간의 지겨움을 순간순간 느끼게 되지만, 막상 일을 쉬게 되었을 때는 그 시간의 지겨움이 매순간 그리워지는 것이 또 일이라는 행위인 것 같다. 만약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백프로 만족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부러운 행운아일지도 모르겠다. 일의 특성상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도 어느 순간 그 좋아하는 일이 '일'이라고만 생각되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 재미난 '일'은 밥벌이의 일뿐이자 고충의 일로 전락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만 하고 매진해야만 하는 것은, 그 '일'이 '나'를 대변한다는 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일이, 그녀가 하는 일로 인해 상대방이 달라져 보이기도 하고, 괜히 실망스러워지기도 하는 치졸한 마음이 슬쩍 생기기도 하며 나도 모르게 저울질 아닌 저울질을 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상대방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로만 평가받기 싫어하면서 나도 모르게 상대방이 하는 '일'로만 평가를 내리는 우를 쉽게 범하기도 한다. 그만큼 사회 속에서, 나를 둘러싼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생계수단이자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과시할 수 있는 표현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일'은 우리를, 나를 대변하고 삶을 돌아가게 만들며 비추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일'은 열망하기만 할 수도, 지겨워만 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10장에 걸쳐 다양한 직업 영역을 보여준다. 무심히 지나쳤고 잘 알지 못했던 직업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그 속에 숨겨진 애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장에서는 무엇이라 설명하기 힘든 마음의 헛헛함을 느끼게 되고 또 다른 장에서는 일의 복잡함과 정교함, 끈질긴 집념에 숨이 차기도 한다. '일'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전작과는 달리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오는 은근한 무거움 때문인지 어느 장에서는 술술 읽히다가도 어느 장에서는 도통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다 읽게 되는 것은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들려주는 일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과 그의 이야기에 알게 모르게 공감하며 종종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을, 그 일상에 묻혀가는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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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동화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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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동화'는 25년 전 흐린 날 바닷가에서 미모의 여류화가가 의문사한 사건을 그녀의 아들과 그녀의 환생일지도 모르는 마유코가 우라타 선생님과 생존해있는 화가의 지인들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마유코가 정말 25년 전에 죽은 여류화가의 환생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25년 전에 의문사한 미모의 여류화가가 남긴 유작 전시회장에서 그림을 둘러보던 마유코는 화가의 그림 속에서 이상한 환시를 보게 되고 그림 속의 사연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 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게 된다. 정신을 차린 마유코에게 여류 화가의 아들은 어머니가 생전에 꼭 환생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며, 혹시 어머니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게 되고, 마유코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태어난 해에 죽은 여류 화가의 삶에 대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과 마지막 죽음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마유코는 혼란에 혼란을 더하게 된다. 화가가 남긴 유일한 단서는, 자신만큼이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넉 점의 그림. 한 번도 본 적 없는 죽은 화가의 영혼에 사로잡힌 듯 마유코는 갈등 속에서도 화가의 옛 지인들에게 그림을 배달하게 되고 그녀의 진짜 모습에 근접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인들이 들려주는 상반된 이야기 속에 25년 전에 죽은 여류 화가, 그녀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매혹적인 미모를 지닌 예민한 성격의 예술가였을까? 아님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냉소적인 여인이었을까? 그녀에 대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서 아름다운 그림 속에 숨겨진 추한 진실에 근접하게 되고 기억 속의 기억을 더듬어 진실을 찾게 된다. 

사람들의 기억이란 오묘하다는 점이 이 소설의 숨겨진 흥미로운 사실이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강렬한 사건의 충격과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온다 리쿠의 독특한 구성, 복선, 특이한 소재들을 잘 살린 불안한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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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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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은 한 화가의 광기어린 수기가 발견되고 범인이라고 철석같이 의심했던 화가가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길고 긴 사십 년의 세월 동안 일본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고 수많은 경찰, 미스터리에 심취해 있는 모든 자들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나선 유명한 사건이 되어 버리지만 결국 미해결된 채 길고 긴 세월이 흐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세상일에 무심하고 매사에 태평해 보이면서도 관심 있는 분야에는 예리한 추리력을 발휘하는 점성술사이자 우울증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와 왓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이시오카 가즈미가 콤비가 되어 사십 년 전의 사건을 해결하고자 도전하게 된다. 처음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타라이는 이시오카의 열띤 사건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하게 되어 일본 전국을 공포로 뒤흔든 '우메자와 가 점성술 살인사건' 해결에 뛰어들게 된다.  

