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하철도 999>마냥 하늘로 날아가고픈,
하지만 도시 한구석의 변두리 다음 정거장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전철 안.  

 

사람들은 길쭉하게 앉아 있고 시무룩하다.
반면 창밖의 풍경은 아직 이른 봄날이다.  

 

춥고 흐린 날씨에도 밝고 정겹게 보이는 동네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우중충해도 그 가운데 희망이 있다. 

 

그 희망 주변을 전철이 맴돈다.  
일터에서 가정으로. 
....

작가노트|본 걸 그린다|中  


학교 도서관 6층은 자연과학자료실이다. 다른 층보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6층까지 꾸역꾸역 올라간다. 도서관에서 잠만 자다 오긴 하지만 어쨌든 조용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앉은 자리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흥미로운 책이 없다. 컴퓨터 관련 책, 대수·기하학 및 공업수학 등의 책만 보인다. 수면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둘 중 하나다. 잠식당하거나 몽유병환자처럼 서가를 휘젓고 다니거나.  


서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웬 만화책(?)을 발견했다. 사진기술에 관한 서가와 체육관련 서과 사이에서《을지로 순환선》을 만났다. 책은 크고 무거웠다. 가격을 보고는 ‘더럽게 비싸네!’라고 욕하면서. 만화책을 거의 안 보고 살다가 얼마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이런 만화책은 처음이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한 컷으로 이루어진 만화이긴 한데, 그 속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 듯 하달까. 어느 장면이 아닌 풍경을, 순간이 아닌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아주 오밀조밀한 그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려고 한 노력이 물씬 풍기는 그림이야기.  

 

최호철의 말처럼《을지로 순환선》<은하철도 999>처럼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분명 희망이 깃들어 있다. 시무룩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의 모습이 절망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지만, 이를 품은 풍경들은 화사하진 않아도 아주 정겨운 우리네 생활반경이다. 작가의 시선이 슬픔이나 절망 따위에 지친 사람들의 생활과 영혼을 주시하는 듯하지만, 그림 아주 구석진 자리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들풀, 들꽃이 정겹게 웃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온통 잿빛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는 세상과의 철저한 격리상태에 빠지기 때문이 아닐까. 단골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의 사심 없는 웃음,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구슬땀 흘리며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는 많은 이웃들의 모습은 늘 잿빛 세상 속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이처럼 최호철의 세밀한 터치는 우리가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늘 잊고, 잃어버리는 것들까지 되살려낸다. 그렇다고 온통 희망에 찬 그림과 이야기만은 아니다. 단지, 도처에 우리 눈에 들지 않는 희망이 있다는 걸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내보라는 듯이, 꼭 그런 느낌의 이야기다.

 

이제는 더 이상 봄을 기다리지 않는 땅.
피우지 못할 꽃 대신
돈이 자라는 땅.
020 · 021|돈이 자라는 땅 - 판교 택지 개발지구|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이보다 더 잔인한 폭로가 또 있을까. 인간은 늘 마음으로만 봄을 찾고 기다리는 것 같다. 흙 한 줌 묻힐 기회조차 상실해버린 채, 스스로 그런 기회를 등한시하면서 진실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니. 때론 가증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봄은 그저 상상의 세계, 동경의 세계일  뿐이라고. 아스팔트가 내 몸과 건강을 좀먹어도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의학의 힘을 빌어서라도 오래 살 수 있다고. 돈내음을 봄내음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고. 어느 덧 봄은 우리 오감과 결별한 듯하다.  

 

도시는 자신을 세워 준 이들의 터전을 숨기며 자란다.
더 커지면 아예 바깥으로 밀어내 버린다.
022 · 023|우리 사는 땅|  

 

실컷 키워줬더니 나가라고 등 떠미는 듯한 도시.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어느 구석진 곳에 웅크린 채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세월들. 그들의 절망과 애환 속에서 피어난 꽃, ‘아스팔트 킨트(Asphalt Kind)’ 그렇게 피어난 꽃들은 삼삼오오 몰려간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도시로 본능처럼 나아간다. 제 핏속에 녹아 있는 부모들의 바람처럼 도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는 도시로부터 추방당한 부모들의 터전까지 밀어내려고 오늘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린다.

 

건물들에 포위된 동네 뒷산에 꽃 가득 필 때조차 
꽃내음 한번 가까이 즐길 틈 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꽃피는 나이의 학생들.
024 · 025|동네 뒷동산|

 

책 한가득 든 것도 아닌데, 한없이 무거운 가방이다. 그 때문인지 고개 들어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생각을 못한다. 지천에 꽃이 피어나고 꽃내음 가득해도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알 리 없다. 꽃은 늘 문제집의 아름다운 시 속에 잠들어 있다. ‘~를 위해서’ 그 꽃을 관찰할 뿐이다. ‘~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굳이 흔들어 그 꽃을 깨우지 않는다. 흔들어 깨우지 않고서 오직 ‘~를 위해서’ 만나는 잠든 꽃에서는 꽃내음이 날 리 없다.

