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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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세이를  썼다면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이렇게 매끄럽게 잘 써줬네 하는 느낌으로 읽었다. 나 역시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오래했고, 직장 내에 일어날 법만 일들 그리고 그 해결책, 아기 낳은 지 얼마 안되서 느끼는 감정 등.... 등등 어라 내 얘기네 싶은 부분들이 많았다. 아래 밑줄긋기하며 읽은 부분은 내가 아기 어린 우리 아들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p37 결국 전문가란 더 많이 경험한 사람이고, 그 덕에 남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된 사람이고, 남들이 못 보는 것을 짚어주는 사람이 아닌가. 


p46 미국의 심리학자  베티 하트와 토드 리슬리는 1995년 논문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아이들 간에  '언어  능력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낸 적도  있다. 부모나 주위의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하며 자란 아이들일수록 풍부한  어휘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언어적 격차뿐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격차도 상당하다. 사회학자 그레그 덩컨과 리처드 머네인의 연구에 따르면 자녀의 경험을  위해  부모가 지출하는 비용은 상위 20퍼센트 가구가 하위 20퍼센트 가구보다 열  배 많다고 한다. 어떤 아이가  TV로만 비행기를 접할 때,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여권을 만든다. 아이들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것이다. 


p47 대개의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것만 주려 하지만 어떤 부모는 진짜 좋은 게 뭔지 잘 모른다. 그들도 뭐가  진짜로  좋은 건지 제대로 겪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먹고살기에도 버거워 자녀에게 깊이 있는 조언을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 자녀에게 전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p170 특히 초보 엄마들은 출산 후 세상과 괴리된 기분이 들어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산후우울증의 첫 단계는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완전히 변한 몸과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쉽다. 아이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필요한 사람인 것 같지 않아 주눅든 상태에서 감사하라는 말을 자꾸 듣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더욱 의심하게 된다. 그러니 그런 말을 남편에 대한 칭찬이랍시고 하는 걸 그만두자. 그런 말을  득게 되었을 때 자신의 가치를 의심할 필요조차 없다. 


pp174-175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할 때 주변에서 하는 조언도 따져보면 부모 입장에서의 말뿐이다. 아이가 주는 기쁨이 크고, 자식이 부부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에 낳아야 한다고 한다. 첫아이가 아들이라면 엄마에게 딸이 꼭 있어야 하니 둘째를 낳으란 말을 듣곤 하는데 그 이유 또한 아이의 언어는 아니다. 엄마를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건 딸밖에 없기 떄문이라서다. 딸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다정다감하게 엄마를 도와주는 역할을 기대받는다. '첫딸은 살림 밑천'같이 이상한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p190 직장 생활을 오 년 넘게 한 상태여서 당장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도 이 년 이상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었다. 그랬기에 교통사고가 나고 휴직을 한 상태에서도 급할 게 없다고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거다. 살다보면 어떤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그럴 때는 누구든 패닉에 빠져 시야가 좁아진다. 이때 필요한 도구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정보력(전문가나 주변인의 도움)인데, 이것은 일단 당장의 생활비 걱정이 없어야 가능하다. 여유가 없어 다급해진, 절박함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그 어떤 이와의 파워게임에서도 진다. 


p207 기회가 생기더라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것은 옷뿐 아니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선택해 본 적 없는 사람, 고만고만한 선택지가 다인 줄 아는 사람, 일단 지금 뭐라도 택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을 거라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은 상황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습관이 된 경우가 많아, 그때 듣는 '착하다'는 평가를 곧이곧대로 믿고 매번 지나치게 양보하다 결국 길을 잃곤 한다. 


p243 이십대 초반까지 자존감이 낮았던 이유는 내 모습이길 바라는 기준이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하는 괴리를 인정하기 힘들어서였다. 남들은 희고 평평한 도화지를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얼룩덜룰하고 구겨진 도화지를 받았기에 잘해봤자 소용없다고 불평했지만 그래봤자 바뀌는 게 없었따. 자세히 살펴보면  나보다 더 좋지 않은 재질의 종이를 받아든 사람도 있었는데 그땐 그게 보이지 않았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 속 대사를 활용해보자면, 처음 나에게 주어진 환경은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고 그저 여러 가지 우연의 합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더 좋은 조건이 주어졌어야 했다고 억울해하는 걸 그만두었다. 


p248 자존감이 높고 깊은 화를 품고 살지 않는 어른에게서 나오는 너그러움. 


p249 남편은 내가 아는 모든 이들 중에서 가장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다. 열등감이 없고 꼬여 있지 않으니 누군가를 볼 때 좋은 면만 보려 해 남의 험담을 거의 하지 않는다. 사람의 급을 나누거나 돌려받을 걸 계산하지 않아서 누구에게나 잘해주지만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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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채우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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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달리다>의 후속편을 이제야 알다니...