화가가 남긴 수기에 의하면 점성술에 사로잡힌 광기의 화가는 자신의 여섯 딸을을 이용해 완벽한 존재를 만들려고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 존재의 이름을 '아조트'로 명명한다. 그뒤 화가가 남긴 수기대로 훼손된 딸들의 시체가 일본 각지에서 발견되고, '아조트'가 완성되었는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문을 남긴 채, 화가는 밀실과 같은 화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고 여섯 딸들의 훼손된 시체가 수기에 쓰여 진 대로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공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다. 

미타라이는 이시오카와 함께 사십 여 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출간된 수기 책을 자료로 생존해있는 사건 관련자들을 만나보고 사건이면의 숨겨진 사연들을 찾아 추적하게 된다. '우메자와 가 점성술 살인사건'의 가장 큰 의문점은 수기에 쓰여 진 대로 여섯 딸들이 살해되었다면 그 범인은 누구인가?, 범인으로 가장 유력시되었던 화가가 살해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 그녀들을 살해하고 전국 각지에 훼손된 시체를 수기에 적혀있는 대로 깊이를 달리하여 매장했을까?, '아조트'는 완성되었을까?, 화가는 정말 살해된 것일까? 하는 의문들을 풀어야만 하고 별개의 사건으로 생각해왔던 장녀의 살인사건과 매장한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미타라이는 우메자와 가의 복잡한 가족관계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고  가족관계의 역학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숨겨진 이면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어지게 된다. 

'점성술 살인사건'은 홈즈와 왓슨과 같은 관계를 보이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우울증 탐정 미타라이와 그런 미타라이와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어 주며 사건을 해결하는 이시오카의 옥신각신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고, 거기에 사건 자체가 기이하고 광기의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까지도 도대체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는 점과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의 의외성 때문에 또 한 번 아! 하고 감탄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는 신본격 추리소설이다. 작가는 사건 중반부터 모든 증거를 독자 앞에 제시했으니, 범인을 찾아보고 사건을 해결해보라고 두 번의 도전장을 내민다. 트릭과 논리에 뛰어난 추리소설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도전해보는 것도 즐거운 추리소설 읽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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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블론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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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보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해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이며 형사로서의 고충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기도 하다.  거리의 여성들을 불러들여 잔인하게 살해한 후 인형처럼 곱게 화장을 하고 금발로 염색 시킨 채, 시체를 유기시키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여 로스앤젤레스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이에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해리 형사는 인형사로 보이는 범인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지원을 기다리지 않은 채, 현장에 도착하게 되고 그를 사살하게 된다. 그 일로 해리 형사는 헐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되고 사건은 잊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4년 후 인형사의 미망인이 과잉 대응으로 보슈형사를 고소하게 되고 그 즈음 인형사 사건과 유사한 사건의 시체가 콘크리트 속에서 발견되고 보슈 형사에게 남겨진 메모를 보며 인형사의 짓임을 직감한다. 이로 인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빠져들게 되고 해리 형사를 다시금 혼돈의 사건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콘크리트 블론드'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부분은 4년 전 거리의 여자들을 잔인하게 줄인 연쇄살인마 인형사를 해리 보슈 형사가 단독으로 처치한 사건과 두 번째 부분인 그 사건 이후 인형사의 미망인이 머니 챈들러로 불리우는 유능한 변호사를 내세워 과잉 대응으로 보슈 형사를 법정에 세운, 현재의 이야기와 세 번째 부분인 인형사 모방범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4년 전 분명히 연쇄 살인범 인형사를 죽인 것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해리 보슈 형사와 엉뚱한 선량한 사람을 죽였다고 몰아붙이는 미망인 측 변호사와 법정 설전 중에 발견된 콘크리트 블론드 시체는 모방범의 실체를 확인시켜는 또 다른 사건이 되고 비밀리에 소수의 형사들이 사건을 진행해 나가게 되면서 서로의 신뢰, 배신을 경험하게 되고 점차 누구를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에 갈등하게 되면서 동료들, 언론,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한 오명을 벗어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해리 보슈 형사는 그냥 묵묵히 달린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태생적 아픔을 견디어 내고 오해와 불신을 이겨내며 그저 자신의 길을 간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의 슬픔과 고뇌가 느껴져 해리 보슈 형사의 캐릭터가 돋보인다. 그래서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이, 혼돈의 거리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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