 

저녁 뉴스 시간에 잠깐 비춘 물난리소식.
그 시름도 복구도 잠깐 만에 해소되었으면···
032 · 033|수해지역|

 

내가 사는 이곳은 비 피해로 인한 물난리가 나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통해 듣고 보는 것이 전부다. 장마철 내내 빗방울보다 마른장마의 뙤약볕을 더 자주 본다. 그래서 종종 내가 사는 이곳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가 매년 물난리로 고통 받는 이들의 심정을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다. 잠깐 비춰주는 그들의 시련이 마음까지 물로 젖어버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약, 내게 기이한 능력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이곳의 마른장마를 빌려주고 싶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들.
더 나은 조건의 포장을 위해
사각의 틀에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가두는
공공도서관의 아침.
046 · 047|구립도서관|

 

대학도서관의 아침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별반 다를 게 없다. 삼팔선과 사오정이 조금 적다는 것 말고는, 이제 막 해방감을 맛보는 신입생들 말고는. 사각의 링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적막한 공기 속으로 전해지는 오묘한 견제랄까. 이태백을 넘은 자는 삼팔선으로, 삼팔선을 넘은 자는 사오정으로. 끝에 남는 건 무엇일까. 지금 이 시간, 이 시절을 사각의 링에서 보낸 후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 최선을 다하지도 않은 채 내 생각은 늘 저만치 앞서 있다.

 

쓸어낸 겨울 밑에서
숨었던 봄이 보이네..
070 · 071|봄 청소|

 

아직 마음속으로 겨울을 밀어내지 못했는데, 봄은 교정을 뒤덮고 있다. 도서관 안 사각의 틀 속에도 봄이 스며들었는지 연신 꾸벅씨(?)가 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꾸벅이며 봄을 받들고 겨울을 밀어낸다. 반팔로도 이겨낼 수 없는 봄의 기운들. 생각보다 달콤한 그 맛이 그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연신 꾸벅이다 집에 왔는데, 또 꾸벅이는 걸 보면.  

 

추워서 굳어진 바깥 마음이
새어나온 불빛 온기를 찾아온다.
백열등 밑에서 풀리는 얼음장 기억들, 관계들.
092 · 093|포장마차|  

 

술을 끊다시피 하고 살고 있지만 술자리만의 분위기는 끊지 못하는 듯하다. 더군다나 오이와 당근, 어묵국물이나 콩나물국만으로도 술이 절로 넘어 갈 것만 같은 포장마차의 추억은 늘 흐뭇하고 정겹다. 목청껏 시끄럽게 떠들어도 용서가 되는 곳, 다닥다닥 지하철 의자에 앉은 것처럼 죽 늘어앉고 둘러앉은 채 하루를 달래는 곳, 카드나 현금영수증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곳, 바지 호주머니 속에 찔러 넣은 두 손이 따뜻하게 덥혀지는 곳, 그래서 늘 그리운 곳, 아름답게만 기억하고픈 그런 곳.

 

새해 아침이라고
뭐 특별히 바뀌리라 기대도 않지만
바람이 있다면
올해도 무사히 일할 수 있도록···.
100 · 101|신년의 버스 정류장|

 

그러고 보니, 올 한해 뭔가 다짐한 게 없는 것 같다. 담배를 끊어야지, 취업을 해야지, 자격증을 따야지 등등. 2009년은 참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온 것 같다. 조금은 게을러져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했었다. 때가 되면 잘 풀리겠지 하고. 올해도 건강하게 잘 살아보자. 무사히.

 

버릴 게 없던 만큼
살 것도 없던 시절이
아직 몸에 익은데
사는 만큼 버릴 게 넘치는
물건투성이인 세상이 얄궂다.
122 · 123|분리수거|

 

방 정리를 하면서 ‘버릴 것’이라고 베란다에 내다 놓은 것들이 며칠이 지나고 나면 다시 내 방에 있다. 엄마도 아빠도 ‘버릴 게 없던 만큼 살 것도 없던 시절이 아직 몸에 익’어서 그러신가 보다. 늘 구닥다리 같은 걸 왜 못 버리게 하냐고, 속으로 얼마나 짜증을 냈는지 모른다. 남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고심하는 ‘생각하기’에 앞서, 내 가족부터 알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싶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이 분리수거 당하는 그런 얄궂은 꿈을 꿀 것만 같다.

 

평생을 쉼 없이 일했건만
저 많은 집들 중에
내 집은 없는 걸까··.
130 · 131|집|

 

도시를 키워주고 밀려난 이들의 설움. 그것은 배신감 따위의 것이 아니라 지친 내 몸 하나 맘 편히 뉘일 곳이 없다는 한(恨)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찌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고작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때를 회상하며,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내 부모님도 이런 설움으로 사셨겠지. 내가 울고 떠들기라도 하면 죄진 사람처럼 전전긍긍하셨겠지. 집이 없다고 모두가 안타까운 건 아닐 것이다. 단지, 평생을 쌔가 빠지게 일하고도 여전한 삶, 그런 세상이라는 게 안타까운 것일 테지. 평생을 적당히 일하고 쉬어 가면서, 집이 없어도 행복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이 풍속화에 등장하는 공간은 내가 다녀 본 곳들이다. 이 책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 생활 반경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취재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간을 많이 낸 흔적이 별로 없었던 걸 들킨 것 같다. 특별한 장소도 없고···. 부끄럽지만 그것은 게으름 탓이다. 하지만 이 풍속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에너지에는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그렸다. 그 에너지를 통해 관계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니까.
168 · 169 작가노트|본 걸 그린다|최호철 中

 

때론 망원경처럼, 때론 현미경처럼 우리들의 생활 반경을《을지로 순환선》은 담고 있다. 게으름 탓이라고 하기엔 최호철의 그림이야기(풍속화)는 매우 세밀하고 섬세하다. 잘 찾아보면 내 얼굴도, 내 모습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혹은 윌리인지 월리인지가 숨어 있을 것도 같다. 우리의 좁디좁은 생활 반경에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버리는 것까지 죄다 모아서 빼곡하게 그려놓고는 ‘희망’을 저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발 디디며 생활하는 바로 이곳에서 찾아보라는 듯하다.

