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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마르크스 평전'을 금방 다 읽고나서 처음 든 생각은 드디어 다 읽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나마 왜곡된 마르크스를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그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를 새삼 깨달게 되었던 시간들이었다.
그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독재체제에서 죽어가게 만들었던 사상을 만들어낸 '악'에 가까운 인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었던지...
그는 격동의 19세기를 자신의 사상과 생활 속에서 힘겹게 투쟁해온 한 '인간 마르크스'였음을 평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밝혔듯이 어느 평전에서는 너무나 신격화된 마르크스를 만날 수 있고, 또 다른 평전에서는 그의 모든 사상과 삶을 송두리채 무위로 만드는 듯한 심한 비판을 가한 평전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더욱 더 '마르크스' 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평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되고 발견되고 발명되던 시기인 19세기에 태어난 마르크스는 과학의 발전 속에 흥분하고 사상이 넘쳐나던 시기에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어릴적부터 사랑을 키워온 부인 예나와의 사랑과 40년 우정을 지켜온 엥겔스와의 만남을 통해서 인간 마르크스를 엿볼 수 있다.
항상 학문에 못 말라했던 마르크스는 방대한 독서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연구하고자하는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자 항상 성마르게 행동해왔고 그래서 자신의 집필을 최대한 연기하고자하는 완벽성에 부딪히게 된다.
빠르게 변화되는 세상과 관심분야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갈등하기도 하고 영영 끝내지 못할 것만 같은 집필활동에 고민하기도 하는 인물이다.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통해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그의 사상과 글은 전세계로 펴져나가게 되고 그의 사상이 왜곡, 변질되는 상황까지 치달게 된다.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닐쎄" 하고 말이다.
어쩌면 그는 그의 사후에 일어날 모든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예측하고 있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사상과 혁명적인 정신이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서 변질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에 이용되어지고 많은 학살이 자행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지금은 낡은 이론이 되어버린 그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했졌지만 그의 사상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마르크스였기에 자본주의가 도래한 후에야 공산주의 체계로 넘어갈 수 있고 과도기적인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고 이러한 독재는 개인의 자유를 문제 삼지 않고, 국가의 탄압적인 기관들을 사라지게 해야는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을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수많은 아류 사상가들에 의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해 '마르크스주의'를 만들어내고 이용해왔음을 알려준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사상과 삶이 고스란히 담긴 저서들이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읽혀져왔지만 제대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에 한탄스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 속에서 그의 삶은 평탄스러웠던 적이 거의 없는 소용돌이 속 삶이었다.
가난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랑하는 아이들 셋을 잃게 되고 자신도 평생을 병마와 싸우고 자신의 사상의 라이벌들과의 질타와 독설로 점철된 삶을 살아오게 되고 자신의 사상과 뜻을 제대로 세상에 알리기 전에 세상을 뜬 안타까운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변화된 세상을 꿈꾸었던 인간 마르크스였고, 그의 열정적인 삶과 인간을 위한 사상에 깃든 인간중심의 사상에서 또 다른 세상을 꿈꿔볼 수 있지않을까 싶다.
마르크스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마르크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책이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변화된 세상에서 마르크스는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과 사상에 깃든 열정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