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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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께서 전주로 발령이 나셔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던 오빠들은 서울에 남고 막내인 나만 부모님을 따라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전주는 나에게 너무 낯설면서 동시에 설레이는 곳이기도 했다. 어딘가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전주는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찬란했던 어린 시절 2년을 선사해주었다. 순박한 사람들, 풍성한 음식들이 나를 금새 서울 깍쟁이 아이에서 시골아이로 바꾸어 놓았다. 동네 아이들하고 산딸기도 따먹고 정말 시골 전주비빔밥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고 그 곳의 음식은 다 정갈하고 맛깔스러웠다. 워낙 먹는 음식에 용감한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망설여지 않고 먹는 편이라 쉽게 잘 적응할  수 있었고 마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만찬'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행복했던 추억들을 새록새록 생각나게 만든다. 하루하루가 즐거워서 빨리 밤이 오고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던 그 날들을 추억하게 한다. 책에 실린 글과 음식사진을 보면서 엄마와 그 행복했던 추억과 음식을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아홉 살 때 동네 근처 절에서 스님들께서 직접 만드신 유과를 먹어보았을 때, 그래서 두고 두고 먹고 싶었을 때의 그 마음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공선옥 작가는 말한다. 계절 음식이었던 음식들이 지금 버젓이 사계절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이다. 일 년 내내 구할 수 있는 음식 시스템에 익숙해져있던 나에겐 새삼 알게 된 사실이기도 했다. 마트에서 무심코 보고 무심코 구입했던 음식들은 사실은 계절 음식이었고 그 제철에 먹어야 가장 맛나다는 사실을 말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다른 가족들에 비해 나물, 채소, 생선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항상 조금씩, 꾸준히 밥상에 나물, 시래기 국을 올리셨고 매번 엄마 혼자서 다 드시고 하셨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식성이 조금씩 변하는 지 나 역시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제철 나물들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가끔 드시고 싶다던 추어탕도 둘이서 먹으러 다닌다. 음식에 들어가는 향을 좋아하는 편이라 젬피(초피)도 넣어서 먹는다. 어릴 적에는 물컹거려서 먹지 않았던 메밀 묵은 지금은 제철마다 먹고 메밀 국수도 좋아해서 잘 해 먹는다. 그러고보니 만들 줄 아는 음식은 없어도 못 먹는 음식은 없는 것 같다. 다음엔 배우고 직접 만들어보는 용기를 내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행복한 만찬 속에 담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읽다보니, 음식에 얽힌 추억이 참 많구나 생각했다. 행복한 만찬은 행복한 추억을 기억하게 하고 바로 그 순간을 또 추억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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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6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16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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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작인 '야시'에서의 묘한 매력을 고스란히 가져온 쓰네카와 고타로의 장편소설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분명 매력이 있다. '야시'에서의 몽환적이고 아련했다면 '천둥의 계절'은 좀 더 부드러워진느낌을 준다.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는 단절되어 있는 듯하면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인간들과 정령, 유령, 괴물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문을 통과하고 되돌아 가야만 하는 소년 '겐야'와 그의 수호신이 되어주는 새 '바람와이와이'의 길고 긴 세계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도에도 없는 그 곳의 이름은 '온' 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외에 겨울에서 봄 사이에 찾아오는 '천둥계절' 이 있는 곳에 소년 겐야가 있다. 겐야는 노부부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있는 고아 소이다.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누나는 '온'에만 존재하는 천둥의 계절에 사라진다. 그 후 더욱 더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던 겐야에게 학교 친구 호다카는 친구가 되어주고 그 나이 때 소년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러나 겐야는 친한 친구 호다카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고 점점 더 밤에 '온'에서 금기하는 장소인 귀신 촌에 드나들게 되면서 문지기 아저씨를 알게 되고 자신의 비밀이 몇몇 특별한 사람들 눈에는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겐야 몸과 마음속에서 살고 있는 정령 '바람와이와이'와 대화를 하게 되고 생각을 공유하게 되면서 겐야는 특별해짐을 느낀다. 그러던 중 호다카의 오빠 나기히사의 잔혹한 만행을 알게 되고 '온'에서 쫒기는 신세가 되어 환상의 세계에서 겐야가 살았던 현실의 세계로 떠나게 된다.