 

나보다는 너를 찾고, 너를 보고, 너를 이해하고, 너와 소통하면서 희망의 에너지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잿빛 속에 감춰진 소소하지만 말 그대로 ‘살맛나는’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최호철이 말하는 ‘관계의 숨바꼭질이 시작’되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네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의 대한민국 -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린 행복하지 않을까?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3
강수돌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서점에 갔더니 ‘불온서적’이라는 푯말이 붙은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그 책 중에 내 눈길을 잡아끈 책이 바로『1%의 대한민국』『소금꽃나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온서적’ 코너는 모습을 감췄다.『소금꽃나무』는 이웃님이신 기번님으로부터 선물 받아 읽었고『1%의 대한민국』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서 며칠 전에 사들였다.

불온서적이라기에 솔깃(?)한 탓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주된 이유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여섯 명의 강연자 중 적어도 이름만큼은 들어본 분이 네 분(강수돌, 김진숙, 한홍구, 윤구병)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해 아는 건 극히 적지만 관심은 남달랐기에 만나보고 싶었다. 어떤 불온한(?) 말씀을 하시는지도 궁금했기 때문에라도.

솔직히 말해, 불온한 생각 하나 없다. 그렇다고 죄다 맞는 말만 하느냐?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럼 뭐냐? 이 사회가 지닌 문제, 모순, 현상 등에 대한 생각들, 관심,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을 바로 세우자, 노동자의 삶에 대해 관심을 두자, 우리 역사를 바로 보고 청산할 것들은 청산하다, 정치·외교적인 중립을 지키고 평화를 도모하자,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자, 타율적인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자율성을 회복해 각자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자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제, 교육, 인권, 역사, 정치, 외교, 생명, 노동 등의 관점에서 각기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상을 다루고 있어 여러모로 우리의 삶, 우리가 처한 상황 및 문제들을 조명해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반의 시민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이 잘 배어 있고, 강연한 내용을 옮겨 묶은 책이기에 딱딱한 느낌이 덜해서 편하게(내용은 그다지 편하지 않지만) 읽을 수 있다. 청중의 질문과 강연자의 답변도 수록돼 있다.
                                                              *
이 이야기에 대해 유명인사(?) 두 분을 모시고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rainlife; 황 회장님(?), 이런 얘기가 불온한 건가요?
황 회장;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rainlife; 안영미 박사님(?), 그럼 왜 불온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안영미 박사; 기분 탓이겠죠!

rainlife;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다음은 분장실에 계시는 강 선생님(?)과 전화연결을 해보겠습니다. 강 선생님? 이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강 선생; 그래, rainlife 네가 수고가 많다. 불온하다고 생각하는 게네들이 뭐 공부다운 공부(?)를 해봤겠니,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공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구슬땀 흘려 일을 해봤겠니. 게네들이 뭐 연수랍시고 관광이나 했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을 해봤겠니, 청소년은 아직 미숙하고 어리고 선동의 대상이라고만 말하지 진심으로 청소년들과 대화를 해봤겠니. 내 생각엔 말이다, ‘불온서적’이 아니라 ‘불안서적’인 것 같구나. 허허허허~
안영미(?); 야~!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 이것들아!!


                                                  ∥책 속 생각해볼 거리∥

【강수돌 _ 사다리 질서 걷어차기】
공부, 진짜 즐거운 공부, 행복한 공부는 뭐겠습니까? 하루하루 새롭게 깨우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기쁨이 있고, 점수에 무관하게 정말 내 내면을 발견하고, 심화시키고, 확장하고, 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느끼고 세상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의 기쁨을 맛보는 그런 것 어니겠어요?(p54)

【김진숙 _ 자본 천국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공공 부문 노동자 400만이 총 파업을 했습니다. 이거 기억하실 거예요. 이때 병원 문 닫았지요. 판사도 노조 있고, 군인들도 파업하고, 경찰들도 파업 한다매요? 그것들 파업하면 누가 진압하러 가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것들이 400만이 총 파업을 하는데요. 더 신기한 일은 70퍼센트의 프랑스 시민들이 찬성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철밥통 소리 하는 사람, 아무도 없더랬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거를 죽어도 이해 못하는 집단이 있잖아요.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그거를 물어보러 가요. 야, 400만이 총 파업을 해서 프랑스가 그야말로 마비됐는데 불편하지 않냐? 아, 물론 불편하지요. 근데 이 파업에 70퍼센트가 되는 사람들이 찬성을 하는가, 이때 프랑스 시민들이 뭐라고 대답했대요? “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일하지 않으니까 그야말로 프랑스가 마비되지 않습니까? 이들이야말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고 어찌 프랑스를 선진국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그나마 사민주의적 관점에서라도 선진국일 수 있으려면 이 정도는 돼야하는 거 아니에요?(p87~p88)