유튜브에 산후조리원에서 읽을 만한 책이라고 이 <사랑을 달리다>와 <사랑을 채우다>를 추천하길래 <사랑을 달리다>를 엄청 재미있게 읽어 냉큼 후속편도 집어 들었다.

역시나 혜나 집안은 참...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솔직히 속물 캐릭터는 내가 될 수도 내 친척이 될 수도 있어서 그리 낯설진 않았다. 또 욱연의 형제들은 어떻고. 욱연의 전처와 자녀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아닌가.

<사랑을 달리다>는 이런 소설 너무 재미있다며 한국어 배우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제 그 후속편도 소개해 줘야지. 술술 넘기며, 킥킥 웃으며, 금새 읽어지는 책이니까.

마지막 부분, 고깃집에서 욱연의 형제들에 둘러싸여 혜나가 노래부르고, 욱연이 안아주는 장면이 뭔가 아쉽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이 책이 출간되고 몇 년이 흘렀으니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작은 오빠가 제빵사 자격증을 따서 정말 빵집을 차리게 되고, 최영해 이사 자리는 아니더라도 황해재단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고.... 그리고 혜나와 욱연이 알콩달콩, 토닥토닥 일상을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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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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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 책의 내용과 함께 자주 소개되던 내용이 이 책의 <601, 602>이다. 옆집 친구는 오빠에게 이유없이 맞지만 엄마는 이를 방관하고, 거기다 그 엄마는 여자애가 공부해서 뭐하냐는 소릴 하질 않나... 한때 일반적이며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던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장면이 섬뜩할 만큼 폭력적이다. 이 책엔 이런 한때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묶여 있다. 고등학교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레즈 커플 이야기, 고등학교 온라인 통신으로 만난 세 친구의 20대 초반 시절의 이야기, 정신 못차리고 앞가림 못하다가 우연찮게 아일랜드에 가게 되면서 한층 성숙해 지는 이야기. 큰 사건 전개도 없고 뭔가 기 승 전 결 이야기가 없다 싶은데, 이게 한때 내 삶 한편의 이야기지 싶기도 하다. 고등학교때, 20대 초반의 이야기를 읽으며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면 그냥 그때의 이야기를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다. 성숙해 가는 과정.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지나간다 싶은. 그 스치는 인연 속에서 그 사람은 내게 무해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그 사람에게 무해한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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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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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 참 오랜만이다.

소설을 읽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감성을 경험해 보기 위한 거라고 한다. 여기 나온 등장인물의 마음은 어떤 걸까?

5살 아이를 잃은 엄마와 아빠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후진하는 유치원 버스에 치여 하늘나라로 간 아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꽃매를 맞아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10년 동안 만난 동거남이 자신 몰라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빼내서 노량진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마음은... 

노인의 폭행 장면을 목격한 아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는 장면을 봤지만 혹시 그게 놀라움과 공포에 가린 손이 아니라 웃음을 가리는 손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10대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은...

차량 사고를 낸 교수가 시간강사에서 사고는 냈다고 대신 말해달래 놓고, 그렇게 신세 져 놓고선 뒤에선 시간강사가 교수로 채용되는 걸 강하게 반대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시간강사의 마음은...

 

감정이 이렇다 저렇다는 설명은 없다. 그냥 주인공들의 대화와 상황 설명만 있을 뿐인데, 그 감정에 확 몰입됐다. 특히 첫 번째 단편. 아들 잃은 엄마가 나온 장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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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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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유머는 불쾌함과 모멸감을 자아낸다.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쾌감을 느끼는 비웃음,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는 희롱, 권력과 지위에 도취되어 짓는 과시적인 미소....

 

p9 많은 사람들이 우머러스해지고 싶어 하는데, 유머 감각은 단기간에 습득하거나 높이기엔 너무 복합적인 역량이다. 유연하고도 예리한 지성, 유쾌하면서 상대를 섬세하게 배려하는 감성이 어우러져야 한다.

 

p23 무한 성장에 대한 환상과 강박을 내려놓고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하는 지금, 유머는 삶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탐색하는 정신의 놀이다. 격조 있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존재가 고양되는 경험을 여러 만남에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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