'천둥의 계절'에는 여러 명의 화자가 번갈아 가면 들려준다. 이 소설의 중심인 겐야와 정령 바람와이와이, 누나 아카네, 나가히사, 귀신 조 우두머리 도바, 호다카가 천둥의 계절에 자신들의 겪었고 행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있고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가 얽혀 있는 그 곳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판타지의 매력은 그 세계가 아무리 무모해도 어디엔가는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작은 믿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즐겁다. 빡빡하고 재미없는 현실 속에서 밤에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저 멀리 어디선가 우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존재들이 있을 것라는 생각을 하면 덜 외로워진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나만의 느낌일지라도 겐야가, 아카네가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천둥의 계절'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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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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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2년 심해 탐사 도중 사고를 당한 한 남자가 노르웨이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고 깨어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누군인지, 무슨 일 때문에 사고를 당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잊어버린 채 깨어나게 되고 자신을 찾고자 끊임 없이 망각된 기억 속을 헤매이게 된다. 거울 속의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고 신분증을 들여다보아도 자신임이 실감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병원에서의 답답한 상황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정체불명의 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의혹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는 '나탕'이라는 신분증을 토대로 자신을 찾고자 병원에서의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정체모를 괴한들에 의해 습격을 받게 되고 자신도 모르던 전사와 같은 자신의 육체적 공격성과 민첩성을 발견하게 되고 더욱 더 자신의 과거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텅 빈 아파트에 도착한 나탕은 이탈리아의 체세나에 위치한 도서관 애실리 우즈에게서 나탕이 맡긴 엘리아스 필사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도착해있음을 알게 되고 즉시 그를 만나러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면서 본격적인 망각 속에 감추어진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 떠나는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과거를 찾아가면서 망각하고 싶었던 그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 있었음을 알게 되고 자신만의 그 피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고군분투하게 된다.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과 동시에 악령 같은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나탕의 모습이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피의 고리'는 신종 바이러스 실험, 추악한 비밀을 숨기고자 했던 과거의 망령들, 광신적인 믿음으로 인한 피의 고리들의 현실감 있게 전개된다. 그러기에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읽히고 한 편의 멋진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시각, 청각이 다 열리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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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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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서양미술사의 구성 및 서술체계를 과감히 탈피하고 미술사학의 대가들의 논문을 토대로 풀어내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길고 긴 미술사를 서술하는 것보다 주요한 몇가지 양식과 그 양식이 생긴 배경과 화가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어 새로운 느낌을 전해준다. 다만 대가의 논문과 진중권 저자의 객관적인 설명이 나처럼 평범한 독자가 다 수용하기에는 벅찬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그림들의 비례와 시대마다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고 또 재탄생되는 배경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새로움을 알게 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접했다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미술과 이집트의 도형화된 미술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왜 그리스 , 로마 미술에는 신을 닮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는지, 이집트 그림에는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고 얼굴은 옆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눈을 강조해서 한 그림들이 이상했었다. 그런데 그점이 그 시대가 요구했던 아름다운 비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미술사는 화가나 조각만의 것이 아니고 위대한 예술운동을 이끄는 또 한 중요한 집단인 비평가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바로크가 발흥하던 시절에도 고집스럽게 프랑스 아카데미에서는 고전주의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지만 그러한 아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양식의 도래를 불러온 사람들은 로제드 필과 같은 아마추어 비평가들이었다고 한다. 그 후 비평가들의 역할은 커지고 화가와 대중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시대의 양식과 미술사 이야기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간결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미술사의 무지를 조금 헤쳐나올 수 있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미학의 눈으로 읽는 고전의 예술의 세계를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책 읽기였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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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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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지 십분도 안 되어서 책을 도로 덮었었다. 왜냐...너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한번 숨 좀 쉬어주고 읽어가려고 진짜 천천히 야금야금 읽었다. 멕시코 휴양지에서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나른하고 행복했던 두 쌍의 커플과 독일의 친구, 그리스 친구가 하루아침에 겪어야했던 그 무시무시하고 온몸을 휘감는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여기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이 있다. 생김새도 닮고 눈빛만으로 생각을 전할정도로 절친한 에이미와 스테이시는 각기 남자 친구 제프, 에릭과 함께 멕시코 휴양지로 대학원생과 직업인이 되기 전 마지막 여행을 멕시코로 떠나왔다. 나른하고 즐거웠던 휴양지에서의 생활이 지루해질 무렵 동생이 남긴 손으로 그린 지도 한 장을 들고 폐허로 떠나겠다는 휴양지에서 만난 독일인 친구 마티아스를 따라 가 모험을 즐겨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리스인 친구 파블로와 함께 무작정 떠나게 되면서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이끌리게 된다.

고고학적 발견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정글 속의 일행들은 사라지고 없는 자리에 덩그러니 6명의 대책없는 모험을 꿈꾸었던 자들만 남게 되었다. 정글 근처에 살고 있던 마야 인들의 알 수 없는 말과 손짓에 의아심을 품게 되지만 의사소통은 전혀 안되고 마야 인들이 경악할 만한 금기를 어기게 되고 한 언덕에 갇히게 된다. 초록, 초록, 초록으로 가득한 정글 속 언덕에 남게 된 그들은 아래에서는 마야 인들의 총부리에 정글 속 언덕에서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점차, 점차 짓눌리게 되면서 진정한 공포는 시작된다.

갇힌 공간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남게 된 6명의 친구들은 제프가 자연스레 리더가 되면서 숨겨진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왜 제프가 리더가 되고 말을 들어야만 할까, 모자라는 음식, 물의 분배문제에 있어서 왜 눈치보고 먹어야 할까, 왜 죄책감을 느끼면서 물을 마셔야만 할까에서부터 점차 생존의 문제로 깊어지게 되면서 6명은 갈등하고 되고 미지의 공포대상은 지능적으로 그들을 고립시키고 적대심을 갖게 만든다. 벗어날 수 없는 언덕에서 예정된 수순을 밟아야만 하는 6명의 공포 가득한 이야기가 마지막 장까지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 책을 덮는 순간, 덮은 후에도 잔상이 오래 남는 멋진 소설이었고 진정한 공포란 이런 거다 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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