배를 만들면은요, 요 만한 철판들을 용접하고, 취부하고, 이게 소조립이고요, 그 소조립한 것들을 들고 다시 이 건물만 한 블록을 만듭니다. 이게 중조립이에요. 이 중조립한 것들을 들고 가서 쌓는 게 대조립인데, 제가 대조립에서 일했더랬습니다. 조선소에서 사람 제일 많이 죽고 제일 많이 다치는 데······. 제가 스물한 살 때 입사해서 제일 먼저 본사고가 집채만 한 블록을 크레인으로 들고 가다가 크레인의 와이어로프가 터진 거예요. 블록을 터뜨렸는데 문제는 그 밑에 여덟 명이 깔린 거예요. 여덟 명이 깔렸다고 하니까, 안전관리자들이 바께스에다 집게를 담아가지고 여덟 개를 들고 오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저 새끼들 진짜 웃긴다. 사람이 깔렸다는데 왜 바께스를 들고 오나? 이랬더니, 와이어로프가 터져 가지고 블로이 한쪽은 내려앉자 있고 한쪽은 매달려 있을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그 밑에를 이렇게 들어가서 살점을 한 점씩 집는 겨. 여덟 명이 깔렸다니까 여덟 바께스를 공평하게 만들어요. 마누라들이 신랑 죽었다고 올 거 아녀? 바께스에다가 남편 이름 써 가지고 한 바께스씩 나눠 줘요. 이게 조선소 사고였드랬습니다.(p91)

【한홍구 _ 한국 근현대사의 추악한 진실】
여러분, 과거 청산 문제에서 우리가 화해 얘기를 함부로 하는데 화해 얘기 함부로 하는 사람 정말 말을 좀 삼갔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가 이루어지면 좋죠. 근데 그거는 전제 조건이 뭐냐? 가해자가 잘못했다고 할 때, 가해자가 용서를 구할 때, 사죄하고 고백하고 반성하면서 용서를 구한다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옆에서 피해자들한테 ‘아이고,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좀 용서하고 넘어갑시다.’ 그렇게 얘기해 주겠지만 이 사람들이 ‘그 새끼들은 진짜 빨갱이들이다. 우리가 증거를 못 찾아내서 그렇지 진짜 간첩 맞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무슨 화해입니까? 조작 간첩을 만든 사람들은 사실은 처벌을 해야죠.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서 공소시효 없다고 하면서 처벌을 했어야 합니다.
과거 청산의 문제가 절대로 과거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고통으로서 와 있는 거예요. 계속 진행되고 있는 거죠. 우리가 용어를 과거 청산이라고 잘못 붙여서 그렇지 절대로 과거의 문제가 아니에요.(p150~p151)

【이철기 _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에 말려들 수 있다.】
우리의 역사를 폄훼해서도 안 되지만 마찬가지로 과장해서도 안 된다고 봐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가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우리도 우리의 5천 년 역사에 대해서 냉정하게 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돼요. 일본에 식민지 지배를 받은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과거 역사에 대해서 반성을 하지 않고, 그래서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에요. 미국과 영국도 식민지로 역사를 시작했어요. 러시아도 몽골로부터 240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어요.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고 그것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내야 하는데 우리 국민들이 과연 그런 생각들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어쨌든 ‘팍스 코리아나’는 당분간 그렇게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그럼 어떤 질서가 될까요? 지금의 동북아 정세가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주변 열강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것이겠지요. 주변 열강들은 자기 중심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분투를 하고 있어요. 미국은 미국대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중국은 ‘팍스 치니카Pax Chinica’, 또 일본은 ‘팍스 자포니카Pax Japonica’를 만들고자 하죠. 그러나 앞으로 21세기 동북아 질서가 과거처럼 어떤 한 국가의 패권에 의해 유지되는 질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에요.(p163~p164)

팍스 컨소르티Pax Consortis는 라틴어인데요, 그 지역 국가들이 서로 협력과 견제를 통해서 유지하는 질서를 의미해요. 우리가 동북아에서 당분간은 리더 역할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균형자나 조종자의 역할을 하면서 충분히 우리 목소리를 내고, 우리 영향력을 행사하고, 우리 힘을 발휘하면서 살 수는 있겠죠? 그런 질서를 만들어 가야 돼요. 다자화된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게 바로 팍스 컨소르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안보 정책과 외교 정책이 지금처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편입되어서는 안 돼요. 미국이 중요하지만, 미국뿐만이 아니고 러시아도 중국도 똑같이 중요해요. 우리의 외교 안보 정책을 균형화하고 다변화해서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해요. 우리는 지금 이런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어요.(p177)

【배경내 _ 이땅에서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아는 선배가 영국에서 몇 년 살다가 들어왔어요. 영국에서 유치원 다니던 둘째 아이가 들어와서 우리 유치원에 다녔는데 6개월 동안 유치원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대요. 이 선배가 너무 걱정이 돼서 왜 그랬는지 물어 봤대요.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겠느냐고. 이 꼬마가 하는 말이 “유치원은 우리가 이야기 하는 곳이 아니야. 선생님들만 얘기하는 곳이야.”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아이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그만큼 인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어요. 아이들은 좀 뭔가 미성숙하고, 아직은 배워야 될 때라고 생각하죠. 미성숙하면 어떻습니까? 실수를 많이 하고 많이 다칠 것 같아요. 위험한 일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보호와 통제를 위한 제도나 관행이 발전을 하죠. 그러면 아이들이 다양한 삶의 경험, 이런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죠. 그러다 보면 사람이 무력해져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됩니까? ‘봐, 애들은 모자라잖아.’ 이렇게 해서 다시 미성숙하다는 기존 관념을 정당화해 주는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필요합니다. 어린이 청소년은 원래 부족한 존재였나? 아니면 우리가 이 사람들을 미성숙하게 무력하게 기르고 있는 건 아닌가?(p192~p193)

=>>강수돌이 말하는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적용해 볼 것.(‘사랑의 관점’과 ‘노동력의 관점’으로 본 인간이라는 존재)

어떻게 청소년을 사랑할 것인가? 이 질문이 필요합니다. 랭스턴 휴즈라고 할렘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시인이 있어요. 이 사람이 쓴 ‘민주주의’라는 시를 봤을 때 청소년들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 사람은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했던 분인데, 이 양반이 이런 얘기를 해요. 나는 저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신물이 난다, 내일이 되면 좋아진다는 따위의 말, 내 자유는 내가 죽은 뒤에는 필요 없다, 나 또한 여기에 살아 있으니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요구한다. 백인들이 흑인의 권리를 유예시키는 방식이 바로 내일이 되면 좋아진다는 말이었지요.
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기다려, 권리는 졸업한 후에나 찾아라, 이런 이야기를 청소년들이 듣고 있어요. 청소년들에게 바로 지금을 되찾아주지 않으면, 청소년들이 당장 골병 들고 상처받고 이런 문제뿐 아니라 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균열을 내는 게 불가능해요. 저항할 동기를 잃고 그 동기를 계속해서 꺾어 버리는 사회, 한 번 얘기를 했다가 이거 피 보는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우고 순응하는 거를 일찌감치 깨닫도록 만드는 이 사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p202)

==>졸업 후에 권리를 찾으라며 청소년들의 자유를 유예시킨 이 사악한 농담조를 우리네 청소년들은 그릇된 방식, 혹은 옳다고 믿는 그런 자신의 방식대로(표현하는 것에 대한 어색함? 두려움 등에 익숙한 어설픈 몸짓으로) 표출하게 된다. 무작정 놀기를 좋아하고 늘 나는 이제 성인이라서 여태껏 해보지 못한 것들을 죄다 할 수 있어,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등의 행태를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저는 청소년들이 청소년기에 두려움 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격려받는 사회를 만들어야지만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p206)

【윤구병 _ 나는 왜 농사꾼이 되었나】
대체로 요즘 아이들은 더 그렇지만, 걸음마 하고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극성스러운 부모님이 책상머리에 앉히고, 온갖 교육을 시킨다고, 실제로는 타율적으로 강제되는 시간 속에 몰아넣는데 저는 이렇게 강제된 시간 속에 산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제 삶의 시간을 제가 통제하는 법을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익힌 셈입니다.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말하자면 제 생명력이 다른 사람들의 강제에 의해서 어떤 것을 하도록 순순히 길들여지지 않고 야생마처럼 제가 이것이 옳다, 이것이 좋다 하면서 머리로 깊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비교적 단순하게 몸을 움직여서 삶의 길을 달리 바꾸고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p216~p21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5-2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리뷰 굿! 이런 책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한 번 요췤해봐야겠습니다. ^_-

ragpickEr 2009-05-26 00:51   좋아요 0 | URL
어느새 다녀가셨군요..^^* 후훗.. 너무 할 말이 많아서 길어질 것 같더군요..그래서 개콘버젼(?)으로다가..^^*; 으흐흐.. 늘 건강하셔요~!!

에샬롯 2009-06-0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아주 민첩해요.(봐요. 저 모르신다고 거짓말해요.;;)
^^;; 적고 보니 위의 댓글의 저의 글이 아니네요.
제가 좀 그래요.;;

ragpickEr 2009-06-01 08:22   좋아요 0 | URL
민첩..^^* 후훗.. 그러네요~ㅋㅋ 사진이 같아서 착각하셨나보다..후훗..
 
강아지가 태어났어요 과학 그림동화 6
조애너 콜 지음, 이보라 옮김, 제롬 웩슬러 사진 / 비룡소 / 200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나의 사직동』이 꽂혀있던 서가부근에서『강아지가 태어났어요』를 만났다. 이 책은 웹서핑 중 어느 독자의 리뷰 덕분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책이다.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보고, 읽었다. 지나던 학생들과 같은 책상에서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던 학생이 슬몃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싱글벙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꼬맹이들이 볼법한 책을 탐하고 있었으니 ‘이건 또 뭐임?’ 했겠다 싶다.

앞이며 뒤며 표지가 참으로 귀엽다. 웬만큼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표지에 혹! 할 만큼, 괜스레 온몸이 오그라드는 그런 기분이랄까. 더구나 강아지를 비롯해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주 작고 귀여운 녀석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다. 뒤뚱뒤뚱 거리며 표지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고 한다면 ‘뻥치시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지? 아마 이 책을 접하는 분들은 내 마음을 이해할 것만 같다. ‘우리 함께 뻥치실까요?’라고 당당하게(?) 권유할 것을 믿는다.(후훗..)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강아지의 탄생에 대해 적고 있다. 엄마개의 뱃속에서 나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부터 눈과 귀가 열릴 때까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나(?)랑 재미나게 놀 수 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보여준다. 사진 덕분에 더욱 자세히 고 귀여운 녀석의 성장과정을 생생하게 함께 할 수 있다. 사진이 표지를 제외하고는 흑백이라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참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강아지의 탄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적이 없다. 그냥 쑥~(?) 나와서 어미젖을 빨고 있는 새끼강아지를 본 게 전부다. 엄마개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때 아주 얇은 막에 싸인 채 웅크리고 있는 사진은 참으로 경이로운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 얇은 막과 탯줄을 엄마개가 제거해주고 연신 핥아주면 더듬더듬 거리며 어미의 젖꼭지를 찾아드는 녀석의 본능과 마주할 때 역시 생명의 숭고함이랄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문득 사진작가 김홍희 씨가『방랑』에서 ‘엄마는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던 구절이 생각났다. 엄마는 나 어릴 적에, 엄마개가 임신하고 새끼를 낳을 때쯤 되면 엄마개와 나를 격리(?)시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 손 타면 지 새끼 물어 죽인다. 그러니 보지 마라.’ 혹은 ‘지 새끼 태어나는 거 사람들이 구경하면 새끼를 먹어버린다.’ 등의 전설(?)을 각인시켜주었다. 뭐 다 틀린 말이고 거짓말은 아니었겠지만, 문득 이 책에서 새끼강아지의 탄생 전 과정을 다루고 있는 걸보면서 나도 김홍희 씨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거짓부렁쟁이!’(후훗..)

녀석이 어미젖을 떼고 접시에 담긴 우유를 핥는다. 어색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잘 먹지 않는다. 서툴러서 그런지 먹는 것보다 얼굴에 칠하는 게 더 많은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던지. 내게도 모든 게 서툴던 때가 있었지, 하고 나를 되돌아보기도 했다. 제대로 걷지 못해 좋은 말로 아장아장했겠지만 분명 뒤뚱거렸을 내 어린 날, 그 선명하지도 어렴풋하지도 않은 시간이 왠지 그립게 와 닿았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나싶다.

우유하니까 생각난다. 어릴 적, 안집에서 키우던 검둥이가 낳은 새끼에게 내 우유를 주던 기억. 그때 우리 집은 병에 담긴 우유를 받아먹었는데, 내게 허락된 양을 홀짝홀짝 검둥이 새끼에게 주다주다 나는 한모금도 못 마셨던 기억. 그땐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그냥 녀석이 먹는 것만 봐도 좋았던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고 행복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쭈그려 앉아 우유를 주다가 엄마한테 빗자루 세례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엉뚱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는 아빠개(?)가 안 나온다. 아빠개도 나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어린애 같은 감상에 젖어본다. 태어나고 8주 정도 지난 새끼강아지 토토(이 책에 주인공 강아지 이름)는 줄에 묶여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집을 떠난다. 엄마 품을 떠나 옆집 꼬마의 친구가 되어. 괜스레 씁쓸하게 눈에 거슬리는 토토의 목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어른이라서, 쓸데없이 가련하다는 연민을 갖는 건지도.  

 *************************
이 책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미리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더군요.
혹시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상품정보에서
미리보기로 먼저 접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진으로 읽는 다신전 - 차 생활 입문을 위한 최고의 고전
전재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술 한 잔 해야지!’가 ‘밥 한 끼 묵자!’로 변했음을 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차 한 잔 해야지!’로 연신 바삐 사는 친구들을 꼬여보지만, 그 여유란 게 쉽사리 나지 않는가보다. 막상 그렇게 붙들듯이 꼬여내고서도 편안하고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실 공간이란 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기껏해야 복닥거리는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트는 게 고작이니까.

차茶라고 해봐야 나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내 눈에는 일반의 커피가 가장 손쉽고 단순하게 찾을 수 있고 부를 수 있는 차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외에도 몇몇 차라고 불리는 종류들을 접해보긴 했기만 대게 인스턴트식이었다. 그나마 내 똘끼(?)를 좋게 봐주신 교수님(나무인간 강판권 교수) 덕분에 다도茶道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과 그에 맞춰 슬금슬금 흉내를 내본 게 전부이다. 내가 무슨 차를 마셨는지도 조차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만한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무얼 바라 허둥지둥 생활하고 있는가, 는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직접 차 한 잔 마실 호사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요즘이기에 차와 관련된 책을 접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더군다나 강의 시간에 들어본 다경茶經이나 다신전茶神傳을 어설픈 호기심만으로 접해보는 것 또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좋았던지 서가산책을 하던 도중에 뜻밖의 도우미(?)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사진으로 읽는 다신전』이다.

이 책은 초의선사가 지은 다신전을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엮은 책이다. 원문을 옮기되 짤막하게 옮기고 직역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또한 사진이 매 장마다 삽입되어 있어서 더더욱 내용을 이해하기 편리하다. 나 같이 차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도우미가 있을까 싶은, 굳이 차 생활에 들어서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쁜 일상에 치이면서 작은 여유조차 없이 허둥지둥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촐하게나마 여유라는 ‘향기’로 위로해 줄만한 책인 듯하다.

또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로 접하게 되는 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면서 차를 계절에 따라 적절하게 잘 마시는 법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법이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달리 말해서, 차가 가진 좋은 성질들을 보다 잘 우려내서 되도록 그 진가를 제대로 맛 볼 수 있게끔 한다고 할까.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이런 기술적인 면에 대한 부분도 상술되어 있어서 차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새삼 진중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밖에도 매 장마다 자연이 주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다신전이 가진 가치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차를 우려낼 때 불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에서 중화中和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차를 넣는 순서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리를 되짚어보게 된다. 또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이 단순한 행위나 취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 한 잔으로 태어나 내 손에 들려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과정들 속에 녹아있는 정성을 생각게 하고 차를 이루는 불, 물, 바람, 빛, 찻잎 등이 서로 다투지 않고 제 역할에 충실함으로 인해 비로소 좋은 차 한 잔을 낳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아주 의미 있는 교훈까지 맛보게 된다.

어쩌면 자연이 주는 오묘함이란 제 본분을 지키면서 상생相生하기 위해 정당하고 이로운 경쟁을 근본으로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좋은 차 한 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제 본분을 다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이치가 그 바탕에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북돋울 때야말로 좋은 차 한 잔에 녹아 있는 향과 맛처럼 모든 이들이 이롭게 다투고 서로 존중하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윽한 정취로 가득해지지 않을까. 

         ‡‡‡‡‡‡‡‡‡‡‡‡‡‡‡‡‡‡‡‡‡‡‡‡‡‡‡‡‡‡¨¨주워 담기¨¨‡‡‡‡‡‡‡‡‡‡‡‡‡‡‡‡‡‡‡‡‡‡‡‡‡‡‡‡‡‡

∥⑤火候화후; 불의 조절∥
烹茶旨要 火候爲先(팽다지요 화후위선)
爐火通紅 茶瓢始上扇起要輕疾(노화통홍 다표시상선기요경질)
待有聲 稍稍重疾(대유성 초초중질)
斯文武之候也(사문무지후야)
過於文則 水性柔 柔則 爲茶降(과어문즉 수성유 유즉 위다강)
過於武則 火性烈 烈則 茶爲水制(과어무즉 화성열 열즉 다위수제)
皆不足於中和 非烹家要旨也(개부족어중화 비팽가요지야)

차 생활의 첫째는 불을 잘 다루는 일이다.
화로의 불이 활활 피워지면 주전자를 위에 놓고 부채질을 가볍고 빠르게 하고,
끓는 소리가 나면 부채를 더욱 짧게, 빨리빨리 부친다.
이것을 불과 물의 조절이라 한다.
불이 약하여 물이 덜 익으면 차의 맛이 나타나지 않고,
불이 너무 강하면 물이 너무 익어 차의 맛을 제압한다.
불이 약하거나 너무 강한 것은 중화를 잃은 것으로, 차(茶) 우리는 방법이 아니다.(p65~p71)

∥⑨投茶투다; 차 넣기∥
投茶行序 毋失其宜(투다행서 무실기의)
先茶湯後 曰 下投(선다탕후 왈 하투)
湯半下茶 復以湯滿 曰 中投(탕반하다 부이탕만 왈 중투)
先湯後茶 曰 上投(선탕후다 왈 상투)
春秋中投 夏上投 冬下投(춘추중투 하상투 동하투)

차를 우릴 때에는 그 정해진 순서를 잘 따라야 한다.
차를 먼저 넣은 다음 탕을 나중에 부으면 하투(下投)요,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다음, 다시 물을 붓는 것을 중투(中投)라 하며,
찻물을 먼저 붓고 차를 넣는 것은 상투(上投)라 한다.
봄, 가을에는 중투(물-차-물), 여름에는 상투(물-차), 겨울에는 하투(차-물)로 한다.(p120~p123)

∥⑬味미; 차의 맛∥
味 以甘潤爲上 苦滯爲下(미 이감윤위상 고체위하)
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좋으며, 떫고 쓴 맛이 있는 것은 나쁘다.(p143)

∥⑯品泉품천; 물의 품성∥
茶者 水之神 水者 茶之體(다자 수지신 수자 다지체)
차는 물에 색향미(色香味)를 주고, 물은 차의 색향미(色香味), 곧 다신(茶神)을 담는 몸이다.(p155)

眞原無味 眞水無香(진원무미 진수무향)
진수(眞水)는 본디 맛도 향기도 없다.(p167)

∥⑱貯水저수; 물의 저장∥
飮茶惟貴夫 茶鮮 水靈(음다유귀부 다선수령)
茶失其鮮 水失其靈 則 與溝渠何異(다실기선 수실기령 즉 여구거하이)
차 생활에서 소중한 것은 오직, 차가 변하지 않아야 하며, 물의 기운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가 변질되고, 물이 싱그러움을 잃었다면, 이는 곧 도랑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p181)

∥茶衛다위; 다도의 요체∥
造時精(조시정)
藏時燥(장시조)
泡時潔(포시결)
精燥潔 茶道盡矣(정조결 다도진의)

차를 만들 때 정성을 다하고,
보관할 때는 건조하게 하며,
달일 때는 청결하게 해야 한다.
정(精) · 조(燥) · 결(潔)이 다도(茶道)의 전부이다.(p194~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그 후 - 환경과 세계 경제를 되살릴 그린에너지 혁명이 몰려온다
프레드 크럽.미리암 혼 지음, 김은영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감내해야 할 시절은 어수선하고 한숨이라도 돌려야 할 내 하루마저 지난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움츠려들다 보면 한없이 너른 이 세상도 고작 방 한 칸 남짓하게 좁아지기 일쑤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좁디좁아진 세상에 누군가의 부고(訃告)까지 날아들면 천 길 낭떠러지가 따로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져 지낼 수만은 없는 일. 때론 삶에 있어서의 근원적인 진리는 소소하지만 아주 명징하게 나를 일으켜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심히 ‘불편한 冊(?)’으로 다가온《지구, 그 후》.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듯하다. 제목만 보고 혹은 책 표지를 보며 내 마음대로 내용을 추측했던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이반 일리치나 앙드레 고르의 길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을 그린 줄로만 알았다. 또 근래에 접하기 시작한 격월간지《녹색평론》과 그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내 추측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치 이영표 선수만큼이나 아주 제대로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쉽게 말해, 이 책에서 부단히 구슬땀을 흘리며 에너지 혁명(?)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시장, 정책, 설비, 기술혁신 등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가(기업가)들이다. 이들은 대체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을 위해 공급단가를 낮추어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나아가 자본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이윤추구를 달성하고 세계를 감동시킴으로써 자유경제체제 위기를 극복하고 신기술을 통한 에너지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잘못됐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럴 만한 능력이 내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결국 일반의 세계민들의 주체성에 대해서는 거의 배제적인 입장이다. 현재 우리가 떠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자본과 기술로써 타계해나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조금은 불분명하고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기술만 완성된다면, 더 많은 투자자본이 확보만 된다면 우리는 충분히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여 지금의 환경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는 논리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이룬다.

내가 뭐 아는 것도 없는 미천한 사람이지만, 녹색혁명이니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이니 목소리를 높이는 이 노력가(?)들의 행태는 노력이라는 측면을 벗어나 비체제적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反생태적인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원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들의 노력이겠지만, 사실상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율을 따지고 경제성을 따져가면서 일단 ‘막고’, 다음으로 ‘차고’, 끝으로 ‘때리기’ 식의 해결책에 정력적으로 구슬땀 흘리는 게 아닌가 싶어 자못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나로서는 이들의 노력이 일단 ‘막고 보자’ 식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쓸데없는 이야기(?)가 좀 많이 가미된 듯. 대체에너지 개발에 뛰어든 신생기업들의 초기자산규모는 얼마였는데 지금은 얼마고 시가총액은 이만큼 상승했고, 앞으로 공급단가를 낮추고 좀 더 기술개발을 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는 식의 서술이 이 책에 나오는 기업만큼 빠짐없이 나온다. 이런 부분들만 적절하게 조절했었어도 이들의 구슬땀은 좀 더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런 부분들에 조절이 가능했다면, 책값도 조금은 대중적(?)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읽고 있는《숲에게 길을 묻다》와 비교해보면 책의 디자인이나 구성면에서도 조금은 부족함이 많은데 그 값은 대중적이지 못한 듯해서 안타깝기도 하다.

아는 거 없이 너무 거칠게 소감을 적은 듯하지만, 내 생각에 이 책은 ‘反생태적인 노력의 대가들이 써내려가는 성공신화를 위한 스케치(?)’ 쯤이 아닐까 싶다. 진정으로 지구를 위한다면, 일단 자본이 바탕인 체제를 넘어서야 되는 게 아닌가, 과감하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게 먼저 아닌가, 자본이 여태껏 우리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많은 혜택과 편리성, 금빛세상(?)을 쥔 손을 좀 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 심각한 문제이며 생명의 존속 여부마저 불확실하다면 체제를 넘어선 유연한 사고와 노력들로 성공신화를 그려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는 많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으로 지금의 환경문제가 나타나게 된 게 아닌지도 모른다. 불가피한 결과로써 이미 그 씨앗 속에 지금의 문제들은 오롯이 성찰되지 않은 채, 우리에게 잡히지 않은 채 쑥쑥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끊임없이 문제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결함이 아닐까 싶다. 전 지구적인 시각을 갖고 근원적인 문제인식을 한 것 치고는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너무 빤한 노력이 아닌가 싶어 조금은 씁쓸하다.

우리의 목표이자 당면과제는 지구온난화를 불러오는 대기오염을 줄여 지구의 생태환경과 기후패턴이 너무나 급격하고도 광범위하게 변해 우리가 더 이상 재앙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탈출하는 것이다.(p57)

이들의 탈출계획(?)에 동참할 생각이나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을 듯싶다. 훗날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종속되고 변변찮게 살면서 그네들이 일궈낸 결실을 넙죽 받아들게 될지도 모르지만······. 
 

**********************
엉뚱한 소리를 너무 많이 했네요.
워낙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지온 2011-01-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코드 그린"이란 책에서도 미국인들의 혹은 자본주의자들의 "돈이 되는 것"이란 얄팍한 생각, 지금의 지구를 만든 그런 생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더군요.
아쉽고 무섭습